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
< 내 언데드 100만 >
제259화 트레인 vs 페르젠
‘저놈이 왜 이곳에?’
한성은 영주성 안쪽에서 나타난 어둠의 신봉자들과 붉은 코트의 사내 페르젠을 노려봤다.
페르젠 또한 마찬가지.
“또 네놈이냐! 방문자라는 것들은 정말 지긋지긋하군.”
페르젠은 눈살을 찌푸렸다.
북풍지대에 있는 죽음의 탑에서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로 끝장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자신의 일에 방해를 하지 못할 정도의 경고는 될 거라 여겼었다.
방문자라는 족속들이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죽으면 페널티를 받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성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마수들을 불러냈었다.
그런데 오히려 역으로 마수들이 당해 버렸던 것이다.
그 때문에 페르젠은 같은 마인들에게 체면을 구겼다.
“이번만큼은 철저하게 밟아 주마! 영원히 지하 감옥에서 썩게 만들어 주지.”
페르젠은 오른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페르젠의 오른손에 붉은 마기가 휘몰아치면서 장검이 하나 나타났다.
피에 물든 붉은 장검,
블러드 체이서(Blood Chaser).
전용무기까지 꺼내든 페르젠은 한결 여유로운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그뿐만이 아니라 페르젠의 등 뒤에는 아말감의 네크로맨서 계열의 흑마법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검은 갑주의 기사, 데스나이트들뿐만이 아니라 새롭고 강력한 언데드 몬스터들을 소환하기 위한 의식을 준비 중이었다.
“일어나라, 종들이여!”
우워어어어.
소환 의식을 준비하지 않고 있는 나머지 네크로맨서들이 좀비들과 구울들을 소환해 냈다.
그 모습을 본 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들이 지금 내 제물들을 쓰고 자빠졌네?”
영주성 내부에는 한성의 언데드 몬스터들에게 사망한 영지군 병사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네크로맨서 놈들이 영지군 시체들을 일으킨 것이다.
한번 사용한 시체들은 두 번 다시 제물로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상당한 숫자의 소환수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좀비와 구울은 언데드 몬스터들 중에서도 하급이었다. 일반 스켈레톤 솔져들보다 강한 까망이들의 상대는 아니었다.
다만.
철컥철컥.
적들의 데스나이트들이 문제였다. 데스나이트 한 마리당 검병이 최소 3마리 이상 붙어야 했으니까.
“어디를 보고 있느냐! 네놈의 상대는 나다!”
그때 어둠 속에서 페르젠이 붉은 빛의 잔상을 남기며 한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피를 쫓는 자라는 이명을 가진 붉은 장검이 번개같이 한성을 향해 휘둘러졌다.
한성은 재빨리 아크스태프를 치켜들었다.
카앙!
아크스태프를 통해서 엄청난 반발력이 전해져 왔다.
페르젠 또한 반동으로 뒤로 살짝 물러섰다.
스팟!
순간 뒤로 물러서는 줄만 알았던 페르젠의 모습이 사라졌다. 한성의 사각이라 할 수 있는 왼쪽을 향해 빠르게 파고든 건 것이다.
지금 한성의 오른 손에는 아크스태프가 있었지만, 왼손은 아무것도 없었다.
바로 그 점을 노린 것!
하지만.
슈욱!
아무것도 없는 한성의 왼손에 무기가 하나 나타났다.
전설의 육죽창이었다.
“헛!”
완벽한 기습이라고 생각했던 페르젠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몸을 뺐다.
하지만 그 틈을 놓칠 한성이 아니었다.
뒤로 빠지는 페르젠을 쫓아 전설의 육죽창을 힘껏 내질렀다.
“블러드 실드.”
순간 페르젠을 향해 찔러 들어가는 육죽창 앞에 붉은 마력의 오각방패가 나타났다.
하지만 죽창 앞에서 모든 만물은 평등하다.
