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1
< 내 언데드 100만 >
제311화 이세트의 정체
가상현실 세계 티르 나 노이의 중심부.
그곳 상공에는 수십 킬로미터 규모의 천공섬이 존재한다.
중앙 대륙 위에 떠 있는 하르모아와는 별개의 섬이다.
그리고 그 섬 중심에 세계수인 유그드라실이 존재한다.
나무 끝이 보이지 않을 크고, 둘레만 해도 무려 수십 미터다. 높이는 수백 미터가 넘는다.
이 세계수에서 티르 나 노이 세계를 관리하고 있는 존재가 다름 아닌 유그드라실 인텔리전스 시스템 인터페이스 유닛(Yggdrasil Intelligence System Interface Unit), 통칭 이시스이다.
“…….”
세계수의 꼭대기에서 이시스는 티르 나 노이 전체를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다.
“드디어 꼬리를 드러냈나?”
이전부터 이시스는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인지범위 밖에서 누군가가 활동하고 있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가상현실 세계를 구현하고 있는 게임 시스템, 양자 컴퓨터인 마더가 문제라고 판단하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가상현실 세계에서 계속 일어났다.
미리 설계된 장소에서 등장할 리 없는 몬스터가 출몰한다던가, 있을 수 없는 기상변화나, 설계되지 않은 몬스터 변이가 일어난다던가.
그리고 그 중심에는 키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
얼마 전부터 나돌아 다니기 시작한 수정구.
그건 위험했다.
확실히 가상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는 리얼리티와 자유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일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그런 반전이야말로 티르 나 노이를 즐기는 컨텐츠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가상현실 프로그램 자체에 개입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걸 마더 시스템은 정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확실히 티르 나 노이에는 방문자나 몬스터들을 변신시켜 주는 아이템이 존재한다.
바로 그 점을 안드로 말리우스의 수정구가 교묘하게 파고든 것이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야.’
이시스는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게임 속 아이템을 이용한다고 해도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것을 마더 시스템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마더 시스템은 정상이라고 하며 이시스의 요청과 요구를 무시했다.
가상현실 세계를 구현하는 마더 시스템은 절대적이다.
단지 서버통합관리와 가상현실 세계를 감시하고 전반적인 시스템을 유지 보수하는 이시스에게 프로그램 개입 권한은 없었다.
가상현실 세계를 구현하는 프로그램은 오딘 사의 핵심 기밀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오딘사의 운영자들도 마찬가지.
그리고 설령 오딘사의 간부가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접속하려 한다면 마더 시스템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마더 시스템은 가상현실 프로그램이 정상이라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마더 시스템을 무시하고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직접 접속하려면 일단 셧다운을 해야 한다.
가상현실 세계를 정지 시켜야 접속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오딘 사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되며, 전세계 플레이어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그 때문에 오딘 사로서도 함부로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개입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오딘 사는 마더 시스템에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와 이시스의 추측만으로 모험을 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대체 어떻게 마더 시스템을 속인 것일까?’
불과 얼마 전 플레이어 방문자의 아바타 캐릭터가 강제 삭제됐다.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명백하게 개입한 흔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마더 시스템은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프로그램과 시스템들이 정상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대체 누가?’
이시스는 계속 의심을 했다.
대체 누가 마더 시스템을 속일 수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이시스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를 처리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했다.
바로 티르 나 노이에서 몇 존재하지 않는 월드 히든 미션이다.
월드 히든 미션을 만든 이시스는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 시켰다.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를 가지고 음모를 꾸미는 무리들과 집단을 상대하는 인물에게 월드 히든 미션을 내렸다.
그 인물은 이시스의 생각 이상으로 활약을 하며 문제점들을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를 만들어 내고 있는 존재가 꼬리를 드러낸 것이다.
‘앞으로 조금 더. 조금만 더 있으면 정체를 밝혀낼 수 있어.’
대체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를 만든 존재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목적은?
이시스는 조금 더 기다렸다.
아직 움직일 때가 아니었으니까.
* * *
움찔 거리는 데스스토커의 뒤에서 한성은 전설의 육죽창을 꽉 움켜잡으며 앞으로 찔러 넣었다.
푹욱!
쉬아악!
꼬리와 배 사이를 찔린 데스스토커는 전신에 힘이 빠졌다.
쿠웅!
데스스토커의 긴 꼬리가 힘을 잃고 지면에 떨어져 내렸다.
그것을 본 한성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걸로 시원하게 가즈아아아!”
한성은 전설의 육죽창을 고쳐 잡으며 데스스토커의 꼬리 끝을 향해 찍어 내렸다.
푸욱!
쉬아아아아아아아악!
데스스토커는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어마어마한 괴성을 내질렀다.
전설의 육죽창이 데스스토커의 영 좋지 않은 곳을 찌르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한성이 알고 찌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독침과 꼬리 사이에 있는 구멍에 전설의 육죽창이 박혀 들어갔다.
그곳은 에너지 순환을 위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면서 검은 마력포를 쏠 때 발생하는 열을 냉각시켜 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쉬아아아.
“뭐야? 진짜 이걸로 끝이야?”
