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피요르 남작가와의 영지전(4)
“크흑! 이건 도대체……!!”
화살을 피하지 못하였나? 아니 분명 화살은 피했었다. 그렇다면 이건 분명 다른 화살이라는 것.
‘설마 시간 간격을 두고 연달아 쏜 것인가?’
처음 쏜 화살과는 달리 두 번째 화살은 기척을 느끼기도 전에 눈에 박혔다. 그만큼 그 속도가 비교도 안 되게 빨랐다는 말. 즉 A급인 자신의 감각을 속이기 위해 순간적으로 그런 방법을 썼다는 것이었다.
비틀.
쓰러진 기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검을 들었지만 눈에 꽂히게 되며 중심을 잃었다. 다행히 본능적으로 신체에 오러를 둘러 머리 안쪽까지 파고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충격마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쿵!
‘젠장 할, 이럴 때 하필!’
뇌에 충격이 전해지며 몸을 가눌 수 없자 그대로 주저앉아버린 톨먼. 지금 상태에 다시 놈이 공격해온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체이칸 네 원수는 꼭 갚아주고 싶었는데…….’
원수를 코앞에 두고도 복수를 할 수 없게 되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렇게 자신의 최후를 기다리던 순간.
“대장! 정신 차리쇼! 베이커가 갑니다!”
“대장을 구하라! 이 자르탄이 앞장선다!”
후방에 있던 B급 용병들은 자신들이 이끌던 용병들을 데리고 톨먼을 구하러 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우터는 잠시 활시위를 멈추었다.
‘흠, 아무래도 패트릭 경부터 구해야 할 것 같군.’
우터는 적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를 마저 처리하려 했지만 그랬다간 후방의 적들 때문에 폴이 위험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부상을 입은 상태라 이대로 두다간 꼼짝없이 당할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병사 몇에게 그를 구하라 명하고 그는 도와주러 오는 적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 견제 사격을 시작하였다.
비록 일반적인 사거리보다 멀리 있던 적들이지만 그에게는 충분한 거리. 신속하게 화살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푹! 푹!
“커허억!”
“어, 어디서 화살이? 모두 방패를 들어라!”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깜짝 놀란 그들은 즉각 방어를 하며 주춤거렸다. 허나 그건 일반적인 용병들 이야기. B급 용병들은 대장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놈들은 또 뭐야?’
움직임으로 보아 분명 기사급 용병들이 틀림이 없다. 그들이 다가오는 속도를 보면 순식간에 폴이 있는 곳까지 다가올 것 같았다. 그리 생각한 우터는 뒤에 있는 무리들은 일단 제쳐두고 앞으로 다가온 B급 용병들부터 처리하기로 하였다.
휙─!
퍽!!
“아아악!”
“자르탄? 뭐, 뭐야?”
방어를 도외시한 채 다가오고 있었다고 하였지만 B급 용병이던 동료를 단숨에 쓰러트린 화살. 같이 오던 다른 B급 용병들은 화들짝 놀라며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에 반해 우터는 얼음같이 차가운 표정으로 계속 활시위를 당겼다.
퍽! 퍽! 퍽!
“커어헉!”
“악!”
“으윽!”
쏘는 족족 쓰러지는 B급 용병들. 대부분 치명상을 입었고 그 중 몇몇은 급소에 맞고 절명한 이도 있었다. 그렇게 절반이 넘게 쓰러지자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나무 뒤로 숨어 몸을 숨겼다. 대장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였지만 일단 이대로 달려들다가는 전멸을 면치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다가오는 이가 없자 우터는 호흡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병사들이 폴을 안전한 곳까지 무사하게 옮겨간 것 같았다. 안심한 그는 다시 놈들의 대장을 마무리하기 위해 활시위를 당겼다. 하지만.
휘익─
팅!
“이 자식……!”
어느새 몸을 회복한 톨먼이 그의 화살을 쳐냈던 것. 자신이 잠시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 그를 구하기 위해 부하들이 죽어간 걸 안 그는 지금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이거 위험한데?’
