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영주 살해
“아, 아버지!”
“꺄아아악! 여보!”
자작이 쓰러지자마자 소스라치게 비명을 지르는 올슨과 미네르. 그 모습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와, 연기 진짜 못하네.’
딱 봐도 딱딱한 발음과 시선 처리. 나름 표정에 감정을 실으려고 노력한 듯했지만 그가 보기엔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딱 봐도 이것들이 작당을 했구먼.’
안 봐도 비디오다. 후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영주를 죽이고 자신한테 누명을 씌우려고 하는 그 뻔한 수작질이 훤히 비친다.
‘일단 퀘스트는 받고.’
틱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갑작스런 상황에 조금 당황했지만 퀘스트 내용을 보니 확실히 동기부여가 생긴다. 성공 시 영주가 되니 자작령이 보상인 건 당연하지만 2차 전직 퀘스트가 생기는 것은 확실히 큰 메리트. 그리고 어차피 실패하면 사망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이것들이 일을 꾸몄으니 이대로 가다간 내가 범인으로 몰릴 테지.’
아마도 몇몇은 그들이 매수하였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자신이 영주를 살해했다는 정황으로 몰고 갈 게 뻔하였다.
‘그리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야겠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고심하는 와중에 하녀들이 몇몇 사람들을 데려왔다. 그중 눈에 띄는 사람이 둘 있었는데 영지 주치의와 경비대장이었다.
경비대장의 이름은 루퍼트 데인. 적갈색 머리에 덩치가 좋고 강직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한걸음에 달려 온 듯 다급한 목소리로 미네르에게 상황을 물었다.
“마님,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십니까!?”
“모, 모르겠소, 데인 경! 가, 갑자기 영주님이 피, 피를 토하며 쓰러지셨다오.”
루퍼트의 말에 상황을 덜덜 떨면서 설명하는 미네르.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그녀의 태도였지만 상황이 심각해 보였기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러는 와중 옆에 있던 주치의가 입을 열었다.
“일단 제가 봐 드리겠습니다.”
“그래, 어서 봐주게.”
심각한 표정을 하며 자작을 살피는 주치의. 순간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히익! 여, 영주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린가? 영주님이 돌아가시다니!”
“설마? 아, 아버지가!”
“….”
주치의의 말에 모두 놀라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다만 미네르와 올슨의 말투가 조금 부자연스러웠지만 칼슨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독, 독입니다! 누군가 영주님을 독살하였습니다.”
“뭐? 독살이라고 했는가!”
주치의의 말에 눈이 커진 루퍼트.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영지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비대장이다. 그로서는 영주가 독살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실책이 된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그 처분은 나중에 받되 지금은 당장 범인을 알아내는 게 급선무였다. 그는 지그시 현장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일단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내부에서 일을 꾸몄다는 것. 그리 생각을 마친 루퍼트는 주치의에게 말을 하였다.
“혹시, 영주님이 식사한 음식을 살펴보실 수 있으시겠소?”
“네? 아 네 알겠습니다. 데인 경.”
그의 말에 잠시 얼이 빠져있던 주치의는 눈을 깜빡이며 영주가 먹던 음식을 살펴보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손을 살짝 찍어 맛을 보았다. 그러더니 오만상을 쓰며 침을 뱉었다.
“크으윽! 퉤 퉤! 맞습니다. 여기에 독이 있습니다. 소스에 섞여 있어서 눈치 못 챌 수 있지만 완전히 안 섞인 부분의 맛을 보니 확실히 독입니다. 아마도 프람벨 같은데 정확한 것은 자세히 검사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뭐? 프람벨? 그게 사실이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프람벨은 프람비 살무사의 독을 정제한 독이다. 무색무취이긴 하지만 상당히 쓰기 때문에 맛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암살용으로는 거의 쓰지 않고 자살용이나 실험용으로 밖에 쓰이지 않던 독이었다. 그만큼 구하기도 쉬운 독. 어찌 됐든 일단 음식에 독이 나왔다. 루퍼트는 지체 없이 주변에 서 있던 경비병에게 명령을 하였다.
“어서 이 요리를 요리한 요리사를 데려와라.”
“예, 데인 경.”
경비병이 자리를 떠나자 잠시 주변에 정적이 돌았다. 그때 잠자코 떨고만 있던 올슨이 조용히 앞으로 나서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저기 데인 경. 제가 짐작 가는 것이 있는데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시지요, 올슨 공자님.”
