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칼슨 드레이크
“크으윽!”
미세한 두통과 함께 눈을 뜬 김민호. 정신이 들자마자 그의 눈앞에는 제법 높은 천장이 보였다. 그런데 천장이 일반적인 건물의 천장이 아니다. 꽤나 고풍스러운 문양의 수가 놓아져 있어 평소 보던 것과는 달리 굉장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대체 여긴 어디지?’
자신의 집은 당연히 아니었고 그렇다고 짐작되는 곳조차도 없었다.
‘설마 철거업체 놈들이 나를 잡아 가둔 곳인가?’
마지막 기억이 그놈들에게 잡혔었기에 그리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상식적으로 자신을 죽이려던 놈들이 이런 호사스러워 보이는 곳에 자신을 눕혀 놨을 리 없지 않은가?
“으윽!”
주변을 살피려 몸을 일으키자 온몸에 쿡쿡 쑤시는 통증이 느껴졌다.
“뭐야? 이 통증은?”
마치 무리하게 운동해서 생기는 근육통과 같은 느낌. 아니 이건 확실하게 근육통이다. 게다가….
“목소리는 또 왜 이래?”
자신은 분명 30대 후반에 제법 굵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꽤나 맑았다.
그렇다고 여성처럼 톤이 가늘진 않았지만 분명 자신의 목소리랑은 차이가 있었던 것. 뭔가 이상함을 느낀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 한쪽에 커다란 거울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씨발, 이게 뭐야?”
백금발의 머리에 청록색의 눈. 거기다 갓 이십대 같은 앳된 얼굴. 그것은 절대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하며 어안이 벙벙할 따름.
그때였다.
띠링-
[캐릭터 전이가 완료되었습니다.]
[상태창을 열어보겠습니까?]
“이, 이건 또 뭐야?”
연속해서 눈앞에 보인 메시지. 반투명한 창에 써진 글씨가 나타나자 황당한 듯 눈이 크게 떠졌다.
‘상태창?’
메시지를 곰곰이 보다 보니 그 단어에 시선이 간다. 무의식적으로 ‘상태창’을 마음속으로 읽자 제법 큰 창이 새롭게 생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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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칼슨 드레이크
나이 : 19세
클래스 : 검사
힘 3 민첩성 7 지능 14 체력 12 정신력 18
벤투스 왕국 드레이크 자작 가문의 장남.
검술로 명성이 있던 드레이크 가문.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검술을 익혔으나 재능 부족으로 인해 성과가 좋지 않아 둔재 취급을 받고 있다.
현재 차남인 올슨 드레이크랑 사이가 좋지 않아, 후에 그가 영주가 되면 신상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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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도대체 이것은 뭐지?’
흡사 게임 캐릭터 같은 프로필. 자주 하지는 않지만 평소에 몇 번 해본 적이 있던 온라인 게임이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추측건대 자신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온 듯하였다. 눈앞의 창은 아마도 이 몸의 정보를 보여주는 것일 거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도 상황을 조금 더 알아보고자 상태창을 유심히 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볼수록 표정이 점점 구겨졌다.
‘검사라…. 그런데 힘이랑 민첩성이 왜 이따위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한눈에 봐도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딱 봐도 힘이랑 민첩성이 다른 수치에 비해 많이 떨어져 보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새로운 메시지가 생성되었다.
[능력치 수준에 대한 대략적인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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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D급 - 있으나 마나 한 능력치. 분포도 상위 70~100%
4~7 C급 - 평균적인 능력치. 분포도 상위 20~70%
8~12 B급 - 제법 뛰어난 능력치. 분포도 상위 5~20%
13~17 A급 - 매우 우수한 능력치. 분포도 상위 1~5%
18~20 S급 - 최고의 능력치. 분포도 상위 1%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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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이거 완전 망캐 아냐?”
이 몸뚱이의 클래스는 검사. 딱 봐도 몸을 쓰는 근접 클래스다. 당연히 힘이나 민첩성이 많아야 이득을 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쓰레기 같은 수준이라니…. 망캐도 이런 망캐가 없었다.