우터의 화살이 톨먼에게 적중할 수 있었던 건 그가 폴을 상대하느라 이쪽에 신경을 안 쓰고 있었고 거기에 시간 차로 쏜 화살 공격 또한 놈이 예상 못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비록 지금은 눈 하나를 잃었지만 상대는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만전의 상태. 이제 단순한 공격으로는 조금 전과 같은 요행을 바라기 어려웠다.
‘그래도, 시간은 끌어야겠지…….’
뒤편을 보니 병사들이 폴을 데리고 후퇴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A급의 용병. 거기다 그의 부하인 B급 용병들까지 가세하여 그대로 아군에게 들이닥친다면 피해가 만만찮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무사히 이곳을 벗어나기 전까지 놈들의 발목을 잡아놔야 해야만 했다.
결심을 한 듯 입을 굳게 다문 채 통에 들어 있는 화살을 세었다.
‘하나, 둘……. 일곱.’
남은 화살은 모두 일곱. 놈들을 상대하기엔 부족했지만 그래도 최소한 발목을 잡아볼 순 있을 것이다.
“이제 화살이라도 떨어진 것이냐? 이 악마 같은 놈아!”
잠시 공격이 잦아들자 톨먼은 큰소리로 외쳤다. 마치 성난 사자와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에게서 무서운 살기가 뻗쳐 나왔다.
‘크윽, 어지간히도 화났나 보군.’
매서운 살기에 피부가 따가웠지만 그래도 우터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이윽고 매와 같은 눈을 하며 활을 쏘기 시작하였다.
휘익!
팅!
휘이익!
팅!
연달아 쏜 두 발의 화살을 톨먼이 모두 막아내 버렸다. 그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져 가고 있었지만 우터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휘이이익!
송곳 같은 파열음이 퍼져갔다.
팅!
그러나 이 정도쯤 별거 아니라는 듯 검으로 쳐내버리는 톨먼. 허나 화살은 하나가 아니었다.
푹! 푸욱!
“크흠, 이런 개 같은!”
또 당했다. 아까와도 같은 수법. 분명 예상을 하고 있었건만 기척조차 없이 동시에 날아와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 같이 날아온 화살이 두 발. 왼팔에 하나, 오른쪽 허벅지에 하나. 놈과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방금 당한 공격에 속도가 느려졌다. 그리고 다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들.
휙! 휙!
뒹구르르.
알고 피했다기보다는 가만있으면 죽을 것 같다는 촉이 왔기에 순간적으로 몸을 굴렀다.
‘후우……. 이성을 잃어서 멍청한 짓을 할 뻔하였군.’
몸을 피해 커다란 나무 뒤로 몸을 숨기며 호흡을 가다듬자 판단이 돌아왔다. 이 괴물 같은 놈을 없애려 하다 자신이 뒈질 뻔하였다. 복수도 좋지만 자신은 몇백이나 되는 용병단을 이끌고 있었다. 개인적인 감정에 큰 실수를 할 뻔했던 것. 그렇게 생각하며 호흡을 고르고 있을 때.
“크으윽!”
“아아악!”
자신이 피한 화살에 뒤에서 그를 구하러 온 용병 둘이 쓰러졌다.
‘허…이런, 미친……!!’
그것을 본 톨먼은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차고 말았다. 방금 그 화살은 자신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뒤에 부하들을 노린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완전 농락을 당한 느낌이 들었다. 수치심과 분노가 밀려 올라왔지만 그래도 간신히 이성을 부여잡으며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몸을 피하고 있어라! 어차피 이제 적은 한 놈뿐이다. 병력들이 올 때까지 버티면 된다!”
신묘한 솜씨에 곤란을 겪었지만 결국 놈은 이제 혼자다. 숫자로 한 번에 다가간다면 결코 자신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톨먼은 본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 시각 우터는 마지막 사격을 마치고 이곳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후우…… 다행히 생각대로 되었군.’
화살마저 떨어진 상황이라 더 이상 놈을 막을 수단이 없던 터였는데 다행히 놈이 경계하며 몸을 숨겼다. 아마도 후방에 있는 용병무리들과 합류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럼, 나도 이만 이곳을 벗어나야겠군.’