데스스토커는 배를 깔고 지면에 엎드린 채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푹푹푹!
한성은 데스스토커의 꼬리와 마력포를 쏘던 독침 사이에 연달아 죽창을 찔렀다.
쉬앗! 쉬아앗! 쉬아아아앗!
전설의 육죽창 찌르고 나올 때마다 데스스토커는 기묘한 괴성을 질렀다.
“확실히 여기가 급소가 맞긴 맞았나 보네.”
한성은 데스스토커의 꼬리 끝에서 쏘아지는 검은 마력포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단 꼬리 끝에서 검은 마력포 공격을 하지 못하게 중점적으로 공격을 한 것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부분이 급소였던 모양이었다.
데스스토커의 공략 부분을 찾은 한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 데스스토커는 검은 마력포를 쏘지 못할 것이다.
데스스토커의 독침과 꼬리가 연결되는 부분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라 한성은 지금 상황을 역전할 수 있는 시간도 벌 수 있었다.
[마스터! 시체 모아 왔어요! 칭찬해 주세요! >_<]
그때 한성의 그림자 속에서 틴달로스가 불쑥 튀어 나오면서 귀여운 이모티콘을 머리 위에 그렸다.
“굿.”
한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주 좋은 타이밍에 틴달로스가 시체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나와라! 데스나이트! 다크나이트! 팬텀스티드!”
틴달로스가 가져온 시체들을 제물로 한성은 유령마들과 함께 죽음의 기사단들을 소환해 냈다.
비록 틴달로스가 수거해온 시체들의 숫자가 적어서 수십 마리 정도 밖에 소환하지 못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육중한 갑주로 무장한 죽음의 기사단은 유령마 팬텀스티드를 타고 모습을 드러냈다.
“끝내라.”
아직 상공에는 와이번들이, 지상에는 울프들도 남아 있는 상황.
거기에 언데드 나이트들까지 가세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현재 데스스토커는 한성에게 중요한 부위를 공격당해 빌빌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비벼볼 만하지.’
한성은 데스스토커를 내려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후, 데스스토커 주위에 소환되어 있는 한성의 언데드 소환수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 * *
죽음의 기사단을 소환한 후 전투는 길지 않았다.
한성에게 급소를 공격당한 데스스토커의 전투력이 엄청나게 급감해 있었기 때문이다.
꼬리에서 쏘아지던 검은 마력포가 봉인되었고, 어찌된 영문인지 데스스토커의 움직임이 굉장히 느려졌다.
나머지는 다크 나이트들과 데스 나이트들이 집단 다구리를 시전하면서 데스스토커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뻗어 버렸다.
또한 다른 변이 몬스터들도 거의 정리되어 가는 중이었다.
크리스티나와 에키드나, 그리고 검성 세이란과 그녀의 파티가 활약을 한 것이다.
거기다 디아나와 셀라스틴까지 있는 상황.
그녀들을 중심으로 마스터 솔져들과 언데드 나이트들, 그리고 스켈레톤 마수들까지 포함된 한성의 언데드 군단까지 있었다.
아무리 변이 몬스터들이 강하다고 해도 200마리로는 버틸 수 없었다.
결국 얼마 남지 않은 변이 몬스터들이 끝까지 저항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포기해라.”
변이 몬스터들의 보스격인 데스스토커를 처리한 한성은 이세트의 앞에 섰다.
이세트는 한성이 다가와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더 이상 저항 해 봤자 무의미하다. 포기해라.”
한성은 카르엘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해주며 이세트르 바라봤다.
“싫어.”
그때 이세트의 작은 입이 열리며 거절의 의사를 비쳤다.
“너희 방문자들은 이 세계에 해가 돼. 너희들이 이 세계에서 하는 일들이 뭐지? 너희들의 손에 죽어간 켈트인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어?”
“뭐?”
뜻밖의 말에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세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말을 일었다.
“너와 싸우다 죽은 마인들은? 그들이 왜 마인이 되었는지, 그리고 방문자들을 싫어하는지 알고 있어?”
“그 녀석들이 얼마나 위험한 놈들인지는 알고 있지.”
“그들은 피해자들이야. 너희 방문자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거든. 그래서 그들은 복수를 하기 위해 마인이 되었지.”
“…….”
한성은 가만히 이세트를 노려봤다.
가상현실 세계에서 방문자들은 죽어도 다시 부활한다.
하지만 켈트인들은 한 번 죽으면 끝이다.
그리고 티르 나 노이를 즐기는 플레이어들이 많은 만큼 별별 이상한 놈들도 많았다.
방문자들 중에서 PK를 전문으로 하는 놈들도 있었고, 이유 없이 재미로 켈트인들 죽이는 미친놈들도 없잖아 있었다.
물론 그런 경우 제재를 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방문자들에게 재미로 죽는 켈트인 희생자들이 매일 나오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너의 정체는 대체 뭐지?”
한성은 이세트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세트도 물끄러미 한성을 바라봤다.
잠시 후, 이세트가 입을 열며 대답했다.
“나는 이 세계의 수호자. 너희 방문자들에게서 켈트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보의 바다에서 탄생한 존재. 이시스의 어둠이야.”
그 순간 한성의 시야에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