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제작소
“이, 이럴 수가!”
“정말 주괴가 있어!”
한곳에 수북이 쌓여 있는 주괴를 보며 다들 놀라워하였다.
그중 몇몇이 다가가 그것을 잡아서 만져본다.
“철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철 주괴입니다.”
“그게 정말인가?”
그 말에 칼슨도 다가가 만져본다.
비릿한 쇠 향이 코를 찔렀다. 이 강도, 무게. 확실히 철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주괴의 모양 또한 굉장히 네모반듯하다. 마치 칼로 자른 듯 매우 깔끔한 각. 그 흔한 기포 자국 하나 없었다.
‘와, 이거 순도도 엄청 높겠는걸?’
이렇게 양질의 주괴를 만들려면 수준 높은 제련 기술이 필요했다. 솔직히 말해 드레이크 영지 내에서는 물론 왕국 내에서도 이 정도의 주괴를 보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칼슨이 감탄을 하고 있을 때 다른 곳을 살펴보던 병사가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여, 여기엔 검이 있습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뭐? 검이라고!”
그 말에 놀라기도 전에 또 다른 곳에서도 보고가 들어왔다.
“이곳에 갑옷이 쌓여 있습니다! 심지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영주님, 여기에 창이 많습니다!”
“저쪽에는 단검들이…….”
여기저기서 자신들이 발견한 것들을 알리는 부하들의 외침. 그걸 들은 칼슨은 마침내 여기가 어떤 곳인지 파악이 되었다.
‘제작소라고 할 때부터 짐작은 했는데 역시 여긴 각종 무구들을 만드는 공방이었어!’
아니 공방이라기보단 오히려 공장에 가까운 규모.
주변의 구조물들을 찬찬히 훑어보니 그것들이 뭔지 알겠다.
‘이건 기계들이야! 무기와 갑옷들을 찍어내는 그런 기계들.’
현재 가동이 되고 있지 않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 쓰임새를 짐작할 수 있었다.
광석을 채굴하는 굴착 기계, 그렇게 모은 광석을 제련하는 용광로. 또 이 모든 것들을 이어주는 각종 이동 장치들.
비록 현대의 기계들이랑 어느 정도 차이는 있었지만 그 구조는 대충 비슷하였다.
자동으로 광맥에서 광석을 채굴하고 그걸 주조하여 주괴로 만든다. 그리고 또 그것을 몇 가지 성분을 섞어 합금으로 만든 후 다시 그것으로 무구를 뽑아내는 형태.
한마디로 제대로 작동만 시킬 수 있다면 자동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작동시키지?’
아무리 좋아도 그걸 사용 못 한다면 그림의 떡이 아닐 수 없다. 눈앞의 기계들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이를 움직일 방법을 알지 못하니 심히 답답함이 밀려온다.
생각에 잠긴 그에게 우터가 다가왔다.
“영주님……?”
“……아? 우터, 그래 무슨 일인가?”
“예, 이제 어찌해야 해야 하겠습니까?”
“흐음, 글쎄…….”
당장이라도 이 유적을 가동시키고 싶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이곳에서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
“일단 물품들을 최대한 챙겨가기로 한다. 우터?”
“예, 영주님.”
“네가 순찰대원들 몇 명을 데리고 성에서 인원을 데려오도록 해라. 여기 이 무구들을 챙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명을 받들겠습니다.”
주먹을 가슴에 대며 고개를 숙인 우터. 그대로 돌아서며 자신의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훼인, 크로몬, 파이샤!”
“예, 순찰대장님!”
“너희들은 나를 따라 성으로 돌아가도록 한다!”
“예, 알겠습니다! 대장님!”
“뒤처지지 않게 잘 따라와라!”
그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그곳을 벗어나는 우터. 그의 뒤를 따라 곧장 3인의 순찰대원들 또한 발 빠른 움직임으로 그곳을 떠났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칼슨은 에드를 향해 말을 하였다.
“에드.”
“예, 영주님!”
“자네는 남은 인원들을 데리고 이곳에 있는 물품들을 옮기기 편하게 한곳으로 모아 놓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영주님.”