“아무래도 전 칼슨 형님이 의심스럽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칼슨 공자님이 영주님을 살해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지 않습니까? 요즘 형님이 소영주로서 입지가 불안했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불과 얼마 전 형은 아버님에게 심한 질책도 받으셨지요. 아마도 그때 앙심을 품고 일을 벌인 게 아닌가 합니다.”
“설마, 그런…? 정말입니까, 칼슨 공자님?”
올슨의 거침없는 악담에 루퍼트 또한 의심의 눈길을 주며 칼슨에게 묻는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온 칼슨. 차분한 어조로 그에게 입을 연다.
“그럴 리가요. 제가 생각하기엔 오히려 올슨이 그런 상황을 이용해 일을 벌인 것이라 의심이 가는군요. 안 그런가요, 데인 경?”
“아니 형님 그게 무슨!”
“칼슨! 함부로 그 입을 놀리지 마라! 지금 네 동생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거냐?”
칼슨의 냉소 어린 말에 올슨과 미네르가 두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거렸다.
“왜요? 제가 아버님을 살해하는 건 당연하고 올슨은 아니다? 증거도 없이 말도 안 되는 억측을 내며 저를 먼저 모함한 것은 올슨이었습니다.”
“뭐, 뭐라? 억측이라니! 현명한 네 동생이 너처럼 그런 실수를 할 듯싶더냐?”
칼슨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모함에 똑같이 응수했을 뿐인데 이런 득달같은 반응이라니.
“큭,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쁘다더니, 올슨이 현명하다고요? 어머니는 참 친자식한테는 아주 관대하십니다.”
“이익! 이 무능한 놈이 감히 내 아들을 모욕해? 오냐, 곧 네가 좋아하는 그 증거가 나올 것이다. 그러니 꼭 기대하길 바란다.”
바득바득 이를 갈며 노려보는 그녀. 마찬가지로 뒤에서 같이 응수하며 분을 표하는 올슨까지 아주 지랄맞은 모자들이었다. 그렇게 신경전이 벌어지는 동안 어느덧 경비병이 요리사를 데려왔다. 그는 무언가 두려웠는지 몸을 바들바들 떨며 불안한 표정을 하였다.
“요리사를 데려왔습니다, 데인 경.”
“그래, 흠? 자네가 영주님이 드신 음식을 만든 요리사인가?”
“네? 예, 그렇습니다. 제가 그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루퍼트의 물음에 순순히 답한 요리사. 그 말을 들은 루퍼트는 허리의 찬 검을 뽑아 그의 목에 들이댔다. 그 서늘한 촉감에 요리사는 공포를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놈! 네가 만든 그 음식을 먹고 영주님이 돌아가셨다! 감히 영주님을 죽이려 하다니! 결코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허억! 아,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평소대로 음식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닥쳐라, 네 이놈! 그럼 왜 영주님의 음식에서 독이 나왔느냐? 안되겠구나. 당장 네 더러운 혀를 당장 뽑아버리겠다.”
“히이익! 죄송합니다. 사,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나리.”
당장이라도 자신을 벨 것 같은 그 기세에 사색이 된 요리사. 그 모습을 보자 루퍼트는 다시 검을 거두며 말하였다.
“당연히 사실대로 말해야 할 것이다. 또 한 번 허튼소리를 했다가는 당장이라도 그 기름진 목을 베어버릴 테니까.”
“네, 네. 알겠습니다, 나리.”
루퍼트의 경고에 요리사는 몸을 벌벌 떨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가 순순히 대답을 해줄 자세가 되자 루퍼트는 차분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어서 말해보아라.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네, 나리. 그것이 말입니다….”
말을 하려다 살짝 끊으며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그 시선은 정확히 미네르를 향하였다. 그의 눈을 본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치 이에 답하듯 그 또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때 그의 대답을 기다리던 루퍼트가 언짢은 듯 짜증스런 어조로 그에게 소리쳤다.
“어찌 된 일이냐니까, 왜 말을 하다가 마는가!”
“아, 아닙니다. 나리. 그게 어찌 된 일이냐면….
