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엘리시아
“여기는 꽤나 북적거리네.”
“네, 그렇습니다. 여기저기 볼거리도 많고 참 재밌는 곳입니다.”
여기저기 마차들이 지나가고 상인들이 가판을 열고 물건을 판다. 한쪽 구석에는 인형극을 보기 위해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으며 다른 곳에서는 다양한 먹을거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유혹하였다.
왕국 내에서 이만한 도시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특히 자작령 급의 영지에서는 더더욱 보기 힘들 것이다.
‘검은 보리 여관이라고 하였지?’
세리나가 알려준 그곳을 찾기 위해 칼슨은 우터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시가 제법 컸기에 쉽게 알아낼 순 없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끝내 그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로군.”
“근데 어째, 좀 으스스합니다.”
“그런가?”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우터의 말대로 분위기가 묘했다.
문 위에 걸린 간판은 오랫동안 손을 안 탔는지 거미줄이 걸려 너저분하였고 건물 또한 오래돼서인지 나무로 된 벽들이 군데군데 뜯어져 있는 게 눈에 뜨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누가 안에 있다는 사실.
“일단 들어가 보자.”
“예, 카인님.”
달그닥.
끼이이익────
오랫동안 기름칠을 안 했는지 경첩에서 들리는 소음이 매우 거슬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겉모습과는 달리 꽤나 아늑한 느낌을 주는 실내가 보였다. 공간 또한 제법 넓었는데 테이블이 많은 걸 보니 식사나 음주도 가능한 것 같았다.
“어떻게 오셨소?”
한쪽 구석에 만들어진 바에 있던 사람이 그들을 향해 물었다.
정리 안 된 수염 때문에 조금 지저분해 보였지만 그 눈매와 입꼬리가 가늘게 처져있어서인지 제법 과묵한 느낌이 드는 남성이었다. 아마 그가 이 여관의 주인인 듯 보였다.
“하룻밤 묵기를 원하오.”
칼슨을 대신하여 우터가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으로 보이는 그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들을 보더니 이내 말을 하였다.
“지금은 1인실만 남아 있는데 괜찮겠소?”
“괜찮소, 각자 나눠 쓰면 되니까. 얼마면 되오?”
“각 호실 당 은화 2닢이요. 만약 식사를 원한다면 1닢을 추가하고.”
“낡은 여관치곤 비싸군. 자 여기 받으시오.”
우터가 그에게 은화 5개를 건네자 남성은 바로 그들에게 열쇠를 주며 말하였다.
“3층 2호실과 3호실이요. 식사는? 방으로 갖다 드릴까?”
열쇠를 건네받은 우터는 칼슨을 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우터는 그의 뜻을 대변하듯 말하였다.
“그렇게 하시오.”
“시간이 되면 직원이 가져다줄 거요. 그런데 혹시 이름은 어떻게 되시오?”
“그건 왜 물으시오?”
“그냥 신원 파악용으로 적어두는 것이오.”
“알겠소.”
그렇게 말한 우터는 종이에 이름을 적었다. 이름을 본 남성은 다시 둘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카인과 얀센이라…. 누가 카인이요?”
그의 질문에 칼슨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표현을 하였다.
둘은 계단을 올라갔다.
찌그덕 찌그덕
계단 또한 오래되었는지 밟을 때마다 기괴한 소리가 난다. 그렇게 3층까지 올라간 그는 각각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칼슨은 2호실에 묶었는데 오래된 여관치고는 방안은 깨끗한 편이었다. 침구류도 세탁을 했는지 얼룩 하나 없었고 냄새 또한 나지 않으니 실로 쾌적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제법 지낼 만하네.”
침대에 눕자 꽤나 푹신한 것이 이불에 솜을 넉넉히 넣은 듯했다. 그대로 누워있자 그동안 쌓인 여독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칼슨이 편하게 휴식을 하고 있을 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식사 가져왔습니다.”
