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왕위 계승전(12)
칠흑 같은 검은 후드를 쓰고 한 손에 각궁을 들고 있던 그자. 꽤나 멀리 떨어져 있기에 그 용모가 분명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행태를 보아하니 그가 화살을 쏜 것이 분명하였다. 그런데 그 거리가 무려 천 보가 넘어간다. 실로 상식 밖의 사거리였다.
‘설마 저자가 그 귀궁(鬼弓)이라고 불리는 자인가?’
귀궁 우터.
드레이크 영지의 가신으로 그리 이름이 알려진 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그가 그 신묘한 솜씨를 보이며 여러 전투에서 활약을 하게 되어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화살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그 모습이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하다고 붙여진 별칭이 바로 ‘귀궁’이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신궁에 버금간다는 이야기도 나돌았지만, 자세한 사항은 리나드 후작도 모른다.
드레이크의 영주와 늘 함께한다고 들었는데 이곳에 그가 나타났다는 말은 혹시 영주가 와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아닐 것이다. 그럼 그 혼자 저렇게 있을 리가 없다. 필시 수많은 병력들과 함께 이곳에 왔을 터.
그렇다면 이건 놈이 제 발로 몬스터 입속에 들어온 격이었다. 바로 놈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 생각한 리나드 후작은 당장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지금 당장 저자를 당장 잡아라!”
“예! 알겠습니다. 후작님!”
두두두두두.
대답과 동시에 말을 끌고 달려 나가는 기사들. 그 뒤를 백여 기의 기병들이 따라갔다.
한 번에 백 마리가 넘는 말들이 움직이자 그 울림이 들판을 뒤흔든다.
그 모습을 본 우터.
옆에 있던 말을 타며 재빨리 말머리를 틀었다.
“놈이 도망치려 한다!! 어서 속도를 높여라!”
그가 말을 타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이자 기사들은 다급한 표정으로 박차를 가하였다.
이번에도 놓치면 분명 리나드 후작이 자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필사적으로 말을 몰며 도망가는 적을 잡으려 하였다.
다그닥 다그닥───
한참을 그렇게 쫓아가던 그때.
와르르르
지반이 무너지며 기사들의 말들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어억!”
“크윽, 이건 또 뭐야?”
선두의 기사들은 무너지는 말들을 밟고 뛰어올라 다치는 것을 피하였다. 구덩이에 빠진 말들이 서로 뒤엉키며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밟혀 나갔지만 기사들은 무사히 착지하여 그 몸을 보전하였다. 그러나 후방의 일반 기마병들은 그러지 못하였다.
우당탕탕── 콰당탕─!
“흐어어억! 안 돼!”
“아아아악 살려줘!”
처절한 비명 소리들.
속도를 높였기에 멈추기 힘들었던 그들은 그대로 구덩이 속으로 말과 함께 딸려 들어갔다.
우드득! 콰직! 와드득!
부러지고 짓눌리는 소리. 소름 끼치도록 끔찍한 충돌음.
말의 무게에 짓눌린 그들은 그대로 압사하며 그 생을 마감하였다. 참으로 참혹한 광경. 그걸 처참한 광경을 본 기사들은 순간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워! 워!”
“앞에 함정이다! 멈춰!”
“으어어!! 조심해!”
히이이잉~
선두의 3할 정도가 당하긴 했지만 후면의 기마들은 앞에서 그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며 멈추어 섰다.
그래서 다행히 무사할 수 있었고 대략 70여 기의 기마들이 남았다.
“여기 함정이 있다! 모두 돌아서 가라!”
말에서 떨어졌기에 그냥 서 있는 상태로 기마들을 지휘하는 기사들. 그들의 지시에 기마들은 말머리를 돌려 방향을 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기사들은 도망간 이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미 그자는 멀찌감치 도망갔는지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젠장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분해하는 기사들.
결국 놓치고 말았다. 거기다 소중한 기마들 또한 수십 마리나 잃었다. 이것을 알면 분명 리나드 후작이 큰 엄벌을 내릴 것이다. 까딱하다간 목숨까지 잃을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기사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움직이는 기마병을 향해 손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말한다.
