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
< 내 언데드 100만 >
제291화 스카이 레이크
“이, 이 맛은!!!”
문어다리를 맛본 그란트는 두 눈을 부릅뜨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료가 답답한지 소리쳤다.
“그래서 무슨 맛인데! 먹을 만하냐?”
모두의 시선이 그란트의 입으로 향했다.
그란트의 행동에 따라 자신들의 석방 여부가 결정된다.
‘제발 다 먹을 수 있기를!’
‘우린 너만 믿고 있어!’
‘먹어라! 그리고 또 먹어라! 그것만이 우리가 살길이다!’
‘그란트 가즈아!!!!’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과 화이트 헤론 클랜원들은 온갖 염원이 깃든 눈빛으로 그란트를 바라봤다.
하지만 문어다리 한 접시를 입안에 털어 넣은 그란트가 이후 계속 가만히 있자, 동료 하나가 상태를 확인했다.
“헉! 누, 눈을 뜬 채로 기절했잖아!”
“……!”
그란트의 상태를 확인한 동료의 말에 절망감이 지하 감옥을 감돌았다.
문어다리 한 접시에 그란트가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을 하고 만 것이다.
“저, 저건 악마의 음식인가!”
“대체 무슨 맛이길래…….”
클랜원들은 두려운 눈으로 요구르트 문어다리 스페셜 민트 초코맛 루루 버전을 바라봤다.
[근성이 없는 놈이로군. 고작 이런 음식을 한입 먹었다고 기절을 하다니. 이 정도는 나도 먹을 수 있…… 그르르륵!]
털썩.
순간 레이몬이 괴성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그란트가 먹다 남긴 민트 초코맛 요구르트 절임 문어다리를 한 입 베어 문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레, 레이몬!”
갑자기 레이몬이 쓰러지자 한성은 깜짝 놀란 얼굴로 다가갔다.
[미, 민트 초코는 악마의 음식이다…… 커헉.]
레이몬은 쥐어짜 내는 목소리로 겨우 말하더니 이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쓰러졌다.
“레이몬!”
한성은 레이몬을 부둥켜안으며 소리쳤다.
언제나 칠흑의 투기를 흘리던 레이몬은 지금은 모든 걸 불태운 것처럼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폴짝폴짝.
그때 한성의 옆으로 루루가 깽깽이 발로 뛰어왔다.
그러더니 아직 남아 있는 초록색과 하얀색이 버무려져 있는 문어다리에 손가락을 쿡 찍었다.
그리고 한성이 어떻게 반응을 하기도 전에 손가락 끝에 찍혀져 있는 민트 초코를 혀로 할짝였다.
“역시 민트 초코는 맛있어영!”
“…….”
한성을 비롯한 지하 감옥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두려운 눈으로 루루를 바라봤다.
거한이자 대식가인 그란트가 한 입 먹는 순간 눈을 뜬 채로 기절했고, 마왕에게 부모님 드립을 날리는 마계기사 레이몬도 한입 먹고 쓰러졌다.
그런데 이제 열 살이 좀 넘어 보이는 루루는 그걸 맛있게 할짝할짝거리며 먹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터무니없는 녀석을 소환수로 삼은 건가?’
엄청난 미각치인 루루를 바라보며 한성은 식은땀을 흘렸다.
* * *
천공섬, 하르모니아.
몇 개월 전 업데이트된 새로운 챕터와 대륙이다.
하늘 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하르모니아는 250레벨이 넘는 몬스터들이 존재한다.
그 덕분에 만렙에 가까운 방문자들과 수많은 클랜들이 천공섬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천공섬의 입구에서부터 안으로 이동해 들어가면서 던전이나 필드를 공략해나간다.
현재 대형 클랜들은 중간 지점까지 공략해 들어가 있다.
대부분 일반 방문자들이나 중소규모 클랜들은 천공섬 초반부 지점에 거점을 만들어 주변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건 블랙 레이븐 클랜도 마찬가지.
“1공대 전방에서 공격을 막아라. 2공대는 손을 멈추지 마! 계속 공격해! 3공대는 비상상황에 대비해라!”
천공섬 하르모니아의 중간 지점에서 좀 떨어진 장소.
천공섬 자체도 엄청나게 넓기 때문에 다른 클랜과 겹치는 일은 아직 거의 없었다.
