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
< 내 언데드 100만 >
제178화 하얀 늑대, 스왈로우
모험가 길드에서 나온 한성은 바로 북풍지대를 향했다.
북풍지대 중심에 위치한 죽음의 탑에서 군림 중인 켈투림을 사냥하려면 준비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었다.
블랙 레이븐 클랜 놈들까지 상대해야 하니 말이다.
‘지금 내 레벨은 139지. 140레벨이 되기 전까지 북풍지대에서 스노우 몬스터들을 잡으면 되겠지.’
140레벨이 되면 스킬 숙련도를 1업씩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언데드 몬스터들을 소환하기 위한 시체들도 충분히 모일 터.
‘부탁한다, 틴달로스.’
프로즌 타운 북문을 나서기 전 한성은 틴달로스의 그림자 일부를 남겼다.
블랙 레이븐 클랜 놈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한성은 북풍지대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눈보라 속을 향해 루루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 * *
“지랄 맞네, 이거.”
한성은 눈보라 속에서 고고히 서 있는 존재를 바라봤다.
파지직.
차가운 한기가 느껴질 것 같은 푸른 스파크가 눈앞에서 날뛰고 있는 중이었다.
크르르.
몸길이가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하얀 늑대가 눈보라 속에서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한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북풍지대의 이변 미션을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으로 13500골드를 지급합니다.]
[일반 미션 북풍지대의 이변이 갱신되었습니다. 일반 미션 북풍지대의 이변이 월드 히든 미션에 통합됩니다.]
“헐?”
순간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반 미션 북풍지대의 이변이 월드 히든 미션에 통합된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월드 히든 미션: 어둠의 신봉자들의 배후 세력을 찾아라!]
당신은 북풍지대에서 분노에 미쳐 날뛰고 있는 네임드 몬스터 스왈로우를 발견했습니다. 스왈로우는 72 마계 귀족 안드로말리우스와 연관이 있는 배후자를 쫓고 있습니다.
폭주 중인 스왈로우를 제압하십시오.
최소 요구 레벨: 145.
난이도: B랭크.
보상: 14500 골도. Lv145 유니크 보물 상자. 다음 미션.
“미친.”
한성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설마 눈앞에 있는 네임드 몬스터가 월드 히든 미션과 연관이 있을 줄이야.
거기다 배후자를 쫓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이거 쉽지 않겠는데.’
스왈로우는 배후자를 쫓아 북풍지대로 왔다.
그렇다는 건 배후자라는 존재가 북풍지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생포해야 되나?’
한성은 눈앞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푸른 전격을 방전하고 있는 성가신 늑대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상황은 레이몬과 라이가 양쪽에서 스왈로우를 견제하고 있었으며, 정면은 한성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스왈로우의 뒤에는 얼어붙은 언덕이 벽처럼 막고 있는 상황.
거기다 스켈레톤 솔져 100마리가 주변을 겹겹이 에워싼 채 포위하고 있었다.
스왈로우와 조우하기 전 북풍지대 내부로 진입하면서 시체 소환 스킬과 몬스터 몇 마리를 잡고 만든 언데드 부대였다.
그 덕분에 지금 스왈로우가 도망칠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크아아아아앙!
그때 스왈로우가 길게 포효를 내질렀다.
“아무래도 한바탕해야 될 것 같구만.”
그 말에 라이와 레이몬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한성 또한 자세를 낮췄다.
‘어째서 배후자를 쫓고 있는 건지 궁금하지만 일단 제압부터다.’
대체 무슨 사연으로 스왈로우는 배후자를 쫓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라도 한성은 스왈로우를 생포할 생각이었다.
“모두 달려들어!”
한성은 소환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소드소드.”
“랜스랜스.”
한성의 명령에 해골 검병 30마리와 해골 창병 20마리가 스왈로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지지지직!
그와 동시에 스왈로우에게서 푸른 전격이 사방으로 방전하며 터져 나왔다.
