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
< 내 언데드 100만 >
제252화 레이몬드의 심문
“그렇단 말이지?”
세이란은 차가운 경멸이 담긴 눈으로 레이몬을 노려봤다.
더불어 성검 엑스칼리버에서 황금빛이 흐르기 시작한다.
따끔따끔한 황금빛이 레이몬을 찔러왔다.
“물러나라. 그렇지 않으면 벤다.”
[나는 그 누구의 명령에도 따르지 않…….]
덥썩!
그때 무언가가 레이몬의 오른 손을 물었다.
레이몬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크릉.
그곳에 거대한 덩치의 라이가 자신의 오른손을 잘근잘근 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콰드득. 콰드드득.
앙증맞게 솟아나온 날카로운 송곳니가 레이몬의 건틀렛에 박혀 들어왔다.
[이 근본도 없는 멍멍이가 지금 뭐하는…….]
“라이. 그놈 데리고 와.”
크왕!
등 뒤에서 들려온 한성의 말에 라이는 레이몬의 건틀렛을 꽉 물더니 몸을 날렸다.
[크헉!]
라이의 괴력에 레이몬은 그대로 끌려갔다.
화가 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한성의 앞으로 말이다.
“미안. 계속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레이몬드를 심문하던 한성은 세이란이 있는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며 말했다.
그리고 발아래까지 끌려온 레이몬을 신나게 밟아 댔다.
“저기가 어디라고 수작질이야? 너 그러다 죽어 인마!”
깡! 깡! 깡!
강철 부츠로 레이몬을 밟자 쇳소리가 절로 울려 퍼졌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떻게든 변명을 하려는 레이몬.
하지만 세이란을 비롯한 마리사, 마나와 카나의 눈초리가 싸늘했다.
그녀들에게 의심 받지 않으려면 레이몬을 족치는 수밖에 없었다. 레이몬은 한성의 소환수였으니까.
‘이미 딜이 되어 있으니 초를 칠 수는 없지.’
한성은 사라와 세라를 마나와 카나에게 넘겼다.
사라와 세라의 사정을 알게 된 마나와 카나가 좋은 방법이 있다면서 말이다.
그건 바로 사진촬영회였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들은 다양한 종족 의상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옷들을 사라와 세라에게 입혀서 사진을 찍었다.
수영복뿐만이 아니라 섹시한 토끼 인형 옷, 귀여운 고양이 옷, 그 외에도 작은 공 인형 옷 등등.
정말 다양했다.
‘대체 누구한테 입힐 생각이었던 거지.’
임시로 설치한 천막에서 사라와 세라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래도 새로운 옷을 꺼낸 모양.
‘사진은 내 거다.’
그녀들을 넘긴 대가로 한성은 사라와 세라의 사진을 받기로 협약을 맺었다.
이 사진들은 이후 요긴하게 쓸 계획이었다.
네리아나 디아나에게 줘도 되고, 사라와 세라에게 협박용으로 써도 되고.
마리사와 세이란은 당연히 모른다.
마나와 카나, 한성만의 비밀 협약이었으니까.
레이몬에게 잠깐 정신교육을 해준 한성은 블랙 스켈레톤 드래곤이 누워 있는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거기에는 블랙 스켈레톤 솔저들이 둥글게 모여 있었으며, 그 중심에는 다크 메탈 골렘이 서 있었다.
‘문제는 이놈들인데…….’
한성은 포박시켜 놓은 영지군 병사들을 바라봤다.
일단 목표인 이리아와 반지를 구해 냈다.
말단 병사들인 영지군들에게서 도움 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만, 한 놈만큼은 달랐다.
“누가 널 다시 살렸냐?”
한성은 눈앞에서 포박되어 있는 레이몬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할 것 같나?”
세로 모양의 노란 동공과 붉은 눈을 가진 레이몬드가 입가에 비웃음을 띄웠다.
그 모습에 한성은 다크 메탈 골렘에게 눈짓했다.
“흔들어.”
탁탁탁!
한성의 말에 다크 메탈 골렘은 손을 위아래로 빠르게 흔들었다.
“흐어어어어억!”
다크 메탈 골렘의 손에 거꾸로 붙잡혀 있던 레이몬드는 피가 위 아래로 올라갔다가 내려가자 비명소리를 흘렸다.
“네놈처럼 변한 놈들을 내가 만난 적이 있거든? 마인이라는 놈들인데 대체 뭐하는 놈들이지? 마계의 72 악마 중 하나인 안드로말리우스를 따르는 놈들인 거 같던데 말이야.”
한성은 기계적으로 신나게 반복 피스톤 운동을 하던 다크 메탈 골렘의 팔을 멈추며 말했다.
“이, 이런다고 내가 말할 것 같으냐?”
눈이 핑핑 돌아가고 있었지만 레이몬드의 성격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럴 거라 생각했어. 겨우 고문 정도로 네놈이 입을 열 리가 없겠지. 하지만…….”
한성은 레이몬드를 바라보며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리 레이몬드가 정신력이 강하더라도 입을 열게 할 방법이 있었다.
“이제 저놈은 너한테 넘기마, 레이몬.”
한성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성을 따라온 레이몬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마침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잘 됐군. 이놈을 족치면 되는 거냐?]
라이에게 물린 채 끌려온 데다가 한성에게 정신교육을 받은 레이몬은 지금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하지만 레이몬드를 샌드백처럼 두들길 생각에 기분이 점점 풀렸다.
“족치는 건 맞는데 물리적으로 말고 정신적으로 족쳐.”
[…….]
레이몬은 검은 헬멧 안에서 푸르게 빛나는 두 눈을 껌벅이며 한성을 바라봤다.
[물리적으로는 안 되나?]
