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광맥 탐사
“에밀리, 아직도 멀었니?”
“다 왔어요! 이제 조금만 가면 돼요, 영주님!”
“그래? 목적지가 얼마 안 남았다. 다들 조금만 힘내자고!”
칼슨의 외침에 일행들은 힘든 기색이 역력함에도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허억 허억……. 네 영주님! 모두 영주님을 따라가자!”
“하아악 하악……. 아, 알겠습니다. 하악…….”
후위에 있던 기사 에드가 다른 인원들과 함께 칼슨의 뒤를 쫓아갔다. 제법 지쳐있던 그들. 하지만 이들이 체력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다. 칼슨과 우터의 체력이 워낙 뛰어났기에 일행들이 그들을 따라가기에 조금 벅찼을 뿐.
“쯧, 왜 이리 체력들이 안 좋아? 저것들 돌아가면 아무래도 한바탕 굴려야겠군.”
혀를 차며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우터가 미소를 띤 얼굴로 말하였다.
“산새가 꽤나 가파르지 않습니까, 영주님. 저들이 저리 힘들어하는 게 당연합니다.”
“우터, 자네가 그런 말 하면 정말 신빙성이 없는 거 알지?”
“아, 그렇습니까?”
칼슨의 핀잔에도 태연한 태도를 보이는 우터. 그는 사실 에밀리를 목말 태운 상태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칼슨을 따라가고 있던 것.
‘이 괴물 같은 놈.’
자신의 충성스런 부하지만 이제는 두려울 정도다. 그렇게 강행을 한 지 십여 분. 어느새 경사가 완만해지더니 꽤 넓은 구릉이 나타났다. 그때 에밀리가 마치 깎인 듯해 보이는 암벽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기예요! 바로 저곳에 철들이 묻혀있데요!”
“오케이! 에밀리, 어서 노옴에게 저쪽을 파보라고 해!”
“예, 영주님!”
목말에서 내려온 에밀리는 눈을 감으며 정신을 집중하였다.
노옴을 향해 마나를 불어넣자 노옴의 눈이 빛이 난다. 그러더니 그를 가로막던 벽들이 서서히 분해되듯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야, 언제 봐도 기가 막히네.’
몇 번 본 광경이지만 볼 때마다 감탄스러웠다. 소음도 없다. 분진도 발생하지 않았다. 게다가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쟤를 가지고 토목 공사하면 공기가 상당히 단축되겠어. 게다가 비용도 아끼고 말이야.’
그는 재개발 조합장을 하기 전 건설회사의 부장을 했었다. 건물을 짓기 전에 보통 기초 공사를 하는데 그때 처음 하는 게 땅파기다. 그리고 그러면서 제일 골치 아팠던 일 중 하나가 지반에 암반이 나올 때였다.
‘그때는 폭약을 써야 했지만 쟤는 그냥 갈아버리니…….’
폭약을 쓰면 암반을 제거할 순 있지만 문제는 그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일반적인 폭약을 쓸 수 없다. 그 소음으로 인한 민원도 골치 아팠지만 일단 법적인 문제로 특수하게 제조된 것을 사용해야 한다. 물론 그 가격이 비싼 건 당연한 이야기.
아무튼 이제는 기억에서만 존재하는 사실들이었다.
상념을 깨고 다시 눈앞의 상황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대략 2미터 정도 둘레의 구멍이 생기며 긴 터널이 되어가고 있었다.
혹시나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우려할만한 위험은 없었다.
정령의 힘으로 깔끔하게 굴착한 이유도 있지만 파고들어 간 곳이 워낙 단단한 암벽이었기 때문. 그렇게 굴착을 시작한 지 30여 분이 지났을 때였다.
“발견했대요, 영주님! 노옴이 지금 자신 앞에 철이 있다고 해요!”
“그래, 알았어. 자 다들 들었지 모두 안쪽으로 들어간다.”
“예, 영주님.”
