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언데드 100만-193화 (193/318)

# 193

< 내 언데드 100만 >

제193화  유그드라실 시스템

레이몬이 페르젠을 상대하고 있는 사이 한성의 신경은 제단 앞에 있는 소녀에게 쏠려 있었다.

제단 위에 있는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분명 이 소녀가 제물이겠지.’

한성은 자신의 품 안에 조용히 안겨 있는 소녀를 내려다봤다.

나이는 이제 일곱, 여덟 살 정도 되었을까?

루루보다 더 어려 보였으며, 전체적으로 하얀 느낌의 소녀였다.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단발 머리카락과 눈썹, 그리고 늑대 귀와 꼬리도 눈부신 하얀 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봤을 때 소녀의 푸른 눈은 공허했다.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전부 포기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한성이 눈앞에 나타나 구해 주겠다는 말을 걸었을 때 하얀 늑대족 소녀, 마리는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지금은 한성의 품 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꼭 붙잡고 있는 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치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마리는 ‘놓을 거야?’라는 눈빛으로 한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놓지 않을 테니까, 걱정마라.”

한성은 마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응.”

따스한 말과 손길에 마리는 눈물을 살짝 흘리며 한성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동안 한성은 안전하게 소환수들이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쓸데없는 짓을…….”

페르젠은 날카로운 눈으로 한성을 노려봤다.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를 100% 완벽하게 발동시키려면 마리가 필요했다.

자신이 준비한 마지막 제물이었기 때문이다.

“유감이겠네? 계획처럼 되지 않아서.”

한성은 페르젠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리를 이용해서 수정구를 발동시키려고 했다가 한성에게 한 수 먼저 뺐긴 것이다.

“수정구를 발동시키지 못한다면 이제 신경 쓸 건 없지.”

아무리 페르젠이 강하다고 해도 혼자서 수많은 소환수들을 상대하지는 못할 터.

실제로 레이몬 혼자 어떻게든 페르젠을 상대하지 않았던가?

“소모전을 벌이면 나한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다굴 앞에 장사는 없는 법이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네놈의 오산이다. 네놈의 소환수 따위에게 당할 내가 아니니까.”

페르젠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더니 재차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제물이 없다고 해서 딱히 발동을 시키지 못하는 건 아니거든.”

“뭐? 마지막 제물을 바치면 발동한다며?”

“마지막 제물을 바치면 수정구가 진정한 힘을 발동한다고 말했을 뿐이다만?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발동하지 못한다는 말은 안했는데?”

“헐. 미친.”

한성은 할 말을 잃었다.

소녀를 구함으로써 수정구의 발동을 막을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

“그래도 영물을 제물로 바치지 못해 안드로말리우스님의 수정구를 100% 완벽하게 발동할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지금 이대로라도 발동시켜 주마. 그래도 네놈을 매장하는데 충분할 거다.”

페르젠은 입가에 비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우우우우우웅!

순간 페르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수정구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설마 정말인가?’

한성은 날카로운 눈으로 어마어마한 흑마력이 흘러나오고 있는 수정구를 노려봤다.

“지금까지 네놈이 보아온 허접한 레플키라와는 차원이 다를 거다. 레플리카는 오리지널의 부작용을 이용해서 육체를 강화시키는 것이었으니까. 그건 본래의 사용법이 아니지.”

“그게 무슨?”

페르젠의 말에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는 흑마력으로 사용자의 신체를 강화시켰었다.

그런데 그게 본래 사용법이 아니라니?

“레플리카는 안드로말리우스님의 수정구 조각 일부를 사용한 것. 그 때문에 부작용처럼 생겨난 흑마력으로 육체를 개조하거나 강화를 시킬 수 있었지. 하지만 진정한 목적은 그게 아니야.”

“진정한 목적이 따로 있다고?”

“그렇다고 해 두지.”

“그럼 그게 뭔데?”

한성의 물음에 페르젠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알고 싶으면 나를 쓰러트려 봐라. 그럼 조금 고민은 해 볼 테니까.”

페르젠은 자신감이 충만한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본인의 실력을 믿고 있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금 발동 대기 중인 오리지널의 카피인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가 있었다.

그런 자신만만해 하는 페르젠에게 한성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기습처럼 한마디를 던졌다.

“등짝을 보여 준다고 해도?”

“……!”

일순, 아주 미세한 시간차로 페르젠의 얼굴에 주저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페르젠은 1초도 되지 않아 헛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이 상황에서 농담이라니. 네놈 배짱은 안드로말리우스님 못지않구나.”

페르젠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한성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저놈 진짜 위험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1초도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페르젠이 고민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뭐, 네놈이 그렇게 원한다면 등짝을 봐 주도록 하마. 안드로말리우스님의 목적은 말해 주지 않을 거지만 말이야.”

금발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길게 기르고 이목구비도 여성과 구별이 되지 않는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페르젠은 붉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말했다.

‘흐억!’

한성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절대 지면 안 된다.’

만약 이번 전투에서 지게 된다면 한성은 많은 걸 잃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발 밑에서 개처럼 엎드리게 만들어 주지.”