“응, 안 돼. 네가 잘하는 정신공격 써. 물리공격 말고.”
[물리공격이 내 전문이다.]
레이몬은 항의하는 눈빛으로 한성을 강하게 노려봤다.
“웃기지 마. 내가 봤을 때 넌 정신공격이 특기야. 그냥 저놈이랑 평소처럼 대화 몇 마디만 하면 돼.”
[어차피 맞으면 알아서 다 불게 되어 있는데 아쉽군.]
아쉬운 눈으로 레이몬드를 바라보는 레이몬.
방금 전 한성에게 밟힌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었는데 말이다.
“흥. 데스나이트치고는 왜소한 체격이군. 네놈의 그 가느다란 팔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거냐?”
그때 다크 메탈 골렘의 손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레이몬드가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한성의 소환수인 데스나이트 3기에 비하면 레이몬은 작은 체격이었다.
데스나이트 3기는 3미터의 거구였지만 레이몬은 2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레이몬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개보다도 못한 놈이 지금 어디서 잘난 척이지?]
“뭐…… 라고?”
레이몬의 말에 레이몬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개 한 마리 이기지 못하는 네놈이 내 상대가 될 것 같나? 가소롭군.]
레이몬은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레이몬드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웃기지 마라! 나는 지지 않았다! 그리고 개가 아니라 거대한 늑대잖아!”
[늑대나 개나 그놈이 그놈이지.]
레이몬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레이몬드가 라이와 싸운 걸 빌미로 물고 늘어진 것이다.
[아무튼 라이한테 이기지도 지지도 않았으니 비겼다고 볼 수 있겠군. 그럼 개 같은 놈이 되는 건가?]
레이몬은 히죽히죽 웃는 눈초리로 레이몬드를 바라봤다.
그런 레이몬의 태도에 레이몬드는 속이 조금씩 끓어올랐다.
“계속 날 모욕할 셈이냐? 이 포박만 풀면 네놈을 당장 죽여 버리겠다!”
[그건 무리다. 네놈은 나보다 약해 보이니까. 나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하다.]
“뭐라고? 그럼 당장 이걸 풀어라! 네놈에게 내 힘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마!”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의 말은 듣지 않는다.]
“이거 당장 풀어!”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의 말은 듣지 않는다.]
“이거 당장 풀라고! 이 망할 자식아!”
[개 같은 네놈을 낳은 부모는 누구냐?]
“크아아아악! 감히 언데드 주제에 내 부모님을 들먹여!?”
계속되는 레이몬의 도발에 결국 레이몬드의 이성이 끊어졌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한성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마왕에게 부모님 패드립까지 치는 레이몬. 내 선택이 맞았군.’
레이몬드와 대화를 나누는 레이몬의 멘탈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몬의 멘탈은 완전 붕괴 할 터.
그때까지 한성은 느긋하게 기다릴 생각이었다.
‘우선은 마인들과의 관계와 이세트에 대해 캐내야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규모를 보면 안드로말리우스가 벌이고 있는 건 아니야.’
티르 나 노이에서 안드로말리우스는 마계의 72귀족 중 하나다. 72귀족 중 상위에 위치한 마족이라면 모를까 말단인 안드로말리우스가 일으키고 있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컸다.
특히 이번에 세이란과 만나게 되면서 한성은 사태가 가볍지 않다는 걸 느꼈다.
가상현실 세계 티르 나 노이의 곳곳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와 연관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상 현상을 쫓아온 세이란이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가 변형한 암흑거인과 조우하게 되었으니까.
‘뭐, 어떻게 보면 돌발 이벤트이긴 한데…….’
그녀들 입장에서 보면 생각지도 못한 돌발 이벤트라고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암흑거인을 때려잡고 보상도 받았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상 현상이 무엇인지 아직 오딘 사에서 파악하지 못했다.
애초에 세이란이 이상 현상을 쫓고 있는 이유도 오딘 사에게 조사를 의뢰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시스가 수정을 한 건가?’
이시스는 유그드라실 인텔리전스 시스템 인터페이스 유닛, 가상현실 세계 티르 나 노이를 운영하기 위해 존재하는 인공지능이다.
티르 나 노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버그나 에러, 오류를 실시간으로 수정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아니면 내가 너무 깊게 생각한 것일 수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암흑 거인은 월드 히든 미션과 연관되어 있었다.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에서 암흑거인이 나타나자 월드 히든 미션의 진행상황이 새롭게 갱신되지 않았던가?
어쩌면 이상 현상과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는 관계가 없을 수도 있었다.
‘어찌됐든 이시스에게 문제가 있을 리는 없겠지.’
이시스는 오딘 사에서 엄격한 관리를 받는다.
시스템 체크도 자주 하며, 이시스 자체도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이라고 인정받고 있었다.
만약 이시스의 AI에 문제가 있다면 이미 벌써 게임 시스템 전체에 손을 쓰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버그나 에러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 전에 오딘 사에서 게임을 정지시켜 놓을 테지만.
‘이세트가 배후에 있다는 건 틀림없겠지. 그리고 어쩌면 오딘 사에서 서프라이즈 이벤트 업데이트를 준비 중일 수도 있고.’
오딘 사의 운영자들이 세이란과 같은 랭커들에게 이상 현상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해 놓고, 뒤에서는 시스템 테스트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지금도 이렇다 할 문제없이 게임이 돌아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레이몬이 잘하길 바라야…….’
순간 한성은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고 크리스토 백작가의 영주성이 있는 쪽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누구냐!”
쏴아아아.
하얀 달빛 아래 초원의 긴 풀들이 바람에 흩날린다.
“그곳에 숨어 다는 걸 알고 있다. 그만 모습을 드러내지?”
스스슥.
초원의 풀 속에서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