“거기, 기마에서 내려라! 잠시 말을 빌리마!”
“예? 왜 그러십니까?”
“도망친 놈을 잡아야겠다. 어서 내려.”
“……예, 알겠습니다.”
그 강압적인 태도에 기마병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에서 내렸다.
히이이잉~
늘 타던 주인이 아니라 조금 발버둥 치는 말. 허나 기사는 고삐를 강하게 잡아당기며 기선제압을 하였다. 그러자 점차 온순해지며 순순히 그의 말을 따르기 시작하였다.
“그래 옳지. 이봐, 자네들도 어서 말을 타고 놈들을 쫒자고!!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만약 이대로 놓친다면 후작님이 우릴 가만히 두지 않을 걸세.”
말에 올라탄 그는 동료들에게 외쳤다. 그의 말에 동료기사들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됐든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코앞에서 놓쳤으니 변명의 여지없이 엄벌에 처해지겠지.”
“놈은 저쪽으로 갔어. 빨리 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나머지 기사들 또한 다른 기마병의 말을 뺏어 탔다. 그리고 바로 우터가 도망친 방향으로 달려 나가려 할 때였다.
쉬이이이익──── 푸욱!
“커헉!”
동료 하나가 화살에 꽂혀 그대로 말에 떨어졌다.
이에 모두 당황한 그들은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바로 우터가 화살을 당기고 있었다.
눈앞에 안보여서 멀리 달아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갈대밭에서 몸을 낮추어 그 모습을 감추었던 것이다.
“저기… 켁!”
푹!
막 우터를 가리키며 외치려는 기사의 투구가 뚫리며 그 또한 말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자 삽시간에 혼란에 빠진 기사와 병사들. 겁을 먹은 채 우왕좌왕거렸다.
그러나 우터는 한 치의 동요도 없이 계속 화살을 날렸다.
쉬이이익─── 퍽!
휘이익──푸욱!
정확히 기사들만 노리고 쓰러트리는 그 모습이 흡사 귀신과도 같았다.
“귀, 귀궁이다!”
“도망가야 해! 어서!”
기사들이 쓰러지자 겁을 집어먹은 기병들. 그대로 말을 돌려 도망치려 하였다. 그것을 본 남아있던 기사들은 그들에게 소리치며 말려본다.
“도망가지 마라! 저놈은 지금 혼자다! 다 같이 달려들면 된……컥!”
털썩.
또 한 명이 죽었다.
이제 남은 기사는 10명. 동료들이 죽어 나가자 그들의 눈에도 이제 공포심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일반 병사가 아닌 기사들이다.
물밀듯이 몰려오는 두려움을 이겨내며 우터에게 달려든다.
“으아아아아아!”
“와아아!”
공포심을 이겨내기 위해 고함을 지르며 달려가는 기사들.
휘이익─ 푸욱!
철퍼덕─!
한 명이 또 떨어졌다.
하지만 그만큼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쉬이이이익─── 푹!
콰당─
또 한 명이 죽었다.
허나 이제는 지척에 가까운 거리.
이제는 우터도 도저히 화살을 날릴 여유가 없어졌다.
그것을 안 기사들은 검을 높이 치켜세웠다. 그 시퍼런 검날에 오러가 피어오른다.
절체절명의 위기.
허나 우터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서렸다.
쉬이익─ 휘익─ 휙─ 휙─
그의 뒤에서 쏘아지는 수십 발의 화살들. 화살촉이 반짝이는 게 마치 밤하늘의 별빛이 쏟아지는 듯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에게 흡사 죽음의 성좌와도 같았다. 그 화살 비를 정면으로 본 기사들의 얼굴에 절망이 드러났다.
“이 개 같은…….”
푹! 팅! 푸욱! 푹! 팅! 팅!
히이이잉~
“으아아악!”
“커허억!”
우터와 같이 백발백중의 화살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가 많기에 더 위력적이었다.
그중 몇 발은 갑옷을 뚫고 들어갔다.
3명이 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십여 발이 넘는 화살이 말에 적중하였다.
