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영주 취임식
“뭐, 뭐라? 범인? 어찌 내게 이러실 수가 있소, 데인 경!”
“아니, 왜 이러십니까? 네? 데인 경! 지금 단단히 실수하시는 겁니다.”
그의 결정에 당황스러워하는 두 모자. 경비병들 또한 그 말에 혼란스러워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서 포박하지 않고 뭐 하는가!”
“아, 예! 알겠습니다.”
머뭇거리는 경비병들을 보고 루퍼트가 성내며 소리치자 그제야 움직인다. 더욱 큰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명을 받아들이는 그들. 하지만 이대로 순순히 잡혀갈 올슨이 아니었다.
“이놈들! 감히 내게 손을 대려 하느냐? 내게 조금이라도 다가온다면 당장 베어버리겠다.”
“허걱! 오, 올슨 공자님. 진정하시고 제발 좀…!”
그의 저항에 난감해진 경비병들. 하지만 정황상 그들은 영주를 살해한 범죄자들이었다. 이미 경비대장인 루퍼트도 그리 결정을 하여 명을 내렸고 그의 명대로 자신들은 그들을 잡아야 했다. 그런 난감한 상황에 칼슨이 앞으로 나서며 말문을 이었다.
“끝까지 추해지는 군, 올슨. 데인 경, 아무래도 경이 나서줘야 할 것 같소.”
“…네, 알겠습니다. 소영주님.”
소영주.
이 말은 곧 루퍼트가 그를 차기 영주로 인정한다는 의미.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죄인은 어서 무기를 버리고 순순히 포박에 응해라!”
“아니 죄인이라니? 지금 그 말은 나를 말하는 겁니까, 데인 경?”
“응하지 않겠다면 더 이상의 말은 의미가 없겠군.”
“그, 그런…!”
말을 마치자마자 루퍼트가 곧장 올슨에게 쇄도하였다. 당황한 올슨은 다급히 막아섰지만 상대의 검에는 오러가 담겨 있었다. 아무런 기운이 없는 그의 검으로 맞서봤자 헛된 저항이나 다름없었다.
-쨍강!
그대로 검이 부서지며 목덜미까지 파고 들어가는 루퍼트의 공격. 검 끝의 오러가 피부에 닿자 올슨은 아릿한 통증을 느꼈다.
“크윽!”
아파서인지 분해서인지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옅은 신음 소리를 내었다. 어찌 되었든 이제 그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쨍그랑-
부서진 검을 떨어트리며 고개를 숙인 올슨. 그제야 루퍼트는 검을 거두며 경비병들에게 눈짓을 보내었다. 그러자 머뭇거리던 그들은 곧장 올슨에게 다가가 그를 포박하였다. 놈이 끌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칼슨은 루퍼트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하셨습니다. 데인 경.”
“아닙니다. 소영주님.”
“아니요, 데인 경이 없었다면 아마 저는 저들의 더러운 수에 큰 화를 면치 못했을 겁니다. 정말이지 데인 경이 있어서 제가 정말 든든합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하지요. 내가 ‘영주’ 되어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영주라는 말을 특히 강조하였다. 그 말에 루퍼트는 희미한 미소를 띠었지만 따로 말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나머지 일을 루퍼트가 마무리하기로 했고, 칼슨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갑작스런 퀘스트에 황당했었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완료가 되지 않지?’
잘 끝낸 것 같은데 아무런 메시지가 뜨지 않아 의아스러웠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에 잠긴 칼슨. 그러자 갑자기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생성되었다.
[영주 경쟁자인 올슨을 처리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영주 직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하려면 정식으로 영주 직에 올라야 합니다.]
‘아 거참 되게 깐깐하네.’
영주가 되는 건 이제 기정사실. 시간문제나 다름이 없는데 그냥 완료해주지 않는 게 참 답답하다. 기억에 따르면 영주 직에 오르려면 취임식을 해야 한다. 비록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지만 어찌 됐든 퀘스트를 완료하려면 취임식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쳇, 스킵 기능 같은 것은 없나?’
