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언데드 100만-263화 (263/318)

# 263

< 내 언데드 100만 >

제263화  잠깐의 휴식

“루루와 틴달로스만 귀여워하지 마시고 저도 귀여워해 주세요. 마스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 드릴 테니까요.”

엘레오노라는 약간 토라진 목소리로 말한 후 한성에게서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루루와 틴달로스와 함께 라이를 데리고 놀기 시작했다.

‘왜 하나같이 내 주변 여자들은 위험한 거지?’

한성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한성의 옆으로 거대한 인영이 하나 슥 다가와 섰다.

레이몬이었다.

칠흑의 투구 속에서 푸른 눈을 빛내며 레이몬은 한마디 했다.

[덮쳐라, 계약자여.]

“미친…….”

레이몬의 말에 한성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마계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니 무언가 조언을 해 주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역시나 레이몬이었다.

마왕한테 부모 패드립을 치는 레이몬답다고 해야 할까.

[사소한 거에 신경 쓰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남자라면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 후회는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레이몬은 푸른 눈을 빛냈다.

레이몬의 눈빛을 본 한성은 자기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일단 질러라, 계약자여.’라고 말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고가의 물건을 강매하려는 판매자와 한탕을 노리는 도박사의 눈빛이 저러하리라.

“정신 차려, 이 친구야. 너 그러다 진짜 훅 갈 수 있어.”

[사내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일단 지르고 볼게 아닌가?]

그렇게 말한 레이몬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한성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큰일인데. 그럴 듯한 개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자기만족을 하고 있어!’

질러도 어느 정도껏 질러야 한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질러 버리면 나중에 힘들어지니까.

더욱이 지금 같은 경우는 비싼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여자관계다.

‘남자가 살아가면서 조심해야 될 게 세 가지가 있지.’

입, 손, 여자.

비록 티르 나 노이가 가상 현실 게임 세계라고 해도 위 세 가지를 지켜야 마음이 편하고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미 레이몬은 조심해야 될 것들 중에서 한 가지가 아웃이었다.

“레이몬.”

[왜 그러나, 계약자여.]

“넌 일단 입부터 조심해.”

‘패드리퍼가 입조심을 잘할 것 같지는 않지만…….’

[걱정 마라. 나는 마계에서 긍지 높은 기사다. 나보다 약한 자들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을 것이고, 나보다 강한 자는 오히려 바라는 바다. 강자와의 싸움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이니까.]

레이몬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

한성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말로 해서 레이몬의 성격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레이몬이 실력 좋은 소환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디아나한테 보내서 조…… 가 아니라 재교육 좀 시켜 달라고 해야 되나? 누가 얘 좀 교육시켜 줬으면 좋겠는데…….’

어떻게든 레이몬을 교육시켜 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한성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럼…….’

한성은 몬테르디 평원에서 얻은 전리품들을 바라봤다.

리처드 백작이 파견한 영지군들에게서 수많은 무기들과 방어구들을 입수할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잡템들이 대부분이었다.

장비 레벨은 높았으나 일반 노말이나 매직 등급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나마 오판 기사들이 사용한 장비들은 최소 매직급이었으며 간혹 레어도 몇 개 있었다.

‘레어도 레어 나름이지.’

노말 매직 아이템은 논외다.

그나마 레어는 괜찮지만 최상급 정도가 아니라면 성에 차지 않았다.

최소 유니크 이상은 써 줘야 제 맛이 아니겠는가.

‘차라리 백작가에 돌려줘서 신뢰를 쌓는 게 더 나아.’

어차피 티끌을 모아 봐야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 노말이나 매직급 잡템들을 가지고 있어 봐야 유니크 하나만도 못하다.

딱히 쓸 때가 없으니까.

그럴 바에 차라리 크리스토 백작 가에 돌려주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다.

필요 없는 장비들을 넘겨주면서 생색 좀 내주고, 크리스토 백작가의 가신들이나 이리아를 비롯한 사라와 세라에게 신뢰를 쌓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보다 더 좋은 건 이거지.’

한성은 인벤토리에 보관되어 있는 레전드 보물 상자들을 바라봤다.

암흑 거인을 처치하면서 보물 상자를 받았고, 월드 히든 연계 미션을 클리어하면서 또 보물 상자를 받았다.

총 여섯 개의 200레벨 레전드 보물 상자들.

‘확인해 봐야지.’

한성은 레전드 보물 상자들을 열어 보기 시작했다.

덜그럭덜그럭.

한성의 눈앞에서 레전드 보물 상자가 요동치면서 덜컥 열렸다.

[축하합니다! 레전드 보물 상자에서 Lv200 맛있는 개다래 술이 나왔습니다!]

“…….”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한 한성은 할 말을 잃었다.

‘이걸 어디다 쓰라는 거야?’

무려 레전드 등급의 200레벨 개다래 술 아이템.

[맛있는 개다래 술]

타입: 포션.

최소 요구 레벨: 200.

등급: 레전드

옵션: 생명력 25% 즉시 회복.

설명: 건강에 좋은 개다래 술.

여성들의 건강에 아주 좋으며 신장과 요로결석에도 좋다.

통풍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관절염 개선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다량 복용할 경우 환각 증세에 빠질 우려가 있다.

특히 수인족들 중에서 묘인족은 개다래 술에 사족을 못 쓴다. 향기만으로도 정신을 못 차리기에 조심해야 한다.

‘흐음.’

개다래 술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한 한성은 조금 전 생각을 정정했다.

특정 조건하에서라면 쓸 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라와 세라한테 먹여 볼까? 어떤 반응이 나오려나?’

