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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지가 제일 강함-49화 (49/162)

48화 왕위 계승전(14)

깡─!

“크으윽!”

제법 둔탁한 소리.

이번에도 허점을 노리고 들어왔다. 다행히 본능적으로 틀어 갑옷으로 막았지만 전해진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소드 마스터. 이 정도의 타격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제길, 이번에야말로 통할 줄 알았는데…….’

강철과도 같은 몸. 과연 소드 마스터였다.

순간 그는 칼슨이 바스테르 백작과의 대련에서 이겼던 것을 떠올렸다.

전에 자신의 주군이 싸웠던 이도 이와 같은 소드 마스터. 비록 대련 이였지만 이 같은 자와 싸워 이긴 자신의 주군이 무척이나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허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뒤로 접어야 할 때.

하나 남은 화살에 그의 모든 걸 걸어야 했다.

발에 오러를 집중에 더욱더 속도를 높이는 리나드 후작.

눈앞의 녀석과 차이가 더욱 좁혀졌다.

상대와의 간격은 이제 열 걸음 남짓.

지척이나 다름없는 그 거리에서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등 뒤에 매달린 화살통이 비어있는 게 보였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놈이 가진 유일한 화살. 아마도 저것이 마지막 화살일 터.

곧 승부를 볼 듯하였다.

이제 간격은 고작 다섯 걸음.

호흡이 가빠진 듯 거친 들숨이 귓가에 들려왔다.

데워진 몸을 식히기 위해 새어 나오는 땀방울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놈의 어깨가 미묘하게 들썩이며 움직이려 하였다.

그 변화에 리나드 후작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곧 다가올 놈의 공격에 대비하며 자세를 낮춘다.

두 걸음.

검을 뻗으면 닿을 거리.

상대가 몸을 틀기 시작한다.

이에 맞춰 자신 또한 반응하며 그에 대비하였다.

그런데 놈의 손에 화살이 없다.

그 행방에 의문을 표하는 순간 어느덧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화살촉에 보였다.

‘어?’

놈이 활시위를 당긴 것은 아니었다.

그럴 조짐이나 틈은 전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자신을 향하고 있는 저것은 무엇인가.

그러고 보니 그 속도가 많이 느리고 힘이 없어 보였다.

‘설마?’

그 생각이 맞았다.

상대는 활시위를 당기지 않고 그대로 화살을 던져버린 것.

그 위협적인 기세에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그것을 튕겨내었다. 허나 그로 인해 생긴 찰나의 틈.

상대는 어느새 손에 쥔 검을 투구의 빈틈을 노리며 찔러 넣는다.

‘씨발!’

푹!

생살이 찢기는 감각이 전해졌다.

흐릿한 피 냄새 또한 느껴졌다.

의심할 여지 없이 우터의 검이 후작을 찔렀다.

그러나 굳어있는 우터의 얼굴.

상대의 얼굴에 박혀있는 그의 검. 하지만 더 이상 파고들지는 못하였다. 그의 검날을 리나드 후작이 이빨로 물고 있었기에.

“이 괴물 같은…….”

치가 떨리는 표정을 한 그에게 상대의 주먹이 날아갔다.

퍽!

우당탕탕.

형편없이 나가떨어지는 우터.

아찔한 그 충격에 정신을 잃을 뻔하였다.

그 또한 투구를 쓰고 있었지만 소드 마스터의 완력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게다가 그는 갑옷에 오러를 집어넣었기에 인간병기나 마찬가지인 상황.

퉤!

입에 있는 검을 빼낸 후 입 안에 고인 침을 뱉어낸다.

찢어진 곳이 제법 얼얼했지만 그뿐이었다.

이 정도 출혈은 그의 회복력이면 가만히 놔둬도 멈출 것이다.

반면 우터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활과 화살도 없고 검 또한 상대방의 발밑에 놓여 있었다.

거기다 머릿속까지 울리는 통증.

어질어질한 것이 쉽게 회복할 것 같지 않았다.

