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
< 내 언데드 100만 >
제261화 정체불명의 소녀
스스스스슥.
소녀가 휘두른 손길을 따라 지면에 파여진 크레이터가 메꿔졌다. 한성과 페르젠의 전투로 인해 파괴되었던 지형이나 물품들이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녀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에 본 익스플로전으로 희생되었던 블랙 스켈레톤 솔저들이 나타났다.
당연히 블루 아이즈 블랙 스켈레톤 드래곤도.
페르젠 또한 본 익스플로전의 공격을 받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마치 한성이 본 익스플로전을 시전하기 전의 상황으로 시간이 되돌아간 것처럼.
“이, 이세트 님.”
회복이 끝난 페르젠은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페르젠은 끝없는 존경과 선망, 신성한 존재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봤다.
‘뭐지, 이건? 스킬 맞아?’
소녀가 보인 기행 때문에 한성은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한순간에 파괴된 지형지물들을 원상 복귀시켰다.
심지어 스킬의 제물로 바쳐진 소환수들마저 다시 나타나다니.
마치 이전 시간으로 되돌린 것 같지 않은가.
저런 스킬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하늘 섬 업데이트를 할 때 함께 된 건가? 그렇다고 해도 사기 아니야?’
“돌아가자.”
하얀 소녀는 페르젠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팟!
그 순간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큭!”
갑작스러운 빛에 한성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리고 다시 전방을 바라봤을 때는 하얀 소녀도, 페르젠도 아무도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한성은 갑작스레 일어난 상황에 그저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저게 대체 뭐야?”
특수 대응 전담 프로젝트팀 사무실.
특수 대응 프로젝트 담장자인 이성식 대리는 사무실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이 대리가 들여다보고 있는 모니터에서는 크리스토 백작가의 영주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비춰지고 있었다.
세이란 일행에게 티르 나 노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현상에 대해 조사를 의뢰한 후 한 번씩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가 마침 영주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목격한 것이다.
‘또 저 플레이어인가?’
이 대리는 이마에 손을 짚으며 모니터 속에서 활약 중인 한성을 바라봤다.
그렇지 않아도 세이란 일행과 한성이 다시 합류했다는 사실을 알고 골치가 아파 왔었다.
한성이 얽히면 항상 머리 아픈 일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분명 죽었을 터인 켈트인 레이몬드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버그라도 생긴 줄 알았었다.
‘저 플레이어가 얽히기만 하면 시스템이 자꾸 꼬이는 거 같지?’
이 대리는 한성을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레이몬드의 경우는 다행히 버그가 아니었다.
죽었다가 페르젠의 손에 의해 마인으로 전생했다는 설정이 추가되었던 것이다.
현실적인 가상 세계를 추구한 결과였다.
‘설마 이런 식으로 결과가 나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최근 개발팀에서는 티르 나 노이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이상 현상들을 종합해서 분석했다.
그 결과 한 가지 결론을 냈다.
현실과 다를 바 없는 가상 세계를 추구한 결과라고.
물론 100% 그렇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다.
가상 현실 세계 티르 나 노이에서 플레이어 방문자들의 레벨 업이나 상태창, 스킬 같은 게임 시스템은 이시스가 관리한다.
하지만 켈트인들은 아니다.
그들은 각자 독립적인 AI를 가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켈트인들이나 방문자들은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결과가 나온다.
그뿐만이 아니라 날씨나 지형 같은 배경 시스템에는 기본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자연적인 현상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현실과 다름없는 가상 세계를 재현하기 위해 불필요한 개입은 하지 않는 편이었다.
티르 나 노이라는 가상 세계가 저절로 자연스럽게 굴러가도록 만들기 위해서.
물론 프로그램적인 버그나 오류, 에러 같은 문제들은 디버깅이나 수정을 하지만 말이다.
‘분명 그럴 거라고 개발팀 녀석들이 결론을 냈었는데…….’
이 대리는 모니터 속에 등장한 한 소녀를 유심히 바라봤다.
빛을 내고 있는 하얀 원피스의 소녀.
백번 양보해서 이상 현상이 현실과 같은 가상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면 지금 나타난 하얀빛의 소녀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부서진 지형지물을 한순간에 복구시키고, 본 익스프롤전 스킬로 인해 폭발한 한성의 언데드 소환수들까지 다시 부활했다.
마치 시간이 되돌아간 것처럼.
“아, 진짜 미치겠네.”
이 대리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프로젝트 팀의 김상철 주임을 바라봤다.
“이시스로부터 연락은?”
“모르겠답니다.”
“하.”
김 주임의 대답에 이 대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크리스토 백작가의 영주성에 나타난 하얀빛의 소녀에 대해서 이시스는 모르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까지 발생해온 이상 현상과 하얀빛의 소녀 간에 연관성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저 소녀와 마인이 연관되어 있고, 마인들은 어둠의 신봉자들과 연관되어 있지.’
가상 현실 게임인 티르 나 노이의 세계관은 방대하고 복잡하다. 플레이어들의 스토리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방문자들과 켈트인들 간의 교류가 곧 스토리라고 보면 된다.
현재 한성이 플레이 하고 있는 월드 히든 미션도 수많은 스토리 중에 하나였다.
다만 한성의 경우는 기본적인 스토리 뼈대가 존재했다.
네크로맨서의 히든 직업 데스브링어부터 시작해서 어둠의 신봉자들과 대립한다는 기본적인 직업 설정과 스토리가 있었으니 말이다.
한성과 같은 일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스토리들은 켈트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생겨난다.
그것이 바로 미션이나 퀘스트다.