예전 게임 할 때는 이런 지겨운 구간은 그냥 넘길 수 있는데 아무래도 여기서는 안 되니 조금 아쉬웠다.
‘어쩔 수 없지.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겠네.’
사실 이거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갑작스런 일들 때문에 미처 생각을 못 하였지만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그리고 혹시 대한민국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지 그것이 더 중요하였다.
‘그런데 도대체 나는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죽은 건가?’
그럴 수도 있었다. 비록 영혼이나 비과학적인 것은 믿지 않는 편이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흡사 자신의 영혼이 이 몸에 빙의한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거기다 이 특이한 메시지와 창도 그렇고 말이야.’
지금까지 자신의 상태나 상황을 설명해주는 신기한 현상. 마치 게임이랑 비슷하였는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이유 또한 알지 못하였다.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해지니 머리가 아파 온다.
‘일단 퀘스트는 끝내야겠지.’
골치 아픈 문제는 일단 접어두자. 먼저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처리해야 했다.
* * *
영주 취임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유일한 경쟁자였던 올슨이 치워졌기에 당연한 거였지만 칼슨 본인 또한 자잘한 순서를 생략하고 진행하여 사흘 만에 끝낼 수 있었다.
영주 즉위식 당일.
준비를 마친 칼슨은 가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중앙 로비로 이동하였다. 자신의 시종인 레인과 몇몇 하인, 그리고 호위들이 같이 움직였는데 작지 않은 통로임에도 불구하고 그 수 때문인지 꽉 들어차 보였다.
“흠, 이건 뭐지?”
가는 길에 벽에 걸린 초상화들을 보았다. 선대 영주들과 그 가족들의 초상화였다. 꽤나 실력 있는 이가 그렸는지 굉장히 인상을 잘 표현하였는데 어떤 이는 늠름하고 또 어떤 이는 조금 차분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복도를 점점 지나면서 초상화를 구경하던 칼슨. 그러다 어느 순간 한 초상화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
자신과 같은 백금발의 여인. 상당히 아름다운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으며 왠지 모를 그리움마저 느끼게 해주었다. 과연 누구인가 하고 하단에 적힌 그 이름을 보았다.
-엘리사 드레이크-
엘리사 드레이크.
오래전에 돌아가신 그의 친어머니였다. 그녀는 빈트 남작가의 영애로 꽤나 수려한 외모로 유명한 여인이었다. 빈트 남작령은 드레이크 가문이랑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 드레이크 가문이랑 인연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드레이크 자작이 젊었을 때 왕궁에서 열렸던 연회에서 그녀를 만나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그렇게 반한 그는 몇 달간 끈질긴 구애를 하였고 결국에 그녀가 받아들여 둘은 결혼을 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두 명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칼슨이었다. 다른 한 명은 딸이었는데 그녀는 바로 칼슨보다 2살 많은 누나인 세리나였다.
‘2년 전에 왕실 기사단으로 들어갔다고 했나?’
칼슨과는 달리 검술이 뛰어난 그녀는 그 재능을 발판으로 왕국 기사단에 들어갔다. 원래대로라면 다른 귀족 가문으로 정략혼을 가야 할 터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고자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왕실 기사단에 들어가는 데 결국 성공하였다.
‘문제는 이 몸인 칼슨이란 말이지.’
어차피 여성인 그녀는 영주가 되기 힘들었다. 하지만 남성인 칼슨은 가능하였다. 게다가 장남이었기에 유력한 영주 후보였다. 그러나 그는 세리나와는 달리 검술에 재능이 좋지 못하였다. 상태창을 봐서도 알겠지만 특히 힘이 무척이나 약하여 어렸을 때는 연습용 목검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그게 영주가 되는데 큰 결격사유는 아닌데 말이야.’
문제는 그에 대한 평가. 아무래도 검술로 유명한 가문이다 보니 대부분 검술 실력이 그 사람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된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근거 없는 소문들을 부풀려서 칼슨을 천하의 쓰레기처럼 만들어버렸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중 인상 깊은 게 대련에서 한 번이라도 이기고 싶다며 이제 막 열 살 남짓한 여자애를 불러 대련을 했다는 소문.
