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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지가 제일 강함-44화 (44/162)

43화 왕위 계승전(9)

1 왕자 스반 더 카르시아.

윤기가 흐르는 단정한 금발머리는 귀태가 느껴졌다.

거기다 정돈된 듯한 깔끔한 눈썹과 선이 분명한 이목구비. 그리고 맑고 깨끗한 피부가 그를 한층 고귀한 자로 보이게 하였다.

이제 막 서른 초반인 그는 이 왕국에서 제일 높은 사람에 가까웠다.

물론 정식 왕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왕자 중 장자였으니 그가 왕위에 오르는 게 마땅하다 여기는 이가 신하들 중에 가장 많았다.

본래 성에 있어야 할 스반. 유콘이 수도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이곳까지 왔다.

“신 유콘 루페가 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신 디에고 로트비체가 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왕자가 다가오자 몸을 낮추며 예를 갖추는 둘.

그런 그들을 보며 스반은 손사래를 친다.

“과한 예는 거두어도 되네. 그나저나 어찌 된 일인가? 가즈미르 고원에서 돌아왔다고 하였는데 설마 유콘 자네가 패배한 것인가?”

스반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묻자 유콘은 미소를 보이며 그를 안심시키듯 말하였다.

“그건 아닙니다, 전하. 오히려 승세를 잡고 있었사옵니다. 다만 전황이 좋지 않기에 군을 뒤로 물린 것뿐입니다.”

“전황이 좋지 않다라……. 혹시 베르호프 요새가 점령당해서 그런 건가?”

스반의 말에 유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예, 베르호프 요새에 적들이 있다면 베르데 평야까지는 무리 없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저희가 기껏 가즈미르 고원을 차지한다 하여도 꼼짝없이 고립되지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철군을 한 것입니다. 아직 전하의 소중한 병력들은 온전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경이 그렇게 말하니 알겠네. 허나 베르호프 요새를 점령한 서부파 놈들. 아니 그 칼슨 드레이크라는 자가 우리 턱밑에 왔는데 이는 어떻게 해결할 터인가?”

그 말에 유콘의 안색이 조금 굳어졌다. 허나 이내 표정을 풀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의 기세가 분명 대단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 혼자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가 언제든지 이곳을 칠 수 있어 보이지만 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어찌 그리 생각하는가?”

자신의 대답에 스반이 의문을 표하자 유콘은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일단 베르호프 요새와 이곳 로버데인 그리고 베르데 평야까지, 현재 이곳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다른 한 곳을 친다면 다른 한 세력이 그곳을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생깁니다. 만약 칼슨 그자가 이쪽을 공격할 경우, 그의 후방이 위험해진다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그 후방을 서부파의 다른 병력들이 지키고 있다면 어떡하겠는가?”

그 물음에 유콘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지금 서부파의 나머지 병력들은 남쪽에 고립된 우리 병력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전령으로 확인한 결과 그마저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합니다.”

“그래? 그럼 지금 당장은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군!”

“예, 게다가 칼슨 드레이크를 경계하는 이는 우리뿐이 아닙니다.”

“뭐?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 의미 모를 소리에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하는 스반. 이에 유콘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리며 말한다.

“칼슨 드레이크의 영지는 본래 중앙 남부가 아닌 체키스산 남쪽에 있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귀족파 영지들과 인접해 있고요.”

“아…. 그렇다면 조만간 이쪽이 아닌 그곳에 귀족파의 군이 들이닥치겠군.”

“예 맞습니다. 지금 형세를 보면 서부파가 귀족파를 넘어섰습니다. 그런 그들이 서부파의 핵심 전력인 칼슨 드레이크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습니다. 필시 그 전력이 비어있는 틈을 노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저들이 싸우고 있을 때를 노리면 된다는 말이고.”

“네, 그렇습니다. 왕자님.”

“하하하하, 그래 방금 전까지 걱정이 가득했는데 자네 말을 들으니 씻은 듯이 사라지는구먼. 하하하!”