그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고 그냥 묻혀 버린 스토리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유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가상현실 세계 티르 나 노이를 즐기고 있다.
몬스터들과 싸우는 모험이나, 낚시왕이 되려고 하는 사람, 댄스왕이 되려고 하는 사람 등등.
그뿐만이 아니라 아예 논이나 밭을 사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특정한 미션이나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스토리와 드라마가 있었다.
그렇기에 가상현실 세계 티르 나 노이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게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스토리들 중에서 왜 하필 얼마 전에 업데이트한 히든 직업인 건지.’
이 대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납득이 갔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이상 현상들은 하늘 섬 업데이트를 하면서 생겨났으니까.
하늘 섬을 추가하면서 신규직업들을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들을 업데이트시켰었다.
아무래도 그때 무언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한성이 전직한 데스브링어와 대립하고 있는 어둠의 신봉자들이 이상 현상들과 연관성이 있어 보였다.
‘설마 진짜 전직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히든 직업으로 전직하려면 숨겨진 조건들을 클리어해야 한다. 당연히 한성이 입수한 히든 전직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정신 나간 놈이 마이너스 10레벨이 되려고 수십 번 넘게 PK를 당하고 싶어 하겠냐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어떤 변태 같은 놈이 전승을 하고 나서 신나게 PK를 당한 끝에 데스브링어로 전직한 것이다.
“그래서 이시스는 뭐라고 하던데? 위험할 것 같다고 하던가?”
“그 부분에 관해서는 저희도 여러 번 확인해 봤는데 달리 큰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플레이어들의 안전장치만큼은 개발팀과 이시스가 확실히 관리하고 있으니까요.”
“그나마 다행이네.”
김 주임의 대답에 이 대리는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하얀빛의 소녀 때문에 안전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다면 당장 게임을 정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플레이어들의 안전은 지켜야 했다.
“그리고 이시스도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합니다.”
“좋아. 개발팀에게 저 소녀가 나타난 가상공간에 대한 조사를 하라고 연락 보내 놔. 저 시간에 저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코드 분석을 해 보면 단서가 나오겠지.”
“…….”
이 대리의 말에 김 주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도 집에 못 가나요?”
“응. 야근 확정이야.”
“아, 대리님. 저 벌써 3일 동안 집에 못 갔어요. 집에 좀 보내 주세요. 오죽하면 여자친구가 바람 피우는 거 아니냐고 의심한단 말이에요.”
“닥쳐. 넌 여자친구라도 있지 난 없다고.”
“아, 그러지 마시고 저 좀 살려 주세요. 이러다 저 여친한테 맞아 죽을 것 같아요.”
“그 전에 내 손에 맞아 죽을 듯. 헛소리는 모니터 보면서 해라. 우리도 개발팀에서 결과 나올 때까지 모니터링 계속해야 되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크윽.”
단호한 이 대리의 태도에 김 주임은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 모니터 주파수 상태가 왜 이러냐. 눈알 빠질 것 같아서 눈물이 다 나네.”
그렇게 김 주임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그런 김 주임에게 이 대리는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야, 넌 그래도 눈물 좀 흘리면 끝나지. 우리 박 팀장님은 어떡하냐? 이번에 생긴 이야기 들으면 또 머리카락이 바람 앞의 민들레처럼 빠질 텐데.”
이 대리는 고개를 들고 사무실 내에 있는 팀장실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 * *
페르젠이 사라지고 난 뒤, 영주성 제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페르젠을 상대하려고 소환한 블랙 스켈레톤 솔저 1,000마리와 블루 아이즈 블랙 스켈레톤 드래곤 덕분이었다.
이 언데드 군단 앞에 불과 수백 명에 불과한 영지군들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리처드 백작이 믿었던 어둠의 신봉자들도 대부분 페르젠이 한성의 공격을 막아 내기 위해 희생시켜 버린 뒤라서 다른 도움을 바랄 수 없었다.
그렇게 영주성을 경비하는 병력들을 처리한 한성은 세이란 일행들과 함께 집무실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 이 자식들 내가 대체 누군줄 알고!”
영주성 집무실에는 리처드 백작밖에 없었다.
부하들이 전부 도망간 것이다.
오직 리처드 백작만 남기고.
“이제 그만 포기하세요, 숙부님.”
리처드 백작 앞으로 이리아가 나섰다.
그런 이리아의 앞에 사라와 세라가 나란히 섰다.
“우, 웃기지 마라! 내가 너 같은 어린 녀석에게 고개를 숙일 것 같으냐!”
리처드 백작은 거의 반쯤 광란에 빠져 있었다.
얼굴빛은 거무죽죽하게 죽어 있었으며, 눈알은 불안한 듯 마구 요동친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아무래도 맞아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지?”
한성은 리처드 백작을 노려보며 앞으로 한걸음 나갔다.
“오, 오지 마!”
그러자 리처드 백작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손에 끼고 있던 붉은 반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이상 다가오면 저기 있는 시녀들을 죽이겠다!”
리처드 백작은 한성을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그 말에 사라와 세라는 살짝 움찔했다.
리처드 백작이 끼고 있는 붉은 반지는 사라와 세라에게 걸어놓은 저주를 발동시킬 수 있는 트리거였다.
“거기 비리비리한 놈. 저년들이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비켜라.”
리처드 백작은 득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쪽에 인질이 있는 이상 세이란 일행이나 한성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럴 수 있으면 그래 보든가.”
하지만 한성은 개의치 않았다.
한성은 리처드 백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 줄기 빛살처럼 달려는 한성.
“제기랄!
다짜고짜 달려오는 한성의 행동에 리처드 백작은 붉은 반지를 발동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