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메이드 인 드레이크(1)
최근 벤투스 왕국에는 새로운 물건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건 바로 드레이크 무구.
드레이크라는 변두리 영지에서 제작한 무기와 방어구를 가리키는 말인데. 지금 이 물건이 벤투스 왕국은 물론 주변 왕국까지 구하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처음 그 물건을 선보인 곳은 왕실 기사단.
정확히는 왕실 기사단원 중 한 명이 거기서 생산된 무기와 갑옷을 착용하고 다른 기사와 결투를 했다.
“키킥, 세리나. 그 갑옷은 도대체 뭐야? 어디서 그런 싸구려 느낌 나는 갑옷을 사 왔어?”
“……말이 많아졌구나, 알레프.”
상대의 비아냥에 냉소로 답하는 그녀.
알레프는 세리나보다 몇 년 일찍 왕실 기사단에 들어온 선배로 제법 명성이 있는 트빌리시 백작가의 자제였다.
그는 세리나에게 제법 악감정이 높았다.
자신이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깍듯하게 대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을 무시하는 그녀. 게다가 신분 또한 하급 귀족인 자작가의 사람이었기에 더욱더 그녀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며칠 전 동생이 보내온 갑옷을 입고 다니기에 시비를 걸었다. 자신의 갑옷처럼 화려한 문양도 없고 장식도 없기에 어디서 싸구려를 사 왔냐며 놀려대었다.
그런데 평소라면 자신을 무시하던 그녀가 그때만큼은 무서운 표정을 하며 자신에게 결투를 신청하였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잠시 알레프는 당황하였지만, 그녀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결투를 승낙하였다.
아무리 그녀가 실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기사단에 몇 년이나 일찍 들어왔고 실제로도 그녀보다 강하였기에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게 둘은 부기사단장인 리단의 공증을 받으며 정식으로 결투를 하였다.
자신이 여유롭게 이길 거라 여긴 알레프. 그런데 막상 결투가 시작되자 세리나가 믿을 수 없는 속도를 보여주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허억! 뭐야?”
그녀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자 당황한 알레프는 다급하게 방어 자세를 취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단숨에 방향을 틀어 그의 측면을 가격하는 그녀의 검.
파지직!
“크아아악!”
검에 오러를 넣지 않았음에도 사정없이 으그러지는 갑옷. 그 충격에 그는 고통스러워하였다. 허나 세리나는 알레프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다시 연달아 그의 등의 추가로 가격하였다.
알레프는 그대로 쓰러지며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퍼지는 울림.
단 두 합 만에 상대를 제압하였다.
그것도 자신보다 몇 년 일찍 들어온 선배 기사를.
게다가 오러가 가미되지 않은 검으로 쓰러뜨린 것이다.
완벽한 압도.
그 모습에 모두가 놀라워했다.
물론 다들 그녀가 발군의 실력을 가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 정도로 강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나랑도 한 번 붙어보자, 세리나!”
호승심이 오른 다른 기사가 연무장에 올라서며 외쳤다.
붉은 머리를 한 여기사였다.
장신인 세리나보다 머리 하나 차이 나는 큰 키를 가진 그녀.
그녀는 검술 명가 리나드 후작가의 자제였다.
“좋습니다. 리나드 영애!”
소드마스터 리나드 후작.
그녀는 그의 하나뿐인 딸 루나 리나드였다.
그녀가 자신의 앞에 다가오자 조금 긴장한 세리나.
알레프와는 달리 그녀는 한 차원 높은 검수였다.
허나 겁먹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다시 자세를 잡으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치이잉─
서로의 검이 부딪히며 날카로운 파열음이 연무장을 가로질렀다. 뒤이어 이어진 검의 전주곡.
타앙! 티잉! 치이잉! 탕!
그 특유의 소리가 마치 악기를 연주하듯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막상막하의 공방이 시작된 지 수분 째.
끝이 없을 것 같은 그 합주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흐흡!”
단지 한 호흡.
그 한 호흡의 빈틈을 세리나가 파고들었다.
콰지직─
“아아악!”
리나드의 견갑이 심하게 우그러지며 손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이어진 세리나의 연격.
터엉! 쾅! 파직! 콰직!
