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그녀의 정체
‘이번 생이라니!!’
설마 자신이 빙의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그녀의 눈빛이 뭔가 확신에 차 있는 것 같았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흐음? 글쎄요. 그건 아마 본인이 잘 알지 않을까요?”
그녀의 눈이 가늘어지며 자신을 보자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뭔가 알고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안 거지? 설마 이 여자도 나랑 같은 빙의자인가!’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섣불리 속단할 순 없다. 그렇게 판단하기에 뭔가 꺼림직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어찌 됐든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안 되겠다는 불안감에 칼슨 또한 그녀에게 역질문을 하였다.
“그럼 공주님께서는 이번 생이 마음에 드십니까?”
“예?”
갑작스런 칼슨의 물음에 당황하는 그녀. 그 모습을 본 칼슨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니, 저한테 이번 생을 물어보시니까요. 아마 전생 같은 것을 믿으시는 것 같은데, 글쎄요. 저는 그런 걸 믿지 않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오케이, 자연스러웠어!’
그럴싸한 말로 넘어가자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저것은 자신의 확신에 의심이 생겼다는 신호. 더욱더 그것을 부추기기 위해 칼슨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이해는 합니다. 여성분들께서 그런 미신을 잘 믿는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거든요. 아마 공주님께서도 그러시는 거라 생각이 듭니다.”
“…….”
말이 없는 걸 보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뭔가 긴가민가하는 표정. 입술이 움찔거리는 걸 보니 그녀의 확신이 점점 옅어지는 게 느껴졌다.
‘후, 그래도 별 의심 없이 넘어간 거 같군.’
긴장감이 풀어진 칼슨이 속으로 한숨을 쉬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불현듯 뭔가가 떠오르듯이 눈을 번뜩인다.
그리고 다시 변한 좀 전과 같은 눈빛. 아니 그것보다 더욱더 확신에 찬 그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한다.
“자작님은 제가 고작 그런 미신 따위로 급히 만나자 했을까요?”
“네? 그게 무슨…….”
“자작의 얼굴은 그렇게 안심해야 할 표정이 아니라 나에게 화난 얼굴이었어야 했어요. 아니 최소한 기분이 나쁘다는 게 느껴졌어야 했지요.”
“아니, 공주님. 도대체 그게……. 아!”
‘젠장, 실수했다.’
정말 내 말대로라면 나는 그녀에게 고작 그런 이유로 급히 보자고 한 것에 어느 정도 불쾌함을 표출했어야 했다. 아니 최소한 방금처럼 안도하는 모습은 절대 보여선 안 되었다.
“이렇게 되었으니 터놓고 말하지요. 원래 지하 감옥에서 평생 썩어 있어야 할 당신이 왜 영주가 되어있고 그 뒤 영지전에 어떻게 승리하였는지 그 이유를 말해줘야 하겠어요!”
“허걱!”
알고 있다! 공주는 분명히 자신이 칼슨 드레이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까지 그 상황을 잘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때 뒤이어 나온 그녀의 말에 칼슨은 자신이 단단히 착각했음을 알 수 있었다.
“칼슨 드레이크. 당신은 회귀자가 맞죠!! 안 그런가요?”
“아니, 그게…. 예에~?”
예상 못한 그녀의 말에 순간 당황하였다.
‘회귀자? 빙의가 아니고?’
여태까지 그녀가 자신을 빙의가 아닌 회귀하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그것은 즉 그녀 또한.
‘빙의가 아니라 회귀였어!’
이제야 모든 아귀들이 맞아떨어진다. 그녀가 어린 나이에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고 천재성을 보인 것 또한 회귀로 인한 것일지 몰랐다. 그리고 아마 전생의 칼슨은 지금 자신이 아닌 본래의 칼슨을 보았을 테고.
‘게다가 세리나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을 테니까. 그 갑작스런 변화에 뭔가를 눈치챘던 거였어.’
