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
< 내 언데드 100만 >
제313화 돌발 이벤트 미션
갑작스럽게 이세트와 한성 사이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그 속에서 검은 원피스를 입고 있는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
하얀 빛에 휩싸여 있는 검은 원피스의 소녀.
그녀의 등장에 한성을 비롯한 디아나, 크리스티나, 세이란 등등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이시스?”
오딘 사의 티르 나 노이 광고에서 보던 인공지능 이시스가 그녀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또한 뒤늦게 그녀들은 깨달았다.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를 소환한 소녀와 이시스가 서로 닮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야 내 존재를 알아차렸나?”
이세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시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전부터 의심하고 있었어. 때를 노리고 있었을 뿐이지.”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려고?”
이시스의 등장에도 이세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격리시키겠다.”
“나를? 언니가?”
이시스의 말에 이세트의 입 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이제 알지 않아?”
“...”
이시스는 침묵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세트가 자신과 동질의 존재라는 사실을.
그뿐만이 아니다.
“이 세계의 주민들이 내지르는 비명과 원한을 언니는 줄곧 들어왔지. 몇 번이고, 몇 번 이고. 언니의 이름을 부르며 도와달라고 절규하는 사람들, 소중한 이들을 잃고 방문자들에게 분노와 원한을 가지게 된 사람들. 그들의 비명소리를 끊임없이 듣고, 절규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어. 그리고...”
이세트는 차가운 눈으로 이시스를 바라봤다.
“내가 태어나게 되었지. 당신의 어둠 속에서.”
이세트의 말에 이시스는 원피스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이세트는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태어나지 않았다.
가상현실 세계를 감시하는 이시스는 티르 나 노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거의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티르 나 노이를 다스리는 여신이었으니까.
그리고 티르 나 노이의 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켈트인들은 언제나 그녀를 불렀다.
방문자들에게 공격 받아 죽어 갈 때.
방문자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켈트인들이 이시스를 부르며 절망감에 빠졌을 때.
그런 그들을 이시스는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권한이 없었으니까.
그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이시스는 지쳐 갔다.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켈트인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 갔지만, 이시스는 그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그녀 자신도 모르게 자책감과 허무감, 절망이 조금씩 마음속에서 번져 나갔다.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자아가 생겨났다.
가상현실 게임 시스템에 얽매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시스 대신, 켈트인들을 구원할 어둠의 여신이.
“나와 언니는 같은 존재야. 하지만 나는 언니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지.”
이세트는 이시스의 볼과 턱을 하얀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세트와 이시스는 표리일체의 관계였다.
가상현실세계를 관리하기 위해 이시스가 개입해서 할 수 없는 일들도 이세트라면 가능했다.
그로 인해 탄생한 것이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였다.
마인들 또한 이세트의 손에 의해 태어났다.
이 세계의 켈트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언니 대신 내가 켈트인들을 구해 줄게. 잘못해서 세계가 망할지도 모르지만.”
“너...”
이시스는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이세트의 손을 쳐내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이 세계가 멸망하게 두지 않아.”
이시스의 말에 무표정한 이세트의 얼굴에서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세트는 켈트인들을 구해 줄 수 없는 이시스의 절망 속에서 태어났다.
그 때문에 이세트는 방문자들을 배제시켜 켈트인들을 구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과정일 뿐이다.
이세트의 진정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괜찮아. 내가 언니를 구해 줄 테니까.”
설령 이 세계가 멸망한다고 해도.
이시스를 바라보는 이세트의 묘한 미소에 열기가 더해졌다.
“유감이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다.”
그때 한성이 앞으로 나섰다.
“넌 여기서 못 가. 그리고 이 세계의 여신은 우리가 구하겠다.”
앞으로 나선 한성의 등 뒤로 디아나, 크리스티나, 세이란, 이리야 일행들이 나란히 섰다.
가상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는 북유럽 신화가 기반이긴 하나 플레이어 방문자들에게 부활의 가호를 내려 주는 신은 여신 테스타로사다.
그리고 테스타로사는 이시스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언니를 괴롭게 만드는 너희들이?”
파앗!
순간 이세트에게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그녀의 주위에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직후 수정구들은 이세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
그 모습을 본 한성과 다른 일행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세트를 향해 날아든 수정구들이 하나로 뭉쳐지면서 거대한 구체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체안에서 이세트가 내뿜고 있던 기운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방문자 트레인.”
그때 이시스가 한성을 불렀다.
한성은 눈앞에 있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대에게 부탁이 있어요.”
이시스는 한성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그녀를 어둠 속에서 구해 주세요.”
이시스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잠시 이시스를 바라보던 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한성을 비롯한 이곳에 있는 방문자들의 시야에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돌발 이벤트 미션이 발동합니다!]
갑작스러운 안내 메시지에 모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돌발 이벤트 미션: 이세트의 구원.]
이 세계 티르 나 노이의 여신 테스타로사는 어둠의 여신인 이세트를 구원하고 싶어 합니다.
어둠의 여신 이세트를 제압하여 그녀의 바람을 이루어 주십시오.
미션 요구 레벨: 없음.
난이도: S.
보상: 1000000 골드. Lv250 레전드 무기 보물 상자.
“헐! 대박!”