“예,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반드시 전하를 왕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내 자네만 믿겠네. 하하하하!”

만족스럽다는 듯 크게 웃는 스반. 그런 그를 보며 유콘 또한 의미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드레이크 영지 동북부 클로레인 숲.

꽤나 넓고 조용한 이 숲은 본래 피요르 남작령의 땅이었다. 그런데 그가 영지전에서 죽고 칼슨이 이곳을 차지하며 그의 영토가 되었다.

체키스산 능선 끝에 위치한 이곳은 드레이크 영지뿐 아니라 로우링 영지도 한발 걸쳐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이 두 영지를 오가며 장사를 하던 상인들이 자주 지나가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인근에는 마을이 몇 개 정도 있었다.

주로 근처의 땅을 개척해서 밭을 일구거나 사냥으로 생활하는 그들. 가끔 오는 상인들이 이곳에 들러 물건을 사고팔고 한다.

클로레인 숲 근처의 일리안 마을.

인구 200여 명이 사는 이 마을은 평소에는 그리 사람이 많지 않았다. 허나 오늘은 웬일인지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그 이유는 오랜만에 제법 큰 상단이 이곳에 왔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오, 알틴 상단주. 잘 지냈소?”

“나르푸 촌장님, 저야 늘 잘 지내지요. 촌장님도 안녕하시지요?”

마을의 촌장인 나르푸의 인사에 화답하는 알틴. 그는 떡갈나무 상단의 주인이었다. 그의 상단은 드레이크 영지와 로우링 영지를 드나들며 장사를 하는 상단 중 하나로 주로 로우링 영지에서 밀을 사와 드레이크 영지에 팔았다. 물론 이 마을도 그의 주요 고객 중 하나이고.

“흐흐, 나야 늘 잘 지내지. 솔직히 늘 요즘처럼만 같았으면 좋겠어.”

“하하하, 영주님이 바뀌니 살만하신가 봅니다?”

얼굴에 화색이 돌며 말하는 나르푸 촌장. 알틴이 대답에 촌장은 허공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럼, 그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가 터졌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고 자경단들이 알아서 잘 해결하니 어찌 좋지 않겠나?”

“하하, 그렇군요. 걱정거리가 없으셔서 참 좋으시겠습니다.”

“크하하, 당연하지. 그래, 오늘도 밀을 팔러 왔는가?”

“예, 올해 밀이 알이 굵은 것이 아주 실합니다. 한번 보십시오.”

“그래, 어디?”

알틴이 포대 자루에서 밀을 한 움큼 건네주자 그걸 살피는 나르푸. 과연 그의 말대로 알이 제법 굵은 게 품질이 좋아 보였다. 그것을 집어 든 그는 코에 갖다 대며 냄새를 맡았다.

크으흠.

구수한 냄새가 진하게 풍겨오는 것이 분명 최상품으로 보인다. 고개를 끄덕이며 알틴을 보는 나르푸.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연다.

“역시 좋구먼. 뭐 자네가 가져온 물건들이야 볼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해봤네. 섭섭하게 생각하진 말게나.”

“하하하, 물건을 제대로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죠. 오히려 저희 물건을 제대로 보시기에 좋은 물건을 구한 보람을 느낍니다.”

“크흐흐, 그래. 알틴 상단주라면 그리 생각할 줄 알았네. 그럼 뭐로 지불하면 될까? 돈? 아니면 물건으로?”

“저야, 뭐든 받지요. 돈으로 주실 거면 한 포대에 은화 30개. 아니면 사슴 가죽 2장으로 받지요.”

능청스런 태도로 그가 이야기하자 나르푸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못마땅한 표정이 되었다.

“밀 한 포대에 은화 30이면 너무 비싸지 않은가? 게다가 사슴 가죽 2장이라니……. 자네 오랜만에 와서 여기 시세에 어두운 것 같은데 요즘 사슴 가죽하나에도 은화 20개가 넘게 팔린다네.”

