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피요르 남작가와의 영지전(6)
“응? 이건 도대체 뭐지?”
낯선 울림에 잠시 동작을 멈춘 와튼. 꽤나 거슬렸는지 눈썹을 치켜세우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을 보니 저 멀리에서 대치하고 있던 드레이크의 병력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 놈들이 왔군. 드레이크 놈들이 왔다. 모두 전투준비를 해라!”
어차피 그래봐야 놈들의 숫자는 100여 명이 좀 넘는 수준. 아군의 반절밖에 되지 않는 터라 딱히 위협이 되어 보이진 않았다. 아니 도망가지 않고 이리로 달려와 주니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럼 본격적인 전투 전에 그 건방진 용병 놈부터 처리해야……. 응?”
방금 전까지 톨먼이 있었던 곳을 보니 아무도 없다. 그 사이 몸을 회복해서 도망쳤던 것. 미쳐 끝을 못내 혀를 차는 와튼이었다.
‘쩝, 마무리를 못해 찝찝하긴 하지만 어차피 상처가 심해 얼마 버티지 못할 게야.’
이미 놓쳐버린 자는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당장 눈앞의 적을 상대해야 할 때. 그런 사소한 일에 계속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일단 저 망할 드레이크 군부터 쓸어 버려야겠지.”
미련을 접은 그는 이제 곧 벌어질 전투를 치르기 위해 말에 올랐다.
* * *
우르르르르.
군마를 탄 기사와 30여 명의 기마병이 앞장서며 그 뒤로 백여 명의 병사들이 적진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최선두에는 기사단장인 볼튼이 있었으며 영주인 칼슨 또한 그 옆에서 같이 말을 타고 있었다.
“쳇, 의외로 용병들이 쉽게 무너지고 말았어.”
“아무래도 용병들은 정규 병사보다 무장이나 실력이 떨어집니다. 거기다 우리 군이랑 전투를 해서 상태가 별로이지 않았습니까? 그나마 조금이라도 병력을 줄여주었으니 다행입니다.”
“그건 그렇지. 거기에 용병들도 모두 도망가 버렸고 말이야.”
아쉬운 소리를 하였지만 볼튼의 말이 맞다. 그나마 지금이 막 전투를 치르느라 대열이 갖춰지지 않는 상태. 놈들에게 큰 타격을 가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렇게 진군하던 드레이크의 병력은 어느덧 상대 진영까지 다가왔다.
“모두 중앙을 가로질러라! 놈들이 진열을 정비할 엄두를 못 내게 만들어라!”
칼슨의 명령에 기사들과 기마병들이 피요르 남작군의 중심부를 파고들었다. 그곳에 병사들이 많이 몰려있었지만 거침없이 달려드는 기마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퍽! 퍽! 쿵!
“크어어억!”
“아아아악!”
전갑으로 무장한 군마에 의해 박살 나버리는 병사들. 파도와 같은 그 기세에 피요르 군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적들의 진영은 무너졌다! 감히 드레이크를 건드린단 것이 어떤지 보여주어라!”
“우와와와와!”
[지배력의 영향으로 아군의 사기가 증가합니다.]
이어서 내려온 칼슨의 지휘. 기마병을 뒤따라오던 병사들이 당황하는 피요르 군을 덮쳤다.
푹! 푹! 푹!
“쿨럭! 커헉…….”
“아아악! 배, 배에 구멍이…….”
피가 난무하고 여기저기 죽어 나가는 모습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잔혹할 수 있었지만 이건 누군가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전쟁.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드레이크 군이 피요르의 병사를 학살하고 있는 중 어디선가 성난 외침이 들렸다.
“당황하지 마라! 놈들의 숫자는 우리보다 훨씬 적다. 전열을 가다듬고 맞서 싸워라!”
톨먼과의 싸움을 끝낸 와튼이 병사들을 지휘하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에 따라 기사들 또한 병사들을 독려하며 적들에 대항하였다. 그러자 거세었던 드레이크 군의 공격이 점차 잦아들었다.
챙! 챙! 푹! 서걱! 챙!
“죽어라! 이 비겁한 놈들아!”
“허억! 이놈들이 어딜!”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피요르 군이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을 찾아 적들을 향해 맞서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숫자가 적은 드레이크 군이 점차 밀리며 전세가 역전되어갔다.
