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
< 내 언데드 100만 >
제247화 광폭화
쿠오오오오오!
20미터 크기의 암흑거인이 쩌렁쩌렁한 포효를 내지른다.
지금까지 질러 왔던 외침과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큭.”
한성은 짤막한 신음 소리를 냈다.
대기를 짓누르는 압박감이 한층 더 심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몸이 조금 무거워짐을 느꼈다.
[Lv200 암흑거인이 거인의 포효를 시전합니다. 공격속도 및 이동 속도가 10% 감소합니다.]
‘어쩐지 몸이 무겁더라.’
한성은 주위를 둘러봤다.
세이란을 비롯한 마리사, 마나, 카나도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한성처럼 암흑거인의 포효 때문에 디버프 효과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얼마 안 남았어.’
현재 암흑거인의 생명력은 반 이하로 남은 상태였다.
그녀들과 파티를 맺고 암흑거인을 상대한 지 시간이 꽤 흘렀다. 새롭게 갱신된 월드 히든 미션에서 혼자 암흑거인을 처리하라는 말은 없었다.
그렇다면 파티를 맺어서 잡아도 될 터.
그래서 한성은 그녀들과 파티를 맺었다.
다만 걱정거리가 있긴 했다.
파티를 맺으면 기본적인 정보가 공개되기 때문이다.
일단 레벨이나 직업, 닉네임은 파티원들에게 알려진다.
다행인 점은 생명력이나 마나량은 정확한 수치가 보여지지 않고 바 형태로 보인다.
그 덕분에 스탯을 숨길 수 있었다.
‘뭐, 딱히 문제 될 일은 없지.’
그녀들에게 레벨과 직업이 알려져도 별 상관이 없었다.
본래 레벨보다 높은 스탯만 숨길 수 있으면 되니 말이다.
직업이야 워낙 종류가 많기에 적당히 네크로맨서 계열이라고 둘러대면 되었다.
문제는 트레인이라는 본래 닉네임이다.
현재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 한성의 본래 닉네임인 트레인과 얼굴 사진을 대륙 전역에 뿌려 수배를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는 닉네임 중복 사용이 가능했다.
거기다 머리나 얼굴을 좀 바꾸었기에 수배서에 올라와 있는 이전 한성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직업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그녀들에게 들킬 염려는 없었다. 수배서에서 트레인은 파이터 계열 4차 직업 패왕으로 알려져 있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대체 뭐하는 애들인지.’
한성은 마나와 카나, 마리사를 바라봤다.
그녀들은 서로 호흡이 척척 맞았다.
물 흐르듯이 공수전환과 회복을 반복하며 암흑거인에게 데미지를 입혔던 것이다.
그런 그녀들은 처음 한성과 파티를 맺을 때 살짝 거부반응을 보였었다.
한성을 믿을 수 있는 인물인지 아닌지 파악할 시간이 부족했으니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녀들은 다른 방문자들과 파티를 맺은 적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암흑거인의 압박과 세이란이 믿을 수 있다고 설득한 덕분에 파티를 맺었다.
또한, 비록 짧게 대화를 나누었지만 마나와 카나도 한성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한성이 그녀들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으며, 한성을 대하는 세이란의 반응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이란은 한성과 연락처까지 교환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파티를 맺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그녀들이었다.
그렇게 그녀들과 파티를 맺은 한성은 암흑거인을 잡기 위해 파티사냥을 뛰었다.
구울이나 좀비들은 블랙 스켈레톤 솔저들을 비롯한 소환수들에게 맡겼다.
아직 살아남은 영지군들도 있었기에 전장은 혼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쳬계적인 지휘가 잡혀 있는 블랙 스켈레톤 솔저들이 유리하게 전장을 이끌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프나코틱에 봉인되어 있던 소환수들과 다크 메탈 골렘의 활약도 컸다.
그렇게 소환수들이 좀비들이나 구울, 나머지 영지군들을 상대로 견제를 해 주었기에 한성은 그녀들과 함께 암흑거인을 상대로 파티 사냥을 할 수 있었다.
“겨우 이 정도냐!”
그때 세이란이 무기를 치켜들었다.
