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9
< 내 언데드 100만 >
제289화 밝혀지는 비밀
[신발기사단 쿠쿠다스!]
“야, 이 미친놈아! 대체 뭘 어떻게 기억하면 그런 말이 나와? 우리는 신성기사단, 크루세이더다!”
[흥.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모두 짓밟아라!]
거칠게 반발하는 크루세이더들을 무시하며 레이몬은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루세이더들을 바라보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
[멘탈이 쿠쿠다스?]
“저, 저 확신범 자식!”
“악마 같은 놈!”
크루세이더들은 레이몬이 악마 같다며 치를 떨었다.
그런데 사실 레이몬은 악마가 맞았다.
마계 기사였으니까.
다그닥! 다그닥!
하지만 크루세이더들은 레이몬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다크 나이트, 데스 나이트, 듀라한 나이트 등등.
언데드 기사들이 팬텀스티드를 타고 크루세이더들을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진짜 답이 없는데.”
“이걸 뭐 어쩌라고……
전방에서는 2,200마리의 스켈레톤 군단들이, 후방에는 유령마를 탄 언데드 기사들이 달려오는 모습을 본 신성기사단, 크루세이더들과 화이트 헤론 클랜원들은 그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전투는 끝이 났다.
물량으로 밀어붙여서 다구리를 놓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화이트 헤론 클랜원들은 버텨 낼 수 없었다.
‘이건 뭐 유령성이 따로 없군.’
블랙 레이븐 클랜성에 입성한 한성은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한 수정구 앞에서 깃발을 꽂았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블랙 레이븐 클랜의 성을 빼앗았습니다!]
“아주 좋아.”
한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블랙 레이븐 클랜이 거점으로 사용한 큰 성들에는 컨트롤 룸이 존재한다.
그곳에는 성의 권한들을 제어할 수 있는 마력 수정구가 있으며, 그 앞에 사용자 등록 장치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한성은 사용자 등록 장치에 손을 올려놓고 블랙 레이븐 클랜성의 모든 권한을 손에 넣었다.
이런 행위를 방문자들은 깃발을 꽂는다고 불렀다.
“이걸로 이제 이 성은 내 거다. 슈타인 자식, 설마 내가 이럴 줄은 상상도 못했겠지?”
한성은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슈타인으로서는 한성이 위험하다고 생각은 했겠지만 설마 성을 삼켜 버릴 정도로 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주력 정예 요원들을 이끌고 하늘 섬 공략을 하러 나간 것일 테니까.
“엘레나. 오늘부터 이곳을 우리 거점으로 삼겠다. 부서진 곳을 다시 수복하고 혹시나 있을 외부의 공격에 대비해라.”
“네, 마스터. 맡겨주세요.”
“미스릴과 크리스토 백작가에도 연락을 해서 인원을 충원하도록. 이 성 전체를 전부 장악하고 외부 침입에 대한 준비가 끝나면…….
한성은 등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 사라와 세라를 비롯한 소환수들이 서 있었다.
“나를 배신한 슈타인을 치러 하늘 섬으로 간다. 그때까지 전부 준비하도록 해.”
아우우우우----!
[알겠다. 나의 계약자여. 또 한 번 날뛰는 걸 기대하도록 하지.]
[틴달로스도 갈 거예요! 그러니 머리 쓰다듬어 주세요!]
“또 폭발시키면 되나? 주인?”
“주인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어요.”
“루루도!”
소환수들은 저마다 각자 대답을 했다.
라이는 길게 울었고, 틴달로스와 루루는 팔을 번쩍 치켜들며 한성에게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것을 요구했다.
거기에 라이도 은근슬쩍 루루 옆에 다가가 앉더니 늑대 귀를 파닥파닥거렸다.
헥헥헥.
“아이구. 알았다, 요놈들아. 내가 진짜 너희들 없으면 어떻게 살겠냐?”
한성은 틴달로스와 루루, 라이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주었다.
“그럼 포로들은 잘 있지?”
“네. 살아남은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은 전원 지하 감옥에 감금시켜 놓았어요.”
“좋아.”
이번 전투에서 사망한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은 다시 부활하기까지 현실 시간으로 3일이 걸린다.
그동안은 성을 공격하지 못한다.
그리고 한성은 블랙 레이븐 클랜원 수십 명은 죽이지 않았다. 팔켄을 비롯해 조사해야 될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심문을 하러 가 볼까?”
한성은 레이몬을 슥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 * *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부모님은 대체 누구지?]
[뭐? 우리 라이랑 싸워서 졌다고? 네놈은 개보다 못한 쓰레기구나! 뭐? 진 게 아니라 비겼다고? 그럼 개 같은 놈이로군!]
[당장 쇠사슬을 풀어 달라고?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줘야 하지?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의 말은 듣지 않는다.]
[네놈은 참 약해 보이는구나. 그러니 지금 여기에 이렇게 묶여 있는 거겠지.]
[뭐? 밤길을 조심하라고? 웃기는 놈이로군. 이 몸은 마계의 기사 레이몬이다. 마계의 마왕조차 내 앞에서는 한 수 접으시지. 단지 마왕님의 부모님 안부를 물어봤을 뿐인데 말이야. 그런데 네놈 부모님은 만수무강하시냐?]
“…….”
지하 감옥에 내려온 한성은 레이몬에게 심문을 시켰다.
효과는 발군이었다.
레이몬의 심문이 시작되자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은 온갖 쌍욕을 내뱉었다.