말이 쓰러지면서 4명이 땅을 굴렀다.
그리고 남은 한 명.
“으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우터에게 다가갔다.
오러가 실린 검이 그를 위협하였다.
분명 그 검이 상대에게 닿을 거라 확신한 기사. 그러나 그의 예상은 맞지 않았다.
치이잉── 팅!
“허걱?”
어느새 검을 꺼내든 우터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그의 검을 튕겨내었다. 그리고 이어진 연격.
서걱─!
그대로 기사의 갑옷을 갈라버리는 우터의 검.
검 끝에서 푸르스름한 마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서서히 꺼져가는 눈빛을 하면서도 자신이 당한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 그는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후우…….”
마력을 갈무리하며 호흡을 가다듬는 우터. 그가 돌아서서 철수 명령을 내리려고 하려던 찰나.
“이 개 같은 놈들아!”
저 멀리서 괴성을 지르듯 욕을 내뱉는 이가 오고 있었다.
미친 듯이 이곳으로 말을 타고 달려오는 한 사람.
붉은 수염이 꽤나 인상적인 건장한 남성. 바로 리나드 후작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는 수천의 병사들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 엄청난 기세에 우터와 순찰대원들은 순간 움찔하였다. 허나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 우터는 순찰대원들 뒤에 있던 여자아이를 향해 소리쳤다.
“에밀리 부탁한다!”
“예, 알겠어요.”
순찰대원들의 호위 속에 있었던 그녀.
적의 기마들을 무너뜨린 함정을 파던 것도 바로 그녀였다.
그녀 또한 칼슨의 명령대로 우터와 함께 이곳으로 왔다.
육체적으로 취약하였기에 늘 순찰대원들이 보호아래 움직였다. 하지만 그 능력 때문에 우터는 이곳으로 그녀를 데려왔다. 칼슨이 이곳에서 그녀의 능력을 십분 써먹을 수 있을 거라 했기에.
마나를 한껏 끌어모은 그녀. 이미 적들의 발밑에 있던 놈을 향해 그 마나를 주입하였다.
우르르르르르르.
갑자기 일어난 굉음소리. 그 소리와 함께 땅이 꺼지기 시작했다.
“커어어억!”
“우어어어어어!”
“아아아아악!”
갑작스레 생긴 커다란 구덩이에 빨려 들어간 병사들. 그대로 후위의 부대들과 엉키며 전열이 무너져 버렸다. 그녀가 만든 구덩이의 지름은 자그마치 지름 30미터. 그 자체로 적병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진 못했지만 큰 혼란을 주기엔 충분하였다.
적의 진군이 주춤하자 그들은 앞에 있는 갈대밭에 기름을 뿌렸다. 그런 다음 불을 붙이자 순식간에 타오르기 시작. 일대가 불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바로 에밀리가 실프를 이용해 바람을 불게 하였다.
화르르르.
마치 벽이 생긴 것처럼 그들을 지켜주듯이 번져가는 불길. 그것은 점점 커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전, 이제 좀 쉴게요.”
힘을 많이 쓴 그녀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쓰러지려 하였다. 그러나 우터가 그녀를 잡으며 앉아주었다.
“그래, 수고했다. 그만 쉬거라.”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자 에밀리는 희미한 미소를 띠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녀를 앉아 올린 우터는 다른 순찰대원을 보며 입을 연다.
“파이샤, 그녀를 부탁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에게서 에밀리를 넘겨받은 여성 순찰대원 파이샤. 에밀리를 말에 앉힌 뒤, 뒤에서 끌어안으며 고삐를 잡았다.
자세가 안정적이되자 그녀는 박차를 가했다.
“이랴!”
그러자 달리기 시작하는 말. 그렇게 멀어지는 것을 본 우터는 다른 이들에게도 후퇴 명령을 내리려 하였다.
그때였다. 불길 속에서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들아! 어딜 도망가려 하느냐!”
그 소리와 함께 누군가 불길 속에서 튀어나왔다.
인상적인 붉은 수염과 건장한 체격의 사내.
바로 리나드 후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