칼슨이 앞장서고 그 뒤로 차례차례 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점차 어두워지는 게 느껴졌다.
이에 일행은 미리 준비한 횃불을 켰다.
화르르.
“후, 이제야 뭔가 보이는군.”
어둠이 걷히자 시야가 트였다. 안쪽까지 훤히 보이지는 않지만 주변을 살펴보기엔 충분한 밝기였다.
“생각한 것보단 비좁진 않네.”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성인 한두 명이 드나들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일행은 횃불 몇 개에 시야를 의지한 채 점차 안으로 이동하였다.
“꽤나 깊숙이도 파 놓았군.”
“네, 영주님. 노옴이 원래 일을 잘하잖아요?”
“……그래.”
칼슨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에밀리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기에 실없는 말은 접어두고 다시 걸음에 집중하였다. 그런 식으로 몇 분이 흐르자 에밀리가 전방에 손을 가리키며 말을 한다.
“어, 저기에 노옴이 있어요! 다 왔어요, 영주님!”
“후, 드디어 도착했군.”
솔직히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어두운 굴을 계속해서 걷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어쨌든 목적지에 도달하였기에 긴장을 풀며 앞을 바라본 순간.
“뭐야, 이건!”
“허억! 영주님, 이것은 도대체……!”
“우와! 이거 철 맞죠? 엄청 크네요. 진짜!!”
에밀리의 말대로 눈앞에는 엄청난 크기의 철이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여기에 웬 철문이 있는 거야!”
칼슨이 생각하는 광맥이 아닌 거대한 철문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오랫동안 여기에 묻혀있었는지 여기저기 녹이 슬고 흙먼지가 덕지덕지 붙어 고철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예상하지 못한 일에 모두들 당황하며 입을 열지 못하였다. 특히 선두에 있던 칼슨은 당황하다 못해 황당하고 어이없을 지경이었다.
“후, 나오라는 광맥은 안 나오고 왜 이런 게 나와서…….”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품었었는데 그걸 이렇게 처참하게 부숴버리다니. 칼슨이 그렇게 낙담하고 있을 때였다.
띠링─
[숨겨진 유적을 발견하였습니다.]
[처음으로 유적을 발견하여 지능1이 증가합니다.]
갑자기 뜨는 알림 메시지.
그 내용을 보자 두 눈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뭐? 유적이라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걸리는 것이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아득히 먼 옛날에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 있었다는 문헌이 있었다. 허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기에 그저 몇몇 기록만 남아있을 뿐.
게다가 그 기록조차 그걸 증명할 자료가 없으니 그저 옛 서가들의 허풍으로 치부할 뿐이었다.
‘설마 이것이 그 고대 문명의 유적?’
그렇다면 이거야말로 대박이었다. 이 안에 뭐가 들었느냐에 따라 철광맥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성과.
칼슨이 그렇게 두근두근하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때 뒤에서 풀이 죽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후우, 이번에야말로 성공할 줄 알았는데 이런 고철로 만든 문이라니요. 제가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영주님, 다음에는 꼭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힘내십시오!”
여기저기 칼슨을 위로하는 말들. 그 말을 들은 칼슨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이것은 유적이다! 혹시 유적에 대해 알고 있는 자가 있는가?”
흥분된 톤으로 칼슨이 외치자 다들 눈을 번뜩이며 화들짝 놀랐다.
“여, 영주님! 지금 유적이라고 하셨습니까?”
“설마 이것이 말로만 듣던 고대 문명의 유적인 겁니까?”
“오 신이시여!”
너도나도 감격하며 환호성을 터트린다.
그야말로 광분의 도가니.
그때 기사 에드가 턱을 매만지며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영주님, 이게 유적이라는 것은 어찌 아신 겁니까?”
그의 한마디에 그 끓어올랐던 기운이 삽시간에 가라앉아버렸다. 그 말의 당사자인 칼슨 또한 당혹스런 표정을 한 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아 도대체 뭐라 설명해야 해? 메시지가 알려줬다고 할 수도 없고 진짜…….’
