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언데드 100만-250화 (250/318)

# 250

< 내 언데드 100만 >

제250화  그녀들의 사정

“결국 저희들은 실패하고 말았네요.”

몬테르디 초원의 공터에서 체념한 세라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맴돌았다.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라고 할 수 있는 암흑거인이 쓰러진 뒤 수많은 좀비들과 몇 마리 정도 남은 구울은 손쉽게 처리되었다.

약 200명 정도 살아남은 크리토스 백작가의 영지군들은 모두 한성의 소환수들에게 제압당했다.

그들은 전부 밧줄로 온몸이 결박당한 채 기절해 있었다.

레이몬드도 함께 말이다.

“왜 이제 와서 이리아를 납치하려고 한 거지?”

“…….”

한성의 질문에 세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지금 한성은 공터의 한쪽 구석에서 사라와 세라를 심문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세이란을 비롯한 동료들은 멀찍이 떨어진 장소에서 이번 전투로 얻은 전리품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암흑거인을 쓰러트리고 세이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녀는 이번에도 운영자들의 부탁으로 티르 나 노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상 현상을 조사 중이었다고 했다.

그 와중에 수십 미터 크기의 안드로말리우스 수정구가 나타난 마을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다는 소리도 들었고 말이다.

세이란과의 이야기를 마친 한성은 사라와 세라를 한적한 장소로 데려왔다.

다름 아닌 그녀들의 목적을 듣기 위해서.

“처음부터 리처드 백작이라는 놈과 한통속이었나?”

“그건 아니에요!”

한성의 말에 세라는 바로 반발했다.

“그럼 왜지?”

한성은 다시 세라를 바라봤다.

다시 입을 다물며 고민하는 세라.

그녀의 고양이 귀는 힘없이 축 처져 있었다.

“반지 때문이에요.”

그때 의외의 인물이 한성의 질문에 답했다.

“이리아?”

사라도 아니고 이리아가 한성의 등 뒤로 다가오면서 말한 것이다. 한성은 이리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몸은 괜찮아?”

“네. 전 그냥 슬립 마법으로 잠들어 있었을 뿐이니까요.”

이리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한성은 그녀를 보며 속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잠자는 공주냐.’

처음 이리아를 구출할 때부터 이리아는 납치범들에 의해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리아는 사라와 세라에 의해 잠들어 있다가 일이 다 끝나갈 때쯤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반지가 왜?”

한성이 알고 있는 크리스토 백작가의 반지는 상당한 양의 마나가 깃들어 있으며, 백작가의 상징이라고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반지가 어디에 있는지 저 외에는 아무도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 반지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숙부님이 초조해지셨을 테죠.”

“그 말은 처음부터 한통속이었다는 거야?”

한성은 사라와 세라를 바라봤다.

이리아의 말에 의하면 그동안 숨겨져 있던 반지가 나타났으니 사라와 세라가 이리아를 리처드 백작에게 데려가려 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물론 반지도 함께.

“반대예요. 사실 이번 납치일은 제가 원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한성의 말에 이리아는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리아를 바라봤다.

“우리들이 직접 리처드 백작을 쓰러트릴 생각이었다고!”

그때 가만히 있던 사라가 소리쳤다.

그 뒤를 이어 이리아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녀들은 저 때문에 저주에 걸렸어요. 어둠의 신봉자들, 아말감과 손을 잡은 숙부님이 저주를 걸었거든요.”

리처드 백작은 디아나의 조직인 미스릴과 대립 중인 아말감과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점을 이용해 리처드 백작은 사라와 세라에게 어둠의 저주를 걸었다.

애당초 이리아가 크리스토 백작가의 영지에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리처드 백작이 그냥 놓아준 게 더 컸다.

그런 사실을 이리아는 나중에 가서야 알았다.

“죄송합니다, 트레인 님. 저희가 좀 더 조심했어야 했었는데…….”

세라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리아가 그녀들의 저주에 대해 알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방 안에서 셋이 수다를 떨던 중 저주가 발동해 사라와 세라가 쓰러진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리아가 반지를 손에 넣었다는 사실을 사라와 세라가 알게 되면 저주가 자동적으로 발동하게끔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서야 이리아는 사라와 세라가 저주에 걸려 있었으며, 리처드 백작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세라 잘못이 아니야. 모든 건 숙부님 때문이지.”

이리아는 계속해서 한성에게 설명했다.

가문의 반지가 나타나 저주가 발동하게 된 사라와 세라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리처드 백작이 그녀들에게 건 저주는 고도의 저주마법이라 강제적으로 해제하려 하거나 제한시간을 넘기면 바로 대상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럼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어? 네리아나 동맹인 미스릴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될 텐데…….”

그 말에 이리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그러고 싶었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없었어요. 저주가 발동하면 제한시간까지 기간은 단 열흘밖에 없었으니까요. 숙부님이 있는 영주성까지 가기에는 빠듯한 시간이죠.”

디아나나 네리아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한다고 해도 열흘 안에 저주를 풀 뾰족한 수는 없었다.

저주를 풀기 위해 고위급 사제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도 시간이 걸리니까.

