54화 왕위 계승전(20)
‘스킬이 상향되었다고?’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비전 검술이 성장형 스킬인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위력만 올라갈 줄 알았지 이런 식으로 변할지는 예상을 못 하였다.
아무튼 등급이 올라간 만큼 스킬이 좋아졌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뭘 그리 쪼개고 있느냐!”
칼슨이 의미 모를 미소를 보이자 심기가 안 좋아진 리나드 후작. 다시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키며 그를 공격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칼슨의 검이 조금 더 빨랐다.
“하아압!”
기합을 내지르며 자신을 위협하는 상대의 검. 아마도 분명 아까와 같은 비전 검술이 분명해 보였다. 리나드 후작은 사각에서 들어올 공격을 의식하며 눈앞의 검을 단숨에 쳐내었다.
치이이익──── 콰아앙!
오러 블레이드끼리 부딪혀서인지 그 여파가 상당하다. 미온한 칼슨의 블레이드가 상대의 것과 부딪히며 그 충격이 손까지 전해졌다. 이에 말도 못 할 통증이 밀려왔지만 높은 정신력으로 그것을 버티어 내었다.
거기다 그가 쥐고 있는 검은 반라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고순도 미스릴 검. 오러의 소모량이 컸지만 그래도 상대의 오러 블레이드에 제법 잘 버티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비전 검술.
치익── 채앵!
오러가 변하는 것을 느낀 리나드 후작은 재빨리 몸을 틀며 다가오는 공격을 막아낸다. 다시 놈의 공격을 막아냈다고 생각하자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그런데 그는 곧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자신을 향해 들어오는 공격이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치이잉─! 팅─! 푹! 칭─! 푸욱! 푹! 칭! 챙! 팅!
수십 개의 검이 사방에서 자신을 찔러 들어왔다. 하나하나의 위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크어어어억!”
몸 이곳저곳에 구멍이 뚫리며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리나드 후작. 다행히 치명상은 없었지만 상처를 너무 많이 입었다. 전신에 흘러넘치는 고통은 둘째치고 다량의 출혈로 인해 현기증이 나기 시작하였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체면이 구겨지는 것을 감수, 바닥을 구르며 몸을 피하였다.
“리나드 후작님!”
“모두 후작님을 지켜라!”
그의 뒤에서 대결을 지켜보던 기사들이 깜짝 놀라며 앞으로 나선다. 하지만 다시 한번 선보이는 칼슨의 비전 검술. 순식간에 수십 개의 칼날이 생기며 그들을 향해 뿌려졌다.
푸욱─! 탱─! 푹! 서걱─! 푸욱! 푹! 칭! 서걱! 푹! 푹!
“커어억!”
“아악!”
“끄아아악!”
검의 폭풍에 단말마를 외치며 고꾸라지는 기사들. 그들 모두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그대로 절명해버렸다.
“허억! 저건 말도 안 돼!”
“크허억! 괴, 괴물이다! 살려줘!”
“도, 도망가야 해!”
[‘[칭호] 전장의 사신’이 발동되며 적들의 사기가 떨어집니다.]
[지배력의 영향으로 적들의 사기가 떨어집니다.]
그의 압도적인 모습에 적들은 모두 겁을 집어먹는다.
순식간에 전의를 잃어버린 귀족파의 병사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본 칼슨은 큰 소리로 외친다.
“적들의 수장이 도망을 쳤다! 모두 나를 따라 적들을 물리치자!”
[지배력의 영향으로 아군의 사기가 올라갑니다.]
그 말과 함께 쏜살같이 튀어 나가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자경단들 또한 사기가 오르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우와아아아아! 영주님을 따라라!”
“와아아아아! 적들을 쳐부수자!”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이제 막 성벽을 올라온 귀족파의 군대들은 당황스러웠다. 분명 리나드 후작님이 적들을 밀어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저들이 성난 파도처럼 몰려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피투성이가 된 남성이 겁먹은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모, 모두 저놈을 막아! 어서!”
