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1
< 내 언데드 100만 >
제271화 영주성의 일상
[블랙 스켈레톤 마스터 솔저들이 전투를 시작합니다.]
[Lv250 카슈발을 처치하였습니다.]
[Lv243 레이든을 처치하였습니다.]
[Lv241 카이드를…….]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한성의 시야에 안내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멍청한 놈들. 지뢰를 아주 거하게 밟으셨네?’
한성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혹시나 싶어서 엔트 울프 서식지에 블랙 스켈레톤 마스터 솔저들을 숨겨두고 나왔다.
최대한 길게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사냥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말이다.
시범적으로 처음 실행했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다른 곳도 남겨 두고 올걸.’
생각보다 좋은 효과에 한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카슈발 놈들은 아직도 내 뒤를 쫓고 있는 건가?’
블랙 스켈레톤 솔저들의 피해가 좀 있었지만 총 다섯 명의 추적대가 척살됐다.
아마 그놈들이 현재 자신을 쫓고 있는 전부일 터.
‘설마 소수 정예로 조용히 날 없앨 생각인 건 아니겠지?’
자신을 상대하려는 게 아니라, 정예 클랜원들을 투입해서 조용히 처리한다?
그렇다면 한성을 완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뭐, 좋아. 슈타인 네놈이 그렇게 나온다면 오히려 나한테는 좋지.’
물론 한성도 슈타인을 비롯한 블랙 레이븐 클랜이 지금 하늘 섬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이렇게까지 방치시킬 줄이야.
‘일단은 레벨업이다.’
자신을 배신한 슈타인에게 크게 한 방 먹여 주려면 역시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데스엠페러 5차 전직까지 앞으로 몇 레벨 남지 않았다.
‘5차 전직을 하고 난다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복수를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며 한성은 영주성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그날 저녁.
한성은 영주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트레인 님!”
성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이 한성을 발견하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경례했다.
그 소리에 성벽 위에 있는 경비병들까지 한성을 향해 직립 부동자세를 취하며 경례했다.
“어, 그래. 수고한다. 별일 없지?”
군기가 바짝 들어 보이는 경비병의 인사에 한성은 손을 한 번 들었다가 내려 주며 영주성 안으로 들어갔다.
“트레인!”
영주성 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성은 흠칫거렸다.
눈앞에 은발미녀가 자신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 셀라스틴, 있었어?”
현재 영주성은 미스릴의 거점화가 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미스릴의 조직원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간부급인 셀라스틴도 종종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지금 한성의 앞에 나타난 셀라스틴은 늑대 귀를 펄럭거릴 정도로 움직이고, 꼬리는 좌우로 살랑거렸다.
그뿐만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한성을 덮칠 것 같은 강력한 기백을 흘리고 있었다.
“그동안 어디에 갔었던 것이냐? 너를 만나러 왔다가 벌써 이틀 째 기다리고 있었다고?”
“날 기다릴 시간이 있으면 몬스터나 잡지 그래?”
한성은 가볍게 핀잔하는 투로 셀라스틴에게 말했다.
그러자 셀라스틴은 얼굴을 확 붉히며 소리쳤다.
“뭐라고? 네, 네 녀석 대체 나한테 어떤 플레이를 요구하는 것이냐!”
“아무 플레이도 요구하지 않았어!”
“방금 나에게 몬스터 수치 플레이를 요구하지 않았나!”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크, 크윽! 나, 나에게 풀을 뜯어 먹으라는 거냐?”
“대체 넌 사고회로가 어떻게 되어 있는 정말 궁금하다.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로.”
한성의 말에 셀라스틴의 얼굴이 더욱더 붉어졌다.
머리는 몸의 일부다.
즉, 머리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말은 몸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말이지 않은가?
거기까지 의식의 흐름이 끝난 셀라스틴은 늑대 귀와 꼬리를 바짝 세우며 소리쳤다.