레이몬의 한마디 한마디는 도발 스킬과 비교도 되지 않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의 욕설은 이내 잦아들었다.
그 이후부터 그들은 레이몬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제발 좀 그만 말하라고.
가볍게 부모님 패드립부터 시작한 레이몬은 쉴 새 없이 인신공격적인 말을 에둘러서 쏟아냈다.
거의 반쯤 세뇌에 가까운 레이몬의 심문에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은 정신이 몽롱해져갔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블랙 레이븐 클랜의 부클랜장인 팔켄도 있었다.
“이제 말할 기분이 되었나?”
“아, 이런 망할 놈들아아아! 내가 말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냐아아아!”
팔켄은 질린 눈으로 레이몬과 한성을 노려봤다. 절규하듯 내지르는 팔켄의 말에 한성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근성이 없네. 레이몬의 정신 공격이 끝나면 엘레나한테 부탁하려고 했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좋은 것들을 많이 알려주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엘레오노라는 남자들의 애간장을 다 녹일 것 같은 상냥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팔켄을 바라봤다.
거기다 가슴 앞 단추 2개가 풀려 있기까지 했다.
“흥. 이번에는 미인계인가? 그딴 짓에 이 내가 넘어갈 거라…….”
“크윽!”
순간 팔켄의 옆에서 짤막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신음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팔켄의 보좌관 격 인물인 필립이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는 필립은 얼굴이 살짝 붉어 보였다.
“이쪽의 우락부락한 오랑우탄보다, 옆에 계신 분이 더 귀엽네요. 우후훗.”
“누가 우락부락한 오랑우탄이냐!”
“듣고 보니 오랑우탄 맞네.”
엘레오노라의 말에 팔켄은 반박했지만 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팔켄은 근육질적인 몸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럼 이제 말해 봐라. 어째서 네놈들은 날 배신한 거지?”
한성은 팔켄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계속 의문이었다.
어째서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는 자신을 배신했을까?
“흥. 아직도 별 시답지도 않은 걸 궁금해하고 있군. 뻔하지 않나? 클랜은 조직이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지. 너도 알고 있을 텐데? 티르 나 노이는 돈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야.”
“…….”
팔켄의 말에 한성은 침묵했다.
그렇다.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는 돈이 된다.
가상 현실 세계 속 골드가 아니라 현실의 돈으로 말이다.
‘애초에 내가 티르 나 노이를 하게 된 계기도 돈 때문이었지.’
순수한 목적으로 티르 나 노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분명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해 티르 나 노이를 플레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다크 게이머라고 불렀으며, 한성 또한 거기에 해당되었다.
실상 대부분의 티르 나 노이 내 클랜들은 현실의 돈을 벌고 있었다.
고급 장비나 골드는 현실에서 현금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티르 나 노이에서 클랜들은 현실에서 기업이나 회사와 다름없지. 상위 레벨 보스 몬스터를 레이드해서 얻는 부산물이나 티르 나 노이에서 유통되는 골드는 현실에서 현금으로 거래할 수 있으니 말이야. 이번에 최고 레벨인 250이 해제되고 나서 250레벨 이상 레전드 등급 무기 값이 얼마나 하는 줄 알고 있나? 최소 수천만 원은 넘어. 그래서 250 레벨 이상 몬스터들이 나오는 하늘 섬을 공략하려고 각 클랜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지.”
“수, 수천 만 원? 노강 무기가?”
“그래.”
“허…….”
팔켄의 말에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복수를 위해서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와 중에 한 번씩 티르 나 노이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해서 어느 정도 정보를 얻고 있었지만 설마 무기 하나에 현금으로 수천만 원이나 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10강 이상 무기가 억 단위에 팔린다는 건 들어 봤어도 노강 무기가 수천만 원이라니…….’
고레벨 레전드 등급 이상의 무기가 10강 이상 하는 게 억 단 위로 거래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강화는 고강까지 가기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시도 때도 없이 손이 미끄러지는 묘인족 소녀 강화사 키리키리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거기서 왜 네놈들이 날 배신한 건데?”
“왜긴 왜야. 이익 때문이지. 지금 얼마나 많은 클랜들이 하늘 섬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건 잘 알고 있겠지?”
“어. 대충은.”
“우리 블랙 레이븐 클랜은 이를 테면 후발 주자야. 뒤쳐져 있었지. 그래서 한 가지 선택을 했어.”
팔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화이트 헤론 녀석들과 손을 잡기로 말이야.”
“…….”
팔켄의 말에 한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헨리의 말이 사실이었나 보군. 정말 화이트 헤론 놈들과 손을 잡고 있었다니…….”
“그래. 맞다. 우리 클랜 최대의 라이벌인 그놈들과 손을 잡았지. 처음에는 꽤 반발하긴 했지만 손을 잡고 난 뒤에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더군.”
팔켄은 히죽 웃어 보였다.
화이트 헤론 클랜은 블랙 레이븐 클랜의 최대 숙적과도 같았다. 그런데 만약 그들과 손을 잡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앞길을 방해하는 라이벌이 사라짐과 동시에 든든한 동반자가 생긴다. 1+1은 2가 아니라 4와도 같은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있었지. 그게 바로 네놈이다, 트레인.”
팔켄은 복잡한 눈빛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화이트 헤론 클랜과 손을 잡기로 계획을 세웠지만 그러기에는 감정의 골이 깊었다.
한때 서로 신나게 죽여 대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손을 잡는다고 하면 반발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화이트 헤론 클랜과 블랙 레이븐 클랜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