그리고 슈타인이 이끌고 나선 블랙 레이븐 클랜의 정예 병력, 슈바르츠 솔다트(검은 병사)들은 천공섬의 스카이 레이크까지 진격해 들어갔다.
스카이 레이크는 천공섬의 입구와 중앙 지점 사이에서 딱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대략 천공섬의 25%까지 공략한 셈이었다.
키야아아아아악!
슈타인이 이끌고 있는 슈바르츠 솔다트들은 스카이 레이크의 필드 보스인 레이크 서펜트를 상대 중이었다.
스카이 레이크는 직경이 1킬로미터가 넘는 호수였다.
스카이 레이크의 중심부에는 원형 분수대가 호수 위에 떠올라 있는데, 그 중앙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물의 중심부에 무려 머리가 8개나 달린 레이크 서펜트가 괴성을 지르며 슈바르츠 솔다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슈바르츠 솔다트들 또한 원형 분수대 아래에서 레이크 서펜트를 올려다보고 있는 상황.
보통의 호수라면 호수로 들어온 슈바르츠 솔다트들은 물속에 빠져 있어야 하겠지만 스카이 레이크는 조금 달랐다.
스카이 레이크의 표면은 마력의 힘을 받아 두터운 장력이 형성되어 있었다.
발로 밟고 서 있을 정도로 압축되어 있는 물이 호수 위로 덮여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 때문에 호수 위로 슈바르츠 솔다트들이 뛰어다닐 수 있으며, 반대로 물속에 있는 생명체들은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 위치상 슈바르츠 솔다트들이 불리했다.
레이크 서펜트는 위에 있고, 슈바르츠 솔다트들은 밑에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바르츠 솔다트들은 슈타인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전격 계열 원거리 공격과 탱커들로 이루어진 1공대가 적절하게 방어를 하며 레이크 서펜트들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런 슈바르츠 솔다트들 뒤에 있는 슈타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설마 트레인 놈이 이렇게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일까.
카슈발로부터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트레인의 레벨이 굉장히 낮아진 데다가 네크로맨서 계열 스킬을 썼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래서 지명 수배 및 추적대의 규모도 축소시켜서 트레인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했다.
그 당시 트레인이 훔쳐 간 창고 열쇠가 뼈아팠기 때문이다.
으득.
‘망할 자식.’
슈타인은 이를 갈았다.
덕분에 천공섬 하르모니아의 공략이 늦어졌으니까.
그 후 트레인으로 의심 되는 인물이 다시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도 슈타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트레인을 내쫓았을 때보다 지금 현재 더욱더 클랜의 규모가 커져 있었으니 말이다.
트레인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 할 거라 여겼다.
분명 그럴 터인데…….
‘클랜성이 함락당하다니…….’
이미 슈타인은 외부에서 보고 연락을 받았다.
클랜성에 있던 클랜원들이 포로로 잡히거나 사망했다고.
‘천공섬 공략전에 과거를 완전히 청산했어야 했나.’
다른 누구도 아닌 트레인이다.
트레인은 블랙 레이븐 클랜의 초창기 멤버와 다름없었다.
그만큼 오랜 기간을 함께했지만 슈타인은 과감하게 내쳤다.
클랜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방해되는 인물은 정리해고 하는 게 도움이 되니까.
그런데 설마 이런 식으로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되는 생길 줄이야.
‘어쩔 수 없지. 계획을 좀 더 앞당길 수밖에.’
슈타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레이크 서펜트를 노려봤다.
사실 예전부터 슈타인은 천공섬 하르모니아로 거점을 옮길 생각이었다.
250레벨이 넘어가게 되면서 더 이상 중앙 대륙에 미련을 두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250에서 260레벨까지는 중앙 대륙에도 사냥터가 있고 장비나 아이템을 구할 수 있었다.
다만 천공섬에 비하면 경험치나 아이템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에 반해 천공섬에서는 250레벨이 넘는 몬스터를 잡으면 상당한 량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고, 아이템 드랍 확률도 더 높았다.
거기다 점점 더 레벨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천공섬에서밖에 사냥감과 아이템을 구할 수 없게 된다.
그 때문에 슈타인은 중앙 대륙에서 철저한 준비 끝에 천공섬으로 올라와서 거점을 세웠다.