‘차라리 마법사나 사제 같은 클래스였다면 좋았을 텐데.’
힘과 민첩성에 비해 지능은 꽤나 높았다. B급보다 높은 A급 초입. 만약 마법사를 택했다면 검사보다는 훨씬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아니 무조건 이쪽으로 했어야 됐다.
“그런데 정신력은 도대체 뭐지?”
힘, 민첩성, 지능, 체력은 뭔지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신력은 조금 생소한 느낌이다. 게다가 그 수치가 다른 거에 비해 상당히 높기에 매우 궁금해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그때 다시 메시지가 나타났다.
[정신력]
[대상의 내적인 강함을 나타낸 능력치. 수치가 높을수록 회복력, 저항력, 잠재력 등이 좋아진다.]
“워, 이건 좀 대박인데?”
설명대로라면 하나의 수치지만 내적인 모든 것을 말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다른 능력치 몇 개를 합한 느낌이랄까?
“후우…. 클래스만 바꾸면 진짜 딱인데….”
꽤나 좋은 정신력 수치에 만족스럽지만 클래스를 생각하니 상당히 아쉽다. 그렇게 혀를 차고 있을 때였다.
똑똑
“레인입니다, 칼슨 공자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밖에서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도대체 레인이 누구야?’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당황한 민호. 아니 이제 칼슨 드레이크가 된 그는 문밖에 남성이 누굴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때.
“으으윽!”
머릿속으로 다량의 정보들이 들어오며 상당한 두통이 느껴졌다. 짧은 순간 칼슨 드레이크의 기억이 모두 들어오며 잠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러는 와중 이내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공자님? 레인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당장이라도 들어올 것 같은 그 음성에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았다.
“크흠, 드, 들어와!”
헛기침을 하며 대답을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성. 대략 서른 전후 정도 되어 보이는 갈색 머리의 그는 어두운색의 꽤나 깔끔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레인 비투스. 드레이크 가문의 종속 가문 사람으로 현재 칼슨의 전담 시종을 하고 있었다.
“기침하셨습니까? 식사 시간이 되어서 모시러 왔습니다.”
“그, 그래? 알았어.”
“예.”
탁.
내 대답을 듣자마자 레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밖에 있던 하인들 몇이 옷가지를 들고 들어왔다.
‘뭐, 뭐야! 이건?’
낯선 이들이 다가와 자신의 옷을 갈아입히자 당황스러워 잠시 안절부절못했지만 이내 칼슨의 기억으로 자신이 귀족인 것을 상기해가며 자연스럽게 팔을 벌렸다.
‘아무리 그래도 어색한 건 어쩔 수 없군.’
머리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원래 자신은 칼슨이 아닌 김민호였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행위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속으로 불편함을 숨기며 한참을 있자 어느덧 의복이 입혀졌다. 옷 자체는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꽤나 고급스러운 소재인 듯 촉감이 굉장히 부드럽고 좋았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소매 장식이나 의복 단추에 굉장히 섬세한 자수가 새겨져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의복을 보면 잠시 감탄을 하고 있는 민호. 그런 그를 보며 레인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흠! 어서 가시지요. 영주님이 기다리십니다.”
“아, 그래.”
그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민호 아니 칼슨 드레이크는 문을 나서며 복도를 걸어 나갔다. 그러자 당혹스러운 표정을 하며 레인이 그에게 말을 건다.
“저, 칼슨 공자님. 식당은 그쪽이 아니라 이쪽입니다.”
“아, 그런가?”
“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 그래. 알겠네. 그럼 어서 앞장서게.”
“예, 공자님.”
순간 방향을 잘못짚어 아차 싶었는데 때마침 레인이 자청해서 안내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기억에도 늘 그가 이렇게 안내해줬던 거 같았다.
아무튼 그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니 어느덧 영주 가족들이 식사하는 식당에 도착하였다.
식당은 꽤나 큼지막한 공간이었는데 중앙에 기다란 식탁이 있었다. 꽤 큰 식탁이었는데 대충 눈대중으로 봐도 한 스무 명은 앉을 수 있어 보였다. 그렇게 큰 식탁에 자리를 채운 이는 불과 셋이라는 것이 다소 민망할 정도.
