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둡고 한적한 밤.
사람 하나 없는 음침한 뒷골목.
한 남성이 그 정적을 깨며 정신없이 뛰고 있다.
“헉…! 헉!”
숨이 빠르게 차오른다. 폐에 더 이상 팽창될 여유가 없는지 살려달라며 괴로운 비명을 질러대었다.
‘씨발! 개새끼들!’
평소라면 서슴없이 내뱉을 욕지거리. 하지만 지금은 그걸 토해낼 여유조차 없었다.
화룡시 5구역 재개발 조합장 김민호.
이제 막 철거가 시작되는 5구역의 조합 업무를 마치고 밤늦게 퇴근하는 그에게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쓴 무리들이 덮쳐왔다. 신원을 알 수는 없었지만 김민호는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이번 선정에서 누락 된 철거업체의 끄나풀일 것이다.
‘내가 여기만 벗어나면 반드시 몇 배로 갚아주겠어!’
그의 얼굴이 미간에서부터 사정없이 일그러진다. 호흡이 흐트러져서인지 분노해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후우…….”
어느덧 찾아온 고요함. 주변을 둘러보니 이제는 괜찮아 보인다. 조금 안심한 그는 일단 지친 몸을 회복하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순간 그의 뒤에서 꽤나 부산스러운 소음이 느껴졌다.
“야! 놈이 저기에 있다! 어서 잡아!”
우르르르.
다소 지치고 짜증이 섞인 외침. 그것을 기점으로 수많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거대한 인파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걸음을 시작한 김민호. 하지만 이미 다리 근육은 한계가 왔는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불안정한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어버리면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다.
빠득-
비틀거렸지만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중심을 부여잡은 민호는 있는 힘을 쥐어짜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아, 씨팔! 저 새끼 또 도망치잖아! 야, 이번에 저놈 놓치면 니들 다 뒈질 준비해라!”
“네, 형님! 이 새끼들아! 멍하니 있지 말고 어서 튀어 나가!”
“예! 형님!”
다다다다다-
우르르 김민호의 뒤를 쫓는 무리. 좁은 골목길을 꽉 채운 그들은 마치 성난 물줄기처럼 그를 따라갔다.
‘젠장!’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며 그렇게 십여 분을 도망쳤다. 하지만 결국 막다른 길에 도달했고 그 힘겨웠던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허억……. 헉…. 씨발…….”
호흡을 가다듬으며 뒤를 돌아보자 우르르 몰려드는 철거업체 무리. 그들 또한 지쳐있었지만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에 모두 인상이 펴져 있었다.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건장한 이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하아…. 우리 조합장님. 그러게 우리가 주는 돈이나 처먹고 배나 든든히 채우시지, 왜 이리 일을 힘들게 만들어서 이 사단을 냅니까?”
“한 상무…. 이 새끼가!”
철거업체 우리 구역 담당 상무였던 한주원. 그동안 김민호에게 수없이 돈을 찔러주려고 온갖 수작을 부렸지만 결국 무산되어 본인의 입지가 상당히 줄어들어 있었다. 결국 이번 총회에서 입찰 상정에 실패하고 그에 대한 책임으로 그동안에 쏟아부은 매몰 비용을 자기 돈으로 채워 넣어야 할 판. 그 액수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에 까딱하다간 시끄러워질 수 있는 이런 무리수를 두었던 것이다.
“그러게 내가 경고했잖습니까? 이번에 우리 안 밀어주면 죽여 버린다고. 왜 사람 말을 못 알아들어요. 네?”
“야! 새끼야! 철거는 건설사가 하는데, 왜 니들에게 돈을 줘야 해? 조합원 돈이 니들 호주머니냐?”
“아 진짜 말 되게 못 알아먹으시네. 나이도 젊은 양반이 그렇게 유도리가 없나? 아니면 센스가 없는 건가? 그건 적당히 이주 쪽이나 범죄예방 같은 걸로 계약하면 되잖아? 그거 말고도 적당하게 구실 만들 수 있는 것도 수십 가지인데 우리가 그렇게 떠먹여 줘도 못 한다는 게 말이 돼?”
“뭐라고? 그걸 말이라고…….”
김민호는 기가 막혔다. 그런 걸 자신이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다만 그게 결국 파멸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행하지 않았던 것뿐이었지.
“야, 이 개새끼들아! 그렇게 해놓고 나중에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사업 지연시키고 조합에 돈 떨어질 때까지 빨아먹을 거 아냐? 그런 담에 문제 생기면 나한테 다 떠넘기려고 하는 거고! 네 놈들 수법 내가 모를 줄 알아! 응?!”
“하아……. 조합장님 아니 김민호 씨, 진짜 끝까지 이렇게 나오시겠다?”
“…….”
한숨을 내쉬며 목을 까닥거리는 녀석. 돌변한 놈의 태도에 민호는 살짝 한기가 느껴졌다.
“그래, 알았어. 이제는 댁을 적당히 치워버리고 우리가 그동안 작업한 놈을 거기다 꽂아 둘 수밖에.”
서릿발처럼 차가워진 녀석의 말투. 그에 맞지 않는 비릿한 미소에 민호는 뭔가 생각이 난 듯 눈을 부릅뜬다.
“뭐? 그게 무슨? 설마 조 이사가…?”
“크큭, 그러게 집안 단속을 잘했어야지.”
‘조상구, 이 새끼가…!’
조합 임원 중 한 명인 그의 행동이 얼마 전부터 이상했었다. 사사건건 자신에게 시비를 걸며 업무처리를 지연시키는 게 이상하다 생각했었는데, 설마 이놈들이랑 붙어먹었을 줄이야…. 만약 자신이 사라진다면 이사 중 연장자인 그가 직무대행을 맡을 테고 그 후로 조합은 이놈들의 꼭두각시가 될 터였다.
“아,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군. 야! 어서 끝내.”
“네!”
“야! 이 새끼들아! 이러고도 너희들이 괜찮을……!”
퍽!
미쳐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머리에 무언가 내리치며 큰 충격이 왔다. 동시에 눈앞이 흐려지면서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치지직-
[캐릭터 사망으로 인한 진행 상태 불능]
[진행 상태 불능으로 인한 시스템 오류 발생]
[오류 해결을 위한 방법 검색]
[…….]
뚜뚜
[해결방안 찾음]
[타 캐릭터로 전이하여 오류 해결]
[다른 캐릭터로 전이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