그렇게 그에게 일을 시켜놓은 칼슨은 에밀리를 불렀다.
“에밀리, 나랑 같이 여기저기 구경해 보지 않을래?”
“아, 그래도 되나요? 좋아요, 영주님.”
“그래, 그럼 나를 따라오도록 하렴. 신기하다고 막 함부로 만지진 말고.”
“예, 알겠어요. 영주님. 헤헤 신난다~”
작업하는 이를 뒤로하며 칼슨과 에밀리는 각 구조물들을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물건들을 찍어내는 기계들이었지만 그 크기가 대략 5층 정도 되는 높이.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려면 꽤나 시간을 잡아먹을 듯싶다.
칼슨은 우선 광물을 캐내고 그것을 제련하는 곳에 발걸음을 디뎠다. 그리고 벽에 구멍을 낸 채 멈춰있는 큰 기둥을 보았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꽤나 단단하고 견고해 보였다. 굵은 기둥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길게 이어지는 날들이 꼬여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가 제법 매서운 느낌이었다.
“흐음, 이 형태는 마치 드릴에 가까운데…….”
“드릴?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영주님?”
칼슨의 혼잣말을 듣고 호기심이 가득해진 에밀리가 초롱초롱한 눈을 하며 물었다.
그런 그녀를 본 칼슨은 그것에 대해 막상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현대 문명에 대한 것을 언급해야 했기에 고개를 저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아, 아니다. 그런 게 있단다. 에밀리.”
“흥, 어른들은 알려주기 싫을 때마다 꼭 그렇게 이야기하더라. 알았어요. 말해주기 싫으면 안 해줘도 돼요.”
“아니 그게……. 휴, 아니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자 살짝 심통이 난 에밀리.
칼슨은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애를 상대로 열을 내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기에 그냥 말을 말았다.
게다가 일일이 설명해주는 것도 꽤나 곤란하였으니 그냥 무시하고 다시 기기들을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뭔가 스위치 같은 게 있을 법도 한데…….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것들을 움직이기 위한 조작 장치가 없나 여기저기 뒤져보았다. 그렇게 쥐 잡듯이 뒤져본 결과 칼슨은 그럴듯한 장소를 찾아내었다.
‘흐음, 아무래도 여기가 조작실 같아 보이는데?’
주변을 보니 마치 사람이 앉을 있도록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앞에는 시야가 뻥 뚫려 굴착하는 쪽부터 광석을 녹이는 용광로, 주괴를 주조하는 공정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간의 아랫부분에는 넓은 판이 깔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난생처음 보는 문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설명서나 조작에 대한 내용 같은데……. 이건 설마, 고대 문명의 문자들인가?’
고대 문명의 문자. 일명 고대어 문자.
고대어라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고대 지배층의 언어였다.
당시 문명이 전부 사라지고 지배계층 또한 모두 자취를 감추었기에 그 문자를 알고 있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였다.
그것도 정확히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닌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어느 정도 추론하는 수준이다.
결국 이 문자를 해석한다는 것은 현시점에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
‘그래도 혹시 모르니 건드려 볼까?’
일단 뭐라도 알아볼 겸, 손을 갖다 대 본다. 허나 손이 그곳에 닿기 전 칼슨은 잠시 멈칫하였다.
‘혹시 잘못 눌렀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어떡하지?’
그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었다.
행여나 보안 경보가 작동하며 침입자로 간주해 함정이 발동되거나 자폭이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였다.
여러 가지 생각에 칼슨의 머리는 심히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때 그의 뒤에서 에밀리가 불쑥 나타났다.
“응? 영주님 여기서 뭐 하세요? 이건 또 뭐고요?”
“어? 언제 왔어, 에밀리? 이거 건드리면 안 돼!”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영주의 호들갑에 살짝 무안해진 그녀는 잠시 멈칫거리더니 이내 그에게 말을 건다.
“네, 영주님. 그런데 이게 도대체 뭐길래 그러시는 거예요?”
