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
< 내 언데드 100만 >
제262화 크리스토 백작가의 구원자
번쩍!
붉은 반지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저주가 발동한 것이다.
“멈춰라! 멈추지 않으면 나머지 한 명도 죽이겠다!”
리처드는 사라에게 저주를 발동시켰다.
머지않아 사라는 죽게 될 터.
하지만 아직 세라가 남아 있었다.
리처드는 세라를 인질로 잡고 한성에게 소리친 것이다.
그 때문에 한성은 잠시 멈칫거렸다.
“좋아. 나머지 한 명이 죽는 꼴을 보기 싫으면 움직이지 마라.”
리처드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한성에게 명령했다.
그런 리처드에게 한성은 피식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죽긴 누가 죽어?”
“뭐?”
리처드는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리고 저주를 발동시킨 사라를 바라봤다.
“뭘 봐? 폭발시켜 줄까?”
이제 리처드 백작을 상대로 물불 가리지 않아도 되는 사라가 거칠게 쏘아붙였다.
“바보 언니. 이리아 아가씨의 메이드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체면 좀 지켜요.”
“체면이고 뭐고 그냥 폭발시켜 버리면 되지.”
화륵.
그동안 리처드에게 받은 원한이 있던 사라의 손에서 붉은 화염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히익!”
리처드는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사라가 어떤 성격이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세라도 마찬가지.
그래서 그녀들을 굴복시켜 고분고분 말을 잘 듣게 하기 위해 저주를 걸었었다.
그런데 저주가 발동돼서 괴로워하고 있어야 할 사라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유감이지만 네가 그녀들에게 걸어 놓은 저주는 이미 풀렸다.”
“뭐, 뭣?”
한성의 대답에 리처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 말도 안 돼. 이 저주는 어둠의 신봉자 녀석들이 고위급 저주 마법이라고 했었는데…….”
“우리한테도 고위급 사제가 있거든?”
“이제 아저씨는 끝이야.”
리처드의 말에 대답한 인물은 마나와 카나였다.
“저주라면 내가 해제했어요.”
그녀들에 이어 마리사가 앞으로 나섰다.
노출도가 놓은 강아지 인형 옷을 입힌 다음 한성은 마리사에게 저주를 해제할 수 없는지 알아봐달라고 했다.
4차 사제 직업인 아크 프리스트로 전직한 마리사에게 저주의 해제는 손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리처드가 알 수 없는 일.
“어금니 꽉 깨물어라.”
어느 틈엔가 한성은 리처드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그리고 리처드가 반응을 하기 전에 아크스태프를 휘둘렀다.
퍼억!
오리하르콘 합금으로 만들어진 아크스태프가 무자비하게 리처드의 얼굴 옆면을 날려 버렸다.
그리고 한성의 시야에 미션 메시지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히든 연계 미션 크리스토 백작가의 찬탈자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크리스토 백작가의 구원자 칭호를 획득합니다.]
그렇게 한성은 히든 연계 미션 하나를 완료했다.
* * *
크리스토 백작가의 영지와 영주성은 이리아에게 돌아왔다.
리처드는 현재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며칠 뒤, 그동안 리처드가 저지른 죄들을 밝혀내서 심판할 예정이었다. 세라에게 듣기로는 일단 최소 무기징역은 피할 수 없다고 했으며, 최종적으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거라고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크리스토 백작가의 영주성 내부에 있는 알현실.
그곳에는 현재 이리아의 아버지인 라이먼을 따르던 가신들이 일렬로 도열해 있었으며, 단상 위에는 이리아가 큰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리아가 한성에게 감사를 표해 왔다.
한성이 아니었으면 크리스토 백작가를 다시 되찾을 수 없었을 테니까.
“트레인 님. 이 단검을 받아주세요.”
이리아의 눈짓에 세라가 작은 상자를 가져왔다.
“이건?”
한성은 상자를 열어 봤다.
상자 안에는 호화스러운 황금문양이 장식된 단검이 있었다.
“저희 가문의 보물이에요. 그게 있으면 언제든지 크리스토 백작가의 영지령을 지나갈 수 있어요.”
[축하합니다. 크리스토 백작가의 아스피언 단검을 획득하셨습니다.]
‘오?’
단검을 받아들자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스피언 단검은 일종의 통행패였다.
크리스토 백작가의 영지령뿐만이 아니라 검문이 필요한 지역도 아스피언 단검 하나로 프리패스가 가능했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네.’
한성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설마 히든 연계 미션 칭호 보상뿐만이 아니라 이리아에게 따로 또 무언가를 받을 줄은 몰랐으니까.
‘구원자 칭호도 좋은 편이지.’
한성은 구원자 칭호의 정보를 확인했다.
[크리스토 백작가의 구원자]
타입: 칭호.
등급: 히든.
옵션(1): 이리아의 호감도(MAX).
옵션(2): 아이템 및 장비 할인.
설명: 크리스토 백작가를 어둠의 신봉자들과 리처드로부터 구한 자에게 붙여진 칭호.
크리스토 백작가의 여가주가 된 이리아와 그녀를 따르는 가신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다.
크리스토 백작가의 구원자 칭호는 크리스토 백작가가 지배하는 영지령 내 마을이나 도시에서 아이템이나 장비들을 살 때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할인율은 상점마다 다르며, 한성의 혀놀림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크리스토 백작가 영지령 내에는 200레벨이 넘는 도시가 있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한성은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춰 보였다.
지금 이리아는 크리스토 백작가의 여가주가 되었다.
