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
< 내 언데드 100만 >
제306화 조력자들
전황이 역변했다.
검은 후두를 눌러쓰고 있는 어둠의 신봉자들을 공격하고 있는 무리들이 나타난 것이다.
검은 후드를 쓰고 있는 어둠의 신봉자들과 대조적으로 그들은 은빛 광택이 감도는 망토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들은 한 명 한 명 어둠의 신봉자들을 쓰러트려 갔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낯이 익은 인물들도 있었다.
가장 먼저 루루가 한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인물을 향해 팔을 벌리고 달려갔다.
“망고스틴 언니!”
“셀라스틴이다!”
맛있을 것 같은 이름을 정정하며 셀라스틴은 다가온 루루를 안아들었다.
루루는 셀라스틴의 얼굴에 얼굴을 부비며 반가움을 표했다.
그 뒤를 이어 한성도 셀라스틴을 향해 다가갔다.
“셀라스틴.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지금 어둠의 신봉자들을 상대하고 있는 자들은 디아나가 이끄는 미스릴 조직원들일 터.
대체 어떻게 해서 그들이 천공섬 하르모니아에 있는 것일까?
“트레인!”
한성을 본 셀라스틴의 꼬리가 격렬하게 좌우로 흔들거렸다.
“오랜만이다.”
한성이 중앙 대륙에 있을 때, 자주 보지 못했었다.
그 때문에 셀라스틴은 굉장히 반가운 표정으로 한성의 곁에 다가갔다.
파닥파닥.
그녀의 늑대귀가 위아래로 격렬하게 움직였다.
마치 쓰다듬어 달라는 것처럼.
“왜 네가 여기 있어?”
하지만 한성은 셀라스틴의 모습을 외면하며 자기 할 말만 했다.
“큭!”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성의 무시에 셀라스틴은 몸을 떨었다.
“어둠의 신봉자들 아말감 녀석들을 쫓아서 천공섬에 올라왔다.”
“아말감을 쫓아서 왔다고?”
“그래. 너도 알고 있다시피 우리들은 아말감 녀석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정보길드 블랙 캣츠의 도움을 받으면서 말이야.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말감에서 대규모 움직임을 보이더군.”
셀라스틴이 속해 있는 미스릴은 어둠의 신봉자들인 아말감을 감시하고 있었다.
애초에 미스릴은 아말감에 대항하기 위해 디아나가 만든 조직이었다.
아말감이 움직였다면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말감에서 무언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래서 우리들도 준비를 했지. 아말감에서 무슨 짓을 벌이면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말이야.”
“대응이라고?”
셀라스틴의 말에 한성은 주변을 둘러봤다.
스카이 레이크 주변에서 미스릴의 조직원들과 아말감의 조직원들이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조력자들도 불렀어.”
“조력자들? 누구 말이야?”
조력자들을 불렀다니?
대체 어떤 인물들을 불렀다는 말인가?
한성의 반문에 셀라스틴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너네들 진짜 재미없다.”
흑혈랑, 레비아는 나른한 얼굴로 개 한 마리와 검은 골렘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레이몬과 싸우다가 중간에 페르젠과 상대를 바꿨다.
이상한 패드립을 날려 대며 싸우는 레이몬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가능하면 다양한 상대와 싸워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케륵케륵.
기이이잉.
그리고 지금 라이와 다크 메탈 골렘은 죽을 지경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나마 레비아가 그럭저럭 놀면서 상대해 준 덕분에 어떻게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미스릴 조직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레비아의 손속이 매서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라이는 배에 상처를 입고 피거품을 물고 있었고, 스페셜 크로스 레인지 배틀 모드인 다크 메탈 골렘도 데미지를 꽤 심하게 입은 상황이었다.
다크 메탈 골렘의 구동부에서 금속 마찰음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고, 초진동 마나 블레이드 그란세이버는 이미 금이 갈 때로 가 있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빨리 끝내야겠네. 너희들도 불만 없지?”