“찌릿찌릿해영!”
스왈로우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대기를 타고 느껴진 찌릿찌릿한 느낌에 루루는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소리쳤다.
다행히 두터운 코트와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왈로우를 향해 달려들었던 해골 병사들은 무사하지 못했다.
스왈로우가 전방위로 방출한 푸른 전격파는 해골 검병들과 창병들을 바닥에 내동댕이친 것이다.
“역시 무린가?”
그 모습을 본 한성은 혀를 찼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네임드 몬스터는 준보스에 해당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으니까.
거기다 아직 해골 검병들의 레벨은 139밖에 되지 않았다.
한성이 140레벨을 찍기 전에 스왈로우와 조우했기 때문이다.
“궁병대!”
“아처아처.”
한성의 외침에 해골 궁병 50마리가 하얀 뼈로 이루어진 활을 치켜들었다.
팅! 쌔애액!
이윽고 차가운 북풍지대의 공기를 찢으며 하얀 뼈 화살들이 스왈로우를 향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눈보라가 치지 않는 지금 잡아야 돼!’
스왈로우와 조우할 때쯤 눈보라가 멈췄다.
해골 궁병들을 뽑아서 데리고 다니던 한성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비록 눈보라가 멈춘 이후에도 여전히 차가운 바람은 불고 있었지만 해골 궁병들은 바람을 등지며 스왈로우와 맞붙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점으로 작용했다.
바람을 탄 화살들이 맹렬한 기세로 스왈로우와 그 주위로 박혀 들어갔기 때문이다.
슈슈슉!
크아아아아앙!
파지지직!
본 애로우들이 닿기 전 스왈로우는 길게 포효하며 다시 한 번 전격파를 내뿜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이미 한 번 푸른 전격파를 전방위로 내뿜었던 터라 처음보다 위력이 현저하게 약해져 있었다.
푸푹! 푸푸푹!
푸른 전격파를 뚫고 하얀 본 애로우들이 스왈로우의 몸을 꿰뚫었다.
하지만 전격파를 뚫으면서 기세를 잃은 본 애로우들은 화살촉의 끝부분만 간신히 스왈로우의 가죽에 박힐 수 있었다.
스왈로우의 가죽도 나름 방어력이 높았던 탓에 관통은 어림없었던 것이다.
크아아아앙!
본 애로우가 박힌 스왈로우는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콰가가가각!
스왈로우는 전격파에 맞아 쓰러졌던 해골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며 앞발을 휘둘렀다.
이제 막 몸을 일으키고 있던 해골 검병들과 창병들은 스왈로우의 앞발에 속절없이 나가떨어졌다.
[성가신 놈이로군!]
크아아아앙!
이어서 레이몬과 라이가 스왈로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른쪽에서 레이몬이, 왼쪽에서 라이가 달려들며 검과 앞발을 휘둘렀다.
까강! 까앙!
그 공격을 스왈로우는 앞발에다가 푸른 전격을 감싼 후 막아 냈다.
[으음.]
크헝!
레이몬과 라이는 짤막한 신음을 흘리며 물러났다.
스왈로우의 전격파에 살짝 감전되었기 때문이다.
가벼운 마비 증세를 느끼며 레이몬과 라이는 스왈로우와 거리를 뒀다.
쌔애액!
그때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려퍼지며 3미터나 되는 새하얀 뼈창 세 개가 스왈로우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레이몬과 라이가 스왈로우를 견제하는 사이 본 스피어를 소환해 날린 것이다.
푸푸푹!
깨갱!
본 스피어들은 스왈로우의 앞 어깨 양쪽과 등 중앙에 정확히 박혀 들어갔다.
지면에 쌓여 있는 하얀 눈 위로 새빨간 피가 튀었다.
지금까지 공격 중에서 그나마 꽤 데미지를 입힌 셈이었다.
그리고 아직 한성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본 익스플로전!”
