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피요르 남작가와의 영지전(3)
그가 칼슨에게 임무를 하달받고 이곳에 온 지 이틀째. 지금도 자신이 여기에 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정말이지 나한테 뭘 기대하고 이런 곳에 보내셨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영주의 임무. 그것은 여기를 지나가는 렌달 용병단을 견제하라는 것이었다. 숨어서 화살로 놈들을 공격하고 다가오기도 전에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 쉽게 말해서 치고 빠지라는 것이다.
‘이런 일은 보통 날랜 병사나 숙련된 사냥꾼에게 맡기지 않나?’
자신은 사냥꾼은커녕 일반 병사도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저 영지의 행정을 담당하고 있던 행정관이었을 뿐. 솔직히 그는 자신에게 이런 일을 맡긴 영주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허나 그의 위세에 눌려 어쩔 수 없이 일을 맡게 되었고 결국 여기에 와있다.
그런데 사실 그때의 상황에 당황스러워했던 이는 우터 뿐만이 아니었다.
‘도대체 영주님은 왜 이 자를 이곳 책임자로 임명한 걸까?’
부관으로서 우터를 보좌하기 위해 동행한 기사 폴은 그때 당시 영주의 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까지만 하여도 그는 행정을 담당했던 행정관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하루아침에 부대를 배정하여 전투에 참가시키다니. 상식적으로 봐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처사.
허나 영주의 명이었다. 거기다 지금은 전시상황. 항명은 즉결 처분이었고 기사로서 상당히 불명예스러운 행동이었다. 그 때문에 결국 순응하였지만 그는 이 처사가 상당히 미덥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그는 이곳에 와 우터의 능력을 보게 되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우선 그는 굉장히 기민하였다. 처음엔 목적지까지 잘 따라올 수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하였지만 병사들은 물론이고 기사인 자신보다 더 빨랐다. 흡사 바람의 축복이라도 받은 것마냥 무척이나 재빨랐다.
‘거기다 궁술 또한 그렇게 뛰어날 줄이야…….’
활을 처음 접한다고 하기에 연습을 시켜봤는데 쏘는 족족 표적에 명중하는 놀라운 실력을 선보였다. 더 어이없는 것은 본인이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뭘 그리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거요, 응?”
몇 발자국도 아닌 수백 보 떨어진 표적을 모조리 맞혀버렸다. 그걸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하는 그의 태도. 아니 오히려 그는 이런 걸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저 영주님의 혜안에 감탄스러울 뿐이다.’
사실 칼슨도 우터가 이 정도일 거라 생각하진 않았었다. 그저 민첩성이 워낙 뛰어나니 어지간한 병사보다는 훨씬 나을 거 같았고 무엇보다 행정관으로 썩히는 게 싫었기에 여기서 경험이나 좀 쌓으라고 보낸 이유가 컸다.
폴이 감탄하고 있을 무렵 저 멀리서 사람들이 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 소리를 인지한 우터가 자세를 낮추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드디어 왔군. 자 모두 준비하시오.”
“예.”
그의 명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잡았다.
* * *
“후우, 여기 숲은 참~ 나무가 많습니다. 형님.”
“그래, 이런 시야가 닫힌 곳에서는 늘 무언가가 나타나는 법이지. 그게 몬스터든 혹은 사람이든 간에.”
체이칸의 말을 들은 톨먼이 가늘게 뜬 눈으로 주변 지형을 보며 답하였다.
“흐흐, 형님이 그런 말을 하니 정말 기대가 됩니다. 그럴 때마다 꼭 무슨 일이 벌어졌지 않았습니까?”
“슬슬 몸을 데워둬라. 곧 습격이 올 수도 있을 테니까.”
“네, 형님. 크큭.”
톨먼의 의견에 이를 드러내며 웃는 체이칸. 이제 본격적으로 몸을 풀 수 있다는 생각에 평소 자신의 애병인 전투 도끼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한참 이어나갈 때였다.
피잉- 푹!
“커헉!”
파공성과 함께 선두에 있던 용병의 머리에 화살이 꽂혔다. 옆에 있던 동료가 절명하며 쓰러지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소리쳤다.
“적이다!”
갑작스런 습격에 모두 멈추며 주위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주변은 나무가 울창한 숲. 적이 어디에 있는지 한눈에 알 수는 없었다.
“모두 방패를 들고 방어해라!”
척! 척!
준비를 하고 있던 만큼 즉각 반응을 한 용병단. 톨먼의 외침에 모두 방패를 들며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곧 날아올 화살 세례를 대비하며 단단히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
피잉-
“으아악!”