그야말로 꼼짝없이 제압된 상태.

그의 그런 상태를 확인한 리나드 후작이 검을 거둔다.

그리고는 그에게 말한다.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줄이야…….”

“…….”

“굉장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실제 보니 소문보다 더 대단해.”

갑자기 자신을 칭찬하며 태도 또한 부드러워지자 의아함을 느낀 우터.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참으로 아까워. 자네 같은 인재가 이런 데서 썩어나는 것이…….”

“…….”

“어떤가? 자네만 괜찮으면 내 자네를 휘하로 받아주겠네. 이 리나드 후작의 가신으로 말일세.”

“……개소리하지 말고 어서 죽여라!”

“…….”

상대가 자신의 회유를 단칼에 거절하자 리나드 후작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이렇게 정중히 제안하는데도 이런 오만불손한 태도라니.

이 천한 놈이 알량한 제 능력만 믿고 제 주제를 아직 모르는 듯했다. 그대로 놈을 베어버리려 했지만 순간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래, 너무 쉽게 얻는 것도 그렇지. 단숨에 수락한다는 것은 그만큼 충성심이 없다는 것이니까.’

놈의 호통에 잠시 화가 났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니 오히려 이런 점이 더 맘에 든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한번 그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대가 드레이크 자작에게 바치는 충성심이 남다르다는 것은 알겠네. 하지만 그 충성심도 그대가 살아있어야 가능하지 않겠나?”

“…….”

상대가 말이 없자 리나드 후작은 그가 고민하고 있다 여겼다. 그리고 미소를 지은 채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당장 내게 충성을 맹세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네. 천천히 고민해도 봐도 좋아. 3년. 딱 3년만 기다리고 그래도 자네 마음이 변화가 없다면 그땐 내 자네를 자유롭게 풀어주겠네.”

어차피 생포한 다음 계속 구슬린다면 그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 안에 칼슨을 제거하면 마음이 변할 수도 있다. 반대로 복수심에 불다 자신을 증오할 수도 있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여도 그때 가서 제거하면 그만이었다.

“……그 말 맹세할 수 있소?”

상대의 태도가 다소 정중해지자 리나드 후작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허나 속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는 법.

“물론이지, 내 이름을 걸고 그렇게 해주도록 하겠네.”

인자한 표정을 하며 말하자 우터가 손을 내밀며 입을 연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소.”

상대방의 수락에 그의 입가가 귀에 걸렸다. 너무나도 기쁜 표정을 하며 그의 손을 덥석 잡는다.

“잘 생각했네. 자 그럼…….”

푸욱!

그 소리와 함께 무릎 뒤쪽에 통증이 느껴지며 힘이 풀렸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리나드 후작.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상대를 바라본다.

자신을 보며 비웃고 있는 눈매.

그제야 그는 알았다. 눈앞의 이 자는 자신을 전혀 섬길 뜻이 없다는 것을. 거기다 비굴하게 살지 언정 차라리 목숨을 버리겠다는 것을.

자신을 또 농락했다는 사실을 안 리나드 후작은 순간 분을 참지 못하며 소리친다.

“이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퍼억!

“크어헉!”

우당탕!

다시 한번 그의 주먹이 우터를 날려버리자 그대로 내동댕이쳐지는 우터의 몸뚱이. 정신을 잃진 않았지만 더 이상 몸을 가눌 수 없는지 일어서지 못하며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하아…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밤하늘을 본다.

이제 조만간 상대가 자신의 목숨을 끊으러 올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단지 아쉬운 것은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주군의 곁을 지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것.

그는 담담히 자신의 최후를 기다렸다.

이윽고 다리를 절며 다가오는 리나드 후작.

부상을 입었지만 이 정도로 자신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상대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천한 놈에게 은혜를 베풀었건만 감히 뒤통수를 쳐?”

“……크크크. 어차피 날 곱게 풀어줄 생각도 없지 않았느냐?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았나? 은혜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나 하면서. 크윽.”

“뭐라?”

