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메이드 인 드레이크(3)
붉은 유성처럼 떨어지는 로엠의 검.
그것은 그대로 햄의 등에 적중하였다.
끼이이이익──── 치지지직!
쇠가 긁히는 소리가 귀를 찢는 것 같았다.
잔뜩 인상을 쓰는 로엠.
하지만 그가 표정을 구긴 이유는 그 소름끼치는 소음 때문이 아니었다.
“이런, 씨팔!”
분명 검에 오러를 불어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갑옷이 멀쩡하였다. 아니 조금 흠집이 나고 구겨지긴 했지만 어찌 됐든 상대에게 피해가 거의 없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자신의 오러에 의해 짓이겨져야 할 갑옷.
분명 그래야 했다.
허나 그 결과는 예상과 너무나도 달랐다.
그리고 곧이어 다가오는 상대방의 창끝.
피해야 했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기 전에 이미 창날이 코앞까지 왔다.
그렇게 자신의 머리가 꿰뚫리기 일보 직전.
깡!
휘리릭─ 푹!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창의 궤도가 비틀리며 바닥을 찍었다.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는 온기가 깃든 검.
갑자기 나타난 그 검이 로엠의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들리는 목소리.
“그만!”
“……예, 영주님!”
칼슨의 명에 햄은 잽싸게 창을 거두었다.
다시 칼슨의 시선이 로엠에게 향한다.
“그래, 어떤 거 같나? 응?”
“허거거걱…….”
“쯧, 이런….”
로엠의 바지가 축축해지며 지린내가 퍼지자 칼슨의 인상이 구겨졌다.
로엠의 인생에 흑역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지만 그 누구도 로엠을 비웃지 못하였다.
“미친, 저게 어떻게 일반 병사야! 기사보고 일반 병사인 척하고 싸우게 한 거 아냐?”
“히야, 무슨 A급 용병들이 셋이나 덤볐는데 제대로 피해조차 못 주다니……. 저게 말이 돼??”
“저 갑옷! 저기 저 갑옷 봤어? 셋이서 그렇게 공격했는데 씨알도 안 먹히더구먼.”
“아니 그것보다 방금 오러가 실린 검도 막아냈잖아! 그게 가능한 거야?”
방금 전 상황을 본 용병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며 웅성대고 있었다. 하긴 저들 또한 한가락 하는 실력자들.
두 눈이 옹이구멍이 아닌 이상 지금 햄이 입고 있는 갑옷의 진가를 잘 파악했을 것이다.
분위기가 잡혔으니 이제 상품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할 때.
“자 보았느냐, 드레이크에서 이번에 만든 갑옷을. 이 갑옷은 우리 영지의 뛰어난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만든 희대의 명품이다.”
“……그럴 수가?”
“장인이 만든 명품이라고!!”
반응이 오자 재차 말을 이어 나간다.
“이 굉장한 명품을 단지 금화 398닢에 가질 수 있다. 거기다 특판 사은품으로 명품 검까지 끼워주니 이번 기회에 꼭 장만하길 바란다.”
“허억, 금화 398개? 너무 비싸잖아!”
“흐음, 정말 좋기는 한데 가격이…….”
귀족들과 달리 구매에 망설이는 이들이 많다.
시중에 잘 만든 전신 갑주가 통상 100골드 정도 하니, 그것에 비해 무려 4배 가격.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찌 됐든 그들은 용병. 돈에 상당히 민감한 족속들이었다.
허나 다들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크레이 용병단에서 80벌을 구입하겠습니다.”
짙은 밤색의 긴 머릿결을 가진 중년의 사내가 손을 들며 말한다.
큰 키에 건장한 체격.
부리부리한 이목구비에 시원한 인상.
전형적인 호남형인 남성.
그는 바로 왕국 내 서열 1위 크레이 용병단의 수장 크레이였다.
“라코루 용병단도 80개 사겠습니다.”
서열 2위의 라코루 용병단. 수장인 라코루 또한 그에 질 수 없다는 듯 말하였다.
그들을 시작으로 몇몇 용병단들이 손을 들며 외친다.
“렌달 용병단도 60개 구입하겠습니다!”
“검은 절망 용병단도 50개를 사가겠습니다!”
“우리 로엠 용병단도 60개를…….”
“에틱 용병단도 사겠습니다!”
그렇게 상위의 용병단들이 경쟁하며 사 갔다.
