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 내 언데드 100만 >
제228화 셀라스틴의 등장
‘뭐지? 이 어마어마한 네이밍 센스는?’
한성은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미스릴 지부의 입구가 숨겨져 있는 가게라고만 이야기를 들었었다.
정작 무슨 가게인지는 모르는 상황.
창문도 하나 없고, 문도 나무로 되어 있어 밖에서는 내부가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조차 볼 수 없었다.
보여지는 거라곤 나무문과 그 위에 걸려 있는 간판뿐.
‘술집…… 이지? 이거?’
간판을 본 순간 한성은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달아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블랙 레이븐 놈들과 엮이지 않으려면 미스릴의 도움을 받는 게 가장 편했다.
끼익.
한성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제발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는 사람들이 있기를 바라면서.
‘뭐, 셀라스틴만 아니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며 한성은 나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한성의 앞에 메이드 복장을 한 수인족 미녀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헉!’
순간 한성은 흠칫했다.
그와 동시에 메이드 수인족 미녀도 움찔거렸다.
“네가 여기서 왜 나와? 엘라스틴.”
“엘라스틴이 아니라 셀라스틴이다!”
놀랍게도 메이드 복장의 수인족 미녀는 셀라스틴이었다.
그레이스 오 말리 해적 클랜과 미스릴의 조직원들이 거점으로 삼고 있는 흑풍도의 성에 있어야 할 셀라스틴이 어째서인지 이곳 ‘디아나 님에게 사랑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은밀한 장소’에 있는 것이다.
“아무튼 오랜만이구나, 트레인.”
셀라스틴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흑풍도 이후로 처음인가? 그런데 진짜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흑풍도는 어쩌고?”
“그, 그건…….”
한성의 질문에 셀라스틴의 귀와 꼬리가 휙휙 움직였다.
뭔가 말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한데 머뭇거리는 티가 났다.
‘뭐지? 뭔가 심각한 일이 생긴 건가?’
대체 그녀는 어째서 디아나님에게 사랑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은밀한 장소에 와 있는 것일까?
순간 한성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고 쳤구나?”
“아우우우.”
한성의 말 한마디에 셀라스틴의 귀가 푹 수그러졌다.
“이런 위험해 보이는 가게에서 그런 옷이라니.”
“으웃.”
비수처럼 박혀오는 한성의 말에 셀라스틴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지금 한성이 있는 장소는 술집이었다.
거리의 술집답게 지금도 가게에는 인상파들이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셀라스틴만이 아슬아슬하게 겨우 몸을 가릴 정도의 메이드 복을 입고 있었다.
가슴은 절반 가까이 드러나 보였으며, 치마 길이도 굉장히 짧은 탓에 매력적인 하얀 허벅지가 거의 다 드러나 보였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너한테 잘 어울리는 옷이네. 하지만 나라면 메이드 복이 아니라…….”
잠시 말을 멈춘 한성은 셀라스틴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섹시한 토끼 인형 옷을 입혔을 테지만.”
“……!”
순간 셀라스틴의 늑대 귀와 꼬리가 빳빳하게 치켜 올라갔다.
셀라스틴은 붉어진 얼굴로 한성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트, 트레인. 메, 메이드 복만으로도 힘든 나에게 세, 세, 섹시한 토끼 인형 옷을 입혀서 무엇을 할 생각인 거냐!”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셀라스틴의 표정은 기뻐보였다.
‘아, 맞다. 얘는 성격이 사라보다 더하지.’
정보길드 블랙캣츠의 수장 네리아와 같은 반응을 기대했던 한성은 혀를 찼다.
셀라스틴의 성격이 어땠는지 순간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네리아는 반응이 참 귀여웠는데. 그러고 보니 사라는 토끼 옷을 입고 오히려 좋아했었지, 아마?’
한성은 예전에 보물 상자를 열고 획득한 100레벨 섹시한 토끼 인형 옷을 입은 여인들을 떠올렸다.
처음 토끼 인형 옷을 입은 사라는 오히려 글래머스러운 몸매를 자랑하며 세라에게 정신 공격을 가했었다.
‘뭐,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었지만 말이야.’
사라가 섹시한 토끼 인형 옷을 입고 자신의 몸매를 과시한 결과 잠시 정신 줄을 놓은 세라에게 덮쳐졌었다.
한성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므흣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입은 네리아는 엄청 부끄러워했다.
그녀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한성의 다리를 여러 번 걷어찼다. 그날 이후 밤이면 밤마다 자신의 방에서 이불킥을 날렸다는 후문을 들을 수 있었다.
“대답해라. 설마 바니걸 옷을 입혀서 뱀 같은 눈으로 핥듯이 바라보고 육식동물처럼 거칠게 나를 잡아먹을 생각이었나! 늑대처럼!”
“…….”
‘아니, 늑대는 내가 아니라 너잖아.’
뜨거운 숨을 토하며 어딘가 모를 기대감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바라보는 셀라스틴의 모습에 한성은 할 말을 잃었다.
‘한동안 못 본 사이 상태가 심각해진 건가?’
한성은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게 안에 있는 듬직한 체격을 가진 남자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아니 남자 놈들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었다.
문제는 가게 안에 셀라스틴처럼 메이드 복을 입고 있는 여성들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들은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한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 이제 그만해. 내가 잘못 했어.”
결국 한성은 항복한 표정으로 손을 들고 말았다.
그러자 좌우로 마구 흔들리던 셀라스틴의 꼬리가 멈추더니 아래로 내려갔다.