콰아아아앙!
순간 뼈창이 폭발하면서 하얀 뼛가루가 스왈로우를 집어삼켰다. 하얀 폭연이 치솟아 오르면서 잠깐 시야가 가라졌다.
‘설마 해치웠나?’
이 정도 공격에 준보스급에 해당하는 네임드 몬스터가 죽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한성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건 한성의 기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라앉기 시작하는 하얀 폭연 속에서 푸른 전격을 방출하고 있는 하얀 늑대가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하얀 늑대의 곳곳에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으며, 생명력도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군. 이제 어떡한다?’
한성의 목표는 스왈로우를 처리하는 게 아니다.
스왈로우를 통해서 어둠의 신봉자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배후자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스왈로우를 제압한다고 해도 무슨 방법으로 배후자를 찾게 할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푸르게 빛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스왈로우는 한성을 노려보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고맙군. 그대 덕분에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
갑작스럽게 스왈로우가 말을 걸어오자 한성을 비롯한 소환수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거기다 성숙해 보이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어, 어떻게?”
[말하는 늑대는 처음 보나?]
스왈로우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재차 말을 이었다.
[그대 덕분에 페르젠의 저주로부터 벗어 날 수 있었다. 예를 표하지.]
“너, 너는 대체…….”
[하지만 유감스럽지만 나에겐 시간이 없다. 한시라도 빨리 페르젠을 쫓아야 한다.]
스왈로우는 한성의 공격을 받고 피가 흐르는 몸으로 이 장소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잠깐, 기다려.”
한성은 스왈로우를 멈춰 세웠다.
“아무래도 우리 이야기 좀 해 봐야겠는데? 혹시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나?”
[뭐라고?]
이번에는 스왈로우가 놀란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빙고로군.’
스왈로우의 반응에 한성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월드 히든 미션이 갱신되었습니다.]
한성의 시야에 월드 히든 미션과 관련된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던 것이다.
* * *
북풍지대의 중심, 죽음의 탑 최상층.
그곳은 켈투림이 기거하는 보스룸이다.
직경 100미터에 달하는 동 형태의 공간 중심에 켈투림과 붉은 코트를 입고 있는 금발 미청년, 페르젠이 있었다.
“상황은?”
[보는 대로다. 제물이 모자란다.]
페르젠의 물음에 기분 나쁜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켈투림이 답했다.
“스피리츄얼 빙(Spiritual Being: 영물)으로도 모자란다는 말인가?”
[스피리츄얼 빙이라고 해도 나이가 어린 개체다. 제물로서는 아직 부족하다. 이 녀석으로는 시간이 걸린다. 다른 제물들을 보충해야 하니 말이야.]
켈투림은 해골의 뻥 뚫려 있는 눈구멍 속에서 한차례 붉은빛을 일렁이며 앞을 바라봤다.
흑마력으로 만든 직경만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마법진 중심에 한 소녀가 정신을 잃고 누워 있었다.
이제 10살 정도로 보이는 하얀 귀와 꼬리를 가진 늑대 소녀.
그리고 소녀 너머에 제단이 세워져 있는데 그 위에 1미터 크기의 거대한 흑수정이 살짝 떠올라 있었다.
“그런가? 수정구를 완성시키려면 제물이 더 필요하다는 소리군.”
[그렇다.]
“알겠다. 제물은 걱정하지 마라. 스피리츄얼 빙이 부족하다면 방문자들을 제물로 쓰면 되지. 이미 손은 써 두었으니까. 너는 최대한 빨리 안드로말리우스 님의 수정구를 개선하는 데 집중해라, 켈투림.”
[네 말을 듣지 않아도 그리할 것이다, 페르젠. 모든 건 안드로말리우스 님을 위한 것이니까.]
“그럼 수정구는 맡겨 두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붉은 코트의 청년 페르젠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 뒤로 남은 건, 고요한 적막감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