그냥 죽창도 아니고 전설의 육죽창이 아닌가?
콰창!
육죽창과 격돌한 블러드 실드는 유리처럼 깨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블러드 실드를 파괴한 육죽창이 페르젠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스칵!
“큭!”
페르젠은 짤막한 신음 소리를 흘렸다.
그에 반해 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손맛이 약했다.
비록 블러드 실드가 육죽창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페르젠이 피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던 것이다.
육죽창은 아슬아슬하게 페르젠의 볼을 스쳐지나갔다.
“건방진.”
페르젠의 푸른 눈에 차가운 살의가 어린다.
육죽창이 스쳐 지나간 페르젠의 뺨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붉은 피방울이 블러드 체이서 쪽으로 달라붙었다.
순간 블러드 체이서가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
휘둘러진 궤적을 따라서 블러드 체이서의 붉은 빛이 한성을 향해 쇄도한다.
슈아아아악!
날카로운 붉은 검기가 파공성을 내며 날아드는 모습을 본 한성은 재빠르게 몸을 옆으로 날렸다.
쉬익!
그 순간 붉은 검기가 한성을 향해 궤도를 틀었다.
블러드 체이서라는 이름에 걸맞게 붉은 검기는 상대를 놓치지 않고 뒤쫓았다.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한 한성은 아크스태프를 치켜들었다.
“본 실드.”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 뼈방패들이 한성의 앞에 생성되었다.
콰가가가각!
이내 붉은 검기와 블랙 본 실드가 충돌하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아직이다!”
그때 페르젠이 블러드 체이서를 번개같이 마구 휘둘렀다.
쉬익! 쉬이익!
순식간에 여러 개의 붉은 검기가 사방팔방으로 흩날리면서 한성을 향해 쇄도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붉은 검기들을 피할 수 없었다.
한성은 아크스태프로 지면을 내려찍었다.
쿵.
“본 월.”
콰콰콰콰콰콰!
한성을 중심으로 지면에서 검은 뼈 방벽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리고 검은 뼈 방벽은 한성을 덮으며 반구 형태를 이뤘다.
까강! 까가가강!
사방에서 날아드는 붉은 검기들이 본월과 충돌하며 거친 쇳소리를 냈다.
“질긴 놈이로군.”
자신의 피를 사용한 블러드 체이서의 연속 공격을 한성이 막아내자 페르젠은 혀를 찼다
스스스슷.
이윽고 붉은 검기들을 막아낸 본월이 사라졌다.
순간 페르젠은 눈을 부릅떴다.
본월이 사라지자 아크스태프에서 흑마력을 모으고 있는 한성의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크스태프를 페르젠에게 향하며 한성은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체인 오브 바인드!”
촤자자작!
순간 페르젠이 서 있는 지면에서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검은 쇠사슬들이 튀어나왔다.
“뭐, 뭐얏!”
촤르륵!
검은 쇠사슬들이 허공을 춤추며 페르젠을 강하게 묶기 시작했다.
다리를 시작으로 허리와 배, 가슴과 팔까지 꽁꽁 묶었다.
검은 쇠사슬에 속박당하면 페르젠은 물리적인 데미지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데미지도 입었다.
“크으윽! 감히 나에게 이런 모욕을 주다니…….”
이를 악물고 신음 소리를 흘리며 페르젠은 한성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이래서 인간형태의 적들에게는 쓰고 싶지 않았는데…….’
정신적인 데미지는 한성도 입은 상황.
검은 쇠사슬이 요상한 모양으로 페르젠을 묶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명 거북묶기 혹은 귀갑묶기였다.
하지만 효과는 굉장하다.
묶인 적은 무려 5분간 행동 불능 상태로 빠뜨리는 것도 모자라 지력 비례 데미지까지 입히기 때문이다.
단, 보스를 상대일 때는 효과가 반감된다.
페르젠의 경우 일반적인 보스 몬스터보다 조금 더 강력한 존재다.