의도한 대로 작전이 먹혀들자 우터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그가 떠난 지 한 참 후 본대와 합류한 톨먼은 그를 찾았지만 이미 그곳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 * *
“뭐? 용병단이 개박살이 났다고?”
“……예, 보고한 바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보나!”
쾅!
피요르 남작 진영.
잔뜩 화가 난 피요르 남작이 분을 토해내듯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 모습에 모두들 움찔거리며 심각한 표정을 하였다.
“아니, 입이 있으면 말들을 해보란 말이야! 어? 어떻게 제대로 붙어보지도 못하고 용병단이 그렇게 돼? 엉!”
“…….”
“도대체 이걸 어찌 생각하시오, 클란 경!!”
“예? 아, 네. 적이 예상외로 강해서…….”
“뭐? 지금 장난해! 네 놈이 추천해서 끌어들인 렌달 용병단에 들인 돈이 얼마인 줄이나 알아? 자그마치 3,000 금화야! 그런데 별 성과도 없이 저리 병신이 되었는데 그딴 변명이 입에서 튀어나와?”
“크흑, 잘못했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영주님!”
남작의 다그침에 그대로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비는 세드릭. 그가 바짝 수그리자 피요르 남작의 분노는 다시 다른 곳을 향하였다.
“그리고 기사단장!”
“네? 예, 영주님!”
“놈들을 잘 파악했다며? 그런데 웬 알지도 못하던 놈 혼자에게 A급, B급 용병들이 손도 못 쓰고 당했는데, 그거에 대해서는 뭐 할 말은 없는가?”
“그, 저도 그거에 대해서는 정말 몰랐습니다.”
“몰랐다? 그게 당장 그 목이 떨어져 나가도 할 수 있는 말인가!!”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남작의 일갈에 페론 또한 세드릭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바짝 조아리며 자비를 구하였다.
“쯧, 쓸모없는 것들……. 그동안 네놈들에게 들어간 돈이 아까워.”
혀를 차며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피요르 남작. 하지만 이런다고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순간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지금이라도 적당히 협의하고 그만둬야 하나?’
예상이 틀어지자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비록 용병단이 크게 당했다고 하지만 아직 자신의 병력이 우세하였다. 수세에 몰린 것도 아닌데 굳이 자신이 자세를 굽혀 손해를 볼 필요는 없었다.
“용병단 말고 우리 측 병력은 지금 어찌하고 있는가?”
“네, 방금 보고 받기로 용병단과 합류하여 욘드레이크 숲을 지나 놈들의 본대와 대치 중이라고 합니다.”
“본대? 확실한가? 설마 지난번처럼 잘못 알고 크게 낭패당할 일은 없겠지?”
“예, 정찰병들이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영주인 칼슨 드레이크 또한 그곳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확실하다. 이제 막 영주가 되어서 겁을 상실하였는지 성에 숨어있지 않고 기어 나왔다. 놈들의 수장인 그가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다. 확실히 놈들의 본진이다. 설사 다른 곳에 병력이 있다 하더라도 영주만 잡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럼 이번에는 분명 놈들의 숨통을 끊을 수 있겠지?”
“네, 문제없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영주님.”
“그래,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이야.”
“예, 명심하겠습니다.”
영주의 말에 답하며 고개를 숙인 페론. 예상과는 다른 결과 때문에 조금 불안했지만 그래도 현재 자신들의 병력이 훨씬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여기서 놈들의 본대만 무너뜨린다면 확실히 승리를 확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여긴 그는 그 생각을 더 확고히 만들기 위해 본인이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혹시 모를 놈들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서 성에 남아있기는 했지만 이제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혹시라도 전장에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의 목이 날아갈 수 있었다. 그 불안감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판단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추후에 이 선택은 그에게 뼈저린 후회를 남길 거라는 것. 그것을 지금 알지 못할 뿐이다.
* * *
이틀 뒤.
휘하의 기사들과 병력들을 데리고 아군과 조우한 페론. 그는 눈앞의 상황을 보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