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언데드 100만-177화 (177/318)

# 177

< 내 언데드 100만 >

제177화  뜻하지 않은 재회

‘이, 이 자식은?’

한성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눈앞에서 웃고 있는 사내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는 타락한 악몽의 숲에서 한성을 뒤쫓아 왔던 서른 명의 추적자들 중 한 명이었다.

‘흑마탄환자 놈이잖아?’

캐릭터 명, 흑마탄환자.

닉네임은 슈발츠.

티르 나 노이에서는 캐릭터 실제 이름 대신 닉네임을 쓸 수 있었다.

슈발츠 또한 ‘흑마탄환자’라는 캐릭터 이름보다 닉네임으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시스템 알림 메시지로는 본인 확인을 위해 캐릭터 이름이 쓰인다.

그래서 평소엔 닉네임을 쓴다고 해도 방문자들과 켈트인들이 모두 다 볼 수 있는 시스템 알림 메시지가 뜰 경우 캐릭터 이름까지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파티나 클랜에 가입하면 역시나 본인 확인을 위해 캐릭터 이름으로 등록된다. 그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문제가 될 법한 캐릭터 이름을 지은 방문자들은 어지간해서는 전부 이름을 교체했다.

오딘 사에서 유저들을 배려해 캐릭터 이름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주었으니까.

하지만 몇몇 방문자들은 슈발츠처럼 캐릭터 이름 대신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었다.

일부 특이한 걸 좋아하는 한국인 방문자들은 여전히 특이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 명을 그대로 쓰고 있지만 말이다.

“오늘 켈투림 토벌대는 없어. 우리 애들 버스 태워 줄 예정이니까. 200레벨인 나한테 켈투림 따위는 껌이지.”

슈발츠는 비릿하게 웃으며 한성을 바라봤다.

“그렇군.”

한성은 최대한 코트에 달린 후드처럼 생긴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루루의 얼굴도 최대한 가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흑마탄 미친놈이 벌써 200레벨이라니.’

타락한 악몽의 숲에서 자신을 쫓을 때 슈발츠는 추적자들 중에서 최하위 레벨이었다.

그때 당시 170 중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현재 200레벨이라고 하지 않는가?

‘나랑 비교조차 안 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지는 않네.’

성장 차이를 보면 한성이 압도적이었다.

비록 슈발츠가 레벨이 높아서 한성보다 성장속도가 더디다지만 차이가 심했다.

슈발츠가 25레벨을 올리는 동안 한성은 약 90레벨 정도 올렸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쓰러트려야 할 놈이 성장했다는 사실은 달갑지 않았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슈발츠의 말에 대답한 한성은 바로 모험가 길드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모험가 길드 안에 있는 블랙 레이븐 클랜원 서른 명은 한성이 물러서자 히죽히죽 비웃음을 흘렸다.

그들의 레벨은 대부분 140대 일 터.

켈투림은 수많은 졸개 몬스터들을 이끌고 다닌다. 그리고 졸개 몬스터들은 경험치를 제법 많이 주는 편이었다.

다만 그만큼 상대하기가 까다로웠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지형 때문에 방문자들은 북풍지대에 잘 오려고 하지 않았다.

고레벨이 버스를 태워 주는 일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 때문에 오히려 고레벨이 140레벨대의 방문자들을 키우는 데 있어 좋은 사냥터들 중에 하나로 북풍지대가 꼽힌다.

아마 그 때문에 슈발츠가 아직 레벨이 높지 않은 클랜원들을 키워 주기 위해 북풍지대에 온 모양이었다.

‘이곳에 있어 봤자 좋을 건 없어.’

한성은 그들을 무시하며 지나가려 했다.

모험가 길드에 계속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켈투림 토벌대의 최대 정원은 30명이다.

더 이상 한성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블랙 레이븐 클랜과 엮여서 좋을 것도 없으며, 슈발츠는 명백하게 한성을 도발하고 있었다.

거기에 순순히 넘어갈 수 없지 않은가?

“흥. 패기도 없는 놈.”

역시나 슈발츠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한성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참았다.

눈앞에 있는 슈발츠는 한성의 얼굴을 알고 있다.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해 머리색을 바꾸고 얼굴을 바꾸었지만, 기본적인 골격이나 이목구비는 별로 달라지지 않은 상황.

한성의 얼굴을 보고 슈발츠가 자신의 정체를 눈치챌 수도 있었다.

설령 은빛 눈 가면을 쓰고 정체를 숨긴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모험가 길드의 여직원이 한성의 얼굴을 본 상태였으니까.

나중에 슈발츠가 여직원에게 한성에 대해 물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렇다고 여직원을 죽일 수 없는 노릇이고.’

슈발츠를 비롯한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과 한바탕 벌이는 틈을 타 여직원을 처리해 버릴 수 있었다.

모험가 길드의 여직원은 켈트인이었으니까.

하지만 모험가 길드에 속한 켈트인을 죽이면 여러모로 힘들어진다.

모험가 길드를 통한 켈트인들의 의뢰를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지만 아무 죄도 없는 켈트인을 죽이는 것도 이제는 그다지 썩 내키지 않았다.

전승을 하고 난 후, 켈트인들과 지낸 시간이 많았으니까.

거기다 마을 한복판에서 난리를 피울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과 시비가 붙어봐야 정체를 들킬 위험성만 높아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병들이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스텝을 밟으며 달려올 테니 말이다.

‘어차피 여기서는 내가 불리해.’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의 숫자는 총 약 30명.