페르젠은 미소를 지으며 손에서 흑마력을 생성해 냈다.

마치 연기처럼 흘러나온 흑마력은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를 향해 흘러들었다.

그때 한성의 시야에 안내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경고. 72 마계 귀족 중 하나인 안드로말리우스가 직접 제작한 수정구의 오리지널 카피가 발동하려고 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월드 히든 미션이 새롭게 갱신되었습니다!]

‘헐?’

안내 메시지를 확인한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월드 히든 미션이 갱신되었다고 떠올랐기 때문이다.

[월드 히든 연계 미션: 배후자의 음모를 조사하라!]

당신은 배후자가 페르젠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72 마계 귀족 중 하나이며 상급 마족인 안드로말리우스에게 힘을 전수받은 마인, 페르젠은 중앙 대륙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지금 그는 음모 중 하나인 안드로말리우스의 오리지널 수정구를 카피하여 발동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발동한 오리지널 수정구 카피를 막으십시오.

그의 음모를 밝혀내십시오.

그리고 그에게 붙잡혀 있는 늑대족 소녀를 구출하십시오.

미션 요구 레벨: 145~165.

난이도: A랭크.

진행사항:

1) 오리지널 카피 수정구 저지 (0/1)

2) 페르젠의 음모 확인 (0/1)

3) 늑대족 소녀 구출 (1/1)

보상: 15000 골도. Lv165 레전드 보물 상자. 다음 미션.

‘첩첩산중이네.’

새롭게 갱신된 월드 히든 미션에 진행사항이 생겨났다.

거기다 수행해야할 것들 중에 오리지널 카피 수정구 저지가 새롭게 하나 더 추가되었다.

‘늑대족 소녀는 구했고, 남은 건 두 개인가?’

월드 히든 미션 설명창을 빠르게 확인한 한성은 다시 페르젠과 수정구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수정구의 발동은 막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게 오리지널 수정구의 본래 목적이다!”

우우우웅!

페르젠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흑마력이 감돌고 있는 수정구에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수정구 앞으로 검은색의 마법진이 전개되었다.

무려 직경이 3미터나 되는 거대한 칠흑의 마법진.

‘마법진이라고?’

돌풍을 내뿜고 있는 수정구 앞 허공에 돌연 나타난 거대한 마법진의 모습에 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마법진이 전개되었다는 건 수정구에서 무언가 대규모적인 마법이 발동하려고 한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끼아아아아아아.

“……!”

순간 마법진에서 가슴을 옥죄는 듯한 섬뜩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아, 아니야. 저건 마법진이 아니야!’

“설마?”

칠흑의 마법진, 아니 이제는 그저 어두운 터널 입구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그것을 한성은 멍한 눈으로 바라봤다.

“게이트라고?”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가 가지고 있는 비밀.

그건 마계와 이어지는 게이트였다.

*       *       *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의 중추부.

방문자들도, 켈트인들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중앙 대륙의 중심부에는 거대한 세계수가 존재한다.

세계수, 유그드라실(Yggdrasil)

가상 세계 티르 나 노이를 끊임없이 설계하고 보수하며 운영하는 인텔리전스 시스템이다.

그 세계수를 대변하는 존재.

유그드라실 인텔리전스 시스템 인터페이스 유닛(Yggdrasil Intelligence System Interface Unit).

통칭 이시스.

겉모습은 열 살 내외로 보였다.

하늘하늘 흔들리는 긴 푸른색 머리카락과 푸른 눈, 그리고 하얀 피부를 가진 신비스러운 소녀였다.

가상 현실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데이터들이 흐르고 있는 세계수의 중심에서 이시스는 조용히 티르 나 노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모든 걸 완벽하게 알 수는 없었다.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확인하려면 가상현실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이시스가 바라보고 있는 일이거나, 아니면 무언가 시스템적으로 큰 문제가 생겼을 경우가 아니면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방금 전 작은 문제가 하나 생겼다.

‘계획 없는 마계 필드 연결 발생. 대처 필요.’

가상 현실 티르 나 노이에는 인간들이 사는 세계인 중간계 중앙 대륙 투아하 데 다난과, 천상계, 마계, 정령계, 환수계 등 다양한 필드가 존재한다.

그리고 중앙 대륙과 다른 필드가 연결되는 경우는 특별한 이벤트를 할 때뿐이었다.

마계의 침공이라든가, 환수들의 반란이라든가 등등.

특정 직업군들이 정령이나 환수와 계약을 맺을 때도 다른 필드와 연결이 되지만 그 경우는 별개였다.

시스템적으로 상시 허용이 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조금 전, 시스템을 벗어난 게이트 하나가 마계와 연결되었다.

자유도가 높은 시스템 특성상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는 않지만 각 필드 간의 연결은 아니었다.

각 필드마다 서버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서버에 연결하려면 허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허가는 이시스가 한다.

‘이해불능.’

복잡한 문자와 숫자들이 위아래로 오고 가는 세계수 내부에서 이시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냐하면 이시스는 마계와 연결되는 게이트를 허가한 기억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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