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
< 내 언데드 100만 >
제217화 믿을 수 있는 친구
“그놈들 최근 규모가 꽤 커졌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2,000명은 넘을 걸?”
“……!”
헨리의 말에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이천이라고?’
“그러니 우리 같은 생산직 계열 클랜이 뭘 어떻게 하겠냐? 인원수부터가 딸리는데.”
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에는 다양한 클랜들이 존재한다.
그런 만큼 인원수도 제각각이다.
거의 대부분은 친목 위주로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씩 모여 있는 클랜들이 많았다.
하지만 티르 나 노이의 랭킹에 들어가는 거대 클랜들은 많게는 수천 명이 넘는 클랜원 수를 자랑한다.
자신이 있을 때의 블랙 레이븐 클랜이 비록 중소 규모에선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지만 언제 이렇게 거대길드 규모로 커졌단 말인가.
“그리고 광물뿐만이 아니야. 너도 얼마 전에 하늘 섬 업데이트가 된 거 알지?”
“응.”
“그때 레벨 상한선이 300까지 풀렸잖아? 지금 그것 때문에 하늘 섬 공략한다고 각 클랜들이 난리다. 하늘 섬에서 레벨업 한다고 말이야.”
하늘 섬 업데이트를 하기 전 최고렙은 250다.
그리고 그 레벨에 근접해 있는 최고위 랭커들은 레벨업에 애를 먹고 있었다.
만렙에 가깝다 보니, 그 당시 존재하는 사냥터에서 몬스터들을 잡아도 경험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다.
그런데 레벨 상한선이 300까지 풀리고, 새로운 사냥터인 하늘 섬이 나타났다.
하이랭커들이나 각 클랜들이 눈독을 들이지 않겠는가?
그 때문에 지금 하늘 섬은 피 터지는 격전지가 되었다.
다들 새로운 고렙 사냥터를 확보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설마 블랙 레이븐 놈들도 하늘 섬을 노리고 있는 거냐?”
“바로 그 설마지.”
“헐, 미친…….”
한성은 또다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의 평균 레벨은 200 안팎.
하늘 섬을 노리기에는 부족하다.
“야. 내가 아까 말했잖아. 요즘 그놈들 진짜 눈에 독이 잔뜩 올라 있다니까? 좀 레벨이 높아 보이거나, 레벨이 좀 낮아도 싹수가 보이면 닥치는 대로 스카웃해 간다더라. 사실 그놈들이 스카웃해서 빼간 대장장이 직업 유저들 숫자도 꽤 많아.”
“흠.”
헨리의 말에 한성은 침음성을 삼켰다.
토르해머 클랜에 오기 전, 이웃집 또 털려와 또 털린 이웃집 주인 놈들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지 않았던가?
‘설마 이 이유 때문에 날 스카웃하려고 했었을 줄이야.’
사실은 라이와 루루를 빼앗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그놈들이 실력이 있어 보이는 유저들을 영입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하늘 섬에서 나오는 몬스터들도 그렇게 레벨이 높지는 않다고 하더라고. 225레벨부터 나온다던데? 레벨 높은 유저들 영입해서 장비 좀 좋은 거 입히면 어떻게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렇군.”
헨리의 말에 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만약 하늘 섬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레벨이 최소 250이었다면 블랙 레이븐 클랜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을 것이다.
“그럼 화이트 헤론 클랜이랑 손잡은 것도 하늘 섬 공략 때문인가?”
한성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말에 헨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다고 봐야지. 화이트 헤론뿐만이 아니라 약소한 도적 클랜이나 용병 집단들도 스카웃했으니 말이야.”
“도적이나 용병들도?”
한성은 놀란 표정으로 헨리를 바라봤다.
“어. 너도 블러드 코핀(Blood Coffin) 클랜 알고 있지?”
“학살 클랜?”
“어. 그놈들 블랙 레이븐 밑으로 들어갔다는 소문도 있어.”
“헐. 미친…….”
한성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블러드 코핀(Blood Coffin).
피의 관이라고 불리는 클랜으로 쉽게 말해 미친놈들 집합소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진 않았지만 10명이 채 되지 않는 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럼에도 블러드 코핀 클랜은 제법 유명했다.
