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2
< 내 언데드 100만 >
제272화 네리아의 은밀한 선물
“마스터의 무한 머리 쓰다듬어 주기 이용권도 있어!”
“마스터의 머리 쓰다듬기!”
세라의 말에 루루의 시선이 한성에게로 꽂혔다.
“머리 쓰다듬어 주시는 거에영?”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질문해오는 루루의 모습에 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지.”
디아나가 영주성에 오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생각했기에 한성은 사라와 세라의 장단에 어울려주었다.
거기에 사라가 루루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루루야. 여기 마들렌느도 있어!”
“마들렌느!”
루루는 팔을 활짝 들며 눈앞에 내밀어진 쿠키를 입으로 덥석 베어 물었다.
도토리를 입안에 가득 넣은 다람쥐처럼 루루는 행복한 표정으로 우물우물 거렸다.
“여기 다른 것들도 많단다.”
거기에 세라가 초코 쿠키도 내밀었다.
“쪼코!”
루루는 조금씩 사라와 세라가 내미는 쿠키에 정신이 팔렸다.
디아나를 소환할 걱정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럼 여긴 루루한테 맡기면 되겠군.’
사라와 세라가 루루를 상대하는 동안 한성은 은근슬쩍 뒤로 빠졌다.
당초 목표인 네리아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한성은 마지막으로 루루를 챙기고 있는 사라와 세라를 바라봤다.
‘그래도 어떻게든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이유가 어찌되었든 그녀들은 한 번 배신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리아와 네리아 곁에서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특히 영주성을 제압한 날 이후, 그녀들은 한성을 주인처럼 대했다.
자신들을 믿어 주고 구해 준 한성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데다가 이리아에게 크리스토 백작가의 가주 자리까지 되찾아 주었으니 말이다.
루루를 놔둔 한성은 빠르게 네리아가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영주성에 마련된 네리아의 집무실.
“생각보다 빨리 온 거 아니야?”
“왜? 내가 오면 안 되나?”
피식 웃으며 한성은 집무실 중앙에 있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푹신푹신한 소파가 부드럽게 등을 감싸온다.
그제야 한성은 피로가 몰려왔다.
지난 몇 일간 블랙 레이븐 클랜의 사냥터들을 박살 내기 위해 숨 가쁘게 뛰어다녔으니까.
“그건 아니지만…….”
집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네리아는 슬쩍 한성을 바라봤다.
지금 이때 왜 돌아왔는지 모르지 않았다.
분명 목적은 그것일 터.
“그보다 최근에 들어온 정보 없어?”
“정보? 블랙 레이븐?”
“응.”
한성의 말에 네리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달리 들어온 정보는 없어. 이전에 말한 것처럼 블랙 레이븐 클랜은 화이트 헤론 클랜과 함께 하늘 섬 공략에 집중 중이야.”
“역시 그런가. 사냥터 몇 개를 습격했는데 반응이 미지근하더라니.”
“나도 블랙 레이븐의 사냥터를 건드리면 너에 대해 이야기가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없더라고. 오히려 기존 수배서도 철회한 모양이야.”
“수배서를? 왜?”
네리아의 말에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 자신의 수배서를 철회했다니?
이건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건 아직 모르겠어. 아무래도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 너에 대해 정보를 은폐하고 있는 것 같은데?”
“흠. 슈타인 그놈이 가만히 있을 리 없을 텐데.”
슈타인이 한성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한성도 슈타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둘 다 당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특히 슈타인은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였다.
클랜이라는 조직을 이끄는 이상 얕잡아 보이면 끝이니 말이다.
그래서 블랙 레이븐 클랜에 반하는 클랜이나 방문자들은 철저하게 밟았다.
두 번 다시 기어오르지 못하게.
그런 슈타인의 얼굴에 한성은 먹칠을 했다.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 파견한 제1공격대를 깨부쉈다.
그리고 크리토스 백작가의 영지에 있는 크로나 오어 나이트 광산도 먹지 못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블랙 레이븐 클랜이 관리하는 사냥터를 습격해서 100명에 가까운 클랜원들을 신전행으로 보냈다
당연히 슈타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을 터.
그런데 보복은커녕 한성에 대한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폭풍전야의 고요함과도 같은 느낌.
한성은 더욱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블랙 레이븐 클랜 놈들 동향을 계속 주시해 줘. 슈타인 그놈이 가만히 있을 리 없을 테니까.”
“알겠다.”
네리아는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였다.
그녀도 한성과 같은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일차적인 볼일이 끝난 한성은 네리아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
네리아는 한성이 내민 손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이제 선물을 줘야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까지 기다렸다고?”
“……!”
네리아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한성은 크리스토 백작가의 일이 잘 풀리면 네리아로부터 은밀한 선물을 받기로 약속 받았다.
타입, 등급, 옵션 등등 모든 게 ???인 정체를 알 수 없는 네리아의 은밀한 선물.
그녀에게서 무엇을 받을 수 있을지 한성은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토 백작가의 모든 히든 미션이 끝나고도 한성은 선물을 받지 못했다.
네리아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칠 더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오늘 그 선물을 받으러 영주성에 잠시 들린 것이다.
“이, 이걸 줄게.”
네리아는 수줍은 듯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성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한성은 네리아가 내민 종이의 맨 윗부분을 힐끔 봤다.
@[혼인 신...]
거기까지 본 한성은 네리아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뭐지 이건? 디아나한테 보내 주면 되나?”
“아, 내가 착각했어. 이건 아니야.”
위험한 분위기를 감지한 네리아는 잽싸게 종이를 책상 위에 덮어 놓았다.
