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
< 내 언데드 100만 >
제191화 페르젠
콱!
한성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켈투림의 지팡이를 화이트 건틀렛으로 막으며 움켜잡았다.
[헛! 이, 이놈이? 이걸 놓지 못하겠느냐!]
너무나도 쉽게 지팡이가 붙잡혀 버리자 켈투림은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게 뼈밖에 없는 리치 놈이 왜 지팡이를 휘두르고 지랄이야? 내가 만만하냐?”
[…….]
한성의 말에 켈투림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 라고 대답할 뻔했다.
왜냐하면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눈앞에 있는 방문자는 쓰레기 같은 하급 네크로맨서지만 켈투림은 언데드 소환과 흑마법의 정점에 달해 있는 리치다.
네크로맨서들의 최종판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당연히 한성을 깔볼 수밖에.
“날 그냥 네크로맨서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지.”
한성은 켈투림의 지팡이를 쥐고 있는 왼손에 힘을 줬다.
쩌적!
[허?]
자신의 지팡이에 금이 가자 켈투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켈투림이 한성에 대해 모르고 있는 사실.
그것은 한성이 네크로맨서 계열의 히든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전승을 한 덕분에 본래 레벨보다 스텟 수치가 높다는 사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직업은 무려 4차 전직을 한 패왕.
패왕 네크로맨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각오하고 있는 게 좋을 거야.”
한성은 여전히 왼손으로 켈투림의 지팡이를 꽉 움켜 쥔 채, 이번엔 오른손을 들었다.
스스슥.
잠시 후, 인벤토리에서 무기가 하나 튀어나왔다.
만인을 넘어선, 만물에게 평등한 전설의 육죽창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네놈이 리치든 뭐든 죽창 앞에서는 평등해지겠지.”
한성은 육죽창을 켈투림에게 겨누며 히죽 웃었다.
[이, 이놈……!]
자신의 발가락 뼈 끝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한성이 히죽거리며 비웃자 켈투림은 뼈마디마디가 삐걱거릴 정도로 모멸감에 몸을 떨었다.
[감히 나를 비웃다니! 절대 용서 못한다!]
슈우우웅.
켈투림은 지팡이에 흑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보마나마 지금 상황을 타파할 공격 마법을 시전 중일 터.
“이미 늦었어!”
푸욱!
[커헉!]
전설의 육죽창이 켈투림의 로브를 꿰뚫고 박혀 들어갔다.
콰지직. 와그작.
섬뜩한 소리가 켈투림의 몸속에서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켈투림은 갈비뼈가 박살이 났으며 생명력도 상당히 깎여나갔다.
[마, 말도 안 돼. 마나 장벽을 쳐두었는데 어째서…….]
켈투림은 경악한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리치다 보니 생명력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마나는 어마어마했다.
거기다 켈투림의 스킬 중에는 마나 배리어가 있었다.
이른바 마나 장벽으로 마나 1포인트당 받는 데미지을 경감해 준다.
그런데 방금 전 육죽창은 마나 장벽을 마치 없는 것처럼 통과하더니 다이렉트로 생명력을 깎아 버린 것이다.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죽창 앞에서는 만물이 평등하다고 말이야.”
한성은 씩 웃어 보였다.
전설의 육죽창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방어력 무시.
마나 장벽을 관통해서 직접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그런데 리치 주제에 뼈다귀가 약하다? 우유 좀 마셔야겠는데?”
[이, 이놈이……!]
켈투림은 활활 타오를 것 같은 붉은 눈으로 한성을 노려봤다.
“그놈의 이놈 소리는 그만 좀 해라. 이젠 질린다.”
퍽! 퍽! 퍽!
[크헉! 컥! 끄허어어억!]
한성은 무자비하게 육죽창으로 켈투림을 찌르기 시작했다.
‘흠. 전부터 생각했지만 역시 사기네, 이거.’
육죽창의 엄청난 위력에 한성은 혀를 내둘렀다.
대(對)보스 병기, 전설의 육죽창.
대인 결전에서 육죽창은 사기적인 위력을 보이고 있었다.
그 증거로 지금 켈투림은 맹렬하게 찌르기를 시전 중인 한성의 육죽창 공격에 손 하나 까닥 못 한 채 뼈마디마디가 부서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걸로 끝이다!”
마나 컨트롤을 사용해서 육죽창에 마력을 집중시킨 한성은 그대로 켈투림을 향해 내려꽂았다.
푸욱!
[크리티컬이 터졌습니다.]
때마침 33% 확률로 3배 데미지를 입히는 크리티컬이 터졌다.
[컥!]
한순간 어마어마한 데미지를 입은 켈투림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생명력은 이제 바닥인 상태.
앞으로 한 번만 더 찌르면 끝난다.
“이제 진짜 끝이군.”
한성은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육죽창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거기까지다.”
한성의 등 뒤에서 나긋하면서도 소름끼치는 묘한 느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한성은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제단 위에 떠 있는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존재를.
등까지 내려오는 긴 황금색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가진 조각 같은 이목구비를 가진 미남자가 붉은 코트를 펄럭이며 내려오고 있었다.
[느, 늦었구나, 페르젠.]
“아아. 최종 조정을 하느라 어쩔 수 없었다. 이 수정구는 오리지널을 카피한 특제품이니까 말이야. 기존의 조잡한 레플리카와는 차원이 다르지.”
페르젠은 미소를 지으며 한성을 바라봤다.
“네가 트레인이지? 네로폴리스 도시에서는 신세를 졌군.”