그들은 전원 암살자들로서 켈트인들을 굉장히 싫어한다.
의뢰는 방문자들에게서만 받으며, 임무 완수를 위해서라면 켈트인 마을 하나를 지워 버리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의 손에 죽은 켈트인들의 숫자는 굉장히 많았다.
결국 블러드 코핀 클랜이 활동하는 영지 내에서 켈트인들의 피해가 커지자 영주가 움직였다.
사병들을 투입해 블러드 코핀 클랜을 토벌하려고 한 것이다.
그때 투입된 사병들의 숫자는 약 1,000명.
레벨만 놓고 본다면 블러드 코핀 클랜이 높지만 인원수에서는 압도적으로 밀리는 상황이었다.
전투는 몇 날 며칠이 걸릴 정도로 길었다.
블러드 코핀 클랜은 게릴라전을 벌이며 공포영화처럼 한 명 한 명 사병들을 사냥했다.
그 결과 심각한 피해를 입은 사병들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사병 천 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 영주의 실수였다.
만약 기사들을 투입했었다면 블러드 코핀 클랜을 토벌하고 포획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전투는 방문자들과 켈트인들 사이에서 꽤 화제가 되었다.
단 열 명이서 천 명을 막아 낸 것이었으니까.
아무리 사병들보다 레벨이 높다고 해도 일반적인 플레이어 유저들이었다면 속절없이 당했을 것이다.
“그런 미친놈들도 받았단 말이야?”
“소문이긴 한데 지금의 블랙 레이븐 클랜 놈들이라면 받아들이고도 남지.”
헨리의 말에 한성은 혀를 찼다.
어마어마한 수의 켈트인들을 죽였기에 학살자들이라고 불리는 블러드 코핀 클랜원들.
그런 놈들까지 받아들였다는 소문이 나돌 줄이야!
‘어디까지 가는 거냐, 빌어먹을 슈타인 자식.’
참고로 블러드 코핀 또한 한성이 싫어하는 클랜 중 하나였다.
‘화이트 헤론이랑 손을 잡은 시점에서 날 제거할 생각이었겠군. 그게 내 뒤통수를 후려친 이유인가?’
헨리의 말을 들어보면 슈타인이 한성을 배신한 가장 큰 이유는 화이트 헤론 클랜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한성과 화이트 헤론 클랜은 견원지간이었으니까.
죽었으면 죽었지 화이트 헤론 클랜과 손을 잡을 생각이 없었다. 거기에 블러드 코핀이라니!
“그 외에도 도적 클랜이나 용병 클랜 등등 이익을 위해서라면 미친 짓을 하는 녀석들도 블랙 레이븐 클랜 아래로 들어갔다. 그래서 제법 세력이 커졌어.”
“미치겠구만.”
한성은 이마에 손을 짚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한성이 배신당했을 시점에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의 평균 레벨은 200 안팎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최소 200은 넘어 있을 터.
그런 상황에서 정신 나간 미친 짓을 일삼는 클랜들을 흡수해서 지금은 무려 약 2,000명까지 세력이 늘어나 있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후, 한성은 헨리를 통해서 블랙 레이븐 클랜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날 배신한 주력 멤버들이 남아 있다는 건가?’
한성은 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클랜장인 슈타인을 시작으로 자신을 집요하게 쫓아왔던 카슈발은 여전히 남아 있었으며, 부클랜장과 믿고 있었던 부하 놈들도 있었다.
‘반드시 내가 당한 것보다 배로 갚아 주지!’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면서 한성은 헨리를 바라봤다.
“고맙다. 블랙 레이븐에 대해서 이야기해 줘서.”
“고맙긴. 이 정도 정보는 별거 아니지.”
헨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부탁이 좀 있는데…….”
“부탁? 뭐?”
“너한테 장비를 좀 구하고 싶어서.”
“장비? 몇 레벨로?”
“200레벨짜리로.”
“200레벨이라고?”