어떻게든 힘으로 밀어 붙인다면 꿀리지는 않겠지만, 그뿐이었다. 저들을 전부 때려잡으려면 역시 물량으로 밀어붙여야 했다.

‘지금은 그냥 넘어가 주마. 어디 북풍지대에서 보자고.’

한성은 그들을 조용히 스쳐 지나가며 다짐했다.

“잠깐.”

그때 루루의 손을 잡고 모험가 길드 건물을 빠져 나가려던 한성을 슈발츠가 불러 세웠다.

그의 말에 한성은 발걸음을 멈췄다.

“뭐지?”

한성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그런 한성에게 슈발츠는 입 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입을 열었다.

“너 어디서 날 본 적 없나?”

두근두근.

갑작스러운 슈발츠의 말에 한성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설마 들켰나?’

모자를 앞으로 깊게 눌러 쓴 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슈발츠와 대화할 때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았고, 되도록 얼굴 전체가 보이지 않도록 모자를 눌러썼다.

그럼에도 슈발츠는 한성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인정할 수는 없었다.

“오늘 처음 보는데?”

한성은 일단 오리발을 내밀었다.

“크하하하핫!”

“뭐야, 슈발츠. 흑색창기병이라고 잘난 척하더니만.”

“아싸, 내가 이겼다.”

“아직 슈발츠 님을 모르는 방문자들도 많아요.”

한성의 대답에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슈발츠를 바라봤다.

“에이, 시끄러! 이놈들아! 아직 저놈은 레벨이 낮아서 내가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는 거라고!”

손뼉까지 치며 웃겨 죽으려고 하는 클랜원들을 바라보며 슈발츠는 붉어진 얼굴로 씩씩 거렸다.

슈발츠는 창기병이다.

특별히 검은 창을 사용해 흑마를 타고 다니며 몬스터들을 찌르고 다니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흑마 탄 미친놈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흑마를 탄 슈발츠는 온갖 기상천외한 짓을 하며 몬스터들의 무리를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원래 처음에는 그런 그를 보고 많은 방문자들이 흑색창기병, 슈발츠 란첸 라이터라고 불렀었다.

하지만 슈발츠의 캐릭터 이름이 흑마탄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흑마 탄 미친놈이라고 불리기까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작 본인은 여전히 슈발츠 란첸 라이터라고 부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별칭도 가질 정도라 지금은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 제법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다.

“어? 그 놈 어디 갔어?”

한성이 슈발츠를 알고 있는지 없는지 내기까지 걸며 낄낄거리고 있던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틈엔가 코트에 달린 후드처럼 생긴 모자를 머리까지 눌러쓰고 있던 기분 나쁜 놈이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아, 네놈들 때문에 그놈 얼굴을 못 봤잖아. 어떤 놈인지 궁금했었는데.”

한성이 사라진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슈발츠는 혀를 찼다.

‘그런데 뭔가 좀 묘하단 말이야?’

아닌 게 아니라 모자를 눌러쓰고 있던 사내는 어딘가 익숙해 보였다.

그래서 조사를 좀 해 볼 생각이었는데 클랜원들이 낄낄거리며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없어졌다.

‘뭐, 별거 아닌 놈이겠지.’

이내 조금 전 있었던 사내에 대한 의문을 지우며 슈발츠는 동료 클랜원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       *       *

[일반 미션: 켈투림을 토벌하라!]

북풍지대에서 리치가 된 지 수십 년이 된 켈투림이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자신이 섬기는 마족을 소환하기 위해 마력을 모으고 있는 켈투림을 토벌하십시오.

단, 켈투림은 수많은 수하 몬스터들을 대동하고 다니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미션 요구 레벨: 140~150.

난이도: A랭크.

정원: 1/30.

보상: 15000 골드. 유니크 보물 상자.

“흠.”

한성은 모험가 길드에서 받아온 미션 설명창을 바라봤다.

슈발츠가 켈투림 토벌은 자신들이 하겠다고 한성에게 으름장을 놓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사실 슈발츠를 향해 몸을 돌리기 전, 한성은 재빨리 몰래 사인을 했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켈투림 토벌 미션을 받게 된 것이다.

‘빠른 놈이 임자지.’

설명창을 바라보며 한성은 웃음을 흘렸다.

북풍지대의 보스 켈투림을 공략하면 게임 속 시간으로 하루가 지나야 다시 리젠된다.

그러니 오늘 못 잡으면 하루를 기다려야 한다.

당연히 한성은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하물며 상대는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는 블랙 레이븐 놈들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라 블랙 레이븐 놈들이 오늘만 잡고 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며칠간 북풍지대에서 죽치면서 켈투림과 수하 몬스터들을 잡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때문에 한성은 그들보다 먼저 켈투림을 때려잡을 생각이었다.

‘아, 아니지.’

순간 한성의 머릿속으로 좋은 생각이 지나갔다.

블랙 레이븐 놈들을 엿 먹일 좋은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두고 보자, 까마귀 대가리 놈들아.’

그렇게 다짐을 하는 한성의 입가에는 자꾸만 미소가 걸렸다.

“마스터, 무슨 기쁜 일 있으세영?”

그때 한성의 옆에서 아장아장 걷고 있던 루루가 고개를 올리며 말했다. 한성이 자꾸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자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응. 이제 북풍지대에 가자. 해야 할 게 있어.”

“넹~”

루루는 귀엽게 대답하며 한성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한성은 루루와 함께 북풍지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프로즌 타운 북쪽 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하.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북풍지대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된 상황.

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눈앞을 바라봤다.

[일반 미션 북풍지대의 이변이 갱신되었습니다!]

바로 북풍지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변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몬스터와 조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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