그러나 하위 용병단들에게는 그 액수가 제법 부담스러운 가격.
그걸 눈치챈 칼슨은 뒤이어 다른 갑옷을 소개하였다.
“전신 갑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 이렇게 중요 부위 위주로 보호해주는 보급형 갑옷도 있다.”
다른 갑옷을 입고 있는 병사를 가리키며 설명하자 그것을 본 용병들이 그에게 질문하였다.
“……도대체 그것은 얼마입니까?”
“원래 금화 300개이지만 이번에 특판으로 500개 한정, 금화 198개로 팔고 있다. 물론 갑옷의 강판은 앞서 보았던 전신 갑주랑 동일한 재질이다.”
“음, 금화 198개라…….”
전신 갑주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그 돈이면 양질의 전신 갑주 2개도 살 수 있는 가격.
그들이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크레이 용병단이 100벌을 사겠습니다!”
“라코루 용병단도 같은 수로 주십시오!”
“우리 렌달 용병단도 부탁합니다!”
“에틱 용병단은 80개를 사고 싶습니다!”
“검은 절망 용병단도…….”
순식간에 완판되어버린 보급형 갑옷.
하위 용병단이 주저하고 있을 때 상위 용병단이 그것마저 모조리 쓸어갔다.
“…….”
갑자기 손가락만 빨게 된 그들.
자신들만 아무것도 사지 못하게 되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하였다.
그런 그들을 본 칼슨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보급형 말고도 저가형 갑옷도 있다. 원래 금화 200개에 팔지만 이번에 1,000개 한정으로 특별히 금화 98 개…….”
“오토 용병단 100개 사겠습니다!!”
“검은 늑대 용병단 80벌 주문하겠습니다.
“푸른 달 용병단에도 90개 주십시오!”
“붉은 갈대 용병단도…….”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서로 손을 들며 사갈려고 한다.
물론 하위 용병단 뿐 아니라 상위 용병단들 또한.
“렌달 용병단에 150개 주십시오!”
“로엠 용병단 130개 원합니다!!”
“…….”
그렇게 줄기차게 주문하자 어느새 준비해둔 갑옷이 모두 동이 나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이 가져간 무구들은 점점 입소문이 퍼져 더욱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 * *
드레이크 무구의 명성이 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스릴을 입힌 최고급 갑옷과 검은 고위 귀족자제들에게 입소문이 퍼지며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특히 소드마스터인 리나드 후작과 라델리안 공작 또한 극찬하였기에 그 유명세는 더더욱 커지게 되었다.
거기다 엘리시아 공주가 미스릴의 순도에 대해 확실히 인증을 해주었기에 이제는 물건이 없어서 못 구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강철로 만든 일반 갑옷 또한 용병들 사이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일으켰다.
미스릴 갑옷처럼 오러랑 연동하거나 신체 능력을 올려주지는 못하였지만 그 강성이 어마어마하게 단단하여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흠집도 나지 않았고, 일반적인 오러 공격으로도 큰 피해를 주기 힘들었다.
그 갑옷을 입은 용병들이 여기저기서 큰 활약을 보이니 다른 곳의 영주들은 물론 이웃 왕국의 영주들까지 이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 칼슨은 밀려드는 주문을 보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영주님, 이번 달에 무구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총 22만 금화입니다. 현재 주문량으로 짐작하건대, 다음 달은 대략 35만 금화의 수익이 날 것 같습니다.”
“그래? 이거 대장장이들이 아주 바쁘겠어. 하하하.”
“네, 그래서 추가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인원을 더 영입하였습니다.”
“그래그래. 잘하고 있어. 아주 잘해.”
“감사합니다. 영주님.”
레인의 보고에 입꼬리가 천장까지 닿을 지경이다.
이전까지 영지 1년 총수입이 대략 5만 금화였다. 그런데 지금 불과 한 달 만에 그 몇 배의 수익을 내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대박 중에도 초대박이었다.
‘게다가 조만간 왕위 계승전이 벌어진다.’
그 말은 곧 수요가 지금보다 훨씬 폭발할 것이라는 이야기. 그때 벌어질 미래를 엘리시아 공주가 말해주었기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도 알았다.
물론 그녀가 사실대로 이야기해준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렇다고 굳이 거짓말할 이유도 없기에 일단 큰 계획은 그 말에 근거하며 나머지 변수를 어느 정도 대비하는 방향으로 잡았다.
