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메이드 인 드레이크(2)
단상 중앙에 선 백금발의 남성.
그는 당당한 자세를 취하며 앞에 있는 대중들에게 큰소리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만나서 반갑다. 난 이 땅의 영주 칼슨 드레이크다.”
“…….”
“어차피 다들 지루할 테니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자, 시작해라.”
칼슨의 말에 같이 올라온 장정들이 자리를 잡았다.
“저게 도대체 뭐 하는 거지?”
“흠, 아무래도 우리에게 설명할 갑옷을 보여주려는 모양이야.”
“음…. 그래? 그러고 보니 자네 말이 맞는 거 같군.”
모두가 그들을 보며 웅성거릴 때 칼슨이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기서 혹시 자신이 검술에 자신 있다? 하는 자가 있으면 한 번 나와 보아라.”
“…….”
자신에 말에 아무도 반응하는 이가 없자 그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제일 먼저 나오는 이에게 금화 10개를 주겠다.”
“…!!!”
갑작스런 칼슨의 제안.
그러자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일제히 반응을 보인다.
“내가 나가겠소!”
“나, 나요! 내가 나가겠소!!”
“비켜! 영주님! 내가 먼저요! 내가!”
역시 돈이면 뭐든 하는 용병들다웠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칼슨은 슬며시 한 명을 가리키며 호명하였다.
“자네가 제일 먼저 손을 든 것 같군. 어서 나와 보게!”
“음? 저 말씀입니까?”
지목된 이는 바로 렌달.
그는 영주가 대뜸 자신을 가리키며 말하자 조금 어리둥절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손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단장들은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을 뿐 어느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작 금화 10개로 이 많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키킥, 렌달. 요즘 정말 어려운가 봐? 설마 이렇게라도 푼돈을 벌어야 하는 정도야? 크크큭, 너무 불쌍해서 내가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진짜. 크하하하하!!”
“흐흐흐, 천하의 렌달도 이제 한물갔군. 이렇게까지 추한 모습을 보일 줄이야. 크크크.”
“킬킬킬! 그래. 이왕 온 거 한 푼이라도 벌어보라고! 요즘 사정이 안 좋으니 영주님께서 자비를 베푸시나 보네? 케케케!”
이때다 싶은 다른 용병단의 단장들이 일제히 그를 비웃었다. 안 그래도 최근 위세가 땅에 떨어졌는데 이렇게까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자 렌달의 표정이 심하게 구겨졌다.
“어서 올라오지 않고 뭐 하는가?”
“……알겠습니다.”
자존심이 심히 상한 렌달. 허나 영주가 자신을 이렇게 콕 집어 말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어도 이곳은 그의 영지다.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게 하나 없었다.
“크하하하. 렌달! 재롱 한번 거하게 벌여봐!”
“키키킥, 이따가 내가 10골드 줄 테니 또 보여 줄 수 있지, 응?”
“…….”
단상에 올라가는 중에도 그에게 들려오는 수많은 모욕.
당장이라도 저놈들을 도륙 내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렇게 단상에 올라온 그는 칼슨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제가 뭘 하면 되는 겁니까? 영주님.”
얼른 이 상황을 끝내고 싶은 그였기에 빨리 영주가 시키는 일을 하고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그를 보며 칼슨은 싱긋 웃으며 말하였다.
“저기 갑옷을 입은 자를 쓰러트려 보게.”
“저자를 말입니까?”
“그래, 참고로 그는 우리 영지의 병사라네.”
“병사요? 기사가 아니라?”
온몸을 철판으로 에워싼 전신 갑주.
보통 기사들이나 저런 갑옷을 입지, 일반 병사에게는 그냥 중요 부위만 철판으로 가린 보급형 갑옷을 입는다.
‘뭐, 성능 시험을 위한 거니 일반 병사라도 상관없는 건가?’
어찌 됐든 자신은 시키는 대로 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검을 집으려 할 때 칼슨이 뒤이어 큰소리로 말하였다.
“만약 저 병사를 쓰러뜨린다면 금화 1,000개를 주도록 하지!”
“네? 그게 정말입니까?”
그 파격적인 조건에 눈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 말을 들은 건 렌달 뿐이 아니었다.
