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피요르 남작가와의 영지전(7)
“뭐! 독이라고?”
칼슨의 대답에 그는 두 눈을 크게 뜨며 경악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보며 제법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칼슨.
볼튼이 막 위기에 빠지며 칼슨이 와튼을 기습하려 했을 무렵이었다.
다그락
‘응?’
딱딱한 뭔가가 품에서 부딪히는 게 느껴졌다.
‘아, 프람벨.’
전에 루퍼트가 미네르의 하녀를 잡을 때 증거품이라고 자신에게 넘긴 게 있었는데 혹시 몰라 전투에 가져왔었다. 약병을 열어 검에 프람벨을 발랐다. 냄새는 없지만 코를 찌르는 따가운 연기. 그 독한 기운을 보니 약효는 충분해 보였다.
‘이왕 기습하는 거 확실한 게 좋으니까.’
비록 상처는 얕았지만 만반의 준비를 했던 것이 다행히 먹혀들어 갔다.
“이, 비겁한 놈이……!”
“뭐래, 곧 죽을 놈이!”
이미 독이 전신에 퍼져 피부가 파래져가는 녀석.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죽을 것 같았지만 퀘스트가 걸려있으니 아무래도 직접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꿀꺽.
처음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끊는다고 생각하자 절로 긴장이 되었다. 그렇게 잠시 망설이는 그 순간 죽어가던 와튼의 눈이 빛났다.
“으아악, 죽어라!”
“씨발!”
이 새끼가 일부러 죽은 척을 하며 기회를 노렸던 것 같다.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러 방어하였지만 놈은 상급의 기사. 오러가 실린 검이 사정없이 자신을 두드렸다.
치이이익 칙! 탕 탕 탕!
“커허억!”
마치 불에 지진 듯한 통증. 허나 아파하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놈은 악귀와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죽이려 들었으니까.
“이런 빌어먹을!”
어리석었다. 비록 한순간이었지만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망설임이라니. 칼슨은 이를 악물며 필사적으로 놈의 검을 막았다.
챙 챙 챙!
바람같이 빠른 검격. 도대체 어떻게 막았는지도 모르겠다. 허나 오러가 실려 있는 그 공격에 자신의 검이 점점 부서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쿨럭, 주, 죽어라!”
“으아아아악!”
피를 토하며 사생결단을 내고 있는 와튼. 그 상태가 매우 위중해 보였지만 놈은 자신을 죽이려는 의지로 충만해 있었다.
“이 좀비 같은 놈이!”
부웅─ 깡!
살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며 검을 내리쳤다. 마침 그 공격이 먹혔는지 상대의 움직임이 잠시 주춤거렸다. 그동안 능력치를 올려놨기에 꽤나 괜찮은 위력을 보일 수 있었나 보다.
“그만 뒈져! 이 새끼야!”
찰진 욕과 함께 다시 한번 내리친 칼슨의 일격. 허나 그것은 곧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쨍그랑!
그동안 파손돼 있던 검이 상대의 검과 부딪히며 부서진 것. 그나마 잡았던 승기가 순식간에 역전이 되어버렸다.
“이런 씨발!”
휘익─ 팅!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화도 안 난다. 냅다 부서진 칼자루를 던져버리고 몸을 피하려 했지만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을 향해 위협적인 공격을 가하려 하였다. 그때였다.
푸욱!
“커허억!”
“……응?”
놈의 검이 자신에게 다가오기 직전 그 움직임이 멈추었다. 고개를 들어 놈을 바라보았다. 피를 입에 머금으며 쏟고 있는 것이 완전 죽기 일보 직전.
다시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놈의 가슴 쪽. 그곳에 웬 검이 갑옷을 찢고 관통해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영주님!”
“그리엄 경!”
자신이 놈을 상대하는 동안 볼튼이 몸을 회복해 놈에게 일격을 먹였다. 허나 그도 상태가 좋지 않은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쿨럭, 부, 분……하다.”
눈에 빛을 잃은 와튼. 더 이상 힘이 남아있지 않은지 목소리조차 떨리고 있었다. 다만 상대를 죽이지 못한 원통함으로 아직까지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
“후우…….”