레비아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라이와 다크 메탈 골렘을 바라봤다.
그런 레비아의 양손에는 붉은 마나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블러드 클로가 블레이드처럼 길게 솟아나오고 있었다.
크르르.
라이와 다크 메탈 골렘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레비아의 블러드 클로에 당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럼...”
고양이처럼 자세를 낮춘 레비아는 라이를 바라보며 붉은 혀로 입술을 핥았다.
“피 맛 좀 볼까?”
스팟!
레비아는 붉은 잔상을 허공에 남기며 라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라이 또한 가만히 당할 생각이 없었는지 앞발에서 푸른 전격을 휘감은 붉은 화염이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맞붙게 된다면 라이의 필패다.
배의 상처 때문에 힘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다크 메탈 골렘도 구동부에 손상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움직임이 굼떴다.
바람처럼 날아드는 레비아의 블러드 클로를 대신 막아 주기에는 느렸다.
이윽고 블러드 클로가 라이의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순간,
까앙!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강아지 괴롭히지 말아 줄래?”
“누구냐!”
갑작스러운 사태에 레비아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라이의 목 앞에 붉은 화염이 흘러나오고 있는 완만한 곡선의 시미터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시미터의 주인은 정열적인 동남아계열 미녀였다.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였으며,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붉은 머리카락은 마치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여인의 붉은 눈동자도 생기 있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레비아에게 입을 열었다.
“나? 우리 강아지 주인의 애인인데?”
“뭐라고?”
레비아는 갑작스럽게 나타나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낸 여인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양손에 붉은 화염이 흘러나오고 있는 시미터를 들고 있는 초콜릿 피부를 가진 글래머러스한 미녀.
그녀는 다름 아닌 그레이스 오 말리 해적단의 해적여제, 크리스티나였다.
* * *
“건방진 놈! 당장 무릎 꿇고 투항해라! 그러면 고통 없이 죽여주마!”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의 말은 듣지 않는다. 네놈의 부모님은 만수무강하시냐?]
“이런 빌어먹을 놈이!”
페르젠은 울화통이 터졌다.
어째서 레비아가 상대를 바꾸자고 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몬은 상대하기가 너무 까다로웠다.
물리적인 공격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공격까지 함께 해 왔으니까.
까아앙!
페르젠의 블러드 체이서가 레이몬의 검은 갑주를 후려쳤다.
[큭!]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장검으로 방어하긴 했지만 강렬한 힘에 의해 뒤로 밀려 나갔다.
그리고 사실 레이몬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검은 갑주 이곳저곳에 금이 가고 깨져서 레이몬의 흑마력이 줄기줄기 새어 나가고 있었으니까.
[겨우 이 정도냐? 조금 전 부모님 출타하신 수인족 소녀보다 못하군. 이래서야 네놈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구나. 남자 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말이야.]
하지만 레이몬의 입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페르젠에게 쉴 새 없이 정신공격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미친놈이!”
페르젠의 블러드 체이서에서 붉은 기운이 세차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름 봐 주면서 싸웠었는데 지금은 거의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레이몬은 버텼다.
페르젠의 생각보다 레이몬의 방어력이 높았던 것이다.
괜히 레이몬이 마계기사가 아니었다.
“끝장을 내주마.”
페르젠은 마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에 호응하듯 블러드 체이서에서 붉은 기운이 유형화되기 시작했다.
블러드 체이서 위로 덧씌워지면서 붉은 빛을 띄고 있는 투명한 블레이드가 생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페르젠의 전투 스킬 중 하나인 블러드 레인 포스(Blood Rein Force)였다.
장검 크기였던 블러드 체이서는 지금 5미터 길이의 거대한 검으로 변화했다.
5미터 길이의 블러드 체이서를 치켜든 페르젠은 레이몬을 노려봤다.