‘젠장, 이대로 가다간 우리가 불리해진다.’
처음에 공격한 위세가 사라지자 병사들은 물론 선두의 기병들도 동요하기 시작한다. 이 흐름이 계속되면 아군은 틀림없이 위험한 상황에 놓일 것이다. 이 흐름을 끊으려면 결국 적 지휘관을 없애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언 경, 기병들을 이끌고 저쪽을 향해 가시오. 저곳에 적의 지휘관이 있소.”
“알겠습니다, 영주님! 자 기병들은 나를 따르라!”
“예!”
두두두두두.
볼튼을 따라 방향을 튼 드레이크의 기마병들은 와튼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하였다.
퍽! 퍽! 퍽!
기마의 위력에 다시금 상대 병사들이 터져나가며 뭉개졌다. 그러나 그곳은 와튼을 비롯한 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 그들의 거침없는 질주는 곧 멈출 수밖에 없었다.
쾅!
히이이잉~
“크으으윽!”
그들은 일반 병사와는 달랐다. 기마병들의 돌진을 단 한 번의 충돌로 막은 것이다.
다만 갑주까지 입은 말의 무게는 무거웠으며 그 충돌은 서로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기 충분하였다. 그렇게 뒤엉킨 군마들 속에서 기사들은 말들이 쓰러지기 직전 뛰어내리며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일반 기마병은 그대로 군마들 속에 휩쓸리며 말에 깔려 죽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볼튼은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그들을 동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눈앞에 영주가 말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레이크 가의 기사단장 볼튼이다! 감히 이 땅을 넘본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훗, 이제야 제대로 된 상대가 왔군. 그래 어디 그 말처럼 실력도 대단한지 한번 보자.”
“이런 건방진 놈!”
쾅 치지지직!
상급 기사인 둘의 오러가 부딪치자 그 풍압에 주변인들은 눈을 뜨지 못하였다. 그리고 연이어 이어진 검술의 향연.
챙! 파앗! 치이잉! 챙! 파바박! 챙!
푸른색과 녹색의 오러가 선을 만들고 터지며 한 폭의 그림을 수놓았다.
“과연 드레이크의 기사단장! 그 명성이 헛되지 않았군!”
“피요르의 기사들은 늘 그렇게 말이 많은가?”
“뭐? 이 망할 놈의 늙은이가!”
자신을 무시하자 와튼은 순간 발끈하며 욕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이어 들어온 볼튼의 검격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쉬이익 챙! 챙! 챙!
“크윽!”
송곳처럼 내리찍는 일격에 하마터면 손에 든 검을 놓칠 뻔하였다. 그 속도도 빨랐지만 무엇보다 위험했던 건 손끝까지 전해지는 오러의 침투력. 만약 검이 아닌 갑옷이나 몸에 맞았다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될 뻔하였다.
‘이게 놈의 비전 검술인가 보군!’
상대의 매서운 공격에 이를 꽉 물었다. 그리고 자신도 곧장 반격하기 위해 비전 검술을 선보였다.
“흡!”
눈에 힘을 주며 집중하자 그의 오러가 얇게 퍼지며 온몸을 에워싸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치 바람처럼 흐르며 그를 매우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이, 이건 도대체!!”
순식간에 기세가 바뀌자 볼튼은 적지 않게 당황하였다. 마치 바람과 같은 움직임. 분명 베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크게 놀랐다. 분명 비전 검술이 분명한데 그게 뭔지 파악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 상대는 어느덧 자신을 스쳐 지나갔다.
끼이이익───!
“읍!”
쇠를 긁는 듯한 소리와 함께 왼쪽 완갑 부분이 사정없이 우그러졌다. 비록 자상을 입진 않았지만 팔에 적잖은 충격이 스며들며 그만 힘이 빠져버렸다. 다시 자세를 바로잡으려 정신을 집중했지만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와튼이 아니었다.
“운이 좋군, 늙은이! 그럼 이번에도 한 번 받아봐라!”
“이런 망할!”
연이어 들어가는 와튼의 검격. 볼튼은 간신히 오른손에 힘을 모아 검을 쥐고 막아보았지만 녹빛의 오러는 매몰차게 그의 전신을 할퀴어버렸다.