목소리가 조금 옅은 것이 어린아이인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보니 열 살쯤으로 보이는 소년이 서 있었다.
소년은 식사가 든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빵과 스프 만이 있는 초라한 차림이었다.
“고맙다. 자 이거 받아라.”
팅.
팁으로 은화 1개를 던져주었다. 그것을 받은 소년은 눈을 크게 뜨며 칼슨을 향해 연일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감사합니다. 손님!”
“그래, 그럼 난 이만 식사를 할 테니 그만 가보도록 해라.”
“예, 맛있게 드세요!”
예상외의 수입에 크게 기뻐하며 신나하는 아이. 칼슨은 그 모습을 뒤로하며 방문을 닫았다.
“크, 이런 소박한 음식도 오랜만에 먹어 보네.”
덥썩.
우선 빵을 한입 베어 먹었는데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게 썩 괜찮았다.
“으음~ 보기와는 다르게 먹을 만한데!”
스프도 먹기 위해 스푼을 그릇에 갖다 대었다. 푸짐한 건더기. 고기와 채소가 듬뿍 들어가 있었다.
“오, 퀄리티가 좀 있네. 어디?”
한 스푼 떠먹어 본다. 그러자 커지는 눈동자.
“이야, 이거 완전 맛집이네.”
달짝지근한 게 여간 당기는 맛이 아닐 수가 없다. 게다가 고기도 비릿하지 않고 부드럽게 씹히는 게 꽤나 양질의 고기를 쓴 것 같다.
쩝쩝.
단출한 식사라서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 외로 맛이 좋았다. 금세 그릇을 비운 칼슨은 남은 빵을 씹으며 아쉬움을 달래었다.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얀센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우터의 목소리. 이에 칼슨은 마저 빵을 다 욱여넣으며 방문을 열어주었다.
“무은(무슨) 이히야(일이야)?”
빵이 아직 입 안에 있어 발음이 세었지만 우터는 눈치껏 알아들었다.
“저, 혹시 식사가 부족하지 않으신지?”
“뭐?”
그러고 보니 그의 손에 식사가 담긴 쟁반이 들려있었다.
“제가 먹어 보니 맛도 좋고 그래서 더 주문했습니다. 괜찮으시면 같이 드시죠.”
“오, 그래. 고마워.”
안 그래도 조금 아쉬웠는데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알고 이리 챙겨왔는지.
‘정말 센스 하난 끝내준다니까.’
우터에게 감탄한 칼슨은 그를 방으로 들인 뒤 같이 음식을 먹었다.
그렇게 함께 식사를 마무리하던 그때. 우터가 뭔가를 느낀 듯 갑자기 검집을 쥐었다.
“누구냐!”
낮은 톤이었지만 방안을 울리기엔 충분한 외침. 칼슨 또한 그 기척을 느꼈기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오호, 꽤나 괜찮은 수하를 두었군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상당히 가녀린 것이 틀림없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설마 엘리시아 공주님?”
칼슨이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한쪽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네, 제가 바로 엘리시아 던 카르시아입니다. 드레이크 자작님.”
수놓은 듯한 아름다운 금발에 밤하늘과 같은 진한 푸른빛 눈. 뽀얗고 매끄러운 피부는 마치 잘 빚은 도자기와 같았으며 불그스름하고 도톰한 입술은 그녀를 조금 더 앳돼 보이게 하였다.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그대로 몸을 낮추며 무릎을 굽혔다. 자신의 주군이 그리 행동하니 우터 또한 마지못해 같이 몸을 낮추었다.
“과한 예는 거두어주세요. 괜찮으니 편히 있으시길 바래요.”
“알겠습니다. 공주님.”
엘리시아의 말에 칼슨은 고개를 들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드레이크 자작님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아, 네. 우터!”
“예, 알겠습니다.”
칼슨의 말에 그대로 부복을 하며 방문을 나섰다. 그가 나가자 방안에는 단둘만 남게 되었다.