“왜 그러나, 트레인. 패기가 없구나. 에키드나와 크리스티나 때는 적극적이었다고 들었었는데!”
“아니야. 그거 전부 루루 때문이었다고!”
한성은 정색하며 귀여운 루루를 팔았다.
사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루루의 고유 스킬 유혹과 엑스터시 드림 덕분에 그녀들과 이어질 수 있었으니까.
“아무튼 미스릴 지부에 볼일이 있어. 여기 정말 미스릴 지부 맞지?”
한성은 셀라스틴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조직의 협력자들이니까.”
그녀의 말에 한성은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술을 마시면서 힐끔힐끔 한성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부 켈트인들인가?’
그들 중에 한성과 같은 방문자는 없었다.
“셀라, 누구야?”
그때 셀라스틴과 다르게 노출이 비교적 적은 메이드 복을 입은 20대 후반의 여인이 다가와 물었다.
그녀의 이름은 미나.
그녀는 가게 입구에서 셀라스틴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한성이 누구인지 굉장히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건 가게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가게는 디아나의 부하들이 조직한 미스릴의 관계자가 아니면 찾아 올 수 없었다.
가게 입구부터 결계가 쳐져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보면 그냥 벽밖에 보지 못한다.
거기다 위치도 인적이 드문 골목길 안에 있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가게를 찾을 수조차 없다.
미스릴 조직에서 신분패를 준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었다.
당연히 한성도 이미 오래전에 디아나로부터 미스릴 조직의 신분패를 받았다.
그렇기에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처음 보는 한성이 가게 안에 들어와도 놀라지 않았다.
같은 미스릴 조직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거기다 셀라스틴과 바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서로 아는 사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다만 그들의 눈에는 호기심이 무럭무럭 피어 나오고 있었다.
한성과 셀라스틴이 어떤 관계인지 궁금했으니까.
“둘은 어떤 관계?”
미나는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며 한성과 셀라스틴을 번갈아 봤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한성은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셀라스틴이 선수를 쳤다.
“내가 운명의 상대로 정한 사람이다.”
그 순간 가게 이곳저곳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남성들의 눈은 질투로 불타올랐고, 여성들의 눈은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빛났다.
“그리고 디아나 님의 제자지.”
순간 한성은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전 분위기가 작은 불씨였다면, 지금은 파이어 스톰과 같은 열기가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디아나 님의 제자님이신가요?”
“뭐,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고 볼 수 있나?”
“……!”
한성의 대답에 가게 안에 있던 메이드들의 눈이 화르륵 타올랐다.
미스릴 조직 수장의 제자!
만약 잡을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대박이리라!
“세, 셀라스틴?”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메이드들의 모습에 한성은 셀라스틴을 바라봤다.
“응?”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뭐지?”
“밤이 될 때까지 신세 좀 져도 될까?”
한성의 말에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특히 메이드들은 작은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대담하다는 말과 함께.
어디 그뿐인가?
파닥파닥. 휙휙.
셀라스틴의 늑대귀와 꼬리가 한성의 눈앞에서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서, 설마 그대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에키드나나 크리스티나처럼 나를 생각할 줄이야. 뭐, 나는 괜찮다. 그대와 함께 뜨거운 밤을 보내도.”
셀라스틴은 붉어진 얼굴로 부끄러운 듯 말했지만 정작 몸은 달랐다.
가슴을 앞으로 당당하게 내밀며 말했던 것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보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 이 변태 늑대야!”
“큭! 트레인! 그대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그대가 먼저 나와 함께 뜨거운 밤을 보내고 싶다고 말한 것 아닌가!”
한성의 말에 셀라스틴은 적반하장격으로 소리쳤다.
‘아, 아차.’
여느 때와 다름없는 셀라스틴의 태도와 말에 한성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지금 셀라스틴은 오히려 기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게안의 미스릴 협력자들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한성과 셀라스틴을 바라보고 있었다.
‘셀라스틴의 페이스에 넘어가면 안 돼.’
한성은 잠시 숨을 골랐다.
여기서 셀라스틴을 매도해 봤자 오히려 기뻐할 뿐이다.
“미스릴에게 일을 의뢰하고 싶다.”
순간 가게 안의 분위기가 변했다.
하이 텐션이었던 분위기가 순간 착 가라앉았다.
“무슨 의뢰?”
“일이 좀 생겨서 말이야. 이야기는 단둘이 하고 싶은데.”
비록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미스릴의 협력자라고 하나 한성 입장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다.
거기다 개인적인 의뢰이기도 했다.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
“알겠다. 그렇지 않아도 그대에게 말할 게 있었거든. 그리고 그대를 만나고 싶어 하는 분도 있지.”
“날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셀라스틴의 말에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체 누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단 말인가?
“일단 이쪽으로…….”
하지만 셀라스틴은 한성의 반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셀라스틴은 한성의 팔을 붙잡고 가게 안쪽으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이 안쪽에 미스릴 지부의 사무실이 있다. 안에서 조금만 기다렸으면 좋겠군. 곧 있으면 그대와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올 테니까.”
“누군데?”
“만나 보면 안다. 그대에게 반가운 사람이니까.”
셀라스틴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한성은 궁금증이 일었다.
대체 누가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일까?
‘아크스태프 제작이랑 헨리한테 받은 레전드 갑주 세트를 확인하면서 기다리면 되겠군. 그런데 대체 누굴까? 날 보고 싶다는 사람이.’
셀라스틴이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기다리면 만나게 될 터였다.
한성은 조용히 셀라스틴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