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
< 내 언데드 100만 >
제215화 광산도시, 크래프트 마인
키아아아아아.
날카로운 바람이 스쳐지나가고 하늘이 빙글빙글 돈다.
“우와아아아앙.”
하늘 상자에서 튀어나온 전설 등급 펫인 그리폰의 등 위에서 루루는 환호성을 지르며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루루야. 꽉 붙잡고 있어야 한다?”
“넹!”
역시 마찬가지로 그리폰 등 위에 있는 안장에 앉아 있는 한성은 루루에게 주의를 줬다.
지금 한성은 그리폰을 타고 광산도 크래프트 마인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앞으로 5분정도면 도착하겠군.’
그리폰의 속도는 엄청났다.
육로로 이동했다면 라이를 타고 달려도 한 시간은 넘게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폰은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성의 눈에 광산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슬슬 내려가 볼까?”
한성은 그리폰을 타고 광산도시 근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 * *
광산도시, 크래프트 마인.
대부분 200레벨 안팎인 방문자들이 많으며, 대장장이 클랜들이 상당수 모여 있는 도시다.
그 덕분에 장비가 넘쳐나는 도시기도 했다.
거의 대부분 레어 등급인 장비들이 많으며, 유니크 등급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또한 실력 있는 대장장이들 중에는 레전드 등급의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다만, 가격이 적게는 수백만에서 수천만 골드까지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전승하기 전 한성을 힘들게 만들었던 장비파괴의 중년신사, 펄거슨도 있었다.
허구한 날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를 연발하며 한성의 무기를 깨먹었던 것이다.
키리키리와 펄거슨을 생각하면 지금도 한성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흠.”
광산도시의 검문소를 통과하며 내부로 들어선 한성은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 녀석 화내지 않으려나?’
광산도시에 들어서면서 잊고 있었던 인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인물은 블랙 레이븐 클랜에 들어가기 전부터 친분을 쌓아 온 동료였다.
그런데 블랙 레이븐 클랜의 클랜장 슈타인부터 시작해서 간부급 인물들에게 한성은 배신을 당했다.
그 후 전승을 하고나서 한성은 다른 동료들에게조차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래저래 바쁘기도 했지만, 내가 계속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숨기고 있는 편이 나으니까.’
전승을 하고 한성이 몸을 숨긴지도 수개월.
현재까지 계속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 계속 한성을 찾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거기다 한성은 게임 내에서 자신의 흔적을 전부 지운 상태였다. 여관에 숙박을 할 때도 가명을 썼다.
그뿐만이 아니라 갖가지 종류의 랭킹에서도 이름이 사라졌다. 한성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전승을 하면서 모든 기록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 후 랭킹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생길 때는 익명이나 가명을 썼다.
현재 한성의 가명은 레인.
‘뭐, 티르 나 노이에서 사람 찾는 건 무척 힘들긴 하지.’
얼굴을 성형할 수는 없지만, 머리 길이나 색깔, 눈동자나 피부색까지는 커스텀 마이즈를 할 수 있었다.
거기다 워낙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플레이하다 보니 닉네임 중복 사용도 가능했다.
한성이 블랙 레이븐 클랜의 창고 열쇠를 가지고 있는 탓에 지금까지도 계속 찾고 있다고 한들 발견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으니까.
그럼에도 한성이 동료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만약 자신이 연락을 할 경우 동료들에게 블랙 레이븐 클랜이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다른 하나는 안전을 위해서였다.
‘거기다 블랙 레이븐 놈들에게 넘어가 있을 지도 모르니 말이야.’
이재영처럼 현실에서 아는 녀석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 외국인이거나 한국인이라고 해도 사는 지역이 달랐다.
물론 한성의 고등학교 친구 녀석들도 있긴 했지만 몇 명 되지 않았으며, 대부분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뿔뿔이 흩어지다시피 했다.
지금은 이재영만 남아 있는 상황.
그리고 어지간하면 블랙 레이븐 클랜과 맞붙을 수 있을 만큼 전력이 갖춰졌을 때 예전 동료들에게 연락을 할 계획이었다.
‘그래도 헨리라면 괜찮겠지.’
한성이 알고 있는 대장장이 헨리는 일단 블랙 레이븐 클랜과 관련이 거의 없다.
거기다 대장장이로서도 실력이 제법 좋은 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한성의 레벨은 190레벨 초반대였다.
당분간 사냥을 빡세게 하거나 미션 몇 개를 수행해서 경험치를 얻는다면 200레벨이 될 터였다.
200레벨이 되면 4차 전직이 가능해진다.
그 후 한성은 자신과 소환수들의 장비를 싹 교체할 생각이었다. 헨리를 통한다면 제법 쓸 만한 고가의 장비를 괜찮은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오리하르콘과 흑철도 구해야 될 테고.’
헨리를 비롯한 대장장이들은 당연히 광물도 취급한다.
운이 좋으면 헨리를 통해서 아크스태프를 제작할 재료 아이템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분명 클랜 이름이 토르해머였었지?’
한성은 헨리가 있는 대장장이 클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깡! 깡!
광산도시에 터를 잡고 있는 대장장이 클랜 토르해머의 대장간에서 끊임없이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토르해머 클랜의 대장간은 상당히 컸다.
다른 대장장이 클랜에 비해 인원수는 적은 편이었지만, 광산도시 내에서 제법 이름을 알린 편이었다.
