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왕위 계승전(4)
으득.
이를 악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바라는 대로 놈에게 한 방 제대로 날려주었다.
녀석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붉어지는 것을 보니 방금 전까지 쌓여있던 체증이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그때 갑자기 놈이 자신에게 다가오며 말한다.
“이거 검술로 명성이 높은 드레이크 자작을 만나서 반갑소. 나는 베른 모스크라고 하오.”
“…….”
대뜸 인사를 하더니 악수를 권하는 녀석.
뭐 하는 수작인가 하였지만 이렇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니 받아주어야 할 터.
“네, 반갑습니다. 모스크 자작님. 차기 소드 마스터로 유망하신 분을 뵈어 영광입니다.”
“……하하하.”
칼슨이 아는 체를 하며 받아주자 멋쩍은 표정으로 헛웃음을 내뱉는다.
그가 자신에게 다가오기 전 칼슨은 스킬로 그의 상태를 알아보았다.
[인물정보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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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 모스크
나이 : 34세
클래스 : 기사
힘 12 민첩성 9 지능 7 체력 12 정신력 9 오러 13
스킬
비전검술-풍차(희귀)
칭호
없음.
벤투스 왕국 모스크 자작령의 영주.
유년 시절부터 두드러진 재능을 보이며 13세에 이미 오러를 터득한 천재. 그렇게 이어진 재능은 그를 최상급의 기사로 이끌었으며 영주로 만들었다. 현재 차기 소드 마스터로 거론되며 서부파내에서 그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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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검술-풍차(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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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를 몇 개로 나눠 연달아 공격합니다.
위력이 감소되지만 속도가 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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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부터 늘 성공하여 언제나 기대를 받으며 살아왔다.
실패한 적이 없기에 자신만만함을 넘어선 오만함. 전형적인 성공 가도만을 걸어온 인물이다.
이런 사람이 방금 같은 그런 눈빛을 보인 후 자신에게 다가온다?
그럼 뭐겠는가.
‘그냥 시비 터는 거지 뭐.’
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견제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다. 그리고 그 수단은 당연히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일 테고.
“괜찮다면 저랑 대련 한 번 해보겠소? 드레이크 가문의 명성 있는 검술을 한번 경험해보고 싶소이다.”
대놓고 검술 대련을 청하는 상대방.
아마도 그 잘난 검술 실력으로 자신을 깔아뭉개고 싶은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바스테르 백작이 우려 섞인 기색으로 말하였다.
“하하, 모스크 자작이 호승심이 넘치는구먼. 칼슨 자작은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으니 다음에 기회를 가져보는 게 어떤가?”
“아, 그렇군요. 표정이 워낙 좋아 보여서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몸이 안 좋으시다니 어쩔 수 없지요. 참 아쉽습니다.”
대놓고 자신을 환자 취급을 하는 베른.
이렇게 그냥 넘어가 버리면 왠지 자신이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대련을 회피한 모양새가 된다.
놈의 뻔한 도발에 넘어가기는 싫었지만 이대로 그냥 넘겨버린다면 이 화제로 사람들이 수군거릴 것이다.
드레이크 자작이 모스크 자작에게 겁을 먹고 대련을 피하였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갈 게 자명할 터.
얕보이게 되면 이보다 더한 견제가 이어지며 상당히 피곤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칼슨은 이 기회에 서열 정리가 필요할 거라 생각하였다. 아니 그냥 열이 좀 받아서 밟아주고 싶었다는 게 더 정확하였다.
“아닙니다.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모스크 자작님을 상대 못할 정도는 아니지요. 자 연무장으로 가실까요?”
“뭐, 뭐라고……?”
은근히 자신을 깔보는 듯한 뉘앙스.
그에 화가 나다 못해 황당한 베른은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렇게 주춤하고 있는 그에게 칼슨은 걸어가며 재차 말하였다.
“왜 안 오십니까? 먼저 대련을 청해 놓고서는……. 혹시 막상 하려니 망설여지는 겁니까?”