그리고 책상 밑에서 상자 두 개를 꺼내 올려놓았다.
“이 둘 중에 하나를 줄게. 선택해.”
“안에 뭐가 들었는데?”
“그건 나중을 위한 즐거움을 위해서. 열어 보면 알 게 될 거야.”
네리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에 한성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아까처럼 그런 건…….”
“휘. 휘.”
“…….”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어설프게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는 네리아의 모습에 한성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그렇게 의심하지 말고 하나 골라. 정열의 붉은 상자를 고를 것인지, 아니면 시원한 푸른 상자를 선택할 건지. 후회하지는 않을 테니까.”
“흠.”
네리아의 말에 한성은 이마에 골이 파였다.
설마 이지선다라니.
이러면 둘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되지 않는가?
한성은 고민에 잠긴 표정으로 상자들을 바라봤다.
정열적인 화염이 새겨져 있는 붉은 상자.
차가운 얼음이 새겨져 있는 푸른 상자.
“그럼 나는…….”
생각의 시간은 짧았다.
“이걸 선택하겠어.”
한성은 붉은 상자를 선택했다.
[네리아의 은밀한 선물 붉은 상자를 지급받습니다.]
“탁월한 선택이야.”
네리아는 한성에게 붉은 상자를 내밀었다.
그녀는 부끄러움이 반, 안도가 반인 미소를 지었다.
이로써 큰일 하나가 끝난 것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전승 특전 붉은 유성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당신은 보상을 세 배로 받습니다.]
“어?”
순간 네리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붉은 상자만 내밀 작정이었는데, 푸른 상자까지 한성을 향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의도를 한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두 상자들 사이에 있던 혼인 문서도 한성을 향해 날아들더니 딱 달라붙었다.
“헐.”
한성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네리아의 붉은 상자와 푸른 상자, 그리고 혼인 신고서를 보상으로 받습니다.]
설마 전승 특전 효과로 상자 두 개는 그렇다 쳐도 책상 위에 함께 놓여 있던 혼인 신고서까지 보상으로 받게 될 줄이야!
“뭐야, 트레인. 그럴 생각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적극적인 줄은 몰랐네.”
네리아는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한성이 혼인 신고서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걱정 마라. 이 문서는 디아나한테 내가 책임지고 보내 줄 테니까.”
“노, 농담이야.”
디아나라는 소리에 네리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신보다 훨씬 더 오래 산 다크 엘프인 디아나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으니까.
디아나의 제자인 한성이 갖은 고생(?) 끝에 구출한 최중요 인물 이리아가 정보 길드 블랙 캣츠에서 보호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납치되었었다.
그 책임을 지고 네리아는 디아나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당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성은 디아나가 활기차 있는 모습을 보았고, 네리아는 죽은 동태눈으로 무언가 계속 중얼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때 네리아가 중얼거린 말은 고대 엘프어였으며, 스마트 밴드워치로도 제대로 번역되지 않아 전부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번역된 내용은 ‘이제 시집 못 가……’였다.
네리아 말고도 이리아를 납치한 죄를 지은 사라와 세라도 한성이 영주성을 제압한 후, 한동안 디아나로부터 귀여움을 받았다.
그 때문에 조금 전 루루가 디아나를 소환하려고 하는 것을 극구 말린 것이다.
그때의 악몽이 또다시 재현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 상자 안에는 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거지?’
한성은 전승 특전 효과로 받은 상자 두 개를 바라보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뚜껑을 열었다.
“이건?”
상자 안에 내용물을 확인한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각각의 상자 안에는 알 1개와 문서가 하나씩 들어 있었다.
* * *
콰콰콰콰쾅!
아무것도 없는 숲속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이 일어난 숲은 개미숲이라고 불리는 필드였다.
나무보다 수풀이나 평지가 많은 초원에 가까운 숲으로 일견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숲 지하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개미들이 대거 서식 중이었다.
그런데 숲에 폭발이 일어나면서 상당히 큰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키에에에엑!
폭발로 생격난 크레이터 속에서 괴성을 지르며 거대한 개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레이터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몸길이가 2미터에 달하는 거대 개미들이 흙속에서 머리를 치켜들며 뛰쳐나왔다.
지하에서 뛰쳐나온 파라포네라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공격한 어리석은 자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바로 발견했다.
수십 마리의 파라포네라들 앞에 개미 서식지를 공격한 존재가 서 있었으니까.
“역시 예술은 폭발이지!”
파라포네라들 앞에는 놀랍게도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사라가 있었다.
“방심은 하지 마라. 눈 깜짝하는 사이에 저놈들한테 둘러싸일 수 있으니까.”
사라의 등 뒤에서 한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바보 언니에게는 제가 붙어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한성의 옆에는 세라가 있었다.
지금 한성은 사라와 세라를 데리고 사냥을 나왔다.
목표는 250레벨.
5차 전직을 하기 위해서다.
지금 한성이 와 있는 개미숲은 한성에게 있어 최적의 사냥터였다.
불쑥불쑥.
개미숲은 어마어마한 숫자의 몬스터가 나오니까.
그 때문에 개미숲을 공략하려면 파티보다 레이드 공격대팀을 꾸려야 했다.
개미숲의 서식지에 있는 파라포네라들은 군대개미처럼 최소 수백 마리가 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한성의 눈앞에는 약 1,000마리 가까운 파라포네라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럼 학살을 시작해 볼까?”
파라포네라들을 바라보며 한성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하이하이.”
그런 한성의 등 뒤로 블랙 스켈레톤 마스터 솔저들이 푸른 눈을 빛내며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