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
< 내 언데드 100만 >
제210화 하늘 타입 보물 상자
다음 날.
무기와 방어구들을 수리하고 포션을 챙긴 한성은 소환수들을 데리고 눈보라 마을을 나섰다.
목적지는 에스트 협곡이었다.
에스트 협곡은 눈보라 마을에서 동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존재한다.
‘걸어서 가면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걷거나 뛰어서 간다면 약 1시간 정도.
그렇다고 에스트 산까지 가는 마차도 있지 않았다.
눈보라 마을에서 걸어서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때 한성의 눈에 라이의 모습이 보였다.
‘설마?’
“라이야.”
그릉?
한성의 부름에 라이가 다가왔다.
그리고 얼굴을 마구 부벼 댔다.
“잠시만 그대로 있어 봐.”
한성은 그대로 라이의 등 위에 올라탔다.
“올.”
트리플 퓨전을 한 라이의 몸이 커졌기 때문에 자신이 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예상대로였다.
캥!
한성이 올라타자 라이는 죽는 시늉을 했다.
“야. 장난치지 말고. 설마 나 태우는 게 싫은 건 아니지?”
한성은 라이의 몸 위에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지그시 내려다봤다.
한성의 눈빛에 라이는 귀를 뒤로 눕혔다.
끼잉끼잉.
“옳지. 그래야지.”
한성은 귀를 한껏 눕힌 라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루루는 여기 탈래영!”
그때 검은 고양이 인형 옷을 입은 루루가 한성의 등을 향해 날아오더니 매달렸다.
“아니, 이건 타는 게 아니지 않아?”
“헤헤.”
루루는 거북이 등딱지 마냥 한성의 등에 달라붙은 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한성이 한걸음 물러섰다.
등 뒤에서 부비부비거리고 있는 루루의 애교에 그만 넘어간 것이다.
“가자, 라이야.”
끼잉.
“오케이, 알았어. 빅 치킨은 너의 것이다.”
크아아앙!
한성의 말에 라이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표정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치킨은 진리라니까.’
그렇게 한성은 비교적 쾌적하게 에스트 협곡으로 향했다.
* * *
끼에에엑.
에스트 협곡의 절벽을 날아다니고 있는 거대한 맹금류 몬스터, 아이언 헤드 콘도르.
시작의 대륙에 존재하는 아이언 헤드 콘도르의 레벨은 60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 에스트 협곡에서 살벌하게 날아다니고 있는 아이언 헤드 콘도르의 레벨은 180이었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저놈들부터 잡고 들어가야겠네.”
현재 한성에게는 레전드 등급의 하늘 타입 동물 상자 하나가 남아 있었다.
지상 타입 동물 상자에서는 골드 알파카인 파카가, 해상 타입 동물 상자에서는 스펀지 공작갯가재가 나왔다.
둘 다 전설 등급의 동물들로 파카는 알아서 아이템을 수거해 오고, 공작갯가재는 주변에 물이 있다면 전투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하늘 동물 상자를 오픈하기 위해서 한성은 아이언 헤드 콘도르의 깃털을 구할 생각이었다.
‘엄청 많이 늦었네.’
시작의 대륙에 있을 때, 전승 특전 효과로 디아나에게서 거의 강탈하다시피 동물 상자 3개를 받아냈었는데, 이제야 전부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레벨 업 속도가 빠른 것도 있었고, 한성이 미션 중심으로 행동을 해 왔기 때문이다.
키아아아악!
그때 에스트 협곡 절벽에서 날아다니던 아이언 헤드 콘도르 한 마리가 한성을 향해 쏜살같이 강하해 왔다.
“레이몬!”
한성은 레이몬을 불렀다.
그러자 허공에서 검은 연기들이 뭉치더니 검은 갑주를 입은 레이몬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나코틱 스펠 북에서 쉬고 있다가 불려 나온 레이몬은 한성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냐, 계약자여.]
“저거.”
한성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레이몬은 한성의 손가락을 따라 하늘을 올라봤다.
그 순간,
까앙!
[끄오으아악!]
“아…….”
