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피요르 남작가와의 영지전(2)
톨먼은 농노 출신이었다.
그의 부모는 영주의 봉토로 소작하는 일을 주 업으로 살았는데 어느 날 벌어진 영지전으로 인해 그의 부친과 형이 강제로 징집되었다. 그리고 영지전이 끝났을 때 그들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영주가 자신의 병사들을 희생시키기 싫어서 징집병을 앞세우며 싸움을 끌었다.
결국 영주는 상대 영주와 화해를 하고 전쟁은 종료하였다. 애초에 별것도 아닌 자존심으로 인해 벌어진 전쟁이었고 그 명분 또한 허울뿐인 귀족의 명예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에 단순히 사과만으로 전쟁이 끝날 수 있었던 것.
“어머니, 도대체 아버지와 형님은 무엇 때문에 죽은 겁니까?”
“크흑, 톨먼. 나도 모르겠구나…….”
일개 농노에 불과하였던 그들은 그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장을 잃은 그의 집안은 결국 그의 어머니 혼자서 꾸려가야만 하였다. 하지만 여자 혼자서는 너무 벅찼다. 게다가 혼자 있는 젊은 미망인은 늘 다른 사내놈들의 표적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어느 날 마을의 소문난 건달이 그의 어머니를 겁탈하려 들었다. 당연히 그녀는 심하게 저항했다. 그렇게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으며 그 와중에 그녀가 밀쳐지며 녹슨 농기구에 꿰뚫리며 죽어갔다.
“어, 어머니!”
“쿨럭, 토…ㄹ…먼 도망…….”
“으아아아악!”
그 모습을 보고 분노한 톨먼. 손에 쥔 몽둥이로 놈의 머리를 내려쳤다. 괴성을 지르며 분이 풀릴 때까지 내리쳤고 결국 놈은 죽어 버렸다. 그렇게 처음 살인을 하였던 그는 그날 밤 어머니를 그대로 땅에 묻고 그곳을 도망쳐버렸던 것.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다 우연히 용병단의 눈에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용병단에 입단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지가 벌써 20년이다.
그런 그에게 이런 상황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그는 체이칸에게 다시 명을 내렸다.
“기마병을 이끌고 저놈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줘라. 어차피 징집병이라 몇 놈 죽이고 나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갈 것이야.”
“네, 형님. 저도 저런 놈들의 피를 제 도끼에 묻히기는 싫습니다.”
말을 마치며 뒤를 따르던 용병들에게 소리치는 체이칸.
“기마병들은 나를 따르라!”
“예!”
우르르르르.
대답과 함께 달려 나가는 체이칸과 용병들. 말을 타고 있어서인지 그 수는 삼십여 명에 불과하였지만 다가오는 기세는 그 몇 배로 느껴졌다.
성난 노도와 같은 기마병들이 드레이크 병력들과 맞붙기 직전 드레이크 쪽의 누군가가 굵은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이다, 땡겨!”
그 말과 함께 바닥에 놓여있던 줄을 힘차게 당기는 병사들. 그러자 땅바닥이 흔들리며 커다란 굉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르 쾅쾅!
“뭐, 뭐냐!!”
줄을 당기자 바닥에 깔아놨던 나무들이 무너지며 그 자리에 넓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앞에 있던 기마병들은 그것을 보고 멈추려 하였지만 관성 때문에 이미 늦어버렸다. 거기에 뒤에 달려오던 말들이랑 같이 엉키는 바람에 그대로 앞으로 뒹굴고 말았다.
“크아아악!”
“커어헉!!”
푹! 푹!
고작 허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 깊이였지만 문제는 그 바닥에 날카롭게 깎인 꼬챙이들이 꽂혀있었다는 것. 그 꼬챙이에 말들과 용병들이 꿰뚫리며 처참하게 죽어 나갔다.
“이런 씨발!”
B급 용병이었던 체이칸은 말이 중심을 잃는 순간 몸을 날려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용병들은 그대로 함정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자식들! 가만두지 않겠어.”