그 때문에 속박시킬 수 있는 시간은 약 2분 정도였다.
그리고 애초에 지력 비례 데미지는 큰 편이 아니다.
그야말로 덤 같은 효능이었으니까.
“이걸로 끝이다!”
조금 전부터 공격 마법 하나를 준비 중이던 한성은 스킬을 발동시켰다.
즈즈즈증.
그러자 검은 쇠사슬에 묶여 있는 페르젠의 주위로 총 10개의 검은 구체가 나타났다.
“터져라! 다크 봄버!”
콰콰콰콰쾅!
순간 페르젠의 주위에 나타난 검은 구체들이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검은 폭발이 일어나면서 흙먼지와 작은 돌덩이들이 치솟아 오른다.
지면과 대기가 흔들릴 정도로 폭발은 어마어마했다.
아무리 페르젠이라고 해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한성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페르젠이 있는 폭심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상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인이야. 긴장을 늦출 수는 없지.’
한성은 혹시나 페르젠이 무사할 경우를 대비해 다음 공격 준비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치솟아 오른 먼지가 가라앉으며 폭심지의 상황이 드러났다.
“……!”
폭심지를 바라본 한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가라앉고 있는 흙먼지 사이로 붉은빛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질긴 건 피차일반이군.”
한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시야를 가리는 먼지가 가라앉고 폭심지 속에서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페르젠이 나타났다.
“겨우 이 정도로 내가 쓰러질 거라 생각하면 곤란하지.”
페르젠은 섬뜩하게 빛나는 붉은 눈으로 한성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차가운 살의가 가득 담긴 미소다.
당장이라도 한성을 죽이고 싶은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페르젠은 냉정했다.
방금 전 체인 오브 바인드와 다크 봄버의 콤보 공격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만약 블러드 배리어로 방어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치명상을 입고 바닥을 나뒹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조금 전 폭발로 체인 오브 바인드가 풀렸다.
페르젠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끝을 내 주마.”
한성을 노려보며 한마디 한 페르젠은 품속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무언가를 꺼냈다.
“그, 그건 설마?”
“바로 그 설마다!”
콰작! 콰직!
한성이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페르젠은 품속에서 꺼내든 구체를 씹어 먹었다.
“미친!”
한성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페르젠이 꺼내든 구체가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라는 사실을.
다만 조금 다른 점은 지금까지 수정구는 검은색이었지만, 페르젠이 꺼내든 건 붉은색이었다.
[경고! Lv250 푸른 눈의 마인 페르젠이 안드로말리우스의 붉은 수정구를 섭취하였습니다. 수정구의 힘으로 마인 페르젠이 2차 각성을 합니다.]
“2차 각성이라고?”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한 한성은 놀란 표정으로 페르젠을 바라봤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안드로말리우스의 붉은 수정구를 씹어 먹은 페르젠은 한성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죽여 주마.”
콰앙!
순간 페르젠에게서 사나운 살의와 붉은 마기가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얼마나 강렬한 기세인지 페르젠을 중심으로 소규모 크레이터가 생겨날 정도였다.
“이 상황에서 2차 각성을 하는 거냐?”
눈앞에서 강렬한 붉은 마기를 흘리고 있는 페르젠을 바라보며 한성은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그래도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지. 틴달로스!”
[넹! 가지고 왔어요! 마스터! >_<]
한성의 어깨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귀여운 소녀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좋아. 잘했어.”
[그럼 머리 쓰다듬어 주세요. 헤헤.]
“그건 저놈 쓰러뜨리고 나서.”
어깨 위에서 귀엽게 애교를 부리는 틴달로스의 모습에 한성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눈앞에서 폭주 중인 페르젠을 쓰러트려야 하니까.
“이제 끝을 내자, 페르젠.”
한성은 아크스태프로 지면을 내려찍으며 페르젠을 쓰러뜨리기 위해 준비한 스킬을 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