“헉! 리, 리나드 후작님?”
“도대체 이게 어찌 된….”
그 행태만 본다면 적을 피해 달아나는 전형적인 패잔병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지금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감조차도 잡히지 않았다. 다만 좋은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어딜 도망가느냐! 리나드 후작!”
“크윽! 젠장!”
어느새 뒤를 쫓아온 칼슨이 그를 향해 외친다. 자신을 상당히 얕잡아 보는 말투였지만 리나드 후작은 화낼 여유조차 없었다. 당장이라도 저 괴물 같은 놈이 자신을 죽일 것 같았기에 필사적으로 걸음을 놀릴 뿐이었다.
어찌 됐든 아군을 헤치며 달아난 그는 재빨리 성벽 아래로 뛰어내린다.
그의 그런 행동을 그대로 지켜본 귀족파의 병사들. 상황 파악조차 안 된 채 어안이 벙벙해질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칼슨과 자경단원들이 들이닥쳤다.
푸욱! 푹! 푸욱! 푹! 서걱 푸욱!
숙련된 병사들의 창날이 그들에게 꽂히며 그대로 꼬치 신세가 되어버렸다. 순식간에 아군들이 죽어 나가자 뒤에 있던 병사들은 모두 사색이 되며 겁에 질려버렸다.
그런 그들에게 칼슨은 사형선고를 내린다.
“적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마라! 우리의 무서움을 똑똑히 보여줘라!”
“우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푹! 푸욱! 푹! 푸욱! 푹! 푹!
그의 말대로 무자비하게 적들을 내리꽂는 수많은 창들. 그 공격에 저항조차 못 하며 그대로 적들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 * *
“허억 헉…!”
병사들을 희생하며 겨우 그곳을 빠져나온 리나드 후작. 몸이 성치 않았지만 그래도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다행히 아래에는 아군이 많이 있었고 그렇기에 그는 조금 안심을 하였다. 그리고 지나가던 기사를 불러 그에게 말을 걸었다.
“거, 거기. 잠시만 멈추어라!”
“응?…설마, 리나드 후작님?”
피투성이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에 단숨에 그를 못 알아보았지만 그래도 붉은 수염이랑 목소리를 통해 알아채고는 깜짝 놀란다.
“크윽! 로, 로우링 자작에게 데려가다오. 어서!”
“예? 예, 알겠습니다.”
당황한 기사가 그에게 말을 구해주자 재빨리 올라탔다. 그리고 곧장 로우링 자작에게 가려 할 때.
어디선가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르르르르
갑작스런 땅 울림에 리나드 후작은 시선을 돌린다. 그리곤 서서히 그 눈이 커지더니 경악하고 말았다.
“뭐야! 저것들은?”
저 멀리에서부터 일어나는 흙먼지들. 그러고 보니 칼슨 드레이크가 여기 왔었다는 것을 생각하자 그는 그것이 적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젠장, 적군이 온다! 모두 전열을 갖추어라!”
아픈 것도 잊은 채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를 낼 때마다 상처가 벌어지며 아려 왔지만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그의 소리를 들은 로우링 자작이 그를 찾아 이곳까지 왔다.
“허억, 리나드 후작님!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몰골이 말이 아닌 그를 보고 놀란 눈을 하며 묻는다.
그가 다가온 것을 본 리나드 후작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크윽, 칼슨 드레이크 그놈이 나타났네. 그리고 그놈의 병력들이 저기에서 오고 있네. 지금 한시가 급하다네, 어서.”
“예? 드레이크 자작이 나타났다고 하셨습니까?”
빨리 와봐야 사흘 후에나 도착할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훨씬 빨리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저 멀리 지평선에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병력들이 눈에 보였다.
“이런, 놈들이 이곳에 오기 전에 성을 빨리 점령해야겠습니다. 그런데 후작님 왜 아래로 내려오셨습니까?”
