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영지가 제일 강함-4화 (4/162)

3화 루퍼트의 선고

입을 틀어막은 채 사색이 되어버린 요리사. 그 모습에 칼슨이 자신의 머릿결을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어쩌나? 안타깝게도 내 머리 색은 붉은색이 아닌데?”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 금발…!”

스윽

“네 이놈! 네가 감히 거짓을 고하였느냐?!”

“아, 아닙니다. 나리! 그, 그,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어느새 그의 목에 루퍼트의 검이 닿자 요리사는 안색이 파래지면서 용서를 구했다. 그 모습을 본 미네르는 두 눈이 흔들리며 표정이 굳어졌다.

‘저 멍청한 놈, 저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다니!’

영주를 죽이고 칼슨을 제거하려 한 미네르의 계획. 그런데 거의 다 된 밥에 저 멍청한 놈이 재를 뿌렸다. 거기다 분위기를 보건대 이대로 가다간 자신이 꾸민 일이 탄로 나기 일보 직전. 그런 위급한 상황에 그녀 옆에 있던 올슨이 상황을 얼버무리려 하였다.

“너무한 거 아닙니까? 사람이 헷갈릴 수도 있지요. 저자가 잠시 착각한 겁니다. 분명히 형님이 사주한 겁니다.”

‘그래, 올슨. 잘했다.’

가만히 있었으면 위험했었는데 이 와중에 저 멍청한 놈의 실수를 잘 막아주었다. 그러나 루퍼트는 그걸 전혀 믿지 않는 눈치.

‘하지만 일이 더 커지기 전에 꼬리를 잘라야겠어.’

어쨌거나 저놈의 주장이 신빙성을 잃은 이상 이제 칼슨을 제거하는 것은 꽤나 힘들어졌다. 거기다 혹시 맘이 바뀌어 사실대로 실토라도 한다면 자신들 또한 위험해진다. 그리 생각을 마친 미네르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입을 열었다.

“데인 경, 저도 저자에게 물어볼 말이 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음?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흠, 일단 그러시지요.”

루퍼트의 허락이 떨어지자 요리사에게 다가간 미네르. 그녀가 앞에 다가오자 요리사는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천한 놈답게 말주변도 형편없구나?”

“죄, 죄송합니다, 마님. 제가 당황스러워 그만….”

-쉿

그녀가 입술을 오므리며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네놈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마.

-예? 아 네, 말씀해주십시오.

-지금 내 허리춤에 호신용 단검이 있다. 그것을 가지고 당장 목숨을 끊어라.

-네? 마, 마님. 그게 무슨…?

-네놈이 설마 영주님의 음식에 독을 타고 살아남을 거라 생각했느냐?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어차피 네 녀석은 죽은 목숨이란 말이다.

-그, 그런…. 이, 이야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마님!

-그러게 그런 실수를 하지 말았어야지. 그나마 네가 그렇게 한다면 너의 가족은 내가 잘 보호해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너를 포함해 가족 모두 처참한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야.

-허억, 마님. 제, 제발 가족들은 살려주십시오.

-그러니 어서 네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그게 네 가족이 살 길이니까.

-크윽….

씀씀이는 크지만 아름다운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두 딸들. 가족들의 안위를 생각하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찌할 바를 모르며 입술을 깨물고 있을 때 미네르가 자신의 단검을 내보이며 어서 그에게 자결을 재촉하였다.

-자 어서! 시간이 없다.

-…예. 알겠습니다.

마음의 결정을 하였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어차피 자신은 죽은 목숨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 자신의 희생으로 가족들이 살 수 있다는데 어떻게 망설일 수가 있겠는가. 굳게 입을 다문 채 단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퍽-!

“꾸웨에에엑!”

어디선가 날아와 요리사의 복부를 강타하는 발차기.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지는 그는 고통스러운 듯 배를 부여잡으며 떼굴떼굴 굴렀다.

“이것들이, 어디서 수작질이야!”

아까부터 이 상황을 눈치챈 칼슨. 미네르가 요리사에게 다가갔을 때부터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떴었다.

[미네르가 요리사에게 자살을 강요하여 증거를 인멸하려 합니다.]

[만약 요리사가 죽는다면 퀘스트 진행에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남은 시간 10초]

[9초]

[8초]

[….]

‘씨팔!’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놈에게 달려가서 그 기름진 배때기를 힘껏 걷어차 주었던 것.

“이게 무슨 짓이냐, 칼슨!”

