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영지가 제일 강함-31화 (31/162)

30화 반라르

그를 처음 만날 때였다.

영지 서쪽에 위치한 펠린 마을.

그곳에 있던 순찰대원의 보고에 의하면 마을에 웬 괴팍한 대장장이가 있는데, 실력은 좋지만 성격이 지랄맞아 도저히 부름에 응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뛰어난 대장장이가 필요해지자 칼슨은 우터와 함께 그를 보러 직접 찾아갔었다.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잖소. 난 가지 않는다고!”

“뭐? 이런, 영주님에게 감히!”

“그만.”

단호한 그의 태도에 우터가 나서려 하자 칼슨이 손으로 제지하였다.

그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인물은 협박이나 권위를 내세우면 오히려 반발심이 더 생기는 유형.

예전 화룡시 조합원 중에서도 이런 사람이 있었다.

안건 동의서를 받기 위해 한 장이 아쉬울 때마다 끝끝내 거절한 김동배 씨.

그때 몇몇 OS요원이 사정해도 못 받아내자 이사들 중에 제법 성깔 있던 최 이사가 그 집으로 가 담판을 지으려 하였다.

최 이사는 어차피 동의율 채워지면 당신이랑 상관없이 사업이 진행되는 거고, 조합에 잘 보여야 그나마 콩고물이라도 떨어질 거라 하였다.

“뭐? 자넨 날 그따위로 생각하는 건가!”

그것이 그의 심기를 더 건드려 감정을 키워버렸고, 최 이사는 끝내 그에게 조합에 협조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생길 거라 협박하였다.

결국 그때 크게 사단이 나며 유혈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는 조합 일이라면 발 벗고 반대하는 악성 비대위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관리처분인가가 다 돼서야 비대위를 해산하고 조합에 협조적인 사람이 되었는데 그 이유가 기가 찼다.

“며늘아기가 그러는데 이거 시간 끌수록 나만 손해라 하더라고 얼른 집 지어 올리는 게 돈 버는 거라고 하네?”

그렇게 수십 번 이야기해도 듣질 않았던 김동배 씨.

늦장가를 간 아들 며느리의 한마디에 그제야 알아듣고 뒤늦게 노선을 변경한 것이었다.

아무튼 눈앞의 이 사람. 강압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냥 포기해야 하나?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을 캐치해서 잘 구슬리면 되는 것이다.

김동배 씨 같은 경우 늙은 아들이 장가가는 게 그의 바람이었다면 이자 또한 원하는 바람을 알아내 공략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칼슨은 그의 바람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미스릴을 제공해주겠다.”

“……음?”

순간 그의 눈빛이 변하였다.

“미스릴은 그리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그건 아시오?”

“그건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어떤가? 생각이 있는가?”

톤이 다소 정중해진 것이 미끼를 문 게 확실하였다.

그의 눈매가 짙어졌다.

고민하는 흔적이 여기서도 느껴진다.

칼슨은 여유롭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열리는 반라르의 대답.

“그럼 지금 당장 미스릴을 보여 줄 수 있소?”

‘이 새끼가?’

본인이 방금 입으로 구하기 쉽지 않다고 해놓고선 당장 보여 달라고 하다니. 조금 어이없던 칼슨은 차분한 어투로 그에게 대답하였다.

“지금 당장은 없다. 허나 반년…. 아니 석 달 안에 자네에게 제공해주겠다. 알다시피 미스릴이라는 것이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잖나?”

“……그건 그렇지.”

반라르는 칼슨이 당장 줄 수 있다고 했으면 의심부터 했을 것이다. 그만큼 미스릴은 쉽게 구할 수 없었으니까.

생각을 마친 그는 칼슨에게 말을 하였다.

“좋소, 대신 내가 작업할 만한 충분한 양을 제공해주어야 하오. 또한 그 품질 또한 내가 만족해야 하고.”

“작업할 양이라면 도대체 어느 정도나 말인가?”

“대충 갑옷 만들 양이면 충분하오.”

‘이 자식이 진!’

갑옷을 만들 양이면 그 양이 20~30kg 정도 된다. 물론 미스릴이 쇠보다 가벼우니 그의 반절도 안 되겠지만 부피는 동일하기에 무게만 다를 뿐, 양 자체는 같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그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어처구니없었지만 그래도 별수 없었다. 그 조건이 아니면 절대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으니 말이다.