피잉-
“크흑!”
그저 한발씩 쏘아지는 화살에 용병들이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도대체 뭐지 이건?’
상식적으로 바로 화살 비가 쏟아질 것을 예상하고 대처하였건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조용하였다. 단지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화살 공격만이 이어질 뿐. 그렇다면 분명 상대는 부대가 아닌 개인. 허나 문제는 그가 화살을 날리는 족족 용병들이 죽어 나간다는 것이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화살이 떨어질 때까지 버틴 다음 놈들을 쓸어버릴 계획이었는데 이대로 있다가는 그냥 애꿎은 부하들만 희생될 뿐이었다. 생각을 바꾼 톨먼은 모두에게 소리쳤다.
“모두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달려들어라! 어차피 적은 한 명뿐이다. 날아오는 화살을 겁내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형님! 자 모두 나를 따라라! 우와아아악───!”
“우와아아아악───!!”
톨먼의 명에 체이칸이 대답하며 괴성과 함께 돌진. 그에 따라 나머지 용병들도 그를 따라하며 뛰쳐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휘이익───
파바파바바박!
그들이 이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리는 휘파람 소리. 그와 동시에 밀려오는 검은 그림자들. 분명 나무가 울창하기에 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 숲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늘이 느껴질 정도로 주변이 어두워졌다.
“이런 씨발……!”
순간 욕지거리가 나온 체이칸. 위를 본 그의 눈에는 수십 발의 화살들이 그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모두 당장 멈추고 방패 들어!”
“네? 그게 무슨…. 커헉!”
“으아악!”
푹! 푹! 푹!
체이칸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그들이 인지하기도 전에 내리꽂는 화살 비들. 체이칸마저도 자신을 방어하기 벅찼기에 모두들 속수무책으로 화살 세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개새끼들이!”
상대를 욕하던 체이칸은 손에 든 커다란 전투 도끼를 마치 방패 삼아 앞세우며 전진하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후퇴하는 것은 오히려 피해를 키울 뿐, 차라리 최단 시간 다가가 상대방을 도륙하는 게 이 거지 같은 상황을 벗어날 길인 것이다.
“씨팔! 네놈들은 다 죽었어!”
놈들을 박살 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가간 체이칸. 화살 몇 발이 그의 몸에 꽂혔지만 대부분 갑옷을 뚫지 못하고 경미한 상처만을 주었다. 그렇게 이를 갈며 마침내 적진까지 접근한 그는 이제껏 당한 수모를 갚아주기 위해 있는 힘껏 도끼를 휘둘렀다.
부우웅──────!
콰콰콰쾅───!!
“으아악! 나무가 쓰러진다!”
“사, 살려줘!”
도끼에 맺힌 오러가 주변 나무들을 자르며 주변을 초토화시키자 그곳에 있던 적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을 들은 체이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며 도끼에 오러를 주입. 다시 한번 크게 휘두르려 하였다. 하지만 그때.
쉬이이익───
푹!
그의 팔에 매섭게 꽂힌 화살. 제법 힘이 담겨 있어서인지 한쪽으로 밀리면서 그만 중심을 잃었다. 간신히 다리에 힘을 주어 넘어지진 않았지만 그로 인하여 호흡이 엉키며 몸에 무리가 갔다.
“크윽! 이런 젠장할!”
통증이 심했지만 그는 이를 악물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허나 다시 날아온 화살이 이번엔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재빠르게 막아보려 하였지만 그 속도가어마어마하여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다다르고 말았다.
쉬이익───
팅!
“으윽!”
털썩─
쓰고 있던 철제투구가 화살에 맞아 벗겨지며 땅에 떨어졌다. 다행히 이번엔 무사하였지만 다음에 또 머리에 화살이 날아온다면 위험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체이칸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제길, 놈들 중에 엄청난 궁수가 있었어. 신묘한 솜씨가 마치 신궁 카말란을 보는 것 같구나.’
미레프 왕국의 백작이며 궁술로 이름을 떨치는 루인 카말란. 수백 보나 떨어진 표적도 귀신같이 맞춘다는 그에게 붙은 별명이 바로 신궁이었다. 체이칸 또한 우연히 그 실력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신궁이라는 말이 오히려 부족할 만큼 엄청난 모습을 선보였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궁수가 절로 그때를 떠오르게 하니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쉬이이익───!
푹───!!
“커헉!”