부하들이 죽어 나가자 잔뜩 성이 난 체이칸은 이를 박박 갈면서 몸을 일으켰다. 당장이라도 저 비열한 놈들을 단숨에 박살 낼 기세를 뿜어내었지만, 순간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쏴라!”
휙! 휙! 휙!
“화, 화살!!”
하늘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수십 발의 화살들. 주변이 꼬챙이들로 가득인지라 이동이 용이하지 않았던 그는 그 자리에서 재빠르게 검을 휘둘러 화살을 쳐냈다.
“이런 빌어먹을!”
팅! 팅!
그런데 그렇게 다급히 화살을 쳐내고 보니 뭔가 달랐다. 금속이라 차가워야 할 화살이 빛이 나고 뜨거웠다.
‘불?’
그냥 화살이 아닌 불이 붙어있는 화살들이다. 그러고 보니 바닥에 밟히는 느낌 또한 뭔가 이질감이 들었다.
바삭.
‘지푸라기?’
밟자마자 바스스 부서지는 게 상당히 오랫동안 말린 듯하였다. 건조한 그곳에 불이 붙자 주변은 순식간에 화염으로 뒤덮였다.
화르르르.
“젠장!”
아무리 자신이 B급 용병이지만 이런 불구덩이에서는 살아남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뒤이어 날아온 불화살들이 그 주변을 더더욱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으아아악!”
“뜨, 뜨거워!”
아직 살아있던 용병들이 화마에 휩싸이며 비명을 질러 대었지만 체이칸은 그들을 도와줄 수 없었다. 자신조차 이곳을 빠져나가기 벅찼으니까 말이다.
“이 개새끼들! 내가 반드시 씹어먹어 버릴 테다!”
미친 듯이 분을 토했지만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나기도 힘들어 보였다. 주변이 다 불에 휩싸여있어서 어느 방향으로 갈지 갈피조차 못 잡았으니까.
“크윽! 쿨럭! 쿨럭…….”
매캐한 연기 때문에 숨도 쉬기 힘들어진다. 눈조차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몸에 힘이 점점 빠져나갔지만 간신히 오러를 이용하여 화염으로부터 몸을 보호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오러의 양이 줄어들며 그의 몸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크윽! 안돼! 이대로 죽을 순 없어!”
하지만 그것은 그의 바람일 뿐. 냉혹한 화마는 거침없이 그를 집어삼켜 나갔다. 그가 그렇게 꼼짝없이 타들어 가던 순간이었다.
부우웅!
강력한 바람이 주변의 화염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들려오는 친숙한 목소리.
“정신 차려라, 체이칸!”
“혀, 형님!?”
위기에 빠진 그를 톨먼이 구하러 온 것이다. 그는 쓰러진 체이칸을 들쳐 업었다. 상당히 무거운 몸이었지만 톨먼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어깨에 메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지금 그런 말을 하기에는 이르다. 아직 이 불구덩이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주변의 화마를 강한 오러로 밀어내며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던 톨먼. 그렇게 사투를 벌이며 움직인 끝에 겨우 불이 없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푸하! 쿨럭! 쿨럭!”
맑은 공기가 폐 속을 가득 채우자 체이칸은 그제야 살 것 같았다. 비록 자신의 부하들이 처참하게 죽어갔지만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크흑, 죄송합니다. 형님.”
“아니다. 섣불리 명을 내린 건 나다. 감정에 휩쓸려 제대로 전장을 파악하지 못한 내 잘못이야.”
“아닙니다. 형님. 누가 그런 함정이 있을 줄 알았겠습니까?”
“그래, 그건 나도 전혀 예상 못했다. 게다가 거기 있었던 그놈들. 징집병이 아니었어.”
“예? 정말입니까? 그럼, 우리를 방심시키기 위해서 징집병인 척 위장을 했다는 말이군요.”
“그래. 거기다 그중엔 기사도 끼어있었다. 일반 병사가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지휘를 하지는 못할 테니까.”