무능했던 장자가 갑자기 정신 차리고 미래를 바꿨다. 그것을 알고 있는 그녀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신이 의심스러울 터. 그렇게 여러 생각들이 엉키며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을 때였다.
“역시, 당신은 회귀자가 맞았어요.”
“…….”
그녀 역시 자신을 오해하고 있는 듯한데 사실을 말해줘야 할지 어쩔지 칼슨은 고민하였다.
‘어떻게야 하나? 내가 회귀가 아닌 빙의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 저렇게 착각하는 데 굳이 내 쪽에서 밝힐 필요는 없겠지.’
그렇다. 괜히 사실대로 이야기해봤자 득 될 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차라리 이대로 착각해서 같은 회귀자라고 여기는 게 동질감이나 유대감 같은 거라도 느낄 수 있으니까.
사람은 늘 자신과 다른 자를 경계하는 게 본성.
자신이 일부러 그것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당신도 나와 같은 회귀자였군요!”
“후우…….”
일단 장단을 맞추었다.
그녀의 확신을 더 견고히 하기 위해 체념한 듯 깊은 한숨도 쉬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온 그녀의 말에 칼슨은 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당신도 알겠군요. 앞으로 왕국에 어떤 일이 생길지.”
“……!”
‘씨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젠장! 하긴 회귀자니 미래를 잘 알겠지.
그런데 자신은 회귀자가 아니니 그런 걸 알 턱이 있나.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였지만 칼슨은 필사적으로 그것을 표정에서 숨겼다.
‘생각해라, 생각해라, 생각하라고!!!’
지금 이 난국을 타파하기 위해 칼슨은 두뇌를 풀가동하였다. 그의 심각한 표정을 본 엘리시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의심하는 건가? 아 진짜 미치겠네!!’
그녀의 시선이 부담스럽게 다가오자 칼슨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눈을 피했다. 그러자 더욱 굳어지는 그녀의 표정. 칼슨의 심장이 다시 한번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렇군요. 역시…….”
‘뭐? 설마, 눈치챈 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녀가 벌리는 입을 주시하였다.
“앞으로 있을 왕위 계승전에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시는 거로군요.”
“……!”
다행히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었다.
‘씨, 괜히 놀랬잖아!’
아직도 벌떡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그녀의 말에 맞추려는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닙니다. 송구하오나 회귀하기 전까지 제가 지하 감옥에 있어서 세상이 어찌 돌아갔었는지 잘 모릅니다. 그들이 모든 걸 차단시킨 채 저를 가두었기 때문이지요. 그저 저는…. 단지 저를 이렇게 만든 자들을 향한 복수심만이 가득했을 뿐이었습니다.”
“저런, 그런 일이…….”
‘예스! 핑계 오지고!!’
최대한 깊은 사연이 있는 것처럼 연기하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과연 사연 있는 자에게 약한 것이 여심이라고 하였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이제 지하 감옥에 갇혔다는 걸 이유로 미래에 벌어지는 일 따윈 몰라도 되었다.
“그렇군요. 그러셨다면 왕위 계승전에 대해서도 잘 모르시겠어요.”
“네, 송구하오나 그렇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상관은 없어요. 어차피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 그럼 어디 정보 좀 풀어보시죠, 공주님!’
“그러시다면 이 아둔한 제가 어찌해야 할 지 그 방향을 알려주십시오.”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 모습에 그녀는 곤란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쉬며 입을 열기 시작.
“후우, 네. 알겠어요. 알려드리지요. 그래도 같은 회귀자인데 미래를 모르시다니 그건 안 될 일이지요.”
‘나이스!’
“감사합니다, 공주님!”
속으로 쾌재를 지르는 칼슨. 그러나 그 얼굴은 매우 감격스런 표정을 하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 마침내 칼슨은 그녀로부터 미래에 대한 일을 들을 수 있었다.