머릿속으로 그렇게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그의 옆에 있던 우터가 매서운 눈빛을 하며 에드에게 호통을 쳤다.
“페이런 경! 자네는 지금 영주님의 말을 못 믿겠다는 건가!?”
그의 말을 시작으로.
“야! 에드, 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영주님보다 똑똑해? 엉?”
“아오 이 새끼, 평소에 잘난 척하더니 분위기 파악도 못 하냐?”
동료 기사들의 맹렬한 비난. 그리고.
“페이런 경, 제가 평소에 기사님을 존경하고 있었지만 이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기사님. 평소답지 않게 왜 그러십니까?”
순찰대원들까지 그를 힐난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저기서 자신을 공격하자 당혹스러워하는 에드. 무언가 억울한 표정을 하며 칼슨을 쳐다보았다.
[‘[칭호]잔혹한 카리스마’가 발현됩니다.]
“커헉!!”
털썩─
순간 숨이 멎을 듯한 압박감에 짓눌러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마치 사신과도 같은 영주의 눈빛. 그 냉혹한 시선에 그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허억,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덜덜덜
생전 처음 겪는 공포심에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려온다.
“여, 영주님!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아둔하여 불경함을 저질렀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길 바랍니다!”
바닥에 손을 짚은 채로 간곡히 외치는 에드.
어찌나 절실하게 용서를 비는지 그 간절함이 모두에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건 또 뭔 시추에이션이야?’
순식간에 바뀐 분위기에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칼슨.
아무튼 곤란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어쨌든 간에 분위기는 맞춰야 할 것 같았다.
“기사 에드 페이런! 내 이번만은 특별히 넘어가 주겠다. 허나 다음에도 이런 불충한 행동을 한다면 그땐…….”
“…….”
“어찌 될지 잘 알거라 생각한다.”
“예, 영주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알면 되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크으흑!”
그제야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에드.
다행히 훈훈한 결말로 상황은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 당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혹시 유적에 대해 아는 자가 없는가?”
“…….”
‘역시나…….’
에밀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전투 병력들.
학자나 모험가도 아니면 유적에 대해 알 턱이 없었다.
‘어디서 그런 자들을 데려올 수도 없고…….’
그리고 막상 그런 자들을 데려와도 문제였다. 유적이라는 것은 그 가치가 감히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다. 그런데 자신의 사람이 아닌 외부인이 이것을 안다면 과연 비밀이 지켜질 수 있을 것인가. 아마 장담할 수 없었다.
뭐 살인멸구를 한다면 못 할 것도 없었지만 칼슨은 그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에밀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이거 문 같은데 그냥 열고 들어가면 안 되나요?”
“……그런가?”
순간 수긍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에밀리 이거 유적이라니까. 혹시 함정이라도 있으면…….”
드르르르르륵─
“앗 열렸다.”
에밀리가 단순히 슬쩍 밀었을 뿐인데 녹슨 철문이 저절로 벌어지며 열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모두 경악하며 입을 벌리고 있을 때 칼슨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나를 인식하여 유적의 잠김이 풀립니다.]
[유적의 문이 열립니다.]
[고대 문명의 유적 ‘제작소’가 개방되었습니다.]
‘제작소?’
갑작스런 내용에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칼슨.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문 안쪽 공간에 들어서자 모두들 놀란 눈이 되며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넓었다.
어림잡아 반경 100미터는 되어 보이는 면적에 그 높이 또한 상당히 높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10층 높이 정도는 돼 보였다.
하지만 그런 큰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허전해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기저기 처음 보는 듯한 여러 구조물들이 이 공간들을 잔뜩 채우고 있었기 때문.
“어떻게 여기에 이런 공간이…….”
“이게 바로 고대 문명의 유적이란 말인가?”
“저, 저기 엄청난 양의 주괴가 있습니다!”
“뭐!”
한 병사의 말에 모두들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말대로 그곳에는 엄청난 양의 주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