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넝쿨째 굴러들어 온 영지
“뭐, 왕궁에서 서찰이?”
왕궁에서 왔다는 말에 의문이 들던 칼슨은 그가 건네는 편지를 받아 보았다. 왕실의 인장이 박혀있는 걸 보니 왕궁에서 보낸 것이 확실해 보였다.
‘도대체 이번엔 또 뭔 일이야 진짜…….’
전에 영지전도 그렇고 이렇게 갑작스레 오면 불안감부터 몰려오기 시작한다. 긴장된 마음을 뒤로한 채 일단 봉투를 열고 그 내용을 읽었다. 글씨가 많이 적혀 있는 걸 보니 꽤나 장문이었다. 차분하게 읽어 내려가는 칼슨의 눈동자.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더니 결국 입을 크게 벌리고 말았다.
“이, 이럴 수가!!”
칼슨의 반응에 볼튼과 레인이 놀라며 그 연유를 묻는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영주님?”
“왕실에서 또 문제라도 생겼답니까?”
걱정이 가득한 눈길로 칼슨을 보며 말하는 그들. 그런 그들에게 칼슨은 어이없다는 어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피요르 남작령의 새 주인이 되었다고 하는데?”
“예…. 예에…?”
그 말에 모두 깜짝 놀라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 * *
왕궁에서 내려온 전보에 드레이크 영지는 발칵 뒤집혔다. 물론 나쁜 쪽이 아닌 좋은 쪽이지만 전쟁이 끝나 평온했던 분위기를 깨기에는 충분하였다.
“축하드립니다. 영주님.”
“영주님, 감축드립니다!”
“드레이크 가문에 영광을!”
영지 회의실.
가신들의 축하에 칼슨은 머쓱한 듯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다들 고맙다. 나도 상황이 이렇게 된 게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싫지는 않다. 아니 사실 상당히 만족스럽다.”
“하하하하.”
칼슨의 실없는 농에도 불구하고 모두 거부감 없이 좋아하며 웃었다. 높아진 지배력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주었긴 하지만 지금 상황 자체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때만 해도 이게 뭔 일인가 싶었지.’
상황의 전말은 이랬다.
피요르 남작이 영지전 중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그의 후계가 영지전의 책임을 물어야만 하였다. 그런데 차기 영주였던 그의 차남과 그 일가족들이 전쟁 중에 죽었다. 그래서 그 외에 다른 직계들을 찾아보니 장녀 미네르의 장남이 유일하게 남아있었던 것. 그게 바로 드레이크의 영주인 칼슨이었다.
‘재수 좋은 놈은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데 그 말이랑 딱 들어맞는군.’
한때 피요르 남작이 죽고 그 후계가 생떼를 부리면 어찌할까 고민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었다. 아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로부터 받은 게 영지뿐만이아니었다. 그가 가진 재산과 사업체들 또한 자신의 소유가 되었던 것. 그야말로 로또에 당첨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영지의 크기가 증가하였습니다. 지배력이 1 증가합니다.]
일반 보너스 수치로 올릴 수 없는 지배력. 약소했지만 그래도 오르긴 올랐다. 물론 등급은 A에 머무는 수치였지만 지배력은 쉽게 올릴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저, 영주님. 이런 말씀 드리기 송구하오나 영지가 넓어진 만큼 그것을 관리할 인재도 충원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음, 그런가?”
레인의 의견에 의문을 던지듯 되물었지만 칼슨 또한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다른 이들 또한 같은 생각인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동의하였다.
“예, 시종장, 아니 신임 행정관의 말이 맞습니다.”
“저도 비투스 경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시종장이었던 레인은 최근에 행정관으로 그 보직을 옮겼다. 그 결정에 다들 의아해했지만 영주의 명이고 그 전 행정관이었던 우터가 그 자리를 내려놓음으로써 별 잡음 없이 인계가 되었다. 대신 신임 시종장은 칼슨이 직접 그 적임자를 찾아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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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에드윈 린드버그
나이 : 29세
클래스 : 관리자
힘 5 민첩성 4 지능 12 체력 11 정신력 9 통솔력 14
충성도 94/100
스킬
치어 업!(고급)
드레이크 영지의 시종장.
