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9
< 내 언데드 100만 >
제279화 복수의 시작
그날 밤.
블랙 레이븐 클랜의 본성에서 약 50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나설 준비를 시작했다.
창고성을 지키기 위해 팔켄이 지원 병력을 파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본성을 지킬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움직일 수 있는 나머지 인원들을 전부 창고성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전부 모였나?”
블랙 레이븐 클랜의 본성 훈령장에서 팔켄은 제2공격대 대장인 갈렌에게 질문했다.
“네. 곧 출발 준비가 끝납니다.”
“좋아.”
갈렌의 대답에 팔켄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제1공격대 대장인 발토르가 갈렌의 자리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현재 그는 크리스토 백작가의 영주성에 구금되어 있는 상황.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금니 악물어야 할 거다.’
건드릴 게 없어도 하필 자신들을 건드리다니.
그것도 창고성을 말이다.
팔켄은 창고성을 공격한 자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블랙 레이븐 클랜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게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진짜 어떤 병신이 싸움을 건 거지?’
창고성이라고 해도 성은 성.
클랜전을 걸고 공성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창고성을 공격한 자는 클랜전을 걸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클랜전을 걸 만큼 인원이 없는 소규모 무리들이 블랙 레이븐 클랜에게 싸움을 걸었다는 뜻.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싹 쓸어버려야겠군.”
창고성에서 온 보고에 의하면 언데드 몬스터들이 공격해 왔다고 들었다.
네크로맨서가 부리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믿고 창고성을 공격한 모양인데 팔켄은 그런 적들의 오만을 뿌리 끝까지 뽑아 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현재 가능한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을 동원시켰다.
그 덕분에 창고성의 공격 보고를 받고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지원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충분히 버티고도 남았다.
약해 빠진 네크로맨서가 부리는 언데드 몬스터들 따위가 성을 공략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준비가 끝난 부대부터 출발하라!”
출발 준비가 끝난 지원 병력부터 팔켄은 블랙 레이븐 클랜 성에서 출발시켰다.
선봉은 팔켄, 자신이었다.
평소에는 가벼운 눈웃음을 지으며 클랜원들을 대하지만, 그는 원래 호전적인 성격이었다.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이지만 한번 열을 받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성문을 열어라!”
팔켄은 지원 부대를 이끌고 클랜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이 블랙 레이븐 클랜 본성의 성문에서 터져 나왔다.
“뭐, 뭐야?”
갑작스러운 사태에 팔켄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적습!”
“경보 울려!”
그 직후 성벽 위 감시 초소에서 비명에 가까운 경고가 울려 퍼졌다.
팔켄은 눈살을 찌푸리며 성벽을 올려봤다.
“무슨 일이냐!”
“고,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뭐한테?”
“그, 그게…….”
성벽 위에에서 감시를 하던 클랜원은 멍한 표정으로 대답을 주저했다.
그러자 팔켄은 그를 윽박질렀다.
“뭐냐고, 대체!”
“해, 해골들이…….”
“이런 빌어먹을 쓰레기 놈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클랜원 대답에 순간 팔켄은 열이 뻗쳐올랐다.
자신을 믿고 슈타인은 클랜성을 맡기고 천공섬에 올랐다.
그런데 지금 어떤 정체도 모르는 놈들이 팔켄의 얼굴에 먹칠을 한 것이다.
“성문을 열어라! 내가 직접 전부 처리하겠다!”
열을 받을 대로 받은 팔켄은 성문을 지키고 있는 부하 클랜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 하지만…….”
“하지만이고 지랄이고 당장 성문 열어! 내가 다 처리해 버릴 테니까!”
자신의 체면을 구긴 팔켄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현재 클랜성에서 최고 책임자는 팔켄이었기에 성문을 지키는 클랜원들은 어쩔 수 없이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그그극.
잠시 후, 블랙 레이븐 클랜성의 거대한 성문이 좌우로 열리기 시작했다.
* * *
“움직임이 느리네.”
한성은 눈앞에 있는 블랙 레이븐 클랜 본성을 노려봤다.
현재 창고성 쪽은 점령이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창고를 털고 난 후, 한성은 스텔스 망토의 투명화 마법으로 다시 잠입한 뒤, 성문을 열었다.
그 이후에는 일사천리였다.
성문이 뚫리자 성안의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은 검은 물결처럼 들이닥치는 마스터 솔저들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성은 어느 순간 주력 소환수들을 데리고 블랙 레이븐 클랜의 본성이 있는 곳으로 왔다.
창고성의 뒤처리는 이후에 올 네리아와 이리아, 셀라스틴에게 맡겼다.
블랙 캣츠 정보 길드와 크리스토 백작가의 사병들, 미스릴의 조직원들이 뒤처리를 하기로 했으니까.
창고에 있던 유니크 이상 등급의 아이템들은 전부 한성이 먹었지만 말이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마스터.”
한성의 옆에서 엘레오노라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하기는. 여기까지 왔으면 싹 밀어 버려야지.”
창고성을 점령하는 동안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 지원 병력을 보낼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블랙 레이븐은 대응이 느렸다.
한성이 창고성을 공격하고, 본성까지 오는 동안 꽤 시간이 흘렀지만 블랙 레이븐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대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최소 수십 명 단위의 선발대는 보낼 줄 알았는데…….’
조심성이 많고 신중한 성격의 슈타인이라면 분명 그러할 터였다.
하지만 아직 한성은 본성을 지휘하고 있는 인물이 부클랜장인 팔켄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사실 블랙 레이븐 클랜의 대응이 느려 보이는 이유는 팔켄 때문이었다.
창고성을 건드린 어리석은 놈들을 한 번에 확실하게 끝장낼 생각이었으니까.
