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
< 내 언데드 100만 >
제203화 엑스큐터 길드
휘이이이잉.
싸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바람이 얼음의 숲에서 불어온다.
케인을 비롯한 서너 명의 방문자들은 차가운 땅바닥 위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 위로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은 망토의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기괴하게 생긴 망령 무기를 들고 있는 엑스큐터 길드원들이 마치 사신(死神)인 것처럼 방문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슈라드 님. 얼음의 숲에서 발견한 방문자들을 전부 처리했습니다.”
“수고했다.”
다섯 명의 엑스큐터 길드원들 중 한명이 깊숙이 눌러쓴 모자를 벗으며 답했다.
나이는 마흔 정도 되었을까.
모자를 벗은 사내는 짧은 회색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눈에는 칼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강인한 인상의 슈라드는 날카로운 눈으로 얼음의 숲을 노려봤다.
“다른 방문자들을 발견하면 바로 처리해라. 어차피 죽여도 바퀴벌레처럼 살아나는 놈들이니까.”
“예.”
“그리고 타깃은 아직 찾지 못했나?”
“수색 지역을 거의 다 뒤졌으니 조만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빨리 찾아야 할 거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의 분노를 우리가 뒤집어 쓸 테니까.”
“……예.”
슈라드의 말에 엑스큐터 길드원들은 살짝 몸을 떨었다.
엑스큐터 길드를 지배하고 있는 존재.
슈라드가 말하는 그분이 어떤 인물인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슉.
그때 길드원들 사이로 검은 망토를 뒤집어 쓴 인물이 유령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떨어져 내렸다.
슈라드는 눈앞에 나타난 인물을 바라봤다.
“12호로군. 무슨 일이지?”
일반 엑스큐터 길드원들은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번호로 부르며, 오직 몇 명 안 되는 간부들만이 이름으로 부른다.
“타깃을 발견했습니다.”
12호의 대답에 슈라드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엑스큐터 길드원들은 다섯 명씩 조를 나누어 얼음의 숲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12호는 수색조에서 연락을 담당하고 있었다.
“안내해라.”
잠시 후, 얼음의 숲에서 엑스큐터 길드원들이 사라졌다.
남은 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죽어 있는 방문자들뿐.
* * *
하얀 얼음의 숲속에서 작은 요정이 얼음 풀 밑에 몸을 웅크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비처럼 생긴 하얀 날개와 하얀 원피스, 허리까지 내려와 있는 머리카락도 하얀 요정이었다.
하얀 눈의 요정은 얼음 잎을 우산처럼 쓰고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크아아아앙!
서걱! 스아아악!
소녀가 숨어 있는 장소 근처에서 한바탕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컹!
‘아, 안 돼!’
주변에서 하얀 늑대의 비명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하얀 눈의 요정, 스우는 풀잎 밑에서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떨었다.
얼음의 숲에서 터를 잡고 있는 하얀 늑대 일족, 프레시안.
하얀 늑대 일족은 스우를 보호하는 존재들이었다.
캥!
하지만 지금 그 하얀 늑대들이 스우의 눈앞에서 한 마리, 한 마리 척살당하고 있었다.
콰직.
순간 스우의 주변에 있는 얼음 수풀이 부서졌다.
엑스큐터 길드원 하나가 다가온 것이다.
“……!”
스우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재빨리 입을 손으로 막았다.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엑스큐터 길드원은 스우를 찾기 위해 온 게 아니라 전투를 벌이다 우연히 근처에 왔다는 사실이었다.
크아앙!
스우의 위기를 감지한 하얀 늑대 한 마리가 달려왔다.
하얀 늑대는 엑스큐터 길드원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길드원은 몸을 틀며 사신의 낫처럼 생긴 망령 무기의 손잡이 부분으로 늑대의 몸을 후려쳤다.
퍼억!
캥!
하얀 늑대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처박혔다.
방금 전 일격으로 내상을 입었는지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하얀 늑대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고 있는 하얀 늑대와 스우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일순 하얀 늑대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지켜줄 테니 안심하라는 눈빛.
하지만 이내 하얀 늑대는 망령 무기를 든 사신 같은 엑스큐터 길드원을 노려보며 절뚝절뚝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스우가 있는 장소에서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서.
스르륵.
하얀 늑대의 노림수는 제대로 먹혀들었다.
엑스큐터 길드원은 유령 같은 몸놀림으로 하얀 늑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눈부신 속도로 망령 무기가 허공을 갈랐다.
슈칵!
털썩.
하얀 늑대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바닥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주변은 붉게 물들었다.
“……!”
그 모습을 본 스우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물을 흘렸다.
크르릉! 캐앵! 커헝!
사방에서는 여전히 하얀 늑대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스우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져 싸우고 있던 것이다.
하얀 얼음 나무와 꽃들이 가득했던 아름다운 숲은 하얀 늑대들의 붉은 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누가, 누가 도와주세요.’
스우는 자신을 위해 죽어가는 하얀 늑대들의 비명 소리를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검검?”
“끼야아아악!”
지금까지 어떻게든 소리를 지르지 않고 얼음 수풀 밑에서 숨어 있던 스우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얼음 수풀 뒤쪽으로 검은 해골 병사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스우를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아…….”
스우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을 바라봤다.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낫처럼 생긴 망령 무기를 들고 다니는 엑스큐터 길드원들이 사신이라면, 스우의 눈앞에 나타난 블랙 스켈레톤 솔저는 죽음 그 자체였다. 블랙 스켈레톤 솔저는 전신이 검은 뼈로 이루어진 언데드 몬스터였으니까.