“누군지는 모르지만 굉장한 전략가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 단순히 병력으로만 밀어붙이다간 상당히 힘들어졌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게 피해가 기마병으로만 끝났다는 것이지.”
“예, 형님. 우리에겐 아직도 저들보다 많은 수의 병력이 있으니까요.”
“먼저 간 놈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액땜을 했다고 생각해야겠지. 이제부터라도 방심하지 않고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야.”
“예, 명심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흉계에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톨먼과 체이칸. 하지만 아직까지 그들은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제 막 지옥문 초입에 들어섰다는 것을.
* * *
드레이크 영지 회의실.
영주인 칼슨이 이제 막 레인으로부터 전황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래, 용병단이 이제 접경지대에 들어왔다고?”
“예, 영주님.”
“흠,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군. 급하게 함정을 준비하느라 서둘러 보냈는데 이제 왔다고 한다면 오히려 그들을 기다리느라 힘들었겠어.”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이 더 있었기에 급조했던 함정을 더더욱 보강할 수 있었습니다.
“음, 그래. 처음인데도 불구하고 잘 대처해주었군. 병사들을 지휘했던 기사가 에드라고 하였던가?”
“예, 에드 페이런이라고 젊지만 상당히 영민한 자이옵니다.”
레인의 그를 칭찬하였지만 사실 칼슨은 이미 그가 뛰어난 기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킬인 ‘인물정보 열람’으로 이미 기사들과 병사들의 능력을 파악했기 때문.
[인물정보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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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페이런
나이 : 23세
클래스 : 기사
힘 B 민첩성 A 지능 A 체력 B 정신력 A 오러 C
드레이크 영지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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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병사들 또한 힘이 C나 혹은 B인 자들로만 구성해서 보냈었기에 발군의 실력을 뽑아냈을 것이다.
“그래, 어찌 되었든 작전이 성공대로 되어서 다행이야.”
“이게 다, 영주님 덕분입니다.”
‘아무렴, 다 내 덕분이지.’
칼슨은 속으로 스스로를 칭찬하였다. 그럴만한 것이 그가 모든 작전을 주도하였고 그에 맞춰 인원을 배정하였다. 그게 잘 맞아떨어졌기에 렌달 용병단이 꼼짝도 못 하고 당했던 것이었다.
“이제 놈들이 더 신중하게 행동하겠지?”
“예, 아무래도 처음 함정에 당한 것이 있어서 조심하게 행동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열 받을 때까지 자근자근 계속 약을 올려줘야겠지.”
“네? 그게 무슨…. 혹시 볼튼 경에게 어떤 임무를 맡긴 것입니까?”
레인의 물음에 칼슨은 고개를 저었다.
“볼튼이라고? 아니야. 그 양반은 고지식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서 누구 성질 긁는 일은 잘하지 못해.”
“그럼, 누가……. 서, 설마? 행정관을 말하는 겁니까!!”
“그래 맞아. 그에게 일을 맡겼지.”
“여, 영주님!”
행정관이 나섰다고 하자 깜짝 놀라는 레인. 물론 그가 영주의 부름을 받고 성을 나섰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 도움을 요청하러 보낸 거라 생각했었지 그것이 직접 전투를 하러 갔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가 너무 황당해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자 칼슨은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말을 하였다.
“괜찮아. 그 녀석이라면 아주 잘 해낼 테니까.”
“…….”
자신만만한 칼슨의 모습. 레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이미 자신의 주군이 생각하고 정한 일. 자신은 그냥 그걸 믿고 따르면 될 일이었다.
* * *
드레이크 영지 동쪽에 위치한 욘드레이크 숲.
평소 조용하고 평온한 이곳에 이틀 전부터 일단의 무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 놈들이 근처까지 왔다고?”
“예, 행정관…. 아니 대장님.”
“훗, 대장이라……. 정말이지 몇 번이나 들어도 어색하구만.”
“…….”
기사의 보고를 받은 우터. 그는 아직까지도 익숙해지지 않은 대장이라는 호칭에 쓴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