“크윽! 아, 아니오! 당장 가겠소. 지금 당장!”
쫄리냐는 말에 바로 얼굴이 붉어지며 씩씩거리는 녀석.
그 꼴이 참 보기 좋았기에 칼슨의 입꼬리는 절로 올라갔다.
* * *
드하임 성 연무장.
오래된 성인만큼 연무장 또한 낡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 크기는 드레이크 성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컸다.
오랜만에 사람들이 들어선 이 연무장.
그 중앙에 두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먼저 백금발의 젊은 남성.
은은한 은빛을 뽐내는 갑옷을 입은 채 검을 잡으며 자세를 잡았다.
검 또한 갑옷과 같은 은은한 은빛. 화려한 문양은 없지만 왠지 모를 고급스러운 자태가 느껴졌다.
백금발의 사내가 은빛 무구들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은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백금발의 사내 반대편엔 밝은 오렌지빛의 머리를 한 남성이 서 있다.
상대와 대비되듯 검은색 갑옷을 입었다. 여기저기 화려한 문양과 장식이 돋보이는 갑옷. 상대의 밋밋한 갑옷과 자신의 화려한 갑옷을 비교한 그는 은근 자신감이 올라갔다.
“크큭! 그 갑옷은 도대체 무엇이오?”
명백히 비웃는 말투. 꼴을 보아하니 놈은 아직 드레이크 갑옷에 대한 소문을 접하지 않았나 보다.
하긴 일개 자작가에서 접하기에 이 갑옷은 너무 값비싼 명품이었다.
“훗, 재미있군요. 아직 드레이크 산 갑옷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니요.”
“뭐라?”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을 비웃자 어이없어하는 베른. 그런 그를 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자! 잡설은 그만하고 시작하도록 하지요.”
“이런……. 좋소!”
이를 악물며 자세를 잡는 상대.
절도 있고 안정적인 그의자세를 보니 과연 실력이 있는 자였다. 그렇게 대치를 한 지 수 초. 서로의 검에서 오러가 슬며시 올라온다. 그리고 곧 베른이 먼저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하아압!”
자신 있게 정면으로 검을 내리친다. 허나 이런 정직한 검술에 당할 칼슨이 아니었다. 바로 몸을 틀어 피한 다음 상대의 옆구리를 향해 휘둘렀다.
콰직!
가볍게 내리치는데도 불구, 그대로 우그러드는 갑옷.
게다가 몸에 전해진 충격도 상당한지 놈의 표정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이건 대체……!’
자신의 갑옷은 영지 내 이름 높은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갑옷이다. 그 강도나 견고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무리 오러를 둘렀어도 이렇게 쉽게 상하는 갑옷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갑옷의 강도나 견고함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치이이이익─── 캉!
“크으윽!!”
연달아서 들어오는 상대의 공격.
본능적으로 막았지만 손에 전해지는 충격이 장난이 아니다.
팅! 칭! 탕!
검을 막을 때마다 손이 저릿저릿하다.
가볍게 쳐대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충격이 들어오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허나 계속 이렇게만 당할 수는 없었다. 베른은 정신을 집중하여 오러를 끌어모았다.
“히야아압!”
기합 소리와 함께 바람이 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검격.
세 개로 갈라지는 그의 오러가 연달아 칼슨에게 쏟아져 들어온다.
치이이이익── 챙! 칭! 칭!
그러나 가볍게 쳐내버리는 상대. 그 굉장한 실력에 눈이 커졌다. 허나 자신의 비전 검술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공격이 특징. 정신을 집중해 다시 한번 공격해 들어갔다.
치이이이익── 칭! 칭! 챙!
치이이익── 챙! 탕! 칭!
…….
쉴 새 없이 내려치는 그의 검술. 하지만 상대방이 계속 여유롭게 막아내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하였다.
‘……도대체 왜 통하지 않는 거지?’