“좋다. 그럼 석 달 안에 원하는 것을 구해다 주겠다. 그리고 그러지 못할 시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으마. 이건 영주로서 내 이름을 걸고 약조하지.”

“알겠소. 나 반라르 또한 약조하오. 나를 만족시킬 만큼 미스릴을 제공한다면 내 당신을 섬기도록 하겠소.”

그렇게 둘의 약조가 이루어졌고 그 기간 동안 반라르는 외성에 있는 대장간에 머물며 칼슨이 약조한 날짜만을 기다렸던 것.

* * *

‘이제 약조한 날이 다 되었나?’

며칠은 남은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그래, 반라르. 무슨 일로 나를 보고자 했나?”

“그때 한 약조 때문에 왔소이다.”

“저런 무엄한 놈이!”

“감히 영주님에게 저런 불손한 태도를!!”

그의 태도에 충성스런 기사들이 발끈하며 검을 뽑으려 하였다. 허나 칼슨은 손을 들며 그들을 만류하였다.

“그만, 그래 약조 때문이라. 아직 기간이 남지 않았나?”

“며칠이나 남았다고 그러시오. 어차피 지금이나 그때 가서나 시간이 있다고 해도 차이가 있을 거 같진 않소.”

“……그렇긴 하지.”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었소. 어제 온 주괴 중에 미스릴이 있다고 하는 것을.”

“…….”

‘젠장, 어떤 놈이 그 이야기를 퍼트린 거야?!’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겟지만 놈의 눈빛을 보니 확신하는 것 같다.

칼슨은 그자를 단단히 혼내 주리라 생각하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네 말대로 어제 미스릴로 된 주괴가 도착했다. 그것을 보고자 하는 건가?”

“그렇소. 내 눈으로 그것을 확인해보고 약조를 결정할 것이오.”

제법 매서운 눈빛 속에 뭔가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을 읽은 칼슨은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목소리를 내었다.

“놈에게 어제 가져온 미스릴 주괴를 보여주도록 해라.”

“예, 영주님.”

칼슨의 명에 레인이 준비된 상자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것을 반라르에게 건네주었다.

“열어봐라. 거기에 어제 가져온 미스릴이 있으니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라.”

“……알겠소.”

무뚝뚝하게 대답한 그는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제법 놀란 듯 그 매섭던 눈이 동그래졌다.

“흠, 이건 정말 미스릴이로군…….”

은은한 빛을 뿜고 있는 금속. 금속이라면 으레 차가워야 했지만 이것은 희미한 온기가 돌았다.

얼핏 보면 은이랑 비슷한 느낌.

허나 그 부드러운 촉감은 분명 은이랑 달랐다.

그렇기에 이것은 미스릴이 확실하였다.

게다가 순도 또한 매우 높은 고품질.

이 정도의 품질은 자신도 처음 보는 수준이었다.

“그래. 어떤가? 맘에 드는가?”

“…….”

감탄하고 있던 그에게 칼슨이 넌지시 말을 건넨다. 그러자 그는 시선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미스릴이 맞군요.”

다소 공손해진 말투.

여전히 무뚝뚝한 어조였지만 그 안에서 미세한 흥분이 느껴졌다.

“게다가 순도 또한 매우 높습니다. 이런 주괴를 만들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쉽지 않을 터인데…….”

미스릴보다도 주괴를 만든 기술에 더 호기심을 보이는 반라르. 당연히 일반적인 화로로 그런 주괴를 만들 순 없다. 바로 고대 문명의 기술이기에 그게 가능했던 것.

그 말을 들은 칼슨은 살짝 찔려서인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간다.

“그래서 만족스럽나? 어서 대답을 해보아라.”

“……미스릴 자체는 그렇습니다. 아니 솔직히 기대 이상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허나…….”

대답을 하던 그가 갑자기 말하기를 주저하며 뜸을 들인다.

하지만 바로 굳은 표정을 하더니 바로 입을 연다.

“이 정도 양으로는 갑옷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 말이 맞다. 어제 들여온 미스릴 주괴는 총 5개.

갑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못해도 10개 정도는 들어가야 했으니까.

“그래서 만족스럽지 않다?”

“…….”

반라르는 고민하였다.

솔직히 약조랑 무관하게 자신은 이곳이 맘에 든다.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양질의 철 주괴.