‘일단 병력을 더 모아야 갰지.’
현재 영지의 총 병력은 500정도 된다. 피요르 남작과의 영지전 이후 꾸준히 증가시켰기에 그나마 이 정도였던 것.
허나 칼슨은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앞일을 대비하려면 이보다 최소 네다섯 배는 많아야 해!’
그 정도면 족히 대영주라는 백작급 영지를 뛰어넘는 병력이다. 예전이라면 턱도 없었지만 현재 드레이크 영지의 재정으로는 충분하고도 남을 수준.
병력뿐만이 아니다.
고급 전력인 기사도 많이 충원해야했고 가능하다면 마법사 같은 고급 인재도 필요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들을 무장할 장비는 넘쳐난다는 것.
‘결국 제일 난제는 마법사인가?’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보다도 더 희귀한 존재인 마법사. 물론 영지에는 그보다 더 희귀한 정령사 에밀리가 있었지만 그녀는 아직 어리고 전투에 적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법사는 다르다.
수준 낮은 마법사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4서클 이상의 중급 마법사라면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탑에 한 번 연락 넣어볼까?’
마법사들의 모임인 마탑.
이 세계에 마법사들은 그 수가 정말 적다.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그런 소수의 대접은 늘 개차반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남들과는 다른 힘을 가진 반 초능력자인 마법사들. 그런 그들을 힘 있는 지배자들이 가만히 내버려 둘리 있겠는가? 잡아둬 두고두고 부려 먹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그 정도에 그치면 다행이다. 까딱하다간 악마의 무리로 취급을 하며 보는 대로 척살하는 분위기도 만들 수도 있다. 실제 역사적으로 그런 일들은 빈번하였으니까.
그러나 이곳의 마법사들은 그들의 권익을 위해 뭉쳤다.
그것이 바로 마탑.
기본적으로 그들은 능력자들.
그런 이들이 집단이 되어버리니 그 힘은 어지간한 왕국을 넘어서게 된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 힘을 가지고 패도를 부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 땅의 권력자들과 서로 이득을 나누는 협력관계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그동안 다양한 마탑이 이곳에 뿌리를 내렸고 아직까지 그들은 이 세계에서 권력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칼슨은 그런 마탑에 부탁하여 이 영지에 도움이 될 만한 인재를 구해볼까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봤자 그들은 마탑에 소속된 자들.’
일종의 파견직인 그들이다.
물론 영지에 머물며 도움을 주기는 할 거다.
허나 자신의 가신들처럼 충성을 하지는 않는다.
거기다 언제든지 마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불확실한 전력.
그리고 그럴 확률은 적지만 혹여나 그런 마법사를 영주인 자신이 설득해 가신으로 삼는다면?
‘소속된 마탑이랑 사이가 안 좋아지겠지. 아니 심하면 대놓고 공격당할 수도 있어.’
이래저래 골치 아파질 우려가 크다.
거기다 다른 마탑에서도 안 좋게 볼 게 뻔하고 말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정작 필요한 건 우수하고도 소속이 없는 마법사여야만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귀한 마법사가 하늘에서 똑 하고 떨어질 리도 없으니…….’
똑똑.
그렇게 상념에 빠져있던 그에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주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밖에서 나는 목소리.
시종장인 에드윈의 목소리였다.
“그래, 들어와.”
드륵.
칼슨의 허락에 문을 열고 들어온 에드윈.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영주님, 어떤 낯선 이가 영주님을 뵙고자 한답니다.”
“낯선 이라고? 도대체 어떤 자이기에 그래?”
아무리 변방의 작은 영지의 영주지만 그래도 그는 이곳의 권력자이자 절대자다.
그런 그를 낯선 이가 보고자 한다고 해서 막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성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들에게 혼쭐이나 나지 않으면 다행. 그런데 그 말이 에드윈에게까지 보고가 들어왔다. 그렇다는 건 그가 평범한 자가 아니라는 뜻.
“흠, 그 행색이 꼭 마법사 같다고 하였습니다. 머리를 감춘 후드를 쓰고 있었고, 단출하지만 고급스런 재질의 로브를 입고 있었으며, 그 손에는 기다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인가?”
전형적인 마법사의 행색.
정말이지 하늘에서 똑 떨어진 마법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