사상무장병기(思想武裝兵器),
성검(聖劍) 엑스칼리버(Excalibur).
어둠 속의 공터를 따스한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하는 위대한 황금의 검.
아름다운 황금빛이 검날에 덧씌워져 있는 성검 엑스칼리버는 본래 크기는 장검이지만 어느새 대검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번쩍!
순간 엑스칼리버에서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들은 세이란의 앞에서 다시 응축되기 시작했다.
응축되고 있는 빛들의 모습은 작은 꽃잎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이란 앞에 7장의 꽃잎을 가진 아름다운 황금의 꽃이 피어났다.
황금의 꽃은 굉장히 컸다.
꽃잎 한 장이 한성의 상체보다 더 컸으니 말이다.
“가랏!”
스팟!
성검 엑스칼리버가 암흑거인을 향하자 첫 번째 꽃잎의 끝이 작게 바스러졌다.
그리고 바스러진 꽃잎은 이내 작은 황금빛이 되어 암흑거인을 향해 쇄도했다.
쌔애액!
첫 번째 꽃잎에 이어 두 번째 꽃잎도 바스러지면서 작은 황금빛으로 바뀌었다.
자세히 보면 그냥 황금빛이 아니라 벚꽃처럼 생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촤라라라락!
7장의 꽃잎은 이내 작은 황금빛 꽃잎이 되어 암흑거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무수하게 많은 황금빛 꽃잎들이 암흑거인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지만 암흑거인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양팔을 엑스자로 교차하고 보호막 같은 걸 전개하면서 황금빛 꽃잎에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팅팅팅팅!
황금빛 꽃잎은 보호막에 튕겨나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직이다!”
그 모습을 본 세이란은 엑스칼리버를 살짝살짝 틀었다.
그러자 사방으로 흩어진 황금빛 꽃잎들이 암흑거인의 등 뒤를 노리고 쏟아져 들어가는 게 아닌가?
푸푸푸푹!
크아아아아아!
벌떼에 등을 쏘이는 것처럼 암흑거인은 몸을 뒤틀며 괴성을 질렀다.
그때 한성의 눈앞에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Lv200 암흑거인의 생명력이 4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암흑 거인이 광폭화합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한성은 굳은 표정으로 암흑거인을 바라봤다.
일부 보스 몬스터는 생명력이 일정 수준 이하가 되면 광역 공격 스킬을 쓰거나, 혹은 자가 버프 스킬을 쓴다.
암흑거인의 경우 후자였다.
번쩍!
돌연 암흑거인에게서 붉은 빛이 터져 나왔다.
촤자자자작!
이윽고 붉은빛이 사라지면서 암흑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암흑거인의 모습을 본 네 명의 여성들이 신음성을 흘렸다.
“세이란 언니. 저거 어떻게 할 거야?”
“언니 때문에 우리 망한 듯.”
마나와 카나가 세이란에게 핀잔을 준다.
세이란의 공격에 생명력이 깎이고 광폭화를 한 암흑거인이 붉은 빛이 빛나는 갑주를 입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에는 거대한 워해머까지 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이전보다 월등히 강해 보이는 상황.
“아니, 그게 왜 내 탓이야?”
세이란은 도끼눈을 뜨고 마나와 카나를 노려봤다.
어차피 암흑거인을 공격하다 보면 일어날 수순이었으니까.
암흑거인이 광폭화를 하지 않게 하려면 생명력이 40%가 되기 전, 한방에 잡으면 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보스 몬스터는 피통이 어마어마하다.
암흑거인의 생명력을 40%까지 깎는데 한성과 그녀들은 엄청난 노가다를 뛰었다.
덕분에 준비한 포션도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
그때 암흑거인이 포효를 내지르며 거대한 워해머를 치켜들더니 지면을 향해 내려쳤다.
콰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진동이 지면을 타고 흘렀다.
쩌저저적!
워해머의 강렬한 일격에 충격파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으며 지면 또한 암흑거인 앞으로 갈라졌다.
“방방!”
“창창!”
우워어어어엉!