끊임없는 일거리. 그리고 마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동네 아이 벤.

꼭 영주를 섬기는 게 아니어도 그는 이곳에서 계속 머물 생각이었다.

게다가 그는 영주가 이런 고품질의 미스릴을 제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불순물이 잔뜩 섞인 하품의 주괴나 주면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런 품질이라니….

마음 같아서는 눈앞의 주괴를 가지고 당장이라도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약조한 양보다 현저히 적었다. 그 말은 곧 영주가 자신과의 약조를 어겼다는 말.

이 상황에 굳이 자신이 매달린다는 것도 모양새가 참 이상하였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그에게 칼슨은 그 고민을 덜어주었다.

“그동안 모아놓았던 것을 보여주거라.”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대답과 동시에 자리에서 벗어난 레인. 이윽고 제법 큰 상자를 들고 오는 하인과 함께 나타났다.

쿵.

그대로 반라르의 앞에 내려놓자 제법 큰 소음이 났다.

그 무게감 있는 소리에 반라르는 무슨 일인가 하고 어리둥절해했다. 그런 반라르에게 칼슨은 조용히 말하였다.

“열어보거라.”

“…….”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의 말대로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놀라워하는 그의 표정.

“허억, 어떻게 이런!”

“어떤가? 그 정도면 이제 만족하나?”

그곳에는 무려 20개가 넘는 미스릴 주괴가 들어있었던 것.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며 그것을 만져본다.

아까와도 똑같은 빛깔과 감촉.

틀림없이 방금 봤던 그 주괴와 동급의 품질이었다.

“어떻게 이런…….”

“왜? 고작 자작인 내가 이런 것을 어떻게 구했는지 궁금한가?”

“……아닙니다.”

솔직히 그렇다.

미스릴이 괜히 미스릴이겠는가?

돈도 돈이지만 이 정도의 양을 단시간에 구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왕국의 왕실에서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일개 자작이 이만큼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 품질 또한 최상급이 아닌가.

아무리 자신이 한낱 대장장이에 불과하지만 그 가치를 알기에 그는 지금 현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미스릴을 구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칼슨이 그와 약조한 후 미스릴을 구하기 위해 레인을 비롯해 모든 인원을 동원하여 미스릴을 구하기 위해 애를 썼으나 구할 수 없었다.

설사 어찌어찌 찾아내어도 그 터무니없는 가격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심이 깊어가던 와중.

유적에서 보내오는 주괴 중 철과 함께 금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 이유를 알고자 에밀리와 함께 그곳을 다시 찾은 결과,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1차 주조물 말고 2차까지도 정할 수 있다고 해요. 기존 작업에 2차 주조물이 금으로 등록되어 지금까지 금이 나온 거라고 하네요.”

그 말에 칼슨의 얼굴은 화색이 돌았다.

그는 당장 2차 주조물을 금이 아닌 미스릴로 변경하라 하였고 그렇게 미스릴을 추가로 뽑을 수 있게 되었던 것.

비록 금보다 적게 생산되었지만 일주일에 주괴 다섯 개 정도의 양은 생산되었기에 지금의 개수를 채울 수 있게 된 거였다.

“후우…….”

한숨을 내쉬는 반라르.

이제 영주는 자신과의 약조를 완벽하게 지켰다.

처음에는 그저 영주를 때어놓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었지만 그는 그것을 해냈다. 그것도 기대 이상으로 말이다.

이 상황에 더 이상 망설임을 보인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하지 못할 짓이었다.

“저 반라르, 이제부터 영주님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충성을 맹세하였다.

고대하던 인재를 얻게 된 칼슨은 정말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지금은 영주로서 위엄을 보여주어야 할 때.

애써 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키고 진중한 자세로 그에게 말한다.

“그래, 당연히 약조대로 그리해야겠지. 반라르 너는 오늘부터 성내 모든 대장장이들을 통괄하는 장이 되어라! 그리하여 그들을 가르쳐라. 그들을 관리해라. 그리고 그들이 만들 물건이 차질 없이 나올 수 있게 하라!”

“예, 이 반라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영주님.”

“내 그대에게 ‘야금장’이라는 직책을 주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드레이크 영지의 야금장이 된 반라르.

그의 합류로 이제 드레이크 영지는 본격적으로 무구 사업의 첫발을 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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