차아아아악!
“커어억!”
갑옷 덕분에 간신히 치명상은 면할 수 있었지만 전신에 가해진 오러의 충격에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빈사 상태에 빠진 볼튼. 그런 그를 마저 끝내기 위해 와튼이 재차 검을 휘두르려던 찰나였다.
푹!
“윽!”
예상치 못한 통증이 겨드랑이 뒤쪽에서 느껴졌다. 비릿한 혈향과 더불어 차디찬 감촉. 와튼은 누군가 뒤에서 찔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 누구냐? 이 비겁한 놈이!”
“비겁? 이 새끼야, 전쟁통에 정당하고 비겁한 게 어디 있냐? 죽으면 말짱 끝인데.”
꽤나 젊은 목소리. 고개를 돌려 그 곳을 보니 제법 화려한 갑옷을 입은 이가 보였다. 갑옷을 보아하니 대략 그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칼슨 드레이크?”
“그래, 이 자식아!”
“크, 어리석은 놈 같으니! 겁도 없이 이곳까지 왔구나!”
이것은 영지전이다. 영주가 잡히면 그대로 끝나는 상황에 제 발로 이렇게 다가와 주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칼에서 피가 묻어나오긴 했지만 빗맞아서인지 치명상은 피했다.
‘쳇, 괜히 왔나……?’
놈을 단숨에 제압하지 못한 칼슨은 혀를 찼다. 원래부터 놈을 상대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어느 영주가 위험한 곳을 자처해서 가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볼튼이 놈에게 간 후 조금 있다 생긴 퀘스트 때문이었다.
띠링-
[서브 퀘스트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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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터 무너뜨려라.
현재 피요르군을 이끌고 있는 기사 와튼을 처치하시오.
퀘스트 성공 시 보상
1. 오러 생성(지배력 수치에 연동)
2. 비전 검술 획득(랜덤)
퀘스트 실패 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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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또 사망이냐?’
뭔 놈의 퀘스트들이 실패하면 죄다 죽는다고 한다. 강제 조항이 없기에 패스할까도 생각했는데 그러기엔 보상이 너무 좋다.
‘오러에 비전 검술이라?’
말 그대로 기사가 된다는 말이다. 그것도 상급 기사들이나 쓰는 비전 검술까지.
‘랜덤이라는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해도 이건 엄청난 이득이다. 영주 클래스를 유지하면서도 기사의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 듀얼 클래스라고 해야 하나? 게다가 오러는 지배력이랑 연동이 된다 하니 지배력만 올린다면 자연히 오러가 증가할 것이 아닌가?
‘그래, 어차피 볼튼도 갔고 거기에 내가 거들면 어떻게든 되겠지.’
“이랴!”
그리 생각하고 곧장 볼튼이 갔던 곳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말을 타고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있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아주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이잉? 여기 왜 이렇게 된 거야?”
말들끼리 뒤엉켜서 쓰러져 있고 기마병들도 대다수 거기에 깔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도저히 말을 타고 지나갈 형편이 안 되어 말에서 내렸다.
주변을 보니 기사들이 주변의 적들과 싸우고 있었는데 적들 또한 기사였는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중앙에는 볼튼이 한 기사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저놈이 와튼인가 보군.’
볼튼이랑 호각으로 싸우는 것을 보니 그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수세에 몰린 그가 순식간에 요상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볼튼 경이 쓰러졌다. 만약 볼튼이 죽는다면 저놈을 처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젠장 할!’
서둘러 놈에게 다가가 최대한 무장이 비어 보이는 겨드랑이 쪽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자신은 오러가 없기에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빗맞으며 처치에 실패한 것이다.
“겁도 없이 여기까지 온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젠장! 이거 괜히 왔어!”
서둘러 방어 자세를 취한 칼슨에게 오러가 담긴 와튼의 검이 다가오기 직전.
“쿨럭! 크흑?”
갑자기 와튼이 피를 토하며 주저앉고 말았다.
“휴우~ 다행이야. 약발이 그래도 빠르긴 하네.”
“커헉! 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냐!!”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몸에 힘이 빠지며 거동이 힘들었다. 자신의 이런 상태가 이해가 가지 않던 와튼은 상대에게 물었다. 그에 칼슨은 씨익 웃으며 그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독이다,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