‘아무리 그래도 이기고 싶어서 어린 여자애랑 싸웠다는 건 좀 심한 거 아니야?’
물론 아주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때 그 소녀는 당시 영지 기사의 딸 중 한 명이었고 검술에 관심이 많았기에 따로 불러다 대련 연습을 해주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미네르가 이 좋은 건수를 그냥 둘 리가 없었다. 결국 칼슨이 희대의 쓰레기로 각인된 사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영주지.’
다 지나간 일이다. 이제 그들은 중범죄자가 되어 감옥에서 평생 썩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채 걸음을 하다 보니 어느덧 중앙 로비에 도착하였다. 꽤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지 제법 떠들썩하였다.
“신임 영주님께서 오십니다.”
옆에 있던 레인이 큰 소리로 외치자 웅성대던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곤 모두의 시선이 칼슨에게로 집중되며 엄숙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흠, 오랜만인데 이런 분위기. 예전 조합에 비해 인원이 현저히 적긴 하지만….’
조합원 수가 2,000이 넘었던 화룡 5구역.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기다리며 주목하는 것이 조합장 시절 총회를 할 때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때의 감회를 상기한 칼슨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준비된 상석에 앉았다.
‘흠, 저기 저놈들이 이 영지의 가신들이로군.’
낯익은 얼굴들이 꽤 보인다. 이전 칼슨의 기억으로 알고 있기에 직접적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상대로 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많아 보이긴 하였다.
‘하긴 검술 명가에서 검술이 형편없는 애새끼가, 거기에 평판 또한 개판인 놈이 영주가 되니까 한숨부터 나오시겠지.’
그러면 어쩌겠는가. 이미 자신은 정당하게 영주의 자리에 올랐는데. 섭정이 필요할 정도로 어리다면 또 모를까 이제 그도 어엿한 성인이다. 맘에 들지 않더라도 잠자코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칼슨 드레이크 영주님이 영주가 되는 것은 율법과 정통성에 합당하므로 정식으로 취임하게 되었음을 알리겠습니다.”
짝짝짝
“자 그럼 신임 영주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연설을 마친 레인의 언급에 칼슨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에 앉았다.
‘참 익숙한 느낌이네.’
자신이 말을 하기를 기다리며 주목하는 사람들. 조합장 하던 때가 연상되자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였다. 하지만 그런 감상은 뒤로한 채 곧 진중한 자세를 취하며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오늘부터 정식으로 영주가 된 칼슨 드레이크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나의 선친인 군스 드레이크가 비열한 자들의 간계에 의해 독살당하였다. 그리고 이 비열한 자들은 그 천인공노할 죄를 나에게 뒤집어씌우는 음모까지 꾸몄었지. 허나 거짓은 언제나 드러나는 법. 그 계략은 밝혀졌으며 그들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
미네르와 올슨의 일을 이야기하자 모두 불안한 눈빛을 하며 긴장하였다. 그 모습을 본 칼슨은 살짝 입 꼬리를 올리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허나 경들은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어수룩해 보이고 경들의 맘에 차지 않는다고 하여도 여기엔 그 죄인들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할 만큼 아둔한 이는 없을 테니까. 안 그런가?”
“….”
“왜, 대답들이 없어? 설마 경들도 그들과 같은 건가?”
다분히 협박의 의미가 담긴 으름장. 그걸 느낀 가신들은 다들 사색이 되며 대답을 하였다.
“아,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 그런 죄인들과 저희들은 다릅니다. 영주님을 진심으로 받들겠습니다.”
“영주님을 진심으로 받들겠습니다.”
“충성을 맹세합니다.”
겁을 먹으며 고개를 숙이는 그 모습이 제법 만족스럽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저절로 하얀 이가 드러나며 웃음이 나오는 그때.
띠링-
[드레이크 영지의 영주가 되었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짧은 효과음이 들리면서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