그의 핀잔에도 표정 변화 없이 오히려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는 알틴. 그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그리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허나 보시다시피 제가 가져온 밀은 정말 최상품의 밀입니다. 품질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로우링 영지 내에서도 제일 좋은 물건으로 챙겨왔습니다.

그렇기에 포대당 은화 30개가 그리 비싼 금액이 아닙니다. 거기다 사슴 가죽 또한 품질에 따라 받는 가격이 천차만별이 아닙니까.

제가 말한 사슴 가죽은 좋은 품질이 아닌 하품을 기준으로 하였기에 그렇게 가격을 매긴 겁니다.”

“흐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밀 한 포대에 은화 30개라는 게 말이 되는가? 그리고 자네도 우리랑 몇 번 거래를 했는데 우리가 주는 가죽이 품질이 떨어지던가? 거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안 되겠구먼. 크흠.”

최대한 조리 있게 설명을 하였지만 그것이 무색하게 나르푸는 기분이 상한 듯 고개까지 돌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거래가 불발될 것 같은 분위기지만 그는 노련한 상인. 흥정은 이제부터였다.

“그럼 촌장님께서는 얼마까지 생각하시는 겁니까?”

상대의 의중을 보기 위한 질문. 그의 말에 나르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손가락 두 개를 올리며 말한다.

“은화 20개. 그리고 사슴 가죽 1개. 내가 생각하는 가격은 이걸세.”

“아하, 촌장님. 그렇게 거래하면 제가 남는 게 없습니다. 저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저뿐만이 아닙니다. 저희 상단 식구들의 급료도 줘야 하고 식대도 마련해야지요. 거기다 물건을 로우링 영지에서 여기까지 가져오는 위험수당도 있습니다. 아무리 촌장님이시라지만 그래도 은화 20개는 곤란합니다.”

“허허, 이 사람이……. 그럼 자네가 생각하는 금액은 어찌 되는가?”

촌장 또한 그의 의중을 묻자 알틴은 허공에 손가락을 몇 번 휘저으며 계산하는 듯한 시늉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못해도 은화 28개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슴 가죽은 3개에 밀 2포대로 거래하지요.”

“아니, 알틴. 그것도 너무 비싸네. 은화 23개만 받게. 응?”

“안 됩니다. 정말 제가 이익을 포기하고 27개만 받겠습니다. 촌장님 제 사정 좀 봐주십시오. 네?”

“아 자네 정말 이럴 텐가? 후우, 그래 내가 졌네. 은화 25개로 하세.”

나르푸의 포기 선언. 딱 거기까지가 알틴의 적정 가격이었다. 그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하며 말을 하였다.

“후우, 이러면 안 되는데 촌장님이니 특별히 그 가격으로 해드리겠습니다. 어디 다른 데에서 이 가격에 사셨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

“아, 알겠네. 후우. 어서 거래나 하게나.”

“예, 촌장님. 그럼 제가 특별히 사슴 가죽은 특별히 한 포대에 해드리겠습니다.”

넉살 좋게 이야기하는 그를 보며 헛웃음을 짓는 나루프.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서 하라는 듯 손을 저었다.

그렇게 성사된 거래.

상대의 말빨에 당했지만 어찌 됐든 거래 자체는 괜찮았기에 촌장인 나루프는 나름 만족하였다.

알틴 또한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하며 상단을 이끌고 길을 떠났다. 그의 고객은 이 마을뿐만이 아니었기에.

상단이 마을을 떠나자 이제 평소처럼 한적한 분위기가 되어버린 일리안 마을.

촌장은 의자에 걸터앉아 그 평온함을 즐겼다. 그런데 그때였다. 숲속에서 누군가 나타나 그에게 소리쳤다.

“촌장님!!! 큰일 났습니다!!”

“응?! 푸르,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느냐?”

자경단인 마을 청년 푸르. 허겁지겁 달려오는 그를 보며 나루프는 그 연유를 물었다.

촌장의 물음에 푸르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벼, 병사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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