헨리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200 레벨 넘은 지 한참 됐잖아? 내가 너한테 200레벨 유니크 등급 패왕 무기랑 방어구를 선물로 주지 않았었냐? 그런데 무슨 200레벨 장비?”
“패왕 장비 말고. 네크로맨서 전용 방어구를 구해 줬으면 해.”
거기까지 말한 한성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레전드 등급으로.”
* * *
광산도시 크래프트 마인에서 헨리와 만난 한성은 그날 밤 함께 주점에 가서 술을 마셨다.
오랜만에 만난 기념으로 회포를 푼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한성은 광산에 올랐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네.’
광산에 오르며 한성은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토르해머 클랜의 공방 구석에서 헨리와 이야기를 했을 때 느꼈지만 블랙 레이븐 클랜은 광산도시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거기다 헨리도 블랙 레이븐 클랜에 대한 불만이 커 보였다.
이후 한성은 술자리에서 헨리에게 술을 왕창 먹이고 블랙 레이븐 클랜에 대해 슬쩍슬쩍 계속 떠봤다.
술이 좀 들어간 헨리의 입에서 블랙 레이븐 클랜을 욕하는 말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적어도 헨리가 블랙 레이븐 클랜 놈들에게 넘어가지는 않아 보였다.
‘역시 헨리는 믿을 만해. 의리가 있다니까.’
헨리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린 한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티르 나 노이의 좋은 점은 전 세계 국가의 언어가 자동 번역이 된다는 사실이다. 대륙 공용어라는 설정 덕분에 전 세계 방문자들과 켈트인들뿐만 아니라 방문자들끼리 대화를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덕분에 한성은 20대 후반의 쾌활한 영국인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헨리가 한국음식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티르 나 노이에서도 요리가 가능했기에 한성은 김치와 라면을 헨리에게 주었다.
결과는 대박.
그동안 맛이 있다고는 할 수 없는 영국음식에서 한국 라면과 김치에 꽂힌 헨리는 마이 베스트 프렌드를 연발하며 한성과 친구가 되었다.
나이차가 나기는 하지만 게임 속에서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헨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게 친구가 된 헨리와 한성은 서로 상부상조했다.
종종 필요한 재료 아이템이나 장비들을 가져다주면 헨리는 한성에게 전용 무기나 방어구들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젯밤 한성은 자신이 겪었던 일들 중 일부를 이야기해 주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말하지 않았지만, 블랙 레이븐 클랜의 추적자들을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전승 아이템을 사용해 강제로 레벨이 초기화되었으며 그 후에 네크로맨서로 전직했다는 사실을 말했다.
하지만 히든 직업이나 루루, 라이, 틴달로스, 레이몬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굳이 자세한 사정까지 말해 줄 필요는 없으니 말이야.’
그냥 언데드 몬스터들을 다룰 수 있다고만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준 한성은 헨리에게 몇 가지 부탁을 했다.
200레벨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아크스태프 제작을 위한 오리하르콘과 흑철을 구해 달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망할 블랙 레이븐 자식들.’
200레벨 장비라면 마침 괜찮은 걸 만들었다면서 헨리는 자신만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직 좀 더 조정을 해야 돼서 지금 당장은 넘겨줄 수 없지만 오늘내일 중으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문제는 광물 쪽이었다.
‘아, 거기는 좀 가기 싫은데…….’
블랙 레이븐 클랜 놈들이 광산 구역을 일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토르해머를 비롯한 대장장이 클랜들 대부분이 광물 채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철광석도 제대로 캐기 힘든 판에 전설의 금속 오리하르콘이나 구하기가 까다로운 흑철을 캐는 건 아무래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성은 어쩔 수 없이 ‘그곳’에 가기로 결정했다.
광산 내부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위험한 장소로 말이다.
대장장이 클랜을 물론 하늘 섬 공략을 위해 광물을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는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조차 기피하는 장소다.
‘하지만 확실히 그 장소라면 오리하르콘도 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
그 때문에 지금 한성은 광산을 오르며 그 장소에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 슬슬 준비를 해 볼까?’
광산을 오르면서 종종 보였던 방문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그 장소에 도착한다.
그 전에 한성은 소환수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