“저기 위에 칼슨 드레이크 그놈이 있어.”
“예? 그게 무슨…….”
“그 괴물 같은 놈이 바로 저 성벽 위에 있다고!”
그가 하는 말이 선뜻 이해가 안 되어 의문을 표하자 리나드 후작이 다급히 말하였다. 그 말에 잠시 상황을 정리해보는 로우링 자작. 그리고 곧 현재 상황을 깨닫는다.
“서, 설마 후작님께서 그자에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닐세! 로우링 자작. 저기 놈들의 병력들이 이리로 오고 있다고! 어서 전투 준비를 해야 하네.”
자신이 그에게 패배했다는 것을 언급하려 하자 재빨리 말을 바꾸는 리나드 후작. 허나 그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로우링 자작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진영을 좀 더 뒤로 물러서 놈들을 상대해야겠습니다.”
그러곤 병사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친다.
“모든 병력은 들어라. 지금 적들의 지원군이 이리로 오고 있다.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진영을 뒤로 물리겠다! 서둘러라, 어서!”
“모두 뒤로 물러나라!”
“뒤로 빠져라! 적들이 이곳으로 들이닥치기 전에 대열을 갖춰라!”
기사들 또한 그를 도와 병사들을 지휘하며 이끌었다. 그러자 어느 정도 전열이 가다듬어지기 시작하였다. 로우링 자작은 놈들이 화살 공격에 대비해 더욱더 뒤로 대열을 맞추었다.
그리고 접근해오고 있는 드레이크의 본대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를 하기 시작하려던 그때.
콰아앙! 콰앙! 쾅!
마치 천둥소리 같은 굉음. 이건 분명 조금 전에 들었던 그 소리였다. 그 소리에 모든 병사들이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그곳은 곧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콰앙! 쾅! 콰아앙!
“크아아악!”
“으아악!”
“허어억!”
포탄이 바닥에 떨어지며 주변을 날려버렸다. 그로 인해 애써 잡았던 진형이 순식간에 흐트러져버렸다. 로우링 자작과 기사들은 병사들을 진정시키며 다시 전열을 가다듬으려 하였지만 이미 적의 본대가 이곳에 들이닥치고 말았다.
콰앙! 쿵! 퍽!
마갑으로 무장한 기사와 기마병들이 부딪히며 병사들이 으스러졌다. 그로 인해 안 그래도 혼란스러웠던 병력들이 더욱더 통제 불능의 상태로 변해버렸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리나드 후작은 분을 토하며 소리친다.
“이런 제길! 또 저 마법이냐!”
“으윽, 진정하십시오. 후작님. 지금은 최대한 대열을 유지하며 싸워야 합니다.”
“크윽, 알았다. 어서 놈들을 막아라! 아직은 우리가 병력이 더 많다!”
필사적으로 병력들을 이끌어 보지만 이미 무너져버린 전세를 뒤집기는 쉽지가 않았다. 물론 병력 자체는 아직 상대에 비해 배는 많아 보였다. 그러나 이런 전투에서 중요한 것은 기세. 지금 그들의 사기가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적들을 물리치자!”
어느새 기병들의 뒤를 따라온 보병들이 중구난방이 되어버린 귀족파의 병력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 그 수가 고작 수백에 불과하였지만 기세는 가히 폭발적. 상대는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일말의 여력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끼이이이익─── 텅!
“와아아아아아!”
성문이 열리며 튀어나오는 자경단원들. 그들이 비록 일반 병사에 미치지는 못하였지만, 지금 적들에겐 그들은 목숨을 도외시하며 달려드는 역전의 용사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선두에 있던 칼슨이 큰 소리로 외친다.
“저기 적의 잔당들이 모여 있다! 아군을 도와 적들을 섬멸하라!”
“우와아아아아아!”
그의 말을 들은 그들은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온다.
그 폭풍 같은 기세에 적들의 사기가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그 모습은 마치 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