“너, 너는 내 아, 아, 아, 알몸을 보고 싶다는 거냐!”
“…….”
한성은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아, 이거 무리. 이건 뭐 대화가 돼야 말이지.’
절찬리에 머릿속이 폭주중인 셀라스틴을 상대로 더 이상 대화를 이끌 수 없었다.
거기다 영주성 복도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다들 손으로 입을 가리며 한성과 셀라스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성은 비장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얼마 전 유니크 보물 상자에서 나온 그걸 써야겠군.’
블랙 레이븐 클랜이 관리하는 사냥터를 다섯 개 정도 박살 내면서 한성은 나름 짭짤한 수입을 거뒀다.
그중에는 유니크 보물 상자들도 좀 있었다.
‘쓸 만한 건 거의 없었지.’
유니크 보물 상자에서 나온 아이템들을 떠올린 한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지금 인벤토리에서 꺼내려고 하는 그 아이템도 마찬가지.
전투에서 쓰기에는 애매했다.
“앗! 그, 그건 설마!”
한성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아이템을 본 셀라스틴의 늑대 귀와 꼬리가 바짝 일어섰다.
부들부들 흔들리는 그녀의 아름다운 은빛 귀와 꼬리.
“물어와!”
그 모습을 본 한성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반대 방향을 향해 던졌다.
“캬앙!”
늑대의 본능을 이기지 못한 셀라스틴은 한성을 놔두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한성이 던진 아이템은 다름 아닌 원반이었던 것이다.
“원반은 개와 이야기하기 좋은 대화 수단이지.”
그렇게 셀라스틴을 처리한 한성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늘 한성이 영주성으로 돌아온 이유가 있었다.
정보 길드 블랙 캣츠의 수장 네리아를 만나기 위해서.
그녀에게 볼일이 있었던 것이다.
‘네리아의 방이 어디쯤에 있었더라?’
이리아가 백작가의 자리를 되찾은 이후, 네리아는 영주성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블랙 캣츠는 크리스토 백작가의 정보부처럼 되었다.
동시에 한성의 눈과 귀가 되어 정보를 수집해 주었다.
주로 하고 있는 일은 당연히 블랙 레이븐 클랜과 관련된 정보를 캐오는 일이었다.
네리아와 이리아도 한성이 블랙 레이븐 클랜과 어떤 관계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들에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살짝 해 주었던 것이다.
이후 그녀들은 한성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했다.
정보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움직여 블랙 레이븐 클랜과 대립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지.’
언젠가 그녀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테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최대한 힘을 모아 두는 게 나아.’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 한성이 무슨 패를 가지고 있는 모르고 있는 편이 나았다.
그래야 한성을 배신한 슈타인에게 날카로운 복수의 일격을 먹여줄 수 있을 테니까.
“오랜만이야, 주인.”
“오셨나요? 마스터.”
한성의 눈앞에 묘인족 자매 메이드들이 등장했다.
열정적인 표정과 붉은색 사이드 포니테일 헤어스타일을 가진 사라.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에 푸른색 사이드 포니테일 헤어스타일인 세라.
“나흘만이네. 잘 지냈어?”
살짝 웃으며 말한 한성은 그녀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바쁜가 봐? 왜 이렇게 숨을 몰아쉬어?”
“차, 착각하지 마세요. 별로 마스터를 보려고 뛰어온 게 아니니까!”
무표정하던 세라의 얼굴이 조금 전보다 더 붉어졌다.
그녀들은 한성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뛰어나왔다.
덕분에 그녀들은 얼굴이 살짝 상기된 채 숨이 좀 차 있었다.
“이, 이거라도 마시세요.”
세라는 한성의 눈앞에 커피를 내밀었다.
달달한 커피향이 흘러나왔다.
‘이거 딱 내 취향이네.’
“고마워. 잘 마실게.”
한성은 세라가 내민 커피를 마다하지 않았다.