요리사의 말에 따르면 전반적인 내용은 이러하였다. 어젯밤 주방 정리를 마치고 숙소로 가려고 할 때 누군가 찾아왔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웬 약병을 하나 주더니 내일 영주님의 식사에 넣어달라고 했다. 물론 자신은 거절하려 하였지만 그자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협박하였다. 게다가 상대는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자였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이에 응하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너에게 그 약병을 건넨 이가 누구인가?”
“저 그게….”
곤란한 듯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요리사. 그러는 모습이 보기 답답한 루퍼트는 재촉이며 말하였다.
“괜찮네, 내가 책임지고 자네를 보호해 주겠네. 그러니 어서 대답하게. 자 누군가 그자가?
“후…. 알겠습니다. 말하겠습니다. 그분은 바로.”
한숨을 쉬며 칼슨을 보는 요리사. 연민인지 죄책감 때문인지 그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굳은 입을 열며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은 바로 저기 계신 칼슨 공자님이었습니다.”
“뭐? 그것이 정말이더냐?”
요리사가 칼슨을 지목하자 루퍼트의 두 눈이 커졌다. 마침 그의 뒤에서 같이 이야기를 들은 미네르와 올슨 또한 이때다 싶었는지 기세가 오르며 칼슨을 맹비난하기 시작하였다.
“역시, 칼슨 네 녀석이 범인이었구나! 어떻게 사람으로서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하였느냐?”
“형님, 어찌 그러실 수가 있으십니까? 아무리 영주 직이 탐이 난다지만 어떻게 아버지를….”
“…이 모든 것이 사실입니까, 칼슨 공자님?”
이미 딱딱하게 변한 루퍼트의 어조. 아마도 자신이 아닌 원래의 칼슨이었다면 그 어벙한 성격에 꼼짝없이 당했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정말 저 요리사가 한 말이 사실입니까?”
“…아니라고 하면요?”
“네? 도대체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말 그대로 제가 아니라고 하면 어떡하실 겁니까?”
“그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당황한 루퍼트. 게다가 그 어조 또한 너무나 당당하여 그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이 뻔뻔한 녀석! 저렇게 증거가 있는데도 발뺌할 생각이더냐? 정말이지 어디까지 추해질 작정이냐?”
“더 이상 들을 것도 없습니다, 데인 경. 당장 저 금수만도 못한 자를 당장 끌고 가시지요.”
“….”
정황상 범인은 칼슨 공자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 저 태연스러운 모습에 루퍼트는 이상함을 느꼈다. 하지만 느낌만으로 일을 처리할 수 없는 법. 두 눈을 지그시 뜨며 다시 한번 그에게 질문하였다.
“아니라고 한다면 혹시 그걸 입증할 증거가 있습니까?”
“물론이지요. 헌데 그 전에 저 요리사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묻고 싶은 거라뇨? 흠, 알겠습니다.”
허락이 떨어지자 요리사에게 다가갔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칼슨을 보며 바들바들 떠는 요리사. 상대가 눈앞에 오자 시선을 회피하며 손톱을 깨물었다.
“어젯밤에 내가 자네에게 독약 병을 주며 그런 일을 부탁하였는가?”
“예? 아, 예 그, 그렇습니다. 분명 공자님께서 제게 약병을 주시며 그렇게 하셨습니다. 네. 네. 그, 그렇고말고요.”
“그래? 나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 그렇다니 참 희한한 일이군. 그럼 혹시 내가 그때 당시 입었던 옷도 기억하는가?”
“예에? 아, 그, 그게…. 저. 어, 어, 어떤 옷을 입었더라. 음.”
예상 밖의 질문을 하자 그는 크게 당황하며 버벅거렸다.
“불과 어젯밤에 봤는데도 기억을 못 하는가?”
칼슨이 다시 추궁하자 그는 눈을 감고 어젯밤을 상기하며 대답을 하였다.
“아, 아닙니다. 거, 검은색 옷을 입었습니다. 거기에 얼굴을 많이 가린 후드를 쓰셨습니다요.”
“그런가? 그럼 머리는 무슨 색이었나? 혹시 붉은색이었나?”
“아, 그렇습니다. 짙은 붉은색에 윤기가 흐르는 머리였습니다. 꽤나 긴 머리였기에 한눈에…. 헉!”
순간 너무 놀라 입을 막아버린 요리사. 그 모습을 본 칼슨은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유도 심문은 처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