암흑거인의 공격에 휘말린 블랙 스켈레톤 솔저들과 좀비들이 갈라진 지면의 틈으로 떨어져 내렸다.
“헐, 대박.”
“저걸 어떻게 잡으라고…….”
그 모습을 본 마나와 카나의 뒤통수에 식은땀이 흘렀다.
광폭화 전과 후의 차이가 극명하다.
200레벨 보스 몬스터 수준을 뛰어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쉬지 말고 공격해요! 가만히 있으면 다시 피 차니까!”
한성은 마나와 카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보스 몬스터들은 피통이 큰 만큼 회복속도도 빠른 편이었다.
잠시라도 틈을 주면 생명력을 꽤 회복할 수 있었다.
“네, 네!”
“맡겨주세요!”
한성의 말에 마나와 카나는 공격 스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성은 다시 전방을 바라봤다.
지금 한성의 앞에는 고기방패, 아니 뼈방패용으로 소환한 블랙 스켈레톤 방패병들이 있었다.
암흑거인을 상대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뽑은 녀석들이었다.
“방방? 방방방?”
이제 약 30마리 정도 남은 방패병들은 한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바바방 거렸다.
방패병들의 표정은 마치 저거 “진짜 우리가 막아야 됨?’이라고 묻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방패병들을 향해 한성은 산뜻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막아.”
“방방……”
방패병들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암흑거인 앞에 섰다.
그때 공격 준비가 끝난 마나와 카나의 스킬이 시전되었다.
“익스플로전 애로우!”
슈아아악!
하얗게 빛나는 마나의 백색궁에서 붉은 화살이 빛살처럼 쏘아지며 암흑거인의 이마에 직격했다.
콰콰쾅!
익스플로전 애로우가 암흑거인의 이마에 꽂히면서 머리를 뒤덮을 정도로 폭발이 일어났다.
크어어어어어!
그와 함께 암흑거인은 괴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플레임 스톰!”
이어서 카나가 화염계 마법을 발동시켰다.
화악! 화르르르륵!
순간 암흑거인의 발밑에서 시뻘건 붉은 화염이 피어오르며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폭풍과도 같은 붉은 화염은 암흑거인의 허리까지 집어삼켰다.
‘저런 고위급 스킬을 보게 될 줄이야. 역시 검성의 동료답네.’
마나와 카나의 공격 스킬들은 하나같이 성능이 좋았다.
익스플로전 애로우는 상대에게 적중시켰을 경우 방어력 무시의 폭발 데미지를 입히고, 플레임 스톰은 말 그대로 주변을 화염 폭풍으로 뒤덮는 마법이었다.
“이거라면…….”
“어떠냐!”
광폭화한 암흑거인을 상대하기 위해 마나와 카나는 마력을 꽤 많이 소모하는 스킬과 마법을 사용했다.
이번 공격으로 암흑거인에게 상당한 데미지를 입힐 수 있을 터!
부우우우웅!
그때 거대한 워해머가 익스플로전 애로우와 플레임 스톰의 붉은 화염을 갈랐다.
크아아아아아!
이어서 암흑거인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 여파로 암흑거인을 감싸듯 휘몰아치고 있던 붉은 화염이 완전히 사라졌다.
“헐.”
“마리사 언니…….”
마나와 카나는 후방에서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시켜주던 마리사를 바라봤다.
믿었던 공격 마법마저 암흑거인에게 데미지를 크게 입히지 못했던 것이다.
마나와 카나로서는 두 손 두 발을 다 든 상황이었다.
마리사의 후방지원 회복 마법으로 버티면서 소모전을 벌인다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전에 사망할 확률이 더 높았다.
그 때문에 마나와 카나는 마치 버림받은 같은 강아지 같은 눈으로 마리사를 바라봤다.
그런 그녀들에게 마리사는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도망칠까?”
마리사의 한마디에 마나와 카나는 고개를 맹렬히 끄덕였다.
그때 한성이 그녀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저한테 저놈을 쓰러트릴 방법이 있어요.”
한성은 그녀들을 향해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슨 방법인데요?
마나의 질문에 한성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방방?”
그리고 블랙 스켈레톤들은 불안한 눈으로 한성의 입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