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영지가 제일 강함-24화 (24/162)

23화 영지발전 계획안

“조상님이 꿈속에서 알려줬다고?”

“어…….”

‘나도 안다. 이게 개소리라는 거.’

세리나가 그를 붙잡고 물어봤을 당시 칼슨은 문득 이전 세계에서 자신이 봤던 너튜브 방송을 떠올렸다.

부동산을 투자하고 땅을 개발하는 것을 주제로 한 채널이었는데, 가끔 비공개 정보를 알려줄 때마다 그 출처를 꼭

“꿈속에서 조상님이 알려주셨습니다.”

라고 하였다.

물론 내부 관계자를 통해 들은 내용이었겠지만 직접 밝히기 곤란했기에 그런 식으로 에둘러 말한 것이었다.

칼슨 또한 마찬가지로 사실대로 말할 수 없기에 그것을 따라 해봤는데, 이게 듣는 거랑 달리 직접 말하니까 정말이지 너무 부끄러워 미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세리나의 태도가 이상했다. 눈빛이 반짝거리며 뭔가 기대에 차 있는 얼굴.

‘설마……?’

“정말? 도대체 어떤 조상님이신데? 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세상에!!”

믿는다.

그것도 저리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니 한 줌의 의심도 보이지 않았다.

‘후…….’

한순간에 맥이 풀리자 그대로 한숨이 나왔다. 생각나는 대로 둘러댔을 뿐인데 다행히 그게 잘 통하였다.

“그래서 어떤 조상님인데? 응?! 알려주라, 칼슨?”

“아 그게…….”

아니다.

여전히 칼슨은 세리나의 질문 공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계속 시달려야 했다.

* * *

그렇게 칼슨과의 대련을 마무리한 세리나는 몸을 회복한 후에 바로 성을 떠났다. 제법 부상이 심할 줄 알았는데 단시간 만에 회복하는 걸 보니 역시 과연 S급 체력의 소유자다웠다.

“후우, 이제야 살 것 같네.”

그녀가 갈 때까지 제법 시달렸던 칼슨은 이제야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다.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있던 그때였다.

똑똑.

잠깐의 휴식을 깨는 불청객.

“영주님, 레인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모처럼 찾아온 평온이 흐트러지자 심기가 불편해졌다. 허나 레인이 찾아왔다면 분명 용무가 있을 터. 표정을 풀며 그를 맞이하였다.

드륵.

“그래, 무슨 일이지?”

차를 마저 다 마신 칼슨이 진중한 자세로 그에게 물었다. 레인 또한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며 그에게 보고를 하기 시작하였다.

“영주님께서 시행하신 순찰대의 활약으로 각 마을의 세수가 큰 폭으로 늘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그 돈을 쓸 일은 없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새로운 사업을 하셨으면 합니다.”

“사업이라고?”

“예, 현재 통상적으로 거둬들이는 세수 이외에 우리 영지의 주요 수입원은 총 2개입니다. 하나는 예전 피요르 남작이 운영하던 상단이고 다른 하나는 슈라드 평야에서 얻는 농산물입니다.”

“흐음, 그렇군.”

단답으로 말했지만 칼슨은 레인이 말한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큰 문제가 없지만 혹시 모를 앞일에 대비해야 하니 종잣돈을 가지고 뭔가 해보자는 것이다.

“그럼 혹시 뭔가 계획한 거라도 있나?”

칼슨은 일단 그의 생각을 들어보려 하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레인은 몇 가지 계획안을 보여주었다.

“예, 제가 우선 첫 번째로 생각한 것은…….”

장황하게 자신의 플랜을 이야기하는 레인.

평소에 쉬지도 않은 건지 꽤나 준비를 많이 하였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말을 하였지만 지치지도 않는지 잠깐의 짬도 없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흐음…….’

장시간의 설명으로 인해 지루할 법도 하였지만 칼슨은 잠깐이라도 한눈팔지 않았다.

