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 내 언데드 100만 >
제206화 흑혈랑, 레비아
정체불명의 인물은 발밑에서부터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후, 활동하기 편해 보이는 복장을 입고 검은색 늑대 귀와 꼬리를 가진 소녀가 한성의 눈앞에 나타났다.
소녀는 섬뜩한 붉은 눈을 가늘게 휘며 한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넌 누구냐?”
“내 이름은 레비아. 너희들의 적이야.”
웃으며 말하는 레비아게서 한성은 위험한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레비아는 성큼성큼 한성에게 다가왔다.
“그 이상 다가오지 마라.”
레비아가 가까이 다가오자 한성은 경고했다.
레이몬 또한 마검을 겨누며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데…….”
레비아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네가 페르젠을 엿 먹였다지?”
“그걸 어떻게?”
한성은 날카로운 눈으로 레비아를 노려보며 경계했다.
페르젠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마인이다.
그런 페르젠을 알고 있다는 사실인즉…….
“나는 마인이야. 페르젠과 같은.”
“……!”
‘마인이라고?’
그녀의 말에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북풍지대와 하얀 얼음의 숲에서 연속으로 마인을 만나다니!
그때 한성의 시야에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당신은 마인 레비아와 조우하셨습니다. 월드 히든 미션이 갱신됩니다.]
‘헐.’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한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월드 히든 미션: 마인들의 음모를 파헤쳐라!]
당신은 어둠의 신봉자들 뒤에 존재하는 배후자들이 마인들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마인들 중 하나인 페르젠이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를 이용해 마계와 연결되는 게이트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활약으로 게이트는 파괴되고 마계의 마수들은 처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페르젠과 다른 마인과 조우했습니다.
하얀 얼음의 숲속에서 음모를 꿈꾸고 있는 레비아의 목적을 밝혀내고 저지하십시오.
미션 요구 레벨: 180.
난이도: A랭크.
보상: 18000 골도. Lv180 레전드 보물 상자. 다음 미션.
‘이건…….’
월드 히든 미션을 확인한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죽음의 탑에서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 게이트를 파괴하고, 하얀 늑대족 소녀 마리를 구출하면서 월드 히든 미션을 클리어했다.
그 후 새롭게 갱신된 월드 히든 미션은 중앙 대륙에서 또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는 페르젠을 찾아서 막으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지금 페르젠과 다른 마인인 레비아와 조우하면서 월드 히든 미션이 다시 또 새롭게 갱신 된 것이다.
“하지만 정말 믿기지 않는다니까. 콧대 높은 페르젠이 방문자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니 말이야. 그리고…….”
레비아는 흥미로운 눈으로 한성을 바라보며 붉은 혀로 입술을 핥았다.
“너한테서 좋은 냄새가 나.”
레비아의 붉은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먹잇감을 노리는 포식자의 눈빛이다.
“마음에 들었어. 너 내 부하가 되지 않을래?”
“하?”
레비아의 말에 한성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다짜고짜 부하가 되라니.
“싫은데?”
“아, 역시? 뭐, 그럴 거라 생각했어.”
레비아는 간드러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이미 거절할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지만.”
레비아는 한성이 마음에 든 눈치였다.
그렇지 않아도 콧대 높고 재수 없는 나르시스트인 페르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사내가 페르젠에게 아름답고 커다란 빅엿을 먹인 게 아닌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러운데 한성에게서 굉장히 맛있을 것 같은 피 냄새가 났다.
‘맛보지 않아도 알 수 있어. 아주 극상품이야.’
레비아는 뜨거운 눈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페르젠에게 엿을 먹일 수 있는 실력과 맛있을 것 같은 피를 가진 존재.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레비아 님! 눈의 요정은 저쪽에 있습니다!”
그때 레비아와 한성의 눈치를 보며 타이밍을 재고 있던 슈라드가 소리쳤다.
“나도 알아. 멍청아.”
슈라드의 말에 레비아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답하며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쉬익!
순간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깡! 콰지지직!
“헤? 내 공격을 막았어?”
레비아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을 가볍게 만들어서 날렸는데 그걸 한성이 은빛 건틀렛 실버팽으로 막아 냈던 것이다.
“정보원을 간단히 죽일 수는 없지.”
“역시 좀 하네.”
레비아의 입장에서는 가볍게 공격한 것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일격이었다.
그걸 한성은 정확한 타이밍으로 쳐냈다.
점점 더 레비아는 한성이 탐나기 시작했다.
“미리 경고해 두지만 나는 페르젠처럼 무르지 않다고?”
레비아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인들은 굉장히 강한 존재다.
레벨도 최소 200이 넘는다.
그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넘쳤다.
그리고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페르젠이 한성에게 한 방 먹은 건 끝까지 상황을 지켜보지 않고 몸을 뺐기 때문이다.
“마수들 따위 좀 잡았다고 기고만장해 있으면 큰 코 다칠 거야.”
마인 앞에서 한성이 잡은 마수들의 숫자는 의미가 없다.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비아는 손을 살며시 들어올렸다.
그러자 레비아를 중심으로 그림자가 늘어났다.
“소환수는 너만 부릴 줄 아는 게 아니니까.”
스스슥.
레비아의 그림자 속에서 검은 늑대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몸길이가 2미터에서 3미터 정도 되는 쉐도우 울프들이었다.
크르릉.
순식간에 나타난 서른 마리의 쉐도우 울프들은 레비아의 다리에 얼굴과 몸을 부비면서 낮게 울었다.