“뭐? 그럼 역시 네 녀석이…….”
“테오도르라면 좀 더 잘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설마 그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실망이었지.”
페르젠은 입가에 비웃음을 흘렸다.
그의 말은 테오도르를 뒤에서 조종했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 순간 한성의 시야에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어둠의 신봉자들을 뒤에서 조종한 배후자와 조우했습니다. 월드 히든 미션 어둠의 신봉자들의 배후 세력을 찾아라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5000 골드와 Lv150 유니크 보물 상자를 지급합니다.]
[월드 히든 미션이 갱신됩니다.]
[월드 히든 연계 미션: 배후자의 음모를 조사하라!]
오랜 기간 당신은 어둠의 신봉자들을 이끌던 테오도르를 뒤에서 조종한 배후자를 ㅤㅉㅗㅈ은 끝에 드디어 그와 조우했습니다.
배후자는 시작의 대륙뿐만이 아니라 중앙 대륙에서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를 이용해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가 꾸미고 있는 음모를 밝혀내고, 저지하십시오.
그리고 그에게 붙잡혀 있는 늑대족 소녀를 구출하십시오.
미션 요구 레벨: 145~165.
난이도: A랭크.
보상: 15000 골드. Lv165 레전드 보물 상자. 다음 미션.
‘흠.’
한성은 미션 설명창을 작게 축소시킨 뒤 페르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내용을 확인하였다.
드디어 테오도르를 뒤에서 조종하던 배후자 놈을 따라잡았다. 여기서 놓칠 수 없었다.
‘다음 월드 히든 미션을 클리어하려면 여기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미션 요구 레벨과 난이도 랭크가 마음에 걸렸다.
미션 최대 레벨이 올라가고 난이도 랭크가 B에서 A로 격상하면서 보상이 상승했다.
그만큼 미션 난이도가 어려워졌다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성은 지금 여기서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월드 히든 미션 설명을 보면 역시 지금 이곳에서 클리어를 해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야기는 이쯤 하도록 하고.”
페르젠은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딱 마주쳤다.
화륵.
그러자 페르젠의 양옆에서 검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장검들이 열 자루가 나타났다.
‘저건…….’
상대를 태워 없애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는 흑염의 마법.
“설마 네 녀석, 마인이냐?”
“빙고. 이곳 세계의 주민인 켈트인들은 물론 너희들 방문자들보다도 나는 더 우월한 존재다.”
페르젠은 자아도취적인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성을 손으로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
“죽어라.”
투확!
검은 화염의 장검들이 한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라이트닝 드라이브!”
팟!
순간 한성의 몸에서 황금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이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푸푸푸푸푹!
[크아아아아악!]
그 직후 켈투림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쓰레기 같은 놈이 어디서 스틸질이야!”
한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페르젠을 노려봤다.
기껏 켈투림의 생명력을 바닥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페르젠이 흑염의 장검으로 막타를 가져가려고 했던 것이다.
“스틸이라니? 너무하지 않나? 나는 단지 너를 대신해서 쓸모없는 놈을 없애려고 했을 뿐이다.”
페르젠은 유들유들 웃으며 말했다.
‘아, 진짜 기분 나쁜 놈이네.’
한성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동료를 헌신짝처럼 내버리면서도 유들유들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를 부리는 페르젠의 모습이 한성에게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배신한 블랙 레이븐 클랜의 클랜장 슈타인을 보는 듯 했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마무리는 하지 않았나?”
“흥.”
페르젠의 말에 한성은 코웃음을 쳤다.
‘어째 날아오는 각도가 이상하더라니.’
조금 전 흑염의 장검들이 날아들 때 사실 한성은 그대로 피할 수 있었다.
굳이 라이트닝 드라이브를 쓰지 않고도 말이다.
하지만 흑염의 장검들이 자신뿐만이 아니라 켈투림까지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한성은 깨달았다.
그래서 재빨리 라이트닝 드라이브를 시전해서 번개 같은 속도로 육죽창을 휘둘러 켈투림을 마무리한 후, 흑염의 장검들까지 피한 것이다.
‘내가 막타를 쳤으면 쳤지, 뺏길 수는 없지.’
게임에서 한성이 용서할 수 없는 행위들 중 하나가 바로 막타 스틸이었다.
그것을 눈뜨고 당할 생각은 없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죽음의 탑 보스 켈투림을 처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50000 골드와 켈투림의 혹한 지팡이를 지급합니다.]
[축하합니다. 켈투림의 토벌 미션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5000 골드와 Lv150 유니크 보물 상자를 지급합니다.]
‘굿!’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한 한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단번에 켈투림의 혹한 지팡이를 얻은 것이다.
‘운이 좋았네. 적어도 두세 번은 죽음의 탑을 돌아야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켈투림이 드랍하는 아이템은 다양하다. 혹한 지팡이 말고도 로브나 액세서리 같은 장식품들을 떨구기도 하니까.
‘이제 문제는…….’
한성은 전방을 바라봤다.
그곳에 붉은 코트를 입은 페르젠이 웃고 있었다.
켈트인이 마족에게 영혼을 팔아 힘을 얻은 존재, 마인.
마인의 능력은 동 레벨의 방문자들보다 강력하다.
“그럼 잠깐 놀아 주마. 네놈의 등짝 좀 보도록 할까?”
페르젠은 한성을 바라보며 혀로 입술을 훔쳤다.
“……!”
그 모습에 한성은 자기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