이런 긴 프레젠테이션은 조합장 시절 숱하게 겪어왔기에 고작 이 정도로 졸리거나 지루하진 않았다.

다만 문제는 레인의 계획안이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게 어떤가 합니다.”

짝짝짝.

“수고했어. 이리 많이 준비한다고 고생이 많았겠어.”

습관적으로 나온 박수와 격려의 말. 칼슨에게는 숨 쉬듯이 나오는 자연스런 행동이었지만 이에 레인은 기뻐하며 화색이 돌았다.

“아닙니다. 이게 다 영지를 위한 일.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런데 이런 말 하기는 미안하지만 자네가 세운 계획은 실행하기 어렵겠어.”

“예? 그건 왜…….”

예상과 달리 자신의 계획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당황스런 표정이다. 레인이 그에 의문을 표하자 칼슨은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일단 처음 제안한 ‘대규모 건설사업’은 말이야. 구상은 참 좋아. 사람이 사는데 집은 꼭 필요하니 수요가 많을 거라는 예측 또한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여.”

“그런데 어찌 어렵다고 생각하신 건지…….”

“자네 보통 집을 지으면 몇 년은 쓸 거라 생각하나? 아니 집 말고도 다른 용도의 건물도 마찬가지고.”

칼슨의 질문에 레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음, 최소 20~30년 이상. 아니 상황에 따라 100년 이상도 가능합니다.”

“그럼, 우리 영지의 인구가 도대체 몇인지 아는가?”

“우리 드레이크 영지의 인구는 대략 3만 4천가량 됩니다. 원래는 2만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지만 피요르 남작령을 병합하며 그렇게 되었습니다. 물론 각 마을의 인구까지 다 합친 수치입니다. 아…….”

과연 높은 행정의 보유자답게 술술 나오는 영지의 제반 사항. 그러면서 자신이 말하는 도중 뭔가를 깨달은 레인. 그 모습을 본 칼슨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였다.

“알겠지? 일단 우리 영지의 인구가 터무니없이 적어. 소모가 빠른 생필품이나 식료품 같은 경우야 회전율이 빠르니 계속해서 수익을 뽑아낼 수 있겠지. 그런데 집이나 건물은 그게 쉽지 않아.”

“그래도, 왕국 전체를 상대로 사업을 벌인다면…….”

벤투스 왕국의 인구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150~200만 정도로 추산된다. 그 정도 인구면 사업을 해볼 만도 하였다.

“이봐 레인, 자네도 행정 일을 해봐서 알 거 아냐? 내 영지도 아닌 남의 영지에 누가 그런 일을 맡기겠나?”

“…….”

“그리고 설사 운 좋게 일을 땄다고 해도 상대가 악의적으로 하자를 만들어 트집을 잡는다면 어떻게 대응할 텐가? 아마도 돈 되는 고객들은 우리보다 더 작위가 높으신 양반들일 텐데? 그걸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 그것은…….”

칼슨의 말에 말문이 막혀버린 레인. 행정으로는 뛰어났지만 어디까지나 탁상에서 머리만 굴렸기에 실전에 대한 경험이 아직 부족하였다.

조금 멘탈이 무너진 듯 멍한 표정이 된 레인. 하지만 칼슨은 그다음 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안건인 무구 제조업은 말이야…….”

계속되는 비판에 레인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장시간에 걸친 이야기 끝에 정신이 너덜너덜해진 레인. 너무 몰아세운 것 같다고 칼슨은 생각하였지만 그는 안다. 레인 같은 일벌레 스타일은 지속적으로 채찍질을 해줘야 더 성장한다는 것을.

‘그래도 격려는 해줘야겠지?’

“그리 풀 죽어 있을 필요 없다. 누누이 말하지만 자네의 계획안이 나쁜 것은 아니야. 다만 현실성을 감안해 좀 더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지.”

“……예.”

여전히 기운이 없는 그에게 칼슨은 다시 한번 그에게 한마디를 하였다.

“레인, 그래도 내가 자네를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 그러기에 그만큼 기대하는 바도 매우 크다고.