세리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상대를 무너뜨린다.
“끄르르르르…….”
볼썽사납게 입에 거품까지 물며 기절한 그녀. 그래도 알레프처럼 얼굴을 땅에 처박지는 않았다.
“후우…….”
깊은 심호흡.
2번의 대련으로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는다.
격렬한 움직임으로 인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제법 지쳐 보이는 그녀에게 또 다른 이가 대련을 제의하였다.
“어때, 할 수 있겠어?”
“…….
그녀에게 말을 건 사람은 프란.
이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귀공자는 라델리안 공작가의 차남이었다.
라델리안 공작 역시 소드마스터였는데 리나드 후작과는 늘 라이벌 관계로 유명하였다.
“10분만…. 10분만 쉬었다 하지요.”
“그래.”
10분.
그렇게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연무장 위에 마주 선 둘. 서로 자세를 잡자마자 대련을 시작한다.
“헙!”
외마디 기합 소리를 내며 그대로 달려드는 프란. 그의 검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치잉! 티잉!
그 변칙적인 움직임을 본능적으로 막아내는 세리나. 곧이어 몸을 틀면서 그대로 드러난 그의 하반신을 베어나갔다.
“흠!”
하지만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짧게 숨을 내뱉은 뒤 그대로 몸을 띄우며 회전. 그리고 그 원심력을 그대로 검에 실어 휘두른다.
타앙! 끼이이익─
“크으윽!”
엄청난 파괴력에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하였다. 이를 악물며 잡은 손이 저릿해지는 게 느껴진다. 허나 상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곧이어 이어진 프란의 집요한 공격.
마치 독사가 먹잇감을 물듯이 매섭게 그녀를 몰아쳤다.
쉬이이익──
흡사 공기를 집어삼키는 음습한 소리.
그 소름끼치는 파열음이 상대를 그대로 무너뜨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나아가며 그대로 정면을 갈랐다.
콰지직!
갑옷이 우그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세리나가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에 그대로 승부가 난 듯하였으나 뒤이어 무릎을 꿇는 프란.
쿵!
그의 갑옷이 심하게 우그러진 게 보였다.
“하아…. 하아….”
격렬한 움직임 때문인지 매우 지쳐있는 세리나. 그녀 또한 타격을 입은 것 같았지만 그런 것 치곤 갑옷의 상태가 매우 깨끗하였다.
반면에 프란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며 헛구역질을 해대었다.
“쿨럭, 쿨럭! 분명히 공격이 들어갔는데 어떻게……?”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그의 표정.
이에 세리나는 싱긋 미소를 보이며 말한다.
“이 갑옷 덕분이지요. 동생이 준 이 갑옷은 어지간한 오러 공격을 다 막아주더라고요.”
“뭐라고? 그게 사실이야?”
“네, 그것뿐만 아니라 입으면 몸이 더 가벼워지고 기운이 넘쳐요.”
“정말? 어떻게 그럴 수가!”
마치 상품 설명을 하듯 또랑또랑하게 말하는 세리나. 그녀의 말에 지켜보던 이들이 모두 귀를 쫑긋 세운다.
“여기 어깨랑 주요 방어 부위 보이시지요? 여기가 전부 미스릴로 돼 있어요.”
“뭐? 정말?”
“와, 진짜 쩐다!”
순식간에 홍보장이 된 연무장.
사람들이 호응을 보이자 흥이 난 세리나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것도 순도 99.99%의 고순도 미스릴을 써서 오러를 주입하였을 때 강도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 운동능력까지 향상된다고요.”
“세상에! 미스릴이 99.99%라고!!!”
“어떻게 그런……!!”
계속되는 그녀의 설명에 다들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있었다. 그중 몇몇은 침을 삼키면서 탐욕스런 눈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걸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는데?”
“진짜, 그거 나도 사고 싶은데 구할 수 있을까?”
슬슬 구매 문의가 들어온다.
그 열의를 느낀 세리나는 즉시 눈을 빛내며 떡밥을 던진다.
“물론이지요. 하지만 구매 문의가 많기에 수량이 부족해질 수 있어요. 지금 ‘한정판’으로 딱 50개만 판다고 해요!”