잠깐의 침묵.
어색한 공기가 한 차례 지나갈 무렵 칼슨이 그것을 깨며 말문을 열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불편한 건 없으셨습니까?”
“후훗, 혹시 뒤라도 밟혔는지 걱정하는 거예요?”
“아니, 그건…….”
정곡을 찌르는 말에 칼슨은 말을 잇지 못하였다. 당황하는 그를 보며 배시시 웃는 엘리시아. 이윽고 그녀는 탐스러운 입술을 벌리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래 봬도 제가 꽤나 실력 있는 마법사랍니다. 그러니 그런 염려는 안 하셔도 돼요.”
“예, 공주님.”
“그리고 지금 이 공간도 제가 소리를 차단하였으니 누가 들을 걱정 또한 놓으세요.”
“……예, 알겠습니다.”
천재라고 하더니 역시 철두철미하였다. 하긴 자신조차 그녀가 방에 들어온 것도 모르고 마냥 식사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누군가 이 밀회를 아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능력치가 궁금하긴 하네. 어디 볼까?’
호기심을 참지 못한 칼슨은 그녀에게 ‘인물정보 열람’ 스킬을 썼다.
[인물정보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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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아 던 카르시아
나이 : 17세
클래스 : 마법사
힘 6 민첩성 9 지능 19 체력 11 정신력 17 마력 16
스킬
6서클(에픽/성장)
트리플 캐스팅(에픽)
마력회로(희귀/패시브)
환기(희귀)
망각하지 않는 기억(희귀/패시브)
칭호
불세출의 천재
벤투스 왕국의 공주.
카리시아 왕의 넷째 딸.
마법에 엄청난 재능이 있어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으며 현재 4서클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6서클의 마도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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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서클(에픽/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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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서클 이하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익히지 않은 마법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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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캐스팅(에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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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3가지 마법을 발현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가용 마력이 모자란 경우 실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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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 회로(희귀/패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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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마력 효율로 마력 소모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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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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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기운이 머리를 감싸며 정신을 깨우칩니다.
마력 회복 속도가 5배로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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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하지 않는 기억(희귀/패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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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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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불세출의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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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쉽게 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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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여기도 사기 캐릭 납셨네. 게다가 서클도 4가 아닌 6이야!?’
우터 이후로 미친 능력자가 나타났다. 게다가 그가 단지 활 쏘는 거에만 집중돼 있다면 그녀는 6서클 이하 마법을 대부분 쓸 수 있다. 한 마디로 ‘6서클’ 자체가 스킬 여러 개를 뭉쳐놓은 거나 다를 바가 없다는 말.
거기다 ‘트리플 캐스팅’에 ‘마력 회로’,‘환기’ 등. 마법 관련 사기 스킬들이 줄줄이 달려있었다.
‘이거 완전 보스 몹이나 다를 바 없잖아?’
동시에 3가지 마법을 쓰면서 소모 마력도 절반이고, 마력이 떨어지면 환기로 채운다.
‘절대 적이 되면 안 돼.’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만약 그녀에게 미운털이라도 박힌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였다.
상태창을 보며 잠시 멘붕이 온 칼슨. 그런 그를 본 엘리시아는 의아함을 느끼며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 드레이크 자작님. 괜찮으신가요?”
“어? 아! 네 괜찮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돌아온 그는 마음을 추스르며 진정하였다. 그렇게 마음이 안정되자 칼슨은 그녀가 자신을 보자 한 이유를 알고자 하였다.
“저 공주님, 그런데 혹시 저를 보자고 한 연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제가 경을 보자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예요.”
자신에게 뭘 물어보고 싶다는 것인가. 칼슨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런 그를 보며 엘리시아는 조용히 입을 열며 말하였다.
“자작님은 이번 생이 마음에 드시나요?”
“예?”
칼슨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뭔가 알고 있는 듯한 그녀의 눈빛.
알 수 없는 갈증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