자신은 최상급의 기사다. 눈앞의 애송이쯤은 순식간에 제압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그가 예상한 것과 너무나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설마, 놈도 최상급 기사인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 상대가 조용히 입을 열며 말했다.
“……정말이지 지루하기 짝이 없군.”
“뭐?”
그 말이 끝나자마자 상대의 오러가 더욱 짙어졌다. 진해지고 진해져서 고도로 압축되어 갔다.
‘서, 설마 저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칼슨이 뿜어내는 농밀한 오러.
그것은 흡사 오러 블레이드를 연상케 하였다.
‘아…….’
믿을 수 없었다.
상대는 불과 약관의 나이.
그 나이에 벌써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그만 끝내지.”
서걱─
그 말과 동시에 베른의 눈앞에 내려치는 백색의 섬광.
순간 시야가 하얘지면서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눈앞의 현실을 극구 부정하는 그의 외마디 절규.
동시에 그가 입고 있던 갑옷이 검과 함께 부서져 나갔다.
쿠우웅─
부서진 갑옷이 떨어지며 큰 충격음을 내었다.
보고 있는 이들이 모두 조용하였기에 떨어진 갑옷이 내는 소리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적막 속에서 퍼져나가는 수 초 동안의 울림.
곧이어 울림이 멈추자 구경하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드레이크 자작이 모스크 자작을 이겼다!!”
지난번의 승리로 이미 명성이 높아졌던 칼슨이었다. 그런데 차기 소드 마스터로 유망한 베른을 압도적인 실력으로 꺾어버리자 사람들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젊은 영웅의 탄생.
그것은 누구나 좋아하는 이야기의 단골 소재였다.
지금 그것을 눈앞에서 목격하였으니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드레이크! 드레이크! 드레이크!”
연신 칼슨을 외치며 환호하는 사람들.
그 열망 속에 주저앉아 버린 베른. 그의 눈가는 이미 영혼이 빠진 것처럼 텅 비어 보였다.
“정말이지 대단하군. 드레이크 자작!”
어느새 칼슨에게 다가온 바스테르 백작.
놀라움과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닙니다. 그저 운이 좋았습니다.”
“하하하, 겸손이 지나치구먼. 누가 봐도 압도적인 실력이었네. 모스크 자작이 실력이 없는 친구도 아닌데 그런 그를 손쉽게 꺾어버리다니…….”
“그렇게까지 칭찬하시니 부끄럽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실력입니다.”
“부족? 크하하하하! 자네 나이에 이렇게 대단한 실력을 지녔는데. 부족이라니. 그럼 다른 이들은 다 나가 죽어야겠어? 안 그런가? 크하하하!!”
소드 마스터인 그가 보기에도 칼슨이 보여준 모습은 대단하였다. 그는 불과 약관의 나이인 스무 살이다. 저 나이에 이 정도 성취를 보인다는 것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대단한 인재가 자신들의 세력에 들어왔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걸 뽐내지 않으며 겸손하기까지 하였다. 바스테르 백작의 입장에선 절로 미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잠시 그의 표정이 조금 오묘해졌다.
여전히 미소 짓는 얼굴이지만 그 속에서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네 혹시 나하고도 대련할 수 있겠는가?”
“예?”
갑작스레 대련을 청하는 바스테르 백작의 말에 칼슨은 깜짝 놀라며 당황하였다.
“방금 전 자네의 검술을 보니 아까부터 몸이 근질거려서 말이야. 어떤가? 자네에게도 어찌 보면 좋은 기회일 걸세. 내 입으로 말하기가 뭐하지만 소드 마스터와 대련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네.”
“아, 그렇군요…….”
호기롭게 말하는 걸 보니 그는 천생 무인인 것 같았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자신과의 대련으로 그가 이득 볼 건 별로 없었다. 반면에 칼슨에게는 엄청난 기연이랑 다를 바 없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눈앞에 하나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서브 퀘스트 생성]
‘뭐, 서브 퀘스트라고?’
갑작스레 생성된 퀘스트에 칼슨은 눈을 크게 뜨며 그것을 읽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