“뭐 고작 50개라고!!”
“세리나, 나 당장 사고 싶어! 이거 주문 어떻게 해?”
“가격은 얼마야? 내 돈 가져가! 제발!!”
한정판매라는 말을 듣자 광분하는 기사들.
이제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다.
“자 다행히 이번에 한정판을 구입하면 특제 미스릴(이 함유된) 검을 같이 드린다고 해요.
미스릴 검과 미스릴 갑옷 이 2개를 한 번에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나올지 알 수 없어요.
이 2개를 묶어서 단돈 9천9백8십 금화! 9천9백8십 금화! 1만 금화도 안 되는 가격에 이 모든 것을 드려요.”
9천9백8십이라는 숫자가 미묘하게 가격이 저렴해 보이는 착각이 든다.
“와, 그 가격에 검이랑 갑옷 둘 다 준다고?”
“세상에 1만 금화도 안 되는 가격에 풀세트라니!!”
“그럼 이번 기회에 사야 한다는 말 아냐? 세리나, 나도 주문 넣어줘! 제발!!”
여기저기서 주문을 하는 사람들. 세리나는 주문서를 하나하나 작성해주었다.
‘칼슨이 개당 500금화를 수당으로 준다고 했는데, 그럼 이게 도대체 다 얼마야?’
잔뜩 흥분한 그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보이는 세리나.
평소 돈에 연연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그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큰 액수였다.
그날 그녀는 50개 상품을 전부 완판하였다.
* * *
세리나가 그렇게 고가품목을 팔고 있을 때,
칼슨은 두 번째로 제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웅성웅성.
드레이크 외성 공터에 제법 많은 이들이 몰려와 있었다.
대부분이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
제법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크고 작은 상처 하나씩 가지고 있는 그들.
그들 모두 갑옷과 무기를 장비하고 있기에 분명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중 짙은 적발의 깡마른 남성이 검은 머리 덩치에게 시비를 건다.
“어? 이게 누구신가? 작년에 그렇게 개망신을 당하고도 아직도 영업 중인 건가? 에휴, 나 같으면 문 닫았다. 진짜~”
“그 입 닥쳐라, 로엠!”
“크크큭, 싫은데? 정말이지 그렇게 쟁쟁하던 ‘렌달 용병단’이 이렇게 한물간 모습이라니. 진짜 너무너무 볼만하잖아!”
“이 개 같은 놈이……!!”
상대의 이죽거림에 바득바득 이를 가는 렌달.
그는 바로 렌달 용병단의 수장이자 A급 용병이었다.
한때 왕국 3 손가락 안에 들었던 자신의 용병단이었지만, 작년에 피요르 남작 편에 섰다가 보낸 전력 대부분이 죽어버려 그 위세가 상당히 꺾여있던 상황.
다행히 남작으로부터 미리 받았던 선금이 있었기에 인력은 빠르게 벌충하였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 아직 실전 경험이 부족한 신입들이기에 용병단이 예전의 성세를 회복하려면 시간이 꽤 필요할 것이다.
그러던 와중 드레이크 영지로부터 초청장을 받았다.
-명성 드높은 귀하의 용병단에게 다시없을 소중한 기회를 드립니다.
이번에 드레이크 영지에서 개발한 새로운 무구 세트가 출시되었습니다.
출시 기념으로 파격적인 가격에 여러분을 모십니다.
일단 오셔서 상품 설명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오셔서 설명을 들으시면 금화 300개도 제공하오니 꼭 오시기 바랍니다.
드레이크 영주.
칼슨 드레이크 자작.
왕국 내 상위 용병단 수장들에게 보낸 초청장.
와서 설명만 듣는 것만으로 300골드를 지급한다는 거에 혹한 그들은 간부 몇을 데리고 이곳에 참석하였다.
‘렌달 용병단’ 또한 그렇고 그 앞에 있던 서열 4위의 ‘로엠 용병단’도 같은 이유로 여기에 왔다.
이들 뿐 아니라 나름 명성이 있는 용병단은 모두 이곳에 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기에 상대를 보는 시선이 냉담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그들이 서로 간에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
준비된 단상 위에 백금발의 젊은 남성과 몇몇 무장된 인원들이 올라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