최근 칼슨에 의해 새로운 시종장이 되었다. 사리 분별이 뛰어나며 평소에 공정하고 바른 판단을 잘하기로 알려졌다.
시종장으로 능력은 뛰어나니 그를 이 자리에 앉힌 것은 현명한 처사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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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어 업!(고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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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의욕이 올라 그 효율이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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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원래 피요르 남작가의 사람이었으나 영지 인계 중 칼슨이 발견한 인재였다. 그전까지 피요르 남작가의 재무관이었던 세드릭의 밑에서 서기를 보고 있었으나 남작이 영지전에 패배한 이후 칼슨의 눈에 들어 이 자리에 앉게 되었다.
“알겠네. 그럼 그 일은 안건을 낸 신임 행정관에게 맡기겠네. 그대가 적당한 후보자들을 알아보게.”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행정 능력이 뛰어난 그라면 괜찮은 인재들을 잘 추려낼 것이다. 어차피 자신이 스킬을 써서 능력을 보면 더 확실할 테니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전임 행정관이었던 하인츠 경의 보직에 대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가?”
“…….”
칼슨의 의견에 다들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석인 재무관 외에 마땅한 보직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재무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고 말이다.
“왜 아무도 말이 없는가? 설마 다들 그를 견제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영주님. 그는 이번 영지전의 영웅이 아닙니까? 그럴 리가 없지요.”
“저, 현재 공석인 재무관 자리에 그를 앉히는 것은 어떠한지요?”
이번 영지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가 바로 그였다. 그런데 아직 그 공로에 맞는 보상은커녕 이전에 있던 보직마저 해임하였으니 이는 형편에 맞지 않았다. 당연히 그에게 합당한 보상과 함께 적당한 직위를 내려줘야 함이 옳을 것이다. 그러기에 현재 공석인 재무관의 자리를 레인이 추천하였다.
“그건 안 돼.”
“예…….”
단호한 칼슨의 거부에 레인은 이유조차 물어보지 않고 곧바로 수긍하였다. 다시 원점이 된 안건. 다들 아무 말이 없자 칼슨은 조용히 입을 열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였다.
“다들 마땅한 의견이 없나 보군. 그럼 이건 어떤가? 그에게 새로운 보직을 만들어 주는 것이?”
“영주님, 새로운 보직이라고 하셨습니까?”
“그게 도대체 무엇 말씀입니까, 영주님?”
새로운 보직을 언급하자 다들 동요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있는 직책들은 오랜 기간 잘 맞춰져 있었던 것들이다. 이 가운데 새로운 직책이 만들어진다면 그 균형을 해칠 우려가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칼슨은 부드러운 어조로 그들을 다독이듯 이야기하였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말게. 그가 맡을 일은 그대들과 거의 무관한 일이 될 테니.”
“예…….”
지배력 때문인지 그대로 순응해버리는 가신들. 그저 주군의 말에 따를 뿐이었다. 다시 조용해지며 칼슨의 말을 경청하는 분위기가 되자 칼슨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그에게 ‘순찰대장’이라는 직책을 주려 하네.”
“네? 그게 대체 무슨 직책입니까?”
새로운 보직을 언급하자 모두 그거에 궁금해하며 관심을 가졌다. 그 이름을 보면 순찰 업무가 주 일인 것 같은데 현재 그 비슷한 일을 하는 직책이 없나 생각해보았다.
“순찰대이면 혹여 경비대의 일이랑 겹치지 않겠습니까?”
경비대장인 루퍼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경비대나 순찰대나 그 일이 치안에 관련된 것들이니 말이다.