이번에도 거침없이 머리를 노리고 날아온 화살. 인지하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며 간신히 피하였다. 그렇지만 완전히 피하진 못했는지 화살이 그만 어깨 깊숙이 박히고 말았다.
철퍼덕──
순간 팔에 힘이 빠지며 그의 전투 도끼가 땅에 떨어졌다. 어서 무기를 들고 대비를 해야 했지만 생각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게다가 적은 한 명이 아니었다. 그가 머뭇대는 사이 다시 한번 하늘에서 화살 비가 쏟아졌다.
쏴아아아아───
‘아아아…….’
이건 도저히 피할 수 없다. 그때 뒤에서 그가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체이칸─────!!”
톨먼이 위기에 빠진 그를 구하러 달려오고 있었던 것. 허나 다가가기엔 그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아무리 그가 A급의 용병이라지만 수십 보를 단숨에 간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형님, 죄송합니다. 전 여기까진가 봅니다.’
톨먼을 보면서 쓴웃음을 짓고 있는 체이칸. 그의 머리 위로 수십 발의 화살이 쏟아졌다.
푹! 푹! 푹!
“아, 안 돼───!!!!”
한순간에 벌집이 된 그 모습을 보며 톨먼은 괴성을 질렀다. 아무리 용병들이 죽음을 옆에 두고 산다 하지만 체이칸은 그와 10년 이상을 함께한 사이였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형제와 같은 그가 눈앞에서 참혹하게 죽어 나가니 톨먼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미 그 눈에는 번뜩이는 광기가 돌고 있었으며 마치 그 모습은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와도 같았다.
“이놈들, 모조리 씹어 먹어 주마!”
분노에 이성을 잃은 톨먼은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하며 적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그 흉포한 기세에 다들 움츠리며 주저하자 그들을 지휘하던 폴이 굵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겁먹지 마라. 녀석은 혼자다. 어서 활을 쏴라.”
그의 말에 힘입어 정신을 차린 병사들은 거침없이 활시위를 당기기 시작. 다가오는 맹수를 향해 일제히 격발하였다.
휘 휘익 휙 휙!
톨먼에게로 쏘아지는 무수한 화살. 보통 사람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톨먼은 A급 용병. 오러가 넘실거리는 그는 장검으로 모든 화살을 쳐내어 버렸다.
“어떻게 저럴 수가!!”
“히익! 괴, 괴물이다!”
A급 용병의 위용을 본 병사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지 두 눈을 크게 뜬 채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그러는 와중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 톨먼. 어느덧 눈앞에 나타나 그 거대한 몸집에 압도되어버린 병사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하지만 톨먼은 그런 사정을 봐줄 사람이 아니었다.
“죽어라, 이 버러지들아!”
마치 사신의 목소리처럼 소름 끼치는 괴성. 그와 함께 농밀한 오러가 담긴 대검이 그들을 향해 내리쳤다. 그때였다.
쾅! 콰지지직!
“이야아아압!”
“이건 또 뭐냐?”
병사들이 당하기 직전 폴이 그의 검을 막아섰다. 아무리 예상 못했더라고 하더라도 오러가 깃든 자신의 검을 막아섰다는 것은 상대도 오러를 다룰 줄 안다는 것.
“네놈 드레이크 가의 기사로군!”
“크흑, 이 괴물 같은 놈!”
비록 톨먼의 검을 막아서긴 하였지만 폴과 톨먼의 차이는 극명하였다. 눈으로 보이는 오러의 밀도만 하더라도 확연하게 보일 정도였으니까. 예상대로 폴의 기세가 밀리며 순식간에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였다.
“아직 미숙하군. 하지만 저승에 간 체이칸에게 줄 선물로는 충분하겠어. 안타깝지만 이만 죽어라!”
그 말과 동시에 그의 오러가 빛이 나더니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쾅!
“크으윽!”
폭발 때문에 그만 몸이 튕겨 날아가 버린 폴. 충격이 큰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다시 달려들며 검을 내리치는 톨먼. 그의 검이 폴의 목에 닿기 직전 번뜩이는 무언가가 그의 왼쪽 눈을 향해 쏘아졌다.
‘칫! 아까 그 궁수인가?’
기척조차 찾을 수 없었던 적의 궁수. 그가 쏜 화살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지만 A급인 톨먼은 기감으로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을 거라 여긴 그는 가볍게 고개를 틀어 그것을 피하였다. 그런데.
푸욱!
“!!”
피했다고 생각한 화살이 그의 오른쪽 눈을 정확히 파고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