앞에는 사신, 뒤에는 언데드 몬스터.
“소드소드.”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의 푸른 안광이 초승달처럼 휘어지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스우는 모든 걸 놓아 버렸다.
희망을 잃고 체념을 하고 만 것이다.
* * *
“음?”
얼음의 숲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한성은 자리에 멈춰 섰다.
‘검병이 당했네.’
하얀 얼음의 숲 미니맵에 표시되어 있던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 세 마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나머지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들은 전투 상태에 들어갔다.
한성은 시야에 떠올라 있는 미니맵으로 블랙 스켈레톤 솔저들의 움직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군.’
160레벨대의 몬스터가 나오는 하얀 얼음의 숲에서 186레벨인 블랙 스켈레톤 솔저 세 마리가 순식간에 쓰러졌다.
망령 무기를 가진 놈들과 조우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은 눈의 요정부터 찾아야 돼.’
망령 무기를 가진 놈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굳이 그놈들과 만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한성은 눈살을 살며시 찌푸렸다.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들 중 하나가 묘한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블랙 스켈레톤 솔저들이 눈의 요정을 발견하면 한성에게 알리기 위해 복귀하도록 설정해 두었다.
그리고 지금 소드맨 하나가 한성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눈의 요정을 발견한 건가?’
“얘들아 준비해라. 손님 오신다.”
한성은 소환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 * *
스우는 파리하게 질린 표정으로 몸을 웅크렸다.
‘이제 끝인가?’
지금 스우는 호랑이를 피해 숨어 있다가 사자한테 물린 격이었다.
스우를 발견한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은 그 즉시 바로 튀었다.
품속에 스우를 고이 안아들고서.
그 후 당연하게도 난리가 났다.
하얀 늑대들을 상대하던 엑스큐터 길드원들은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스우를 안아든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 1호는 한성이 있는 쪽으로 냅다 내달렸다.
그리고 나머지 8기는 엑스큐터 길드원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비록 얼마 버티지는 못하겠지만 발목은 충분히 잡을 수 있을 터.
거기다 하얀 늑대 무리들도 반씩 나누어 엑스큐터 길드원들과 도망치고 있는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의 뒤를 쫓았다.
‘의미 없어.’
하지만 스우는 이미 포기 상태였다.
어느새 스우의 주변에는 엑스큐터 길드원들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들은 전부 전멸.
나머지 하얀 늑대들도 이제 몇 마리 뿐.
‘하지만…….’
절대적인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하얀 늑대들은 스우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스우를 구하기 위해 엑스큐터 길드원들을 물고 뜯고 늘어졌다.
‘이제 그만해.’
하얀 늑대들의 희생에 스우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자신 때문에 대체 얼마나 많은 늑대들이 생명을 잃었던가.
슈와아아악!
그때 지근거리에 있던 엑스큐터 길드원의 망령 무기가 스우를 들고 있는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을 향해 내려쳐졌다.
“소드소드!”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은 질 수 없다는 듯 푸른 안광을 토해 내며 한 팔로 장검을 치켜들었다.
슈왁! 서걱!
하지만 망령 무기는 장검을 통과하며 그대로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의 본체를 갈랐다.
검은 해골이 깨끗하게 잘려지면서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은 오른 팔을 잃었다.
“소드소드소드소드.”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처럼 소리를 내며 전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최소한 눈의 요정 스우를 자신의 마스터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데스 블레이드.”
그때 엑스큐터 길드원의 음산한 목소리가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의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푸슛.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파공음을 내며 날아들었다.
슈가가가각! 퍼석!
순간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은 하늘이 반전하는 걸 바라봤다.
반월형처럼 생긴 날카로운 검은 흑마력이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의 다리를 날려 버린 것이다.
철푸덕.
다리가 날아간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은 이내 땅바닥에 처박혔다.
그리고 블랙 스켈레톤 소드맨의 손에 잡혀 있던 스우도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지, 지금이라면!’
모든 걸 체념하고 포기하고 있던 스우는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지금이라면 날아서 도망칠 수 있었다.
“거기까지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마라. 지금 여기서 도망친 다면 널 지켜주던 하얀 늑대들을 이 숲에서 말살하겠다.”
“……!”
순간 스우는 멈칫했다.
사신의 경고를 받았으니까.
2미터가 좀 넘는 공중에 떠 있던 스우는 몸을 돌렸다.
발 밑 아래에 검은 사신들이 스우를 노려보고 있었으며, 사신들 주위에는 하얀 늑대들이 신음 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하얀 얼음의 숲에 투입된 엑스큐터 길드원들이 모여 있었으며, 전부 열두 명 정도 되었다.
그중에는 슈라드도 있었다.
“그럼 제 친구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할게요.”
스우는 천천히 내려왔다.
어차피 도망을 친다고 해도 스우 혼자 무언가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스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엑스큐터 길드원들의 눈을 피해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단지, 희생만 늘어날 뿐.
스우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해 가족과 다름없는 친구들인 하얀 늑대들이 희생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약속하지.”
스우의 말에 슈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이제 하얀 얼음의 숲 가디언은 우리 수중이군.’
슈라드는 스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스우가 슈라드의 손 위에 날아가려는 찰나.
“오케이, 거기까지.”
스우와 엑스큐터 길드원들 앞에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