푸욱-
땅에 떨어진 놈의 검을 주워 목 깊숙이 찔러 넣었다. 검이 들어갈 때 살을 헤집는 그 느낌은 역겨웠지만 이를 악물며 구겨 넣었다.
꿀럭 꿀럭.
검을 끝까지 밀어 넣자 마침내 힘이 다한 듯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지는 와튼. 그제야 놈이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괜찮은가, 그리엄 경?”
“크으……네, 전 괜찮습니다. 영주님, 영주님은 괜찮으십니까?”
본인의 안위보다 자신의 안부부터 묻는 볼튼. 그 충성스런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칼슨 또한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흐읍! 아파 죽겠는데, 경을 보니 엄살도 못 부리겠어.”
“예? 하하하하! 괜찮으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그래, 죽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팔팔하다네.”
“네, 그래 보이십니다. 하하하.”
힘겨운 승리에 둘은 웃음을 지었다. 허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비록 적의 대장을 쓰러뜨렸지만 적의 수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다시 전투에 임하기 위해 몸을 추스르던 그때.
[기사 와튼을 처치하였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오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러의 수치는 지배력과 연동됩니다.]
[스킬 ‘비전 검술-그림자(희귀/성장)’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개의 메시지가 눈앞에 뜨며 퀘스트가 성공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 드디어…….’
이제 기사와 같은 오러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상급 기사들이나 쓰는 비전 검술 또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이제 나약한 칼슨 드레이크는 안녕이었다.
“그린언 경, 적의 수장이 무너진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요. 어서 아군을 도와 적의 기사들을 없애버리시오.”
“예, 영주님.”
대답과 함께 볼튼은 몸을 틀어 기사들을 도우러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칼슨 또한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하였다.
“피요르군의 대장은 죽었다! 드레이크의 병사들아 어서 적의 잔당들을 처리하도록 해라!”
쩌렁쩌렁하게 전장에 퍼지는 울림. 그 소리에 모두들 전투를 멈추고 그곳을 보기 시작하였다.
[지배력의 영향으로 적의 사기가 대폭 감소합니다.]
[지배력의 영향으로 아군의 사기가 대폭 증가합니다.]
“허억! 지, 진짜 그렇잖아!”
“델리안 경이 죽다니, 말도 안 돼!”
순식간에 낯빛이 어두워진 피요르의 병사들. 그에 반해 드레이크 군의 얼굴은 활기가 넘쳐흐르기 시작하였다.
“영주님이 적의 대장을 처치하셨다!”
“피요르 놈들을 없애버리자!”
‘그래, 바로 이거지!’
전황이 바뀌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단번에 솟구치는 병사들의 사기를 보니 역시 지배력은 사기 능력치였다. 거기에 이번에 얻게 된 오러와 비전 검술까지. 더 이상 몸을 사릴 필요가 없게 된 칼슨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 친히 놈들에게 드레이크를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보여주겠노라!”
그 외침과 함께 칼슨은 쏜살같이 적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튀어 나갔다. 그런데 막상 전투에 임하려고 하니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그런데 오러를 어떻게 쓰지?’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기에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하자 기묘한 감각이 전신에 깃들며 에너지가 흘러넘치기 시작하였다. 칼슨은 본능적으로 그 힘이 오러라는 것을 깨닫고 정신을 집중해 검에 모아보았다.
치이익!
‘오, 이 영롱한 빛!’
자신의 머리 색과 같은 백금의 빛. 그 환한 색은 마치 성스럽기까지 하였다.
“이야아아아압!”
호기롭게 기합 소리를 내며 오러가 든 검을 휘둘렀다.
서걱─
“으어어억!”
새하얀 실선이 그어지며 마치 두부가 잘린 듯이 그대로 이등분되는 병사들. 말 그대로 미친 절단력. 그 가공할 위력에 칼슨은 전율을 느꼈다.
‘이거 정말 끝내 주잖아?’
칼슨이 감탄을 하고 있는 사이 그 모습을 본 피요르의 병사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었다.
“허억! 어떻게 저런!”