“너야말로 날 우습게 보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 주마.”
한성은 시체 소환과 해골 병사 소환 스킬을 시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81마리의 블랙 스켈레톤 솔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참 전부터 한성의 등 뒤로 주력 소환수들이 다가와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흘리는 레비아가 나타났을 때부터 한성의 등 뒤로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머, 머릿수는 많아 보이네. 하지만 실력은 어떨까?”
아무리 레비아라고 해도 한순간에 쉐도우 울프들보다 배 이상은 될 거 같은 한성의 소환수들 숫자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스 로드와의 전투에서 남은 숫자와 방금 한성이 새롭게 소환한 블랙 스켈레톤 솔저들의 숫자를 합하면 대략 백 마리쯤 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라이, 레이몬, 블랙 스켈레톤 배틀 커맨더, 다크 메탈 골렘도 있는 상황.
병력차이가 생각보다 많이 났다.
크아아앙!
그때 쉐도우 울프들이 일제히 블랙 스켈레톤 솔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방패병 앞으로.”
한성의 명령에 방패병 30마리가 앞으로 나섰다.
현재 한성이 갖고 있는 블랙 스켈레톤 솔저들의 비율은 궁병 30, 검병 20, 창병 20, 방패병 30이었다.
크헝!
달려들던 쉐도우 울프들은 순간 멈칫했다.
방패병 사이사이로 흑골창이 삐죽이 튀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겁 없는 쉐도우 울프들이라고 해도 방패 사이에 튀어나와 있는 흑골창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대로 달려든다면 오히려 쉐도우 울프들이 피해를 입게 될 테니까.
“꽤 하네. 그럼 이 녀석은 어떨까?”
레비아는 다시 손을 앞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레비아의 앞으로 검은 장막이 쳐지는 것처럼 흑마력이 펼쳐졌다.
그리고 잠시 후, 검은 장막 속에서 어마어마한 포효성이 울려 퍼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앙!
검은 장막 속에서 레비아의 권속인 거대한 라이컨슬로프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어선 키만 무려 5미터가 넘었다.
전신은 강인한 근육질로 뒤덮여 있었으며,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이 위협적인 늑대인간이었다.
겉모습만 놓고 본다면 더블 퓨전한 라이와 비슷해 보였지만, 붉은 안광을 빛하며 이를 드러내고 있는 쉐도우 라이컨슬로프는 굉장히 흉폭해 보였다.
“라이보다도 더 크네.”
쉐도우 라이컨슬로프를 본 한성은 혀를 내둘렀다.
저 정도 크기라면 방패병과 창병을 힘으로 밀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네 차례인 거 같다. 가랏, 깜둥아!”
한성은 다크 메탈 골렘을 불렀다.
다른 소환수들도 마찬가지지만, 다크 메탈 골렘은 한성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귀여운 강아지처럼 말이다.
쿵쿵쿵!
얼마 지나지 않아 깜둥이와 쉐도우 라이컨슬로프가 맞붙기 시작했다.
3미터 크기의 강철거인과 5미터 거인의 싸움.
체격 차이는 나지만 깜둥이도 밀리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깜둥이 이겨라!”
깜둥이는 루루가 가장 좋아하는 소환수였다.
왜냐하면 전투가 없을 때 항상 루루를 어깨에 태워 다녔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지금 루루는 깜둥이에게 버프를 집중적으로 걸어 주고 있었다.
검은 고양이 인형 옷을 입고 땀을 흘리며 귀여운 동물 춤을 추고 있는 루루.
퍼억!
루루의 버프 덕분일까.
깜둥이의 강철 주먹이 쉐도우 라이컨슬로프의 얼굴을 후려쳤다.
깨갱!
그러자 쉐도우 라이컨슬로프는 앓는 소리를 냈다.
“저거 완전 허당 아니냐? 덩치만 컸지 별거 아니네.”
“크윽.”
한성의 말에 레비아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레비아가 불러낸 쉐도우 라이컨슬로프는 다크 메탈 골렘에게 맥을 못 추고 있었다.
하길, 그럴 수밖에.
한성이 강해진 만큼 다크 메탈 골렘도 강해졌고, 루루도 강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다크 메탈 골렘에게 루루가 집중적으로 버프를 주고 있으니 레벨 차가 좀 나긴 하지만 쉐도우 라이컨슬로프 한 마리한테 고전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내 권속을 바보 취급 하지 마!”
레비아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팔을 흔들며 소리쳤다.
“나 진짜 화났어. 마인을 화나게 만들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 주지!”
순간 레비아에게서 흑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이건?’
한성은 얼른 등 뒤에 있는 마리와 스우를 감쌌다.
끈적끈적한 살기가 농축되어 있는 흑마력이 주변을 감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서른 마리의 쉐도우 울프들은 레비아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기습 공격에 대비하는 모양새였다.
“내 이름은 레비아. 마인 흑혈랑의 이름 아래 모여라, 나의 권속들이여.”
얼마 지나지 않아 레비아의 흑마력이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한성의 눈앞에 레비아의 권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릉.
캬아아.
‘생각보다 꽤 많은데?’
상당한 숫자의 레비아의 권속들.
“이건 뭐…….”
한성의 눈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아까 전의 쉐도우 라이컨슬로프보다 훨씬 더 거대한 몬스터도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무리는 이거야.”
레비아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여유로운 가슴 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이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