자신의 일을 방해받자 발끈한 미네르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루퍼트 또한 그 광경을 보며 칼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칼슨 공자님! 왜 이러십니까? 아직 그자에게서 들을 것이…. 어?”

칼슨의 행동에 의문을 표하던 그는 고꾸라져있는 요리사 옆에 놓인 단검을 보자 말을 멈추었다. 분명 저것은 미네르가 가지고 있던 호신용 단검.

‘설마 저자가 마님을…. 아니, 그렇게까지 대범한 이로 보이진 않았어….’

루퍼트가 깊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다 되어가는 밥에 재를 뿌린 칼슨 때문에 미네르는 더욱더 마음이 급해졌다. 상황을 보니 저 멍청한 놈에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의 손으로 놈을 직접 처리할 수밖에. 어차피 놈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말하면 그 이유로 충분하리라. 루퍼트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자신의 단검을 주었다. 그리고 바닥을 뒹굴고 있는 놈에게 그대로 내리찍었다.

“죽어! 이 더러운 놈!”

덥썩.

하지만 단검이 내리꽂기 전 이상한 조짐을 느낀 루퍼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저, 마님.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이자에게서 진상을 좀 더 들어봐야 합니다.”

“익, 이거 놓으세요! 방금 저놈이 저를 죽이려 했습니다. 당장 저 극악무도한 놈을 없애버릴 겁니다!”

악을 쓰며 발버둥 쳤지만 루퍼트는 기사였다. 거기다 경비대장이기에 어지간한 장정들도 힘으로 당하기 힘들다. 그러니 여성인 그녀가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다. 그렇게 둘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데인 경, 당장 그 손을 놓지 못하겠습니까? 감히 어머니의 몸에 손을 잡으시다니! 무례하십니다. 어서 놓으십시오!”

자신의 어머니가 우악스러운 루퍼트의 손에 잡혀있자 눈이 뒤집힌 올슨. 자신의 검을 뽑아 그에게 겨눈다.

“안 된다, 올슨! 당장 검을 거두어라!”

“왜 그러십니까, 어머니!”

“어서! 일을 더 크게 만들 셈이더냐?!”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 한 행동이었지만 경솔하였다. 지금 상황에 루퍼트랑 각을 세우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차라리 그 틈에 요리사를 처리해야 했거늘. 어머니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 올슨이었지만 단호한 그녀의 말에 일단 검을 거두었다. 그리 상황이 정리되려는 참에 칼슨이 실소를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하하, 정말이지 이거 돈 주고도 못 볼 장면이잖아. 제 어미는 저리 필사적으로 수습하려 하는데 멍청한 아들 녀석은 이리 상황 파악도 못 하고 있다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형님?”

발끈한 올슨이 짜증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

“아니, 못 들은 것이냐? 못 알아들은 것이냐? 간단히 말해서 너는 멍청하게 굴지 말고 그냥 잠자코 있으라는 거다. 올슨.”

“뭐! 이 무능한 새끼가!”

상대의 모욕에 발끈한 올슨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으르렁거렸다. 태어났을 때부터 늘 형편없는 모습만 보였던 형인지라 언제나 쓰레기처럼 생각했는데 그런 놈이 감히 자신을 모욕하였다. 사람은 본래 윗사람보다, 자신보다 못했던 자에게 무시당하면 더욱 참기 힘든 법. 그 터져버린 분노가 마음속 깊숙이 잠자고 있었던 그의 살심을 깨우기 시작하였다.

‘그래, 이놈만 없어지면 내가 영주가 될 수 있다. 괜히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어.’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칼슨만 없으면 영주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계획을 세워 두었지만 솔직히 지금 상황을 보니 글러 먹은 것 같았다. 그냥 눈앞의 놈만 죽이면 간단히 해결될 일. 칼슨을 죽이고 영주가 되어 그를 범인으로 몰아버린다면 누가 자신을 막을 수 있겠는가. 결심이 서자 칼슨을 죽이기 위해 다가갔다. 실패하리라는 걱정 따윈 없었다. 이 약해빠진 무능한 쓰레기쯤은 단숨에 없애버릴 수 있을 테니까.

결심을 하고 심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루퍼트의 관심이 멀어질 때를 맞추어 놈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죽어라, 이 쓰레기!”

“서, 설마? 안 돼!”

미네르를 잡아두고 있느라 정신이 팔린 루퍼트. 올슨의 공격에 반응하였지만 막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비록 칼슨에 비해 3살 어리지만 올슨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실력자. 아직 오러를 다루지 못하긴 했지만 동년배들 중에서는 월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천하의 둔재로 취급받는 칼슨이 그를 상대하기엔 아직 버거웠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일부러 이런 상황을 바라고 도발하였다.