“뭐? 금화 1,000개? 정말!”
“아 씨발, 내가 나가야 하는 건데!”
갑자기 모두들 렌달을 부러워하며 탄식을 한다.
순식간에 바뀐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된 렌달은 다시 칼슨에게 확인을 하였다.
“분명 저자를 쓰러트리면 ‘금화 1,000개’를 주시는 겁니까?”
유독 금화 1,000개를 강조하며 말하자 칼슨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답하였다.
“그래, 금화 1,000개다.”
“네, 분명 약속하신 겁니다.”
단숨에 금액이 오른 것만으로 그의 열의가 살아났다.
아무리 전신 갑옷을 입었다 해도 상대는 일개 병사.
A급 용병인 자신에겐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큼지막한 대검이 상대를 내리쳤다. 매섭고도 묵직한 공격.
반면 그에 맞서는 병사는 그저 창으로 자세만을 취할 뿐이었다.
콰지직!
날끼리 맞붙으며 진한 충격음이 퍼졌다.
매우 강한 일격이었음에도 상대가 한 치도 물러나지 않자 렌달은 조금 놀랐다.
아무리 오러를 쓰지 않았다지만 그의 검은 이렇게 쉽게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놀라있을 수는 없는 법.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부우우웅─
공기를 짓이기는 소리가 났다.
그 무게만으로도 상대를 뭉개버릴 것만 같았다.
허나 이번에 상대는 방어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그에게 달려든다.
“뭐? 이런 미친놈이!”
방어를 도외시하는 상대의 움직임에 심히 당황하였다.
하지만 이미 힘이 먹힐 대로 먹힌 대검.
그대로 상대의 투구를 내리친다.
팅!
생각지도 않은 맑은소리.
으깨질 줄 알았던 상대의 머리가 온전하다.
아니 투구에 흠집 하나 없는 게 타격조차 없어 보였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자 렌달의 사고가 정지하였다. 그리고 곧 상대의 창이 그를 직격했다.
콰직!
가슴 부위가 그대로 우그러지며 뒤로 날아가는 렌달.
그 큰 몸집이 한참 뒤로 날아가는 게 현실감이 나지 않는다.
쿠우웅!
바닥에 퍼지는 충격음이 들리자 다들 그제야 이것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였다.
“쿨럭, 케헥! 켁!”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는 렌달.
안색을 보아하니 창백한 게 꽤나 안 좋아 보였다.
그런 그를 보며 혀를 차는 칼슨.
“쳇, A급 용병이라 그래도 한가락 할 줄 알았는데 이리 맥없이 무너질 줄이야…….”
이래서야 갑옷의 성능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할 수준.
그는 다시 용병들에게 똑같은 제안을 한다.
“자, 누가 또 나설 이가 또 없는가? 여기 이 병사를 쓰러뜨리는 자에게 금화 1,000개를 주도록 하겠다.”
“…….”
렌달이 처참하게 당해서인지 서로 눈치만 보며 나서는 이가 없다. 그가 비록 놀림을 당했었지만 다들 그의 실력은 잘 알고 있다.
설사 상대가 병사가 아니라 기사였어도 저렇게 형편없이 나가떨어질 이가 아니었다.
어색한 침묵이 길어지자 칼슨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때 갑옷을 입고 있던 병사가 조용히 말을 하였다.
“영주님, 꼭 한 명이랑 싸워야 합니까?”
“아니, 꼭 그럴 필요는 없지. 그럼 햄, 자네는 몇 명까지 상대할 수 있겠나?
“오러만 쓰지 않는다면 방금 같은 이는 서너 명까지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 말에 싱긋 웃었다.
‘하긴, 이놈이 병사들 중에선 가장 튼튼한 놈이긴 하지.’
[인물정보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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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
나이 : 23세
클래스 : 창병
힘 15 민첩성 5 지능 3 체력 17 정신력 8
충성도 100/100
스킬
벌크 업!(희귀/패시브)
드레이크 영지의 병사.
지옥의 체력훈련으로 인해 능력치 일부가 대폭 증가하였다. 그때 생긴 과도한 식탐으로 인하여 스킬이 생겨났다.