나는 믿는다. 자네가 다음에는 더 좋은 안건을 가져올 것이라는 걸 말이야.”

“아, 영주님……!”

[지배력의 영향으로 ‘레인’의 의욕이 대폭 증가합니다.]

레인은 그윽한 눈빛으로 칼슨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칼슨은 애써 영업용 미소를 보이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어느새 기운을 차린 그는 다시 맑은 눈빛으로 돌아오며 의욕을 불태운 채 집무실을 나섰다.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본 칼슨.

‘그래, 어서 힘내서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하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편히 자리에 앉았다. 그가 다시 마음의 안정을 취하며 쉬려고 하고 있을 때.

벌컥.

“영주님, 저 새로운 정령이랑 계약했어요!”

“뭐? 정말?”

노크도 안 하고 집무실로 들어온 에밀리. 허나 칼슨은 그런 사소한 거를 인지할 새가 없었다. 그만큼 그녀의 말에 놀랐기 때문.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며 한껏 어깨에 힘을 주고 있는 그녀.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정말 새로운 정령이랑 계약했어? 어떤 정령인데?”

“네, 잠시만요.”

그녀가 손을 내밀며 벌리자 눈앞에 자그마한 형체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짙은 밤색의 단단해 보이는 그 형체는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성인 반 정도의 크기만큼 불어났다.

“‘노움’이에요. 어때요, 귀엽죠?”

“그, 그렇구나.”

마지못해 그렇다고 답하였지만 칼슨의 표정은 그렇지 못하였다. 크기는 작았지만 그 울퉁불퉁한 외관을 보자니 많이 봐줘야 든든한 느낌을 줄 뿐 솔직히 귀엽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감이 뛰어난 에밀리는 금세 그것을 눈치채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귀엽지 않은가요…….”

“아, 아니…….”

방금 전까지 해맑았던 아이가 갑자기 기가 죽으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그래도 최대한 관심을 가지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 정령은 무엇을 잘하니?”

“‘노옴’이요? 얘는 땅 파는 것을 잘해요. 그리고 땅에 뭐가 있는지도 잘 알아요.”

“아하, 그렇구나! 참 유능한 정령이구나.”

“네, 그렇죠? 헤헤.”

자신의 정령을 칭찬하자 금세 또 기분이 풀어진 듯 환하게 웃는다. 그제야 칼슨 또한 안심하며 한숨을 돌릴 때. 방금 에밀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땅 파는 거랑 땅에 뭐가 있는지를 잘 안다고?’

그 말을 상기하자 번뜩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이거 레인이랑 상의하면 아주 좋아하겠어.’

아까 레인이 제안한 안건 중에 이것을 활용하면 좋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무구 제조.

‘레인에겐 원자재인 철광석의 수급을 문제로 반려하였지만…….’

눈앞의 정령. 아니 이 복덩이가 있다면 그 문제는 해결된다. 그야말로 굴착기와 광물 탐지기를 합한 거나 다름없는 능력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보니 참으로 예쁘게 보인다. 그것도 귀엽다 못해 아주 사랑스러울 지경.

“어휴, 이런 예쁜 것을 이제야 보다니!”

칼슨이 노옴을 끌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자 에밀리 역시 그런 그를 보며 씨익 웃으며 좋아하였다.

“역시, 영주님도 ‘노옴’을 귀여워할 줄 알았어요.”

모두가 행복해하는 보기 좋은 모습. 물론 칼슨은 다른 의미로 좋아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 * *

일주일 후.

“후우, 여기가 로우링의 도시 에모르인가?”

“예, 영……아니 카인 님.”

로우링 영지의 중심도시 에모르.

총인구 3만의 로우링 영지. 그런 영지에서 무려 1만 가량이 살고 있는 큰 도시였다.

공주 엘리시아를 만나기 위해 우터와 함께 이곳을 찾은 칼슨. 처음으로 다른 영지에 온 것이 제법 신기하였는지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며 구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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