“마스터는 고급 홍차보다 이런 싼 커피가 딱이니까요. 다음 잔도 있으니까 많이 마시세요.”
“응.”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세라의 말에 한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말만 놓고 보면 한성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아니었으니까.
예전에 세라가 고급 홍차를 내놓았다가 한성이 단 커피가 좋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쭉 세라는 한성에게 단 커피를 내주었다.
“그럼 이제 내 차롄가?”
그때 사라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한성의 왼팔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한성은 왼팔로 부드러운 감촉을 느꼈다.
사라는 메이드복으로도 가릴 수 없는 풍요로운 몸매의 소유자였으니까.
“잠깐, 바보 언니.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그 뻔뻔한 몸으로 마스터를 유혹하려고 하는 건가요?”
“왜? 안 돼? 주인이랑 오붓한 시간 좀 보내려고 하는데.”
“안 돼요!”
이번에는 세라가 한성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그 속에서 한성은 양 팔에 힘을 주며 손에 들고 있는 커피가 쏟아지지 않게 하기 위해 버텼다.
‘어, 어떡하지?’
잠시 방심한 사이 양팔이 봉쇄당한 한성은 사라와 세라의 사이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이리아를 도와 영주성을 탈환한 이래 사라와 세라는 자연스럽게 달라붙어왔다.
머릿속이 폭발 마법으로 가득 차 있는 사라조차 지금처럼 몸을 이용한 육탄 어택을 해올 정도였다.
세라도 무표정한 얼굴로 은근슬쩍 독설을 내뱉기도 했지만 가끔 얼굴을 붉히며 귀여운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양쪽에서 사라와 세라가 달라붙어 있으면 난감하다.
빠져 나갈 구멍이 없었으니까.
퐁!
그때 한성의 앞에서 하얀 연기가 나타면서 작은 소리로 터졌다. 그리고 하얀 연기 속에서 한성의 구세주가 나타났다.
“마스터어엉!”
다름 아닌 루루였다.
루루는 한성을 향해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루루가 구해드려영?”
루루의 말에 한성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보상은영?”
“원하는 게 뭔데?”
“루루 마스터한테 칭찬받고 싶어영!”
“OK. 콜!”
거래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럼 여기서 디아나 님을 소환할게영.”
“……!”
귀여운 루루의 말에 한성을 비롯한 사라와 세라의 표정이 핼쑥해졌다.
“아니, 잠깐만 루루야. 디, 디아나 님은 대체 왜……?”
조금 전까지 쫑긋거리던 귀여운 고양이 귀를 축 늘어트리며 사라는 루루에게 말을 걸었다.
“디아나 님이 그러셨어영. 사라 언니랑 세라 언니가 엄청 귀엽다구영. 셀라스틴 언니랑 같이 놀면 즐겁다고 해서 부르려구영.”
“힉!”
그 말을 들은 순간 사라와 세라의 꼬리가 바짝 일어섰다.
꼬리에 붙어 있는 털도 소름으로 바짝 일어섰다.
“노, 농담이지? 루루야?”
언제나 무표정하던 세라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때 한성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막아.”
“뭐?”
“네?”
사라와 세라가 한성을 돌아봤다.
“루루는 착한 아이라서 농담이나 거짓말 안 해. 정말로 디아나를 소환할 작정이야.”
“헐.”
한성의 말에 사라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세라와 눈빛을 주고받더니 미소를 지으며 루루에게 다가갔다.
“루루야, 언니가 맛있는 거 줄까?”
“지금 식당에서 보라색 빵을 굽고 있던데.”
“빵!”
사라와 세라의 꼬드김에 루루는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 되영. 빵으로는 루루를 만족시킬 수 없어영.”
“그럼 케이크! 케이크면 어때?”
“케, 케이크?”
케이크라는 말에 루루의 눈이 흔들렸다.
마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거기에 세라가 결정타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