힘과 체력은 기사들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장사.
여전히 먹을 것을 좋아하기에 아쉽게도 식스팩은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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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크 업!(희귀/패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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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운동과 열량섭취만 잘하여도 근육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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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를 못쓰기에 기사는 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무척 쓸 만한 인재가 되었다.
그렇기에 칼슨은 안심하고 그에게 갑옷을 입힌 것이었다.
“자, 그럼 3명까지 올라와라. 3명이 동시에 상대해도 좋으니 저 병사를 쓰러뜨린다면 각각 500 금화를 주마!”
“……!!!”
상금은 반으로 줄었지만, 성공할 확률은 그 이상으로 올라갔다.
허나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그들. 그러던 중 어떤 한 용병이 나선다.
“내가 나가지.”
적발의 깡마른 사내.
로엠 용병단의 수장 로엠이었다.
“나도 거들지.”
백발에 수염이 가득한 풍채 좋은 남성도 나섰다.
그를 보자 로엠이 이죽대며 한 소리 하였다.
“이봐, 에틱. 내 발목이나 잡자 마라고.”
“……말 많은 놈 같으니.”
왕국 서열 5위의 용병단인 에틱 용병단.
바로 그가 그곳의 수장이었다.
“재밌어 보이는군.”
뒤이어 몸을 일으킨 거구의 사내.
그 매끄러운 검은 피부는 흡사 흑요석을 보는 듯하였다.
그가 몸을 풀며 움직이자 성난 근육들이 꿈틀대었다.
“부르추카…….”
“아, 역시 네 녀석도 나서냐?”
서열 6위의 용병단 ‘검은 절망’의 수장인 부르추카.
그의 등장에 다들 시선이 몰렸다.
그렇게 3명이 올라서자 넓었던 단상이 가득 차 보인다.
만만찮은 상대들이 올라오니 별생각 없던 햄 또한 조금 긴장한 느낌이다.
살짝 걱정이 든 칼슨은 그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한마디 해주었다.
-햄, 나는 널 믿는다.
‘영주님!’
[지배력의 영향으로 전의가 상승합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조금 전까지 살짝 얼빠져 보였던 그가 이제는 기백이 느껴질 정도로 투쟁심이 불타오른다.
꿀꺽.
달라진 그의 기세를 느낀 셋 또한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하였다.
1대 3의 대치 상황.
칼슨이 그 시작을 알린다.
“자, 어서 시작해라.”
그 말과 동시에 성큼성큼 달려 나가는 햄.
그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흔들리는 듯하였다.
셋 또한 자세를 잡으며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
“이야아아아압!”
우선 중앙에 위치한 부르추카가 그의 큰 도끼로 크게 내리찍었다. 그러나 그것을 무시하듯 햄은 그대로 돌진했다. 그의 창과 상대의 도끼가 무지막지한 속도로 충돌하였다.
콰쾅! 콰직!
거세게 밀고 들어오는 힘에 그의 도끼가 꺾이며 튕겨 나갔다. 그리고 이어서 들어온 햄의 바디 체크.
콰아앙────!
“커어헉!!”
말도 안 되는 충격에 부르추카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난생처음 몸이 붕 뜨는 경험을 한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이야아아압!”
“크아아압!”
양 측면에 위치한 로엠과 에틱이 무방비로 노출된 햄을 그대로 공격했다. 매섭고도 빠른 검이 그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방어 자세를 취하기보다 그대로 몸을 틀어 회전하는 햄.
깡──! 탕─!
마치 팽이 같은 회전력을 이용하여 둘의 검을 갑옷으로 튕겨 내버린다.
그러면서 남은 반동을 활용해 좌측에 있던 에틱에게 창을 찔러 넣었다.
부우웅─── 콰지직!
“꾸어어억!”
순간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리며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에틱. 쓰러진 그를 보니 갑옷이 형편없이 우그러진 게 눈이 띄었다.
“젠장, 이 개 같은 자식! 죽여 버리겠다!!”
에틱 마저 당하자 로엠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온몸의 힘을 끌어모았다. 그러자 어느새 몽글몽글 피어올라오는 그의 오러.
붉은 오러가 충만한 검을 그대로 내리꽂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