그래서 많은 병력을 모으느라 시간이 소모된 것이다.
“엘레오노라. 선공을 맡길게. 큰 거로 하나 날려.”
“명령하신대로.”
한성의 명령에 엘레오노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엘레오노라와 옐로우 라이트닝 위저드 배틀 커맨더 스켈레톤은 마법 병단을 이끌고 마법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성이 있는 곳은 본성에서 좀 떨어진 숲속이었다.
이미 한성은 네리아를 통해 블랙 레이븐 클랜의 본성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본성은 창고성보다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최소 1,000명 이상이 상시 대기 중이었으며, 크기도 배 이상 컸다.
그뿐만이 아니라 본성은 블랙 네스트라는 이름대로 온통 검은 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방어력을 높여 주는 블랙 메탈을 성벽과 성문에 코팅을 해 놨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어지간한 공격력으로는 성벽을 허물 수 없었다.
그래서 본성의 감시 거리를 벗어난 지점에서 장거리 포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일단 최대한 피해를 입혀 놔야지.’
슈아아아아악!
잠시 후, 엘레오노라를 비롯한 마법 병단의 장거리 포격이 시작되었다.
콰쾅! 콰콰콰쾅!
약 200마리 정도의 위저드 스켈레톤들이 펼치는 갖가지 마법들이 정면에 있는 성문과 성벽을 직격했다.
어마어마한 폭음과 폭발이 본성을 뒤흔들었다.
“응?”
순간 한성은 살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이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알아서 문을 열어 주네?”
원래 한성은 장거리 포격으로 성문과 성벽을 부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차례 포격이 끝나자마자 성문이 열렸다.
마치 공격자들을 직접 맞이할 것처럼.
“이건 슈타인 방식이 아닌데. 설마 팔켄인가?”
한성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팔켄이라면 상대하기 수월하지.”
그제야 한성은 블랙 레이븐 클랜이 왜 늑장 대응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지금 이 타이밍에 성문을 연 이유까지도.
한성 또한 팔켄과 꽤 오랫동안 함께해 왔기 때문에 그의 성격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한성이 알고 있는 팔켄은 수성전 같은 답답한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팔켄은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불리하다고 생각했다면 아무리 성격이 호전적이라고 해도 본성을 박차고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
“슈타인보다 네놈부터 먼저 털어 주마.”
팔켄 또한 슈타인이나 카슈발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손을 봐줄 놈들 중에 한 명이었다.
“잠시 대기해라. 곧 부르겠다.”
크릉.
“네. 기다리고 있을 게요, 마스터.”
“넹~ 마스터.”
[빨리 불러 줬으면 좋겠군. 아까부터 좀이 쑤셔서 가만히 있지 못하겠어.]
라이를 비롯한 소환수들의 대답을 뒤로 하고 한성은 스텔스 망토의 투명화 스킬을 사용했다.
스르륵.
어둠 속으로 동화한 한성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 상태에서 한성은 빠르게 숲을 박차며 본성을 향해 달렸다.
이제 곧 있으면 성문을 통해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뛰쳐 나올 것이다.
그 전에 한성은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단 한 명도 본성에서 나오지 못하게 막아둘 생각이었다.
‘개미새끼 한 마리도 놓치지 않는다.’
본성에 있는 모든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을 족칠 생각이었으니까.
한성은 다리에 마나를 집중하며 빠르게 본성 앞에 도착했다.
그그그그극.
이윽고 한성의 눈앞에서 검은 운철 같은 굳건한 성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성문 너머에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 하나와 검은 갑주로 무장한 수많은 클랜원들이 보였다.
스스슥.
그들 앞에서 한성은 모습을 드러냈다.
“여어. 안녕하신가?”
한성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너, 너는!”
그러자 가장 선두에 서 있던 팔켄이 놀란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네놈이었냐! 트레인 이 개자식아!”
트레인을 본 순간 팔켄은 지금의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사냥터를 털어 온 놈도, 창고성을 공격한 놈도 모두 트레인이라는 것을.
사실 이전부터 의심은 하고 있었다.
1공격대 대장인 발토르가 다시 나타난 트레인에게 붙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도 하나 없네.”
“닥쳐, 이 망할 자식아! 네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뭐가 힘들었는데?”
“개자식이 창고 열쇠는 왜 훔쳐 가지고…….”
팔켄은 이를 갈았다.
한성이 황금 창고 열쇠를 들고 튀는 바람에 블랙 레이븐 클랜은 발전에 지장이 생겼었다.
황금 창고에는 레벨과 등급이 높은 아이템들이 보관되어 있었으니까.
특히 클랜의 규모가 커지면서 본성을 옮겨야 할 때가 되었을 때, 창고성은 완전히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황금 창고를 열 수단이 없어서 팔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게 누가 날 배신하랬냐? 아, 잘됐네. 하나만 물어보자. 왜 날 배신한 거냐? 네놈 정도 직급이면 이유를 알겠지?”
“네놈한테 알려줄 말은 아무것도 없다.”
“흐음.”
역시나 팔켄은 묵비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한성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1공격대 대장인 발토르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었다.
하지만 발토르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역시 부클랜장인 팔켄은 슈타인이 한성을 배신한 이유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네놈의 몸으로 물어보는 수밖에. 몸은 솔직한 법이니까.”
“미친놈. 네놈 혼자서 뭘 하겠다고?”
한성의 말에 팔켄은 코웃음을 쳤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지금 팔켄은 500명이나 되는 클랜원들을 데리고 출병하려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성안에서 대기 중인 인원도 약 500명은 더 있었다.
그에 반해 한성은 어떤가?
홀로 성문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팔케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짓뭉개 주마.”
“응. 내가.”
한성은 팔켄에게 미소를 지어 주며 손가락을 딱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