설령 고위급 사제가 온다고 해도 저주를 풀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고위급 사제가 사라와 세라를 보고 저주를 풀 수 없다고 하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남은 기간 안에 영주성까지 갈 수 없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차라리 기회로 삼기로 했어요.”

사라와 세라는 여전히 이리아의 편이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이용해 계획을 세워 두었다.

이리아와 반지를 가지고 영주성으로 돌아가면 리처드 백작과 대면할 수 있게 된다.

그때 리처드 백작에게 접근하여 암살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너무 무모하잖아?”

이리아의 이야기를 들은 한성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다.

이리아와 반지를 손에 얻고, 거기에 사라와 세라가 충성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조심성이 많은 리처드 백작이라고 해도 틈을 보일 터.

그 틈을 사라와 세라가 찌른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무모했다.

“그녀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어요.”

이리아는 몸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무모한 계획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사라와 세라가 죽는다.

리처드가 크리스토 백작가의 가주로 올라서면서 수많은 가신들이 죽었다.

이리아는 더 이상 그들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단둘만으로 암살이라니. 실패하면 어쩌려고?”

“절대 실패 따위는 하지 않아.”

“걱정하지 않아도 이후의 방안은 전부 준비해 놨어요. 설마 이런 곳에서 트레인 님에게 붙잡힐 줄은 몰랐지만요.”

사라는 불타는 눈빛으로, 세라는 복잡한 눈빛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암살에 성공을 때와 실패했을 때 모두 대비책을 세워 두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이 있었다.

‘이리아 아가씨는 안전해.’

사라와 세라가 무슨 짓을 하든 이리아의 안전은 보장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녀들은 무슨 짓을 해서든 리처드 백작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말이다.

남은 건, 영주성에서 리처드 백작과 만났을 때 계획을 실행하는 것 뿐.

그런데 설마 몬테르디 평원에서 한성에게 잡힐 줄이야.

그것도 무려 천 명이 넘는 영지군 병사가 마중을 나온 상황에서 말이다.

“너희들의 이야기는 잘 알겠어.”

사라와 세라, 이리아의 이야기를 들은 한성은 대충이나마 그녀들의 사정을 이해했다.

이리아를 납치한 이유가 리처드 백작의 저주 때문이라는 것과, 이리아 본인도 스스로 원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변하는 건 아니지. 이유가 어찌되었든 너희들은 이리아를 납치했다. 그리고 성공할지 실패할지 알 수 없는 계획을 위해서 이리아를 이용하려 했지. 그 계획 때문에 이리아가 위험해진다는 건 생각하지 않았나?”

“아가씨는 안전해요! 그것만큼은 보장할 수 있어요.”

“그럼 적진 한가운데에 혼자 남겨질 이리아의 기분은?”

“그건……!”

순간 세라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자 이리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세라를 바라봤다.

“세라?”

고개를 갸웃거리고 이리아의 모습에 한성은 팔짱을 끼며 혀를 찼다.

“역시 말하지 않았나 보군.”

이미 한성은 사라와 세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대충 감을 잡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들이 이리아를 데리고 리처드 백작에게 갈일이 없었을 테니까.

그녀들은 리처드 백작과 함께 죽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자신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이리아와 반지를 가지고 리처드 백작에게 갈 생각은 없었다.

“너희들이 어떤 각오로 그런 행동을 하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어리석은 짓이다. 그리고 너희들의 행동은 나나 네리아를 배신한 거야.”

“…….”

세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라와 세라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한성의 말에 틀린 점이 없었으니까.

“그럼 각오는 되어 있겠지?”

한성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라와 세라를 노려봤다.

그 서슬 퍼런 눈빛에 사라와 세라는 고양이 귀와 꼬리를 푹 숙였다.

“네.”

“각오는 이미 했어.”

세라에 이어 사라도 어두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녀들은 한성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트레인 님. 잠시만요. 그녀들만의 잘못이 아니에요. 저도 그녀들과 같아요.”

사라와 세라 앞으로 이리아가 나섰다.

어떻게 보면 이리아 또한 공범이다.

사라와 세라의 계획에 찬성하고 함께 행동했으니까.

하지만 한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네가 찬성을 하든 말든 그녀들은 널 납치했을 거야. 네가 있어야 리처드 백작에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

“그런…….”

이리아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냉정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이리아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사라와 세라는 그녀를 납치했을 것이다.

리처드 백작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

한성은 말없이 사라와 세라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사라와 세라는 흠칫흠칫 몸을 떨었다.

“곤란하시겠네요.”

그때 마리사가 한성에게 다가오면서 말했다.

그 뒤로 마나와 카나, 그리고 세이란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성은 다가오고 있는 그녀들을 빤히 바라봤다.

“죄송해요. 본의 아니게 이야기를 듣게 되어서…….”

마리사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살짝 떨어진 곳에서 그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라와 세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아,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비밀 이야기도 아닌데요, 뭘.”

사라와 세라가 한성에게 붙잡혔기에 그녀들의 리처드 백작 암살은 무로 돌아갔다. 성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계획을 실행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 덕분에 사라와 세라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져도 상관이 없었다.

한성은 사라와 세라를 향해 한마디 던졌다.

“너희들에게 벌을 내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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