눈앞에 다가오는 올슨의 검. 그 위협적인 모습에 잔뜩 겁먹을 법도 하지만 칼슨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신체였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만반의 준비가 된 상태.

-휙!

‘뭐!’

올슨의 눈에 갑작스레 어떤 물체가 보였다. 무엇인지 인지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피하면서 확인해보니 그것은 옷에 장식으로 붙어있던 브로치였다. 잠시 중심이 흐트러진 찰나 그의 눈앞에 예리한 단검이 날아왔다. 단검의 뾰족한 칼끝이 꽤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던지는 힘이 모자라서인지 상당히 어설프다. 그것을 쳐내는 것쯤 어렵지 않았다.

‘흥 이까짓 거!’

팅!

단숨에 단검을 날려버리며 그대로 달려드는 올슨. 한순간에 상대를 베어버리기 위해 번쩍 검을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칼슨이 보이지 않았다.

‘뭐야? 어디로 간 거야?’

시선을 돌리니 놈은 몸을 굴러 이미 몸을 피하였다. 빈약한 체구로 떼굴떼굴 굴러가는 모습이 꽤나 우스꽝스러워 보였을 지경.

“이 쓰레기 같은 놈! 기어가는 모습이 마치 바퀴벌레 같구나. 귀족으로서 체통도 잊은 거냐?”

‘응, 그런 거 몰라.’

올슨이 그의 모습을 보며 모욕하였지만 칼슨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조합장 시절 저런 욕지거리 따윈 오히려 친분을 쌓기 위한 농담조차도 못되니까.

잔뜩 이를 간 올슨. 다시 그에게 다가가 끝장을 내려 하였다. 이에 칼슨 또한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한 번 몸을 굴러 자세가 흐트러진 상황.

“이젠 끝이다. 이 벌레 같은 놈!”

지척까지 다가온 올슨의 검이 칼슨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살기가 가득한 그 검이 그의 목을 꿰뚫기 직전.

챙!

그 공격을 막아내는 커다란 장검. 어느새 루퍼트가 칼슨의 앞에 서 있었다.

“정말 실망입니다, 올슨 공자!”

루퍼트가 지그시 노려보며 차가운 어조로 말하였다. 그 모습에 올슨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상대는 비록 초입이긴 하지만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기사.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현재로선 자신이 날고긴 다해도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자였다.

“젠장! 어서 비키십시오, 데인 경! 진정 저딴 쓰레기가 영주가 되길 바라는 겁니까?”

“….”

올슨이 뭔가 억울한 표정으로 호소했지만 루퍼트는 대답 없이 굳게 입을 다물 뿐이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돼 보이자 눈치를 보고 있던 요리사가 앞으로 나서며 말문을 열었다.

“나리, 이젠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어제 저에게 약병을 주며 사주한 분은 칼슨 공자가 아닙니다.”

“닥쳐라, 이놈! 그 입을 다물지 못할까!”

그의 갑작스런 고백에 굳어버린 미네르의 얼굴. 어떻게든 말을 막으려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요리사는 자신에게 가족을 들먹이며 협박한 그녀를 이제 믿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현 상황을 보건대 지금은 그녀보다 칼슨에게 붙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님!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나리, 어제 저에게 사주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하르바 님이였습니다.”

시녀장 하르바. 그녀는 미네르가 친정에서부터 데려온 심복 중에 심복. 붉은 긴 머리를 한 그녀는 미네르의 말이라면 지옥 불구덩이라도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당장 시녀장을 잡아 와라.”

“예, 데인 경.”

경비병들에게 지시를 내린 루퍼트는 올슨과 미네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분,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아니, 데인 경. 설마 지금 저 거짓말쟁이의 말을 믿는 건가요?”

“이보시오, 데인 경. 신중히 생각하시오! 나랑 형님 중 누가 더 영주에 어울리는지.”

이미 드러나는 상황에 반성은커녕 거짓과 오만으로 자신들을 항변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루퍼트는 깊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역시, 데인 경.”

“…? 데인 경, 설마?

올슨과 달리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미네르. 그녀의 예상대로 루퍼트는 이미 결심을 굳힌 듯하였다.

“올슨 드레이크, 미네르 드레이크. 이 두 사람을 영주님 살해의 범인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어서 이 둘을 당장 포박하라.”

루퍼트의 선고. 그의 말을 들은 둘은 청천벽력이라도 맞은 듯 얼이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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