순간 한성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든 레이몬의 투구에 아이언 헤드 콘도르의 부리가 정통으로 내려 꽂혔기 때문이다.
끼야아아아악!
[끄오아으아악!]
아이언 헤드 콘도르와 레이몬은 서로 기괴한 비명을 내질렀다. 레이몬의 암흑 투구는 살짝 금이 갔고, 아이언 헤드 콘도르의 강철 같은 부리와 머리는 아예 깨졌다.
[이 비겁한 새대가리 자식이!]
난데없이 기습 공격을 당한 레이몬은 아이언 헤드 콘도르의 목을 움켜잡다니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꾸엑!
아이언 헤드 콘도르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 위에서 퍼덕거렸다.
하지만 레이몬의 손에 목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허황된 움직임일 뿐이었다.
[죽어. 죽어. 죽어.]
퍽퍽퍽!
아이언 헤드 콘도르는 몸 크기가 3미터나 되었지만, 레이몬은 가볍게 들어 올렸다가 몇 번이나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얼마 후, 아이언 헤드 콘도르는 몸을 축 늘어트렸다.
[축하합니다. Lv180 아이언 헤드 콘도르를 처치하였습니다. 보상으로 1800 골드와 아이언 헤드 콘도르 깃털 1개를 지급받았습니다.]
레이몬이 아이언 헤드 콘도르 한 마리를 잡자 한성의 시야에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승 특전으로 인한 3배 보상.
‘흠.’
본래 아이언 헤드 콘도르는 강철같이 단단한 부리와 머리로 상대를 공격한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 레이몬을 향한 공격은 완벽했다.
일반적인 상대였다면 조금 전 일격에 머리가 꿰뚫리면서 즉사에 가까운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상대는 마왕에게 부모님 드립을 날리는 마계기사 레이몬이었다.
아이언 헤드 콘도르는 오히려 자신의 공격에 큰 데미지를 입고 레이몬의 손에 목이 잡혀 생을 마감했다.
끼엑. 끼악.
레이몬의 머리 위에서 아이언 헤드 콘도르 몇 마리가 맴돌면서 성난 소리를 냈다.
동료 하나가 땅바닥에 패대기쳐졌으니까.
아이언 헤드 콘도르 한 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운 레이몬은 한성을 바라봤다.
[너무하는군, 계약자여.]
“미안.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나도 몰랐지.”
한성은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설마 소환하자마자 바로 아이언 헤드 콘도르의 낙하 공격을 받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레이몬이라면 피하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냥 다이렉트로 공격을 받아 버린 것이다.
까악. 까아악.
그때 머리 위 상공에서 까마귀 울음소리 같은 아이언 헤드 콘도르의 소리가 들려왔다.
“저거 어쩔래?”
[처리하겠다.]
한성의 말에 레이몬은 흑마력을 다리에 집중하다니 달리기 시작했다.
에스트 협곡의 절벽을 향해.
“오?”
한성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협곡 절벽을 향해 달리기에 무슨 짓을 하려나 싶었는데, 놀랍게도 레이몬이 절벽을 타고 오르는 게 아닌가?
“잘 싸우네.”
혼자서 절벽을 뛰어다니며 아이언 헤드 콘도르를 잡고 있는 레이몬을 바라보던 한성은 문득 팝콘 생각이 간절히 났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몬은 처음 잡은 것을 포함해 아이언 헤드 콘도르 열 마리를 빠르게 잡았다.
아직 몇 마리 정도 더 남아 있기는 했지만, 필요한 깃털은 전부 다 모을 수 있었다.
원래라면 서른 마리를 잡아야 하지만, 전승 특전 효과 때문에 열 마리만 잡아도 되었으니까.
필요한 아이언 헤드 콘도르를 다 잡은 한성은 안전지대로 향했다.
에스트 협곡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하늘 동물 상자를 열기 위해서였다.
“마스텅. 이거 머에영?”
“디아나한테 받은 하늘 속성 동물 상자야.”
“디아나님한테영? 그럼 뭐가 들어있는 거에영?”
“글쎄…… 나도 모르겠지만 하늘 타입이니 새 종류가 나오지 않을까?”