과연 그녀들이 개다래 술을 마시게 되면 어떻게 될지 기대되었다.

한성은 다음 레전드 상자를 열었다.

[축하합니다! Lv200 강아지 사료가 나왔습니다!]

“아, 또 웬 사료야?”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본 한성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200레벨 레전드급 개 사료라니!

끼잉. 끼이잉.

어느 틈엔가 레전드 강아지 사료를 손에 쥐고 있는 한성 앞에 라이가 바닥에 등을 부비며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라이의 날카로운 시선은 한성이 손에 들고 있는 강아지 사료 상자를 향해 있었다.

“먹고 싶니?”

컹! 컹컹!

바닥을 비비며 움직이던 라이는 한성의 다리에 몸을 부비기 시작했다.

‘이건 뭐 늑댄지 갠지.’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고 있는 라이의 모습에 한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스텅.”

그때 라이와 함께 다가온 루루가 조그마한 손을 공손히 모으며 한성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달라고?”

“넹!”

루루의 대답에 한성은 사료 상자를 넘겼다.

끼잉!

그러자 라이가 개밥그릇이 털린 강아지와 같은 눈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라이양! 루루가 밥 줄겡! 따라왕!”

루루는 라이에게 사료 상자를 흔들더니 쏜살같이 방 밖으로 튀어나갔다.

“얘, 루루야!”

[이런 어린애를 돌보려니 힘들구만!]

크헝!

갑작스럽게 루루가 방 밖으로 뛰쳐나가자 나머지 소환수들도 루루를 지켜본다는 핑계를 대고 따라 나갔다.

아무래도 방 안에 있는 건 심심한 모양이었다.

‘뭐, 당분간 영주성에 있을 생각이니 잠시 풀어놔도 상관없지.’

영주성 제압전 이후 게임 시간으로 하루가 지났다.

현실 시간으로 친다면 수 시간 정도 지난 상황.

한성은 영주성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사냥의 시작이다. 빌어먹을 까마귀 놈들아.’

자신이 배신당했을 때를 떠올린 한성은 이를 갈았다.

영문도 모른 채, 무한 PK를 당해야 했던 트레인.

믿었던 동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게임을 접어야 할 위기에 내몰렸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거기다 대체 왜 블랙 레이븐 클랜장인 슈타인이 자신만 뒤통수를 친 것일까?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어쨌든 화이트 헤론 클랜 놈들도 함께 박살 내야지.’

화이트 헤론 클랜과 한성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블랙 레이븐 클랜과 손을 잡았다고 하지 않은가?

블랙 레이븐 클랜을 손보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화이트 헤론 클랜이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제 슬슬 압박에 들어가도 될 때니까.’

몬테르디 평원의 전투와 영주성 제압전을 하고 난 후 현재 한성의 레벨은 250에 근접했다. 이제는 전승 전 파이터 계열 4차 직업 패왕이었을 때보다 레벨이 더 높아진 것이다.

거기다 현재는 히든 직업이었기 때문에 일반 직업인 패왕이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일단은 정보를 모아야겠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막나가는 성격의 한성이라고 해도 블랙 레이븐 클랜과의 일전은 신중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한성은 정보를 필요로 했다.

블랙 레이븐 클랜 놈들을 효과적으로 쳐부수기 위한 계획을 짜야 했으니까.

사실 정보는 예전부터 모으고 있었다.

최근엔 광산도시 크래프트 마인에서 블랙 레이븐 클랜이 행패를 부리고 있었고, 하늘 섬 공략을 위해 바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거기에 한성은 이미 오래전에 네리아에게 블랙 레이븐 클랜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었다.

이제 슬슬 결과가 나올 터.

현재 정보길드 블랙캣츠의 네리아가 영주성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으며, 어둠의 신봉자들 아말감에 대항하기 위해 미스릴에서도 인원이 올 예정이었다.

‘일단 미스릴과 블랙 캣츠가 합류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빠르면 오늘이나 늦어도 내일까지 크리스토 백작가의 영주성에 도착할 것이다.

그때까지 한성은 영주성에서 휴식을 가질 생각이었다.

‘적어도 지루할 일은 없을 테니까.’

전리품은 아이템뿐만이 아니었다.

영주성 지하 감옥에는 아말감의 조직원들을 비롯한 블랙 레이븐 제 1공격대 녀석들과 마인이 되어 버린 레이몬드가 수감되어 있었으니까.

그놈들을 족치는 재미도 제법 쏠쏠 할 터였다.

다만,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의 경우 전원 로그아웃을 해 버렸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

‘그럼 과연 어떻게 나오려나?’

가상 현실 세계 티르 나 노이에서 중앙 대륙을 배경으로 암약하고 있는 어둠의 신봉자들 아말감.

하늘 섬 공략을 위해 광산을 털고 있는 블랙 레이븐 클랜.

그 양쪽의 인질들이 지금 한성의 손에 잡혀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한성은 기대가 되었다.

“일단 아이템부터.”

‘티르 나 노이의 여신 이시스님! 제발 이번에는 좋은 장비가 나오기를!’

200레벨 레전드 등급 보물 상자를 클릭한 한성은 눈을 감고 이시스에게 기도를 올렸다.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의 통합서버운영 AI인 이시스는 기본적인 게임 시스템을 관리 운영한다.

랜덤 뽑기인 보물 상자도 그녀의 영향하에 있다는 소리다.

그래서 한성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한성의 귀에 여성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축하합니다! Lv200 레전드 보물 상자에서 장…….]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