식탁에 앉아 있는 세 명.
영주인 칼슨의 부친인 군스 드레이크 자작과 모친인 미네르 드레이크 자작부인, 그리고 동생인 올슨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늦었구나. 어서 자리에 앉아라.”
칼슨이 온 걸 본 드레이크 자작은 근엄한 표정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직접적으로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풍겨오는 분위기를 보니 썩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인다.
“예, 아버지. 죄송합니다.”
살짝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은 칼슨. 식사를 하기 위해 나이프와 포크를 드는데 제법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은 두 개였는데 하나는 모친인 미네르, 다른 하나는 동생인 올슨이었다.
‘뭐가 도대체 맘에 안 들길래 저런 식으로 쳐다보는 거야?’
자신이 식사 시간에 늦었다는 것은 잘못한 것은 맞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눈총받을 일인가? 특히 모친인 미네르의 눈빛은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는 듯해 내심 소름까지 돋을 정도였다.
‘아, 그러고 보니 친엄마가 아니구나.’
원래 그녀는 정실이 아닌 두 번째 부인이었다. 드레이크 자작령 근방 부호인 피요르 남작의 딸이었는데, 피요르 남작은 인근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드레이크 가문이랑 어떻게든 연을 맺고자 이미 정실이 있었음에도 드레이크 자작과의 정략혼을 추진하였다. 물론 드레이크 자작 또한 손해 볼 것이 없고 오히려 피요르 남작가의 금전적 지원이 있었기에 흔쾌히 승낙하였다. 물론 결혼 상대인 미네르가 상당한 미인이라는 것 또한 어느 정도 한몫했지만 말이다.
‘아마 칼슨의 친모가 그 뒤로 몇 년 뒤에 죽었었지?’
아무래도 냄새가 난다.
칼슨의 어머니는 칼슨이 3살이 되던 여름에 사고로 죽었다. 그 당시 가주인 영주를 비롯하여 가족 모두가 인근 호수로 소풍을 나왔었다. 다만 미네르는 올슨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이 가지 못하였다. 따사로운 햇살에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때 갑작스러운 몬스터 무리들이 습격해 왔었다. 다행히 드레이크 자작은 실력이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었다. 거기다 호위 기사단 또한 출중하였기에 문제없이 대처하는 듯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몬스터들은 다른 이들보다도 유독 칼슨에게 달려들었다고 하였다.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그를 지키려 한 그의 어머니가 그 대신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하였던 것.
‘그때 이후로 칼슨이 트라우마가 생겨 몬스터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경향이 생겼지.’
직접 겪어보진 않았지만 그의 기억으로 살펴보건대 그때 느낀 죽음의 공포감이 생각보다 크게 마음을 잠식한 것 같다. 거기다 자신의 무능으로 인해 친모가 죽었다는 죄책감이 더해져 정신적으로 매우 피폐해졌으리라.
‘하지만 나에겐 그런 기억만 있을 뿐이지.’
직접 맞닥뜨려 몸소 체감한 것이랑 단순히 기억의 파편만 있는 거랑은 비교할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그가 가진 트라우마는 이제 사라졌다는 것이다. 생각을 마치며 마저 식사를 이어갔다. 꽤나 맛있는 음식이었기에 그 맛을 음미하며 먹고 있던 와중이었다.
띠링-
[퀘스트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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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에서 벗어나 영주가 되어라.
현재 영주인 군스 드레이크가 곧 사망합니다.
그의 뒤를 이어 드레이크 자작령의 영주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미네르와 올슨이 음모를 꾸몄기에 쉽지 않을 것입니다.
퀘스트 성공 시 보상
1. 드레이크 자작령
2. 2차 전직 활성화
퀘스트 실패 시
사망
수락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뭐?’
갑자기 눈앞에 생성된 메시지와 창.
내용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그 순간.
“크어어어억!”
쿵.
식사를 하고 있던 드레이크 자작이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