토르해머 클랜의 대장장이들이 대부분 실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각자 대장간에서 자리를 잡고 작업 중이었다.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망치를 묵묵히 내려치는 그들의 얼굴은 진중하기 그지없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그들 중에는 대장간 한 구석에서 방어구를 제작 중인 헨리도 있었다.
205레벨인 그는 불과 얼마 전에 대장장이 계열의 4차 전직 미션을 완수했다.
그의 4차 직업은 아머드 블랙 스미스.
말 그대로 방어구 전문 대장장이다.
무기도 못 만드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직업에 맞게 방어구를 제작하는 편이 등급이나 옵션, 능력 수치가 높게 나온다.
헨리와 같은 방어구 전문 대장장이가 있는 것처럼, 무기나 장신구, 소모성 아이템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대장장이 전문 직업도 있었다.
대장장이들마다 각자 전문 분야가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느낌이 좋아.’
20대 후반의 헨리는 망치질을 내려칠 때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피어 올렸다.
현재까지 수많은 장비들을 만들어왔지만, 지금처럼 손맛이 착착 감기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하나였다.
‘대박이 터진다!’
지금보다 느낌이 덜했을 때, 헨리는 유니크 등급의 장비를 제작해 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좋은 느낌이었으며, 무엇보다 4차 전직 후 처음으로 이 느낌이 왔다.
그 때문에 지금 헨리는 인생 작품이 하나 탄생하는 게 아닌가 기대하며 열심히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깡! 깡! 까아앙!
[축하합니다. 방어구 세트가 완성되었습니다!]
잠시 후, 헨리의 시야에 알림 메시지가 떴다.
* * *
“흥~ 흥~”
광산도시 내부를 걸으며 루루는 한성의 오른손을 잡고 흔들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
“넹! 맛있져영.”
루루는 반대쪽 손에 들고 있는 크레이프를 한입 베어 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오는 길에 크레이프 가게가 있어서 하나 사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틴달로스도 루루의 머리 위에 앉아서 크레이프 조각을 오물오물 씹어 먹고 있었다.
[맛있져! >_<]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크레이프를 먹고 있는 루루와 틴달로스를 한성은 흐뭇한 미소로 바라봤다.
끼잉.
그때 한성의 왼편에서 3미터 덩치의 라이가 귀여운 소리를 냈다. 크레이프를 바라보고 있는 라이의 눈빛이 아련하다.
“라이야. 넌 단 거 먹으면 안 돼. 배탈낭.”
끼이잉.
루루의 말에 라이는 귀를 축 늘어트리며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을 본 한성은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저녁에 고기 사 줄 테니까 힘내라.”
한성은 라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헥헥헥.
그 말에 라이는 단번에 회복됐다.
꼬리를 좌우로 붕붕 흔들며 한성을 얼굴을 혀로 핥기 시작했다.
“야, 야! 하지 마. 침 묻어!”
한성은 자신에게 달라붙는 라이를 겨우겨우 밀어냈다.
‘그나저나 분명 이쯤 어딘가 일 텐데.’
라이를 밀어낸 한성은 주변을 둘러봤다.
광산도시는 상당히 큰 도시였고, 하도 오랜만에 헨리를 찾으러 가는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응?’
순간 한성은 멈칫 거렸다.
‘저 자식들은?’
수십 미터 앞에서 검은 갑주를 입고 다가오고 있는 인물들을 발견한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가슴에 세발 까마귀 문장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웃집 또 털려랑, 또 털린 이웃집 주인이잖아?’
조금 전까지 즐거웠던 분위기를 날려 버리며 한성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갔다.
전승을 하기 전, 자신을 끈질기게 쫓아왔던 추적대 놈들이었던 것이다.
저놈들은 서로 친구였다.
웃기지도 않은 아이디만 봐도 같이 게임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저 둘의 닉네임은 각각 토로로, 로로토였다.
‘망할 쪽바리 놈들.’
그들은 일본인들이었다.
아이디와 닉네임만 봐도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유명한 작품 이름을 모티브로 아이디와 닉네임을 지은 것이었으니까.
스윽.
한성은 혹시 몰라 로브를 깊게 눌러썼다.
예전에 시작의 대륙에서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때 마주친 녀석들은 다행히 신입이었던 모양이라 한성의 얼굴을 몰랐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놈들은 다르다.
한성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등등 겉모습을 바꾸긴 했지만 한성을 알아볼 수 있지 않은가?
거기다 하필이면 큰길이 아니고 옆으로 숨거나 갈 만한 곳도 없는 일직선 길이었다.
저들을 피하려면 몸을 돌려서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러면 수상해 보이겠지.’
이미 저놈들도 한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루루와 라이였다.
귀여운 소녀인 루루와 3미터 크기의 멋진 늑대인 라이는 길을 지나가고 있는 방문자들이나 켈트인들의 눈에 띄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부러운 눈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그건 로로토와 토로로도 마찬가지.
그 때문에 몸을 돌려서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이번에도 강행 돌파지!’
이미 한성의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상황이었다.
잠시 후, 한성의 옆으로 토로로와 로로토가 스쳐 지나갔다.
‘후.’
그들이 등 뒤로 넘어가는 순간 한성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 순간,
“잠깐. 거기 로브 쓰고 가시는 분?”
이웃집 또 털려 놈이 한성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