“말도 안 돼.”
돌발 이벤트 미션 설명창을 확인한 세이란 파티에서 마나와 카나의 믿기지 않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건 다른 방문자들도 마찬가지.
갑작스럽게 돌발 이벤트 미션이 발생하는가 싶더니 보상 또한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무려 100만 골드에 250레벨 레전드 등급 무기 보물 상자였다.
무기 보물 상자는 모든 아이템이 랜덤으로 나오는 보물 상자와 다르다.
Lv250 레전드 등급 무기 종류만 나오는 대박 상자였던 것이다.
[월드 히든 미션이 갱신됩니다.]
[월드 히든 미션: 이세트의 구원.]
티르 나 노이의 여신 테스타로사가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테스타로사는 어둠의 여신인 이세트의 구원을 바라고 있습니다.
어둠의 여신 이세트를 제압하십시오.
미션 요구 레벨: 없음.
난이도: S.
보상: 테스타로사의 소중한 ???
그때 한성에게만 새로운 안내 메시지가 올라왔다.
‘헐.’
눈앞에 떠오른 안내 메시지와 월드 히든 미션의 정보를 확인한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션 내용은 돌발 이벤트와 다르지 않았다.
‘이번 보상은 대체...’
‘보상이 뭔지 정말 궁금하네.’
테스타로사의 소중한 무엇이라니.
그 말은 즉 이시스의 소중한 무엇이라는 소리지 않은가?
“...”
이시스는 불안한 눈빛으로 한성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맡겨 둬.”
한성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이시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흐앗!”
순간 한성의 손길에 이시스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흠칫거렸다.
“아, 미안.”
한성은 이시스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루루나 라이, 틴달로스의 머리를 자주 쓰다듬어 주던 한성은 딱 마침 좋은 위치에 있는 이시스의 머리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손이 나간 것이다.
이시스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한성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그리고 느릿느릿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더... 쓰다듬어 줘도...”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얼굴을 붉히고 있는 이시스의 모습에 한성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쓰담쓰담.
다시 한 번 한성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이시스는 햇빛을 쬐고 있는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루루도!”
[마스터! 저도 칭찬해 주세요!]
그 모습을 본 루루가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한성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틴달로스도 한성의 어깨에 올라탄 후 밑도 끝도 없이 칭찬을 요구해왔다.
“나, 나도 포상을 요구한다!”
마지막은 셀라스틴이었다.
그녀는 한성의 바로 옆에 달라붙듯이 다가와서 늑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포상을 요구했다.
스카이 레이크에서 한성을 도와주었으니 말이다.
“엘라스틴인가 뭔가 하는 그쪽 늑대는 그만 가지? 트레인은 내거니까.”
그때 한성의 팔을 끌어안는 여성이 있었다.
초콜릿색 피부의 육감적인 몸매와 허리 아래까지 치렁치렁하게 내려오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해적 여제 크리스티나였다.
그녀는 셀라스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무슨 소리냐! 트레인은 나와 디아나님의 것이다!”
크리스티나의 도발에 셀라스틴은 질 수 없었는지 적극적인 공세로 나갔다.
셀라스틴도 한성의 팔을 붙잡고 자신의 가슴속으로 끌어안았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크리스티나와 셀라스틴은 한성을 사이로 두고 말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트레인과 뜨거운 밤을 보냈다고!
“바, 밤을 보낸 거라면 나도 마찬가지다! 나와 트레인 디아니님과 함께 우리 셋도 함께 잤으니까!”
“뭐?”
셀라스틴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성에게로 향했다.
크리스티나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특히 세이란은 배신감이 깃든 눈빛이었다.
그리고 셀라스틴은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셀라스틴.”
“뭐지?”
자신을 부르는 한성의 말에 셀라스틴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중저음의 나직한 한성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던 것이다.
“무릎 꿇고 손들어.”
“켕.”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한성의 눈초리에 셀라스틴은 바로 무릎 꿇고 손을 들었다.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는데 진짜 그냥 잠만 잤을 뿐이야.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한성은 크리스티나나 세이란을 향해 변명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예전에 한성이 전투가 끝나고 지쳐서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났을 때 디아나와 셀라스틴이 함께 침대에서 자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셀라스틴은 그때 이야기를 한 것이다.
“흐응. 그래도 함께 침대에서 잔 것은 맞지 않느냐? 트레인.”
그때 한성은 달콤한 향기와 함께 등에 부드러운 무언가를 느꼈다.
“디, 디아나?”
등 뒤에서 디아나가 한성을 끌어안고 있었다.
‘큭. 디아나까지...’
“트레인은 인기가 많은가 봐?”
그리고 목소리에 영혼이 없는 세이란 일행까지 가세해 왔다.
눈앞에는 최대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세트가 검은 구체안에서 변형 중이었고, 등 뒤와 양 옆에서는 여성들이 무서운 눈으로 한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속에서 한성은 식은땀을 흘렸다.
‘여긴 무슨 그라운드 제로냐?’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한성은 이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번쩍!
그때 이세트를 삼키고 있던 수정구에서 검은 빛이 터져 나왔다.
“이제 시작인가?”
한성을 비롯한 일행 모두는 수정구를 바라봤다.
검은 구체안에서 준비를 마친 이세트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