“으아아아악! 괴, 괴물이다!”
이미 전의가 바닥난 듯 뒷걸음치는 그들. 이내 바닥에 무기를 던져버리며 물러나기 시작하였다. 하나둘 그렇게 도망치더니 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었고 곧 전열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적들이 도망치기 시작한다! 절대 놈들을 그냥 두지 마라! 우리 땅을 침범한 놈들에게 사정을 봐주지 마라!”
“와아아아아!”
다시 한번 울리는 칼슨의 호령. 이에 사기가 잔뜩 오른 드레이크 군은 도망치는 피요르 병사들을 무참히 도륙하기 시작하였다.
푹! 푸욱! 써걱! 차아악!
“아아악!”
“크어어헉!”
“제, 제발 살려줘!!”
저항조차 못 하며 그대로 시체가 되어버리는 적병들. 참혹한 장면이었지만 이것은 전쟁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게 되는 그런 전쟁 말이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칼슨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 * *
“크윽! 와튼, 이런 멍청한 놈이!”
실력도 좋고 가문끼리 친분도 있기에 믿고 병사들을 맡겼었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문제를 일으키며 패배를 자초했을 줄이야. 평소 놈이 오만하고 고집이 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상황 판단도 못하는 덜떨어진 녀석일 줄은 몰랐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페론은 인상을 쓰며 말하였다.
“하아, 그럼 남은 병력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
“네, 그렇게 도망친 이후 살아남은 병사들을 모아보니 대략 50여 명쯤 되었습니다.
“허어…. 50이라…….”
현재 자신이 긁어모아 온 병력이 50. 여기 있는 인원까지 모두 합친다고 하여도 100여 명에 불과하였다. 물론 그 정도 병력으로 전투를 못 치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는 엄연히 적진. 소중한 병력을 가지고 그런 위험한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혹시 전령을 보낼 수 있는가?”
“그게, 후퇴하는 도중 챙길 여력이 없어서…….”
“흐음…….”
전령을 보내는 새들이 없으면 영지에 이 상황을 알릴 수 없었다. 마음에 조금 걸렸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서 떠날 채비를 해라. 모두 영지로 퇴각하도록 한다.”
“예, 알겠습니다.”
돌아간다는 말에 조금 화색이 도는 병사. 얼른 다른 병사들에게 말을 전하였다. 퇴각 소식에 풀이 죽어있던 진영에 소란스런 기운이 돌았다. 그 모습을 본 페론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 난감한 상황을 영주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깊게 고민하였다.
* * *
그 시각 피요르 영지의 바이런 성.
“왜 도대체 아무 소식이 없는 거냐?”
“그게 저……. 잘 모르겠습니다, 영주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으이구, 어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심기가 불편해진 그는 인상을 쓴 채 눈을 감았다.
성의 방어 병력까지 끌고 갔던 페론의 행방조차 묘연하다. 아마 자신의 다그침에 조급함을 느껴 몸소 전장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승전 소식이 전해져야 하는데…….’
아니 그것은 둘째치고 아무런 소식이 없다. 졌든 이기든 뭔가 알아야 대비라도 할 텐데, 현재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니 계속 이렇게 전전긍긍할 수밖에.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면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패배를 인정하고 화친을 해야 하는 것인가?’
영지전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던 선택. 그러나 지금 그의 촉이 위험하다 경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말이 안 되잖아.’
생각해보니 고작 반도 안 되는 병력으로 자신들을 이긴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이겼는데 자신이 미리 포기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것만큼 어리석은 선택이 없었다.
‘그럼, 그동안 들인 돈이 얼마인데…….’
곧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던 드레이크 영지. 그게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그래, 기다리다 보면 좋은 소식이 오겠지.’
탐욕이 그의 판단을 흐리게 하였다. 그때였다.
“영주님, 큰일 났습니다!”
“뭐, 큰일?”
경비병의 다급한 목소리에 피요르 남작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러느냐?”
“저, 적들이 쳐들어왔습니다!”
“뭐!!”
믿을 수 없는 소식. 청천벽력 같은 그 소리에 피요르 남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