그리고 슈바르츠 솔다트와 함께 천공섬에 존재하는 던전과 필드를 공략하면서 클랜 영지를 넓혀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트레인의 기습으로 중앙 대륙에 있는 클랜성이 함락당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놈이라고 해도 천공섬까지 올라오는 건 힘들 테지.’
슈타인은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게임 시간 기준으로 이제 하루가 지났다.
블랙 레이븐 클랜성과 중앙 대륙에서 천공섬을 이어 주는 포탈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다.
아니 오히려 포탈과 가까운 곳에 거점을 잡은 것이다.
천공섬과 이어지는 수십 개의 포탈들 중 하나를 관리하기 위해서.
하지만 천공섬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려면 크로나 오어 나이트를 무기와 방어구에 코팅을 해야 한다.
그래야 몬스터들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고, 공격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놈이 크로나 오어 나이트를 구하고 천공섬으로 온다고 해도 현실 시간으로 최소 3일은 걸릴 터.’
요컨대, 현실 시간 기준 3일이다.
그때면 한성에게 사망한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부활한다.
‘어디까지나 그놈이 천공섬으로 올라온다는 가정하에서지만.’
슈타인은 머리를 굴려봤다.
과연 클랜성을 점령한 트레인이 복수를 하기 위해 천공섬으로 올라올까?
확률은 반반이다.
클랜성까지 점령한 트레인이 그 기세 그대로 천공섬까지 올라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서 크로나 오어 나이트가 발목을 잡는다.
트레인 혼자서 클랜원들이 부활하는 3일 안에 크로나 오어 나이트를 구하기란 불가능할 테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수성전.’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분명 그럴 터였다.
아마 지금쯤 트레인이 클랜성에서 수성전을 준비하고 있을 확률이 더 높았다.
수성전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테니까.
‘클랜원들을 포로로 잡은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
이미 상당수의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포로로 잡혀서 지하 감옥에 감금되어 있다고 했다.
감금 상태라면 부활보다 더 오랫동안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게임 시간으로 한 달은 현실 시간 3일보다 훨씬 더 긴 기간이니 말이다.
‘트레인 녀석 답지 않게 나름 머리 좀 굴렸군.’
슈타인은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의 숫자를 조금이라도 줄여 보겠다는 원숭이 지혜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기에 슈타인은 인내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정예 병력인 슈바르츠 솔다트들과 중앙 대륙 전역에 흩어져 있는 클랜원들을 싹싹 긁어모으고, 화이트 헤론 클랜에게도 응원 병력을 요청해서 트레인을 때려잡고 싶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지금 슈타인이 해야 할 일은 최대한 천공섬을 공략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천공섬의 몬스터들을 잡음으로 인해서 레벨업과 성능 좋은 아이템들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공섬에 올라와서 현재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른 클랜과 피 말리는 경쟁을 했고, 지금도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트레인 한 놈 때문에 천공섬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할 수 없었다.
‘클랜성은 나중에라도 다시 되찾으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천공섬에서 자리를 확고히 잡아야 돼.’
다른 클랜이 넘보지 않도록.
앞으로 조금만 더하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딱 현실 시간 기준으로 3일 정도면 말이다.
‘인내하는 자가 이긴다.’
슈바르츠 솔다트들을 지휘하며 레이크 서펜트를 상대한 슈타인은 머릿속을 정리했다.
3일 뒤, 사망한 클랜원들이 부활하면 대규모 부대를 이끌고 가서 클랜성을 되찾을 것이다.
그동안 슈타인을 비롯한 정예 부대인 슈바르츠 솔다트들이 해야 할 일은 장비 파밍이다.
성능 좋고 등급이 높은 장비들로 무장하여 블랙 레이븐 클랜의 전력을 한층 더 강화시킬 계획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슈타인은 눈앞에 있는 레이크 서펜트를 노려봤다.
슬슬 마무리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마라!”
슈바르츠 솔다트들에게 경고한 슈타인은 최종 공격을 준비했다.
그 순간!
“어?”
슈타인을 비롯한 슈바르츠 솔다트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슈와아아아아악!
어디선가 푸른빛의 마력포가 공기 중의 수분을 증발시키며 생명력이 바닥상태인 레이크 서펜트를 향해 날아 들어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