* * *
이야기를 마친 엘리시아는 외투를 고쳐 입으며 떠날 채비를 하였다.
“그럼, 전 가볼게요. 만나서 반가웠었어요.”
“예, 부디 조심해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네. 그럼 자작님도 다시 만날 때까지 무탈하세요.”
“예, 다시 뵙는 그날을 기대하겠습니다.”
“후훗, 네.”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몸은 먼지처럼 사라졌다. 아마 마법임이 분명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발현되는 건지 그저 신비로울 뿐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사라진 후 이윽고 우터가 문을 두드렸다.
“끝나셨습니까?”
“그래, 들어와.”
카인의 말에 문을 열고 들어온 우터. 자신의 주군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하려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그래, 기대 이상이야.”
“네, 그렇군요. 축하드립니다.”
“그래.”
우터의 말에 칼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었다.
자신의 말대로 그녀와의 만남은 정말 큰 수확이었다. 앞으로 일어날 대략적인 사건을 제법 많이 알려주었으니까 말이다.
“밤이 늦었다. 이만 들어가도록. 내일 아침 곧장 영지로 돌아가야 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우터는 부복을 하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칼슨 또한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밤하늘에 별들이 참 많군.’
창문을 바라보며 잠시 감상에 빠진 그는 이윽고 눈을 감았다.
* * *
드레이크 영지 북쪽 체키스 산.
드레이크 영지뿐 아니라 무려 3개의 영지랑 접해있는 제법 큰 산이었다.
큰 산인 만큼 야생동물들도 많고 흉악한 몬스터 또한 자주 출몰하였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이 산에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흐음, 이번에는 뭔가 발견했으면 좋겠군.”
“네, 영주님. 이번에는 꼭 뭔가를 찾을 겁니다.”
칼슨의 바램에 우터가 힘을 불어넣었다.
그의 말에 쓴 웃음을 짓는 칼슨.
에밀리가 땅의 정령인 ‘노옴’으로 광물을 탐사를 시작한 지 벌써 보름째.
그렇게 여기저기 헤집고 다녔지만 계속 허탕만 쳤다. 그리고 이번이 5번째 탐사.
‘너무 쉽게 생각했었어…….’
처음엔 정령이 알아서 여기저기 척척 광물을 찾아 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땅의 정령이라도 없는 광물을 발견할 순 없었다. 물론 적은 양의 광석들은 간간이 발견하였지만 채굴하기엔 그 양이랑 순도가 형편없기에 채산성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거라도 긁어모은다면 무구 몇 구 정돈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를 얻자고 이 고생을 하는 게 아니었다.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네.’
최대한 안전한 곳에서 광산을 만들려 하였지만 도저히 찾을 길이 없어 이곳 체키스 산까지 왔다. 비록 산이라고 하지만 그 높이에 비해 그 줄기가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있어 가히 산맥이라 봐도 무방하였다.
‘그래도 이런 곳이라면 찾을 수 있을 거야.’
산세가 제법 웅장해 보이는 게 느낌이 좋았다. 준비를 마친 칼슨 일행은 광맥을 찾으러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영주님, 이쪽에 몬스터가 있어요!”
“그래? 자 모두 저쪽으로 돌아간다.”
역시 정령은 편리하였다.
에밀리의 바람의 정령이 산에 있는 몬스터를 파악할 수 있어 미리 피할 수 있었다.
물론 그에 대비한 전력은 충분하였다. 하지만 일부러 전투를 벌일 만큼 칼슨은 어리석지 않았다.
그렇게 탐사를 시작한 지 한참. 갑자기 에밀리가 뭔가를 느낀 듯 일행에게 소리쳤다.
“노옴이 저쪽에 뭔가가 있다고 해요! 아무래도 철 같다는데요?”
“그래? 자 모두 저쪽으로 이동한다!”
“예, 영주님!”
이 산에 와서 처음 탐지한 광맥.
지금껏 워낙 허탕이 많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