“음, 아무래도 여기 구조물을 조작하는 것 같은데 여기 적힌 글을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말이야…….”
“흐음~ 그래요? 이게 여기를 조작하는 부위란 말이지요?”
“응, 에밀리. 보는 건 아무래도 좋은데, 만지진 마.”
“에이, 알았어요. 그냥 보기만 할게요.”
조금 불안한 칼슨의 목소리에 에밀리는 능청을 떨며 걱정하지 말라는 손짓을 하였다. 그리고는 그 똘망똘망한 눈으로 유심히 판을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그녀가 한참을 바라보자 칼슨은 넌지시 말을 건다.
“그래, 뭐 좀 알겠어?”
그의 물음에 에밀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뇨, 전혀요. 처음 보는 글자라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역시나였다.
‘하긴 뭐라도 아는 게 이상한 거겠지.’
어찌 됐든 당장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렇게 체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던 찰나. 그의 눈앞에 갑작스레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마나를 감지한 1번 기기가 휴면 상태에서 활성화됩니다.]
“뭐, 뭐야?”
다시 그곳을 돌아보니 에밀리가 그곳에 손을 대고 있었다.
“어, 죄송해요. 영주님. 그게 너무 궁금해서…….”
위이이이잉───
요상한 소음이 울리며 구조물 곳곳에서 은은한 빛이 나기 시작하였다. 메시지 창에 설명대로 활성화되면서 대기 모드가 된 것 같았다. 전자기기로 따진다면 전원이 들어간 상태.
“에밀리!”
“예? 영주님, 저 그게…….”
“잘했어!”
“아… 네? 켁!”
자신을 혼낼 줄 알았던 그가 도리어 칭찬을 하자 어리둥절한 에밀리. 그런 그녀를 칼슨은 격하게 끌어안았다.
“어유 우리 복덩이! 내가 너 때문에 산다. 진짜!”
“커억, 영주님. 숨 막혀요!”
“어? 그, 그래?”
그녀의 말에 다시 팔을 풀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압박이 풀리자 에밀리는 몇 번 기침을 하더니 그대로 고개를 든다.
“하아, 영주님! 그렇게 갑자기 껴안으시면 어떡해요?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잖아요!”
“아, 미안. 너무 기뻐서 나도 모르게 그만…….”
칼슨이 바로 사과하며 미안해하자 에밀리는 표정을 풀며 입을 열었다.
“에휴, 알겠어요. 기뻐서 그러셨다는데 제가 뭐라 할 순 없지요.”
“그래, 고맙다. 하하.”
칼슨이 웃으며 좋아하자 에밀리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런데 뭐가 그리 좋으신 거예요, 영주님?”
“아, 그건 네가 이 구조물을 작동시켰기 때문이지.”
“어? 정말요? 제가 한 건가요?”
“그래!”
“그런데 왜 빛만 나고 움직이지는 않는 거죠?”
“아, 그것은…….”
‘그러네, 아직 시동만 켜고 작동은 안 했구나.’
그녀의 말에 칼슨은 잠시 뻘쭘해졌다. 그 말대로 지금은 대기 상태. 아무 미동도 없던 처음보다는 나았지만 어찌 됐든 작동을 해야 그 의미가 있는 법.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 머릿속에 어떠한 울림이 느껴졌다.
【시스템 가동.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기에 저장된 목록을 초기화합니다. 10, 9, 8……2, 1.】
【초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신규 사용자 등록이 필요합니다.】
【사용자 등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이것은 뭐야!’
머릿속의 울림이 자신에게 말하였다.
언어로 들리는 것이 아닌 그 의미가 머릿속으로 바로 전달되었기에 칼슨은 이 현상이 매우 생소하였다.
“영주님, 도대체 이게 뭐죠? 사용자 등록이라니?”
에밀리 또한 머리를 매만지며 현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다.
칼슨에 비해 경험이 부족한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이 매우 낯설 것이다.
【사용자 등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재차 들리는 울림의 소리.
칼슨은 다시 그 판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후우, 어떻게든 되겠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대로 그곳에 손을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