상대가 자신의 의중을 파악했다는 것을 안 순간 그는 얼굴이 벌게지며 당황하였다. 하지만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며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더 이상 말을 섞는다는 것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겠군. 나를 곤란하게 만든 이여. 이제 그만 죽어라.”

검에서 오러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살심이 가득해 보이는 붉은색의 오러. 그것이 충만해진 검이 우터의 심장을 꿰뚫으려는 찰나.

철── 퍽!

“으윽!”

자신을 향해 검을 찔러 넣으려던 그가 갑자기 멈추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뭔가가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고 그 때문에 놈은 손을 허우적거리며 괴로워하였다.

“아저씨! 괜찮아요?”

“…아.”

오랜만에 듣는 그 호칭.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에밀리였다.

“괜찮으십니까, 대장님?”

그녀와 함께 갔었던 파이샤 또한 돌아와 그에게로 다가온다.

“왜, 왜 돌아온 것이냐? 크윽!”

“일단 이곳을 벗어난 다음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그를 부축하자 부상당한 곳이 아픈 듯 신음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이내 참아내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꾸르르르!”

“으으으윽!”

에밀리의 물의 정령인 운디네가 리나드 후작의 머리를 감싸고 있자 그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손으로 그것을 떼어내려 하였지만 물만이 느껴질 뿐 집을 수 없었기에 오러를 이용해 지속적인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에밀리 또한 안간힘을 쓰면서 운디네에게 마나를 밀어주고 있었기에 그 실랑이는 지속되었다.

“어서, 서둘러주세요! 계속 버티고 있기가 힘들어요.”

그녀가 다급히 재촉이자 파이샤 또한 힘을 내어 우터를 말이 있는 곳까지 옮겼다.

“으, 안 돼. 에밀리.”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태에도 에밀리를 걱정하는 우터. 하지만 파이샤는 그의 의중을 무시한 채 묵묵히 말 위에 그를 고정시킨다. 막 그렇게 말을 태우고 도망치려던 때.

치지직 퍼어억!

“크아아아아!”

리나드 후작이 오러 블레이드를 자신의 얼굴 근처에 갖다 대며 운디네를 역소환 시켜버렸다.

“꺄아아아악!”

자신이 불러낸 정령이 역소환되자 그 충격으로 에밀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후아아아아…….”

마침내 운디네에게서 벗어난 리나드 후작.

그동안 못 쉬었던 숨을 단숨에 들이쉬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하였다. 정말이지 조금만 늦어졌다면 질식할 뻔하였다.

“크으윽!”

얼굴이 매우 쓰라렸다.

정령을 떼어놓기 위해 얼굴에 오러 블레이드를 갖다 대어서인지 상처가 꽤나 깊었다.

그가 자랑하던 수염의 일부분이 다 타버렸고 턱에서 광대 쪽까지 뻘겋게 익은 자국이 보였다.

“이 조그마한 영지에 아주 희한한 것들이 잔뜩 있구나!”

귀궁에 이어 마법사보다 보기 힘들다는 그 귀한 정령사까지. 그러고 보니 듣기로 그 자작 놈이 소드 마스터라는 이야기까지 나돈다.

그렇게 생각하니 화딱지가 올라온다.

생각 같아서는 모조리 납치해서 두고두고 부려 먹고 싶었지만 지금 자신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입안과 얼굴이 화끈거리고 한쪽 다리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움직임이 둔해졌다.

“우선 이 시건방진 계집부터…….”

바닥에 쓰러져 있던 에밀리에게 다가간 그는 그녀를 처리하기 위해 높이 검을 치켜세운다. 이제 막 정신을 차렸지만 아직 회복을 못 한 그녀. 다가오는 리나드 후작을 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겁을 먹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분함에 가까웠다.

약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힘이 더 강했더라면 이런 상황이 오지 않았을 텐데….

분함과 후회가 사무치며 그 간절함이 마음속으로 커져만 갔다. 그때였다.

휘이이이이이잉────

갑자기 그녀 주위로 엄청난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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