“새?”
한성의 대답에 루루는 작은 머리를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한 가지 사실에 도달했다.
“닭! 치킨! 치느님!”
“우리 루루는 고기밖에 생각 안하는 구나.”
“루루는 육식계거든영.”
루루는 눈을 위험하게 빛내며 한성을 흘겨봤다.
디아나를 닮은 루루의 작은 웃음에 한성은 간담이 서늘했다.
“아무튼 열어 보자.”
한성은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동물 상자를 열었다.
덜그럭덜그럭.
마구 요동을 치기 시작하는 하늘 타입 동물 상자.
[축하합니다. Lv60 하늘 타입 동물 상자에서 그리폰이 나왔습니다!]
“헐?”
안내 메시지를 확인한 한성은 눈을 크게 떴다.
“우왕!”
루루도 그리폰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눈을 화등잔 만하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스터 대단해영! 초거대 치느님이 아니라 그리폰이라니!”
루루는 닭이 나올 거라 확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비상식량으로 한성의 인벤토리에 저장되어 있는 빅 치킨이 있는데도 말이다.
“설마 이런 녀석이 나올 줄이야…….”
한성은 눈앞에 나타난 그리폰을 바라봤다.
그리폰은 그리스 신화 속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사자의 몸에 독수리 머리와 날개를 가진 전설의 환수.
이제야 전설 등급 상자에서 전설적인 동물이 나왔다는 느낌이었다.
‘파카랑 공작갯가재와는 차원이 다르네.’
도도한 모습으로 아이템을 줍고 다니기만 하는 파카와, 알록달록한 손바닥 크기만 한 스펀지 공작갯가재.
물론 물에 적시면 엄청나게 거대해지기는 한다. 문제는 주변에 물이 없으면 소환조차 하기 힘들다는 점이지만.
그에 비해 그리폰의 모습은 늠름하기 짝이 없었다. 몸통 크기만 3미터에 날개까지 펼치면 그보다 훨씬 더 컸으니까.
‘이거 타고 다닐 수도 있지 않나?’
한성은 그리폰의 상태창을 확인해봤다.
[게임 내 기준으로 하루 1시간 그리폰을 타고 다닐 수 있습니다.]
‘역시나!’
한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폰을 타고 다닐 수 있다니!
완전 대박 아닌가?
“좋아. 들어가 있어.”
한성은 일단 그리폰을 소환해제했다.
지금은 타락천사의 날개를 얻으러 에스트 협곡 던전에 갈 생각이었으니까.
“동물 상자 확인도 했으니 이제 가자, 얘들아.”
한성은 루루, 틴달로스, 라이, 레이몬을 데리고 던전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끼아아아아아!
에스트 협곡 던전 1층.
던전에 입장한 한성의 눈앞에 망령 같은 마나 스펙터들이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진짜 성가신 놈들이네.”
한성은 실버팽에 마나를 집중하며 마나 스펙터들을 노려봤다. 마나 스펙터들은 유령처럼 투명한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기적인 능력이 있었다.
거기다 마나 스펙터의 공격을 받으면, 마나가 깎여 나간다.
마법사들 입장에서 마나 스펙터들은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퍼억! 슈아악.
끼에에에엑!
마나를 머금은 실버팽의 공격에 마나 스펙터는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실버팽의 특수 능력 마법 데미지를 입히는 냉기 공격에 마나 스펙터의 몸은 점점 얼었다.
‘좋아. 마나 컨트롤도 자연스러웠어.’
현재 히든 속성 능력치 퀘스트 마나 컨트롤도 진행 사항이 3단계로 넘어가 있는 상태였다.
2단계는 부츠에 마나 인챈트 걸기였고, 3단계는 스킬을 쓸 때 마나를 집중시키기였다.
그로인해 스킬의 위력을 높일 수 있었다.
현재 3단계까지 진행한 결과 한성은 마나를 꽤 스무스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라이, 레이몬. 빨리 처리해 버려라.”
크앙.
[맡겨 둬라.]
한성의 명령에 라이와 레이몬은 유령같이 투명한 마나 스펙터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