“아니 경비대와 일이 겹치지는 않을 것이다. 경비대의 주 업무는 성내의 치안이고 순찰대의 임무는 외부의 치안 및 감찰이 될 것이다.”
“외부라면? 설마 성을 제외한 영지 내 모든 지역의 치안을 담당한다는 말씀입니까?”
“그 말이 맞다. 경비대장.”
“영주님, 그건 너무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합니다. 현재 우리 영지의 재원으로는 그것을 감당하기 벅찰 것입니다.”
루퍼트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현재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드레이크와 피요르 영지에 등록된 마을은 총 124개로 각 마을에 10명씩만 담당해도 그 수가 무려 1,240명이다. 게다가 그들에게 지급할 급료 말고도 무장시킬 장구류와 갑옷, 무기까지 만들어야 하는데 그 정도를 마련하려면 최소 백작 이상의 영지를 소유해야만 유지가 될 것이다. 아무리 드레이크 영지와 재원이 풍부한 피요르 남작의 영지를 합친다 하더라도 백작 이상의 대영주급 영지에는 비빌 바가 되지 못하였다.
백작과 자작은 그 순위가 불과 한 단계의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실제 그 영향력 및 체급은 하늘과 땅 차이. 허나 칼슨 또한 그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게. 그대가 우려한 대로 재원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야.”
“예에? 어떻게 그런……?”
영주의 단언에 조금 의구심을 품은 루퍼트. 자신의 계산으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왔기에 그로서는 당연한 처사였다. 그런 그를 보며 칼슨은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어차피 각 마을에는 자경단이 있을 거야? 안 그런가?”
“예, 그렇습니다만.”
자경단이라 해봐야 마을 청년들이 모여서 만든 모임에 불과. 잘해봐야 징집병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에 비해 영지의 병사들은 늘 전문적인 훈련을 거쳤으며 조직력 또한 비할 바가 아니니 자경단을 그에 견주기엔 한참 모자랐다.
거기다 무장 또한 그저 그런 수준에 불과하니 만약 규모가 좀 있는 몬스터들이나 도적들이 침입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들을 활용할 것이다.”
“예? 저 영주님 솔직히 그들은 고작 자기 마을 내 무뢰배들에게나 통할 뿐이지, 외부의 침입에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경단? 물론 없는 것보다 좋다. 그들로 인해 마을 내 치안은 어느 정도 잡히니까 말이다.
허나 그걸 가지고 마을의 안녕을 책임질 수 있을까? 지금도 수많은 마을들이 피해를 보고 있지만 손을 놓은 채 방관하고 있지 않은가.
“순찰대의 역할은 그들을 훈련 및 통제하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이다. 이를테면 각 마을에 파견하는 훈련 교관이라고 볼 수 있지.”
“예? 그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발상에 루퍼트는 순간 그것을 부정하려 하였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썩 괜찮은 방안이었다.
물론 정규 병사들이 파견되는 것만은 못하지만 효율 면에서는 이보다 괜찮을 수가 없었다. 다만 우려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런 일을 무탈하게 수행해 내려면 꽤나 훌륭한 인재를 모집해야 할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순찰대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일단 머리가 좋아야 한다. 거기다 체력과 정신력 또한 좋아야 하며 육체적인 능력 또한 평균 이상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충성심.
다른 것들은 다 제쳐두고라도 충성심이 부족하다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였다. 그런데 이런 인물을 도대체 어떻게 구할 것인가.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백 명이 넘어가는 인원을 말이다. 그러나 칼슨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걱정할 필요 없다.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할 테니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호언장담하는 영주의 모습에 루퍼트는 반신반의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주군이 하는 일이 잘못될 리 없다 생각.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다만 그 인원을 일일이 뽑아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
물론 초반에 적당한 후보군들을 모집하고 추스르는 일은 레인에게 맡기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미안하긴 하네.’
그렇게 자신과 상관도 없는 업무가 더욱더 늘어만 가는 레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