또한 이곳은 그녀의 가신들이 지켜보고 있는 공적인 자리다.
‘뒤늦게 온 자들이 대부분이었지.’
지금 이곳에 있는 가신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라이먼을 따르던 대부분의 가신들은 이미 리처드에게 당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몇 남은 이들은 의리를 지켰다.
그들은 대부분 영주성 근방에 있는 마을이나 도시에서 기회를 노리고 숨어 있었다.
그런데 이리아가 영주성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던 것이다.
다만, 문제는 거리가 좀 먼 데다가 한성이 빠르게 영주성을 제압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그들은 한성이 영주성을 거의 다 제압했을 때야 도착해서 뒤처리를 도왔다.
“트레인 님.”
그때 이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성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한성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꼭 도와드릴게요.”
“네, 네.”
한성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리아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이리아를 중심으로 양옆에 서 있는 사라와 세라의 눈빛도 위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증거로 메이드 복장을 하고 있는 그녀들의 고양이 귀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칭호 효과 덕인가?’
한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 저녁에 조촐하게나마 파티를 준비했으니 꼭 참석해 주세요.”
다행히 이리아는 파티에 참석해달라며 물러났다. 본격적인 시작은 아무래도 저녁에 있을 파티 때인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파티를 준비해 두었다는데 빠질 이유가 없었다.
한성은 고개를 숙이며 참석의 뜻을 내비쳤다. 그러자 이리아를 비롯한 사라와 세라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 *
이리아가 마련해 준 영주성의 큰 방 침대 위에서 상태창과 아이템 및 장비들을 확인하면서 한성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망할 운영자 놈들. 항의 좀 해야겠네.”
알현실에서 일이 끝나고 한동안 한성은 바빴다.
영주성을 찾아온 디아나의 미스릴 조직 간부들과 미팅도 가졌고, 이리아를 따르는 가신들과도 이런저런 감사의 인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이란 일행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들은 굳이 영주성 제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한성을 도와주기 위해 영주성 제압전에 참가했기에 한성은 그녀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세이란이 에르네스트 산에서 있었던 오딘사 운영자들의 보수로 전설급 아이템을 받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에 반해 한성은 무슨 보수를 받았던가?
3개월 계정 이용료밖에 받지 못했다.
사실 그것도 작은 보수는 아니지만 전설급 아이템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성은 그 당시 담당이었던 이성식 대리에게 항의를 할 생각이었다.
“마스터.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그때 한성의 옆으로 엘레오노라가 달콤한 목소리로 물으며 다가왔다.
은은한 플로랄 향과 함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한성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바로 눈앞에 엘레오노라의 풍요로운 가슴이 아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 엘레나?”
“네, 마스터. 무슨 할 말 있으세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엘레오노라는 한성 앞에서 허리를 숙여보였다.
여기서 문제는 지금 그녀가 평소의 마녀 복장이 아니라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얇은 네글리제를 입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목 부분이 꽤 헐렁헐렁해서 몸을 숙이고 있는 엘레오노라의 풍만한 하얀 가슴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잘 어울리네.”
엘레오노라의 매혹적인 몸매를 본 순간 자기도 모르게 먼저 말이 나갔다.
“어머. 고마워요, 마스터.”
엘레오노라는 눈웃음을 지으며 한성의 왼팔을 끌어안으며 달라붙었다.
한성의 팔이 부드러운 가슴 속으로 파묻혀들어갔다.
“마스터! 루루도!”
그때 방 한쪽에서 라이와 틴달로스를 데리고 놀고 있던 루루가 깽깽이발로 폴짝폴짝 뛰어왔다.
그리고 한성의 품 안에 폭 안겼다.
“루루야. 저쪽에 가서 틴달로스랑 놀고 있어.”
“싫어영. 루루도 마스터랑 놀래영. 헤헤.”
엘레오노라의 말에 루루는 한성의 품에 얼굴을 부볐다.
그 귀여운 모습에 한성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마스터. 저도 머리 쓰다듬어 주시고 칭찬해 주세요!]
루루에 이어 틴달로스도 한성의 어깨에 올라타면서 얼굴을 부비며 애교를 부렸다.
“그래그래.”
한성은 검지로 살살 소녀 모습을 한 틴달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틴달로스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한성의 얼굴에 몸을 기댔다.
‘하여간 응석꾸러기들이니까.’
귀여운 루루와 틴달로스의 애교에 한성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는 한성을 향해 라이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트리플 퓨전을 하고 나서 라이는 어깨 높이가 2미터에 가까워졌고 몸길이가 3미터나 되었으며, 윤기가 흐르는 은빛 갈기털을 가진 날렵하고 멋진 실버 울프가 되었다.
헥헥헥.
“…….”
하지만 하는 짓은 댕댕이가 따로 없었다.
방바닥에 드러누운 라이는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이며 한성을 올려다봤다.
아우우. 아우우우우.
마치 ‘어서 내 배를 쓰다듬어라 주인.’이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정말 너희들은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하니?”
한성은 방바닥에서 애교를 부리고 있는 라이의 배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루루도!”
[저도요!]
이어서 루루와 틴달로스도 라이의 배를 쓰다듬었다.
“마스터. 저도.”
그리고 엘레오노라는 한성의 등을 부드럽게 안아 왔다.
한성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적나라한 감촉에 몸이 굳어짐을 느꼈다.
“저, 저기 엘레오노라?”
“엘레나라고 부르세요, 마스터.”
후우.
엘레오노라는 한성의 귀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으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