“이번에는 또 뭐라고 안 지껄이는 거냐? 마지막 유언 정도는 들어주마.”
[네놈 어머니께서는 너 이러고 다니는 거 아시냐?]
“미친 놈.”
마지막 유언까지 부모님 패드립을 날리는 레이몬의 말에 페르젠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긴 페르젠은 모를 것이다.
레이몬이 마계의 지배자, 마왕한테도 부모님 패드립을 날렸다가 쫓겨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확실히 페르젠의 말대로 레이몬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나마 한성이 레이몬을 교육시킨 덕분에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상태였지만.
“죽어라!”
후우우웅!
3미터 길이의 핏빛 대검이 레이몬을 향해 빛살처럼 내려쳐졌다.
피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빠른 일격.
블러드 레인 포스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레이몬은 재빨리 방어 태세에 들어갔다.
아무리 레이몬의 자체 방어력이 좋다고 해도 블러드 레인 포스를 고스란히 맞아 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레이몬은 있는 마력, 없는 마력 총동원을 해서 장검에 쏟아 부었다.
그 덕분에 칠흑의 장검이 조금 더 커졌다.
그래봤자 블러드 레인 포스의 절반에도 못 미쳤지만 말이다.
쿠웅!
눈 깜짝할 사이에 블러드 레인 포스와 칠흑의 장검이 맞부딪쳤다.
[큭!]
위에서 아래로 내려쳐지는 블러드 레인 포스의 검격을 레이몬은 칠흑의 장검을 눕혀서 받아냈다.
격돌 순간 레이몬의 발도 지면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또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터져 나가면서 레이몬을 중심으로 작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그 상태에서 페르젠과 레이몬은 힘겨루기 상태로 들어갔다.
여기서 지게 되면 레이몬은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된다.
그 때문에 레이몬은 마력을 끌어올리며 대항했다.
쩌적!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칠흑의 장검에서 금이 가면서 흑마력이 새어나오기 시작했고, 레이몬의 전신 갑주의 금이 가고 깨진 부분에서 흑마력이 줄줄 새어나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슈와아아아아아악!
“...!”
페르젠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왜냐하면 그의 오른쪽 편에서 어마어마한 황금빛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바밧!
블러드 레인 포스를 해제한 페르젠은 재빨리 이동 스킬을 시전하며 뒤로 최대한 물러났다.
그 직후 페르젠과 레이몬 사이로 황금빛 파도가 지나갔다.
“어떤 놈이냐!”
페르젠은 눈살을 찌푸리며 황금빛이 쏘아진 지점을 노려봤다.
페르젠이 노려보고 있는 곳에서 포니테일 스타일의 황금색 머리카락과 금색 눈을 가진 은빛 갑주를 입고 있는 여인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위대한 황금의 검.
사상무장병기(思想武裝兵器),
성검(聖劍) 엑스칼리버(Excalibur).
“넌 내가 놈으로 보이냐?”
가상현실 게임 종합 랭킹 최상위 랭커, 검성 세이란.
그녀가 페르젠의 눈앞에 등판 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마리사를 비롯한 마나와 카나도 있었다.
* * *
스카이 레이크를 중심으로 한 전장에서 과거 한성에게 도움을 받았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레이스 오 말리 해적단에서는 해적 여제 크리스티나를 시작으로 카트리나 해적선의 선장인 에키드나와 부선장인 미나도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검성 세이란을 중심으로 포근한 누님 같은 마리사와 장난기 넘치는 마나와 카나도 있었다.
그녀들뿐만이 아니라 이리야도 크리스토 백작가의 사병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이리야의 곁에는 네리아를 비롯한 사라와 세라가 호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이구나. 나의 사랑스러운 제자.”
한성이 있는 장소에서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은색 머리카락과 루비 같은 붉은 눈동자, 초콜릿 빛 피